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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론 - 마키아벨리 / 1532 마키아벨리(Niccolò di Bernardo dei Machiavelli, 14690503 ~ 15270621)는 메디치가의 로렌초가 피렌체의 권력을 장악한 시점에 태어났다. 29살 때, 로렌초가 사망하고 공화정에 의해 잠시 메디치가문이 몰락한 후 10인회의 장관이 되었고 14년간 정계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메디치가문이 다시 장악하자 체포되어 고문을 당했으며 은퇴 후 시골로 쫓겨났다. 은 쫓겨난 그가 메디치가문의 눈에 들어 다시 정계로 나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쓴 작품이다. 하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했다.  마키아벨리는 에서 권력의 획득을 통한 성공적인 국가 운영을 위한 일련의 규칙들을 세우고자 했다. 부끄럽지 않은 권력을 명예와 함께 추구해야만 하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이 ..
보편자는 기호에 불과, 오직 개별적인 것만이 실재한다 - 오컴 윌리엄 오컴은 UK 서레이 오컴에서 태어났다. 프란치스코회에 들어갔고 옥스포드에서 수학했다. 피터 롬바르트의 에 관한 주석서를 썼으나 이에 관한 매우 논쟁적인 소재로 강의를 진행해 이단으로 고소를 당했고 1324년 교황청에 소환되어 2년간 그곳에서 보냈다. 1326년 오컴이 쓴 명제 중 51개가 이단으로 결정나자 오컴은 이를 철회하길 거부하고 교황의 반대파인 영성프란치스코회에 가담해 같은 단원들과 함께 교황청을 탈출했다. 그러자 교황은 오컴을 파문하였고 오컴은 뮌헨에서 루이 황제의 보호를 받으며 교황에 반대하는 글을 쓰며 지냈다. 유럽에 흑사병에 발발하고 10년 정도 후에 감염되어 사망했다. 오컴은 극단적인 경험주의자이다. 그는 감각의 개별적 대상들만이 유일한 실재라고 주장하며 유명론의 권위자가 되었다...
철학으로 신학을 알려는 시도를 멈춰라 - 둔스 스코투스 둔스 스코투스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났다. 프란치스교회에 들어가 수도승이 되었고 옥스포드에서 공부하고 파리로 유학했다. 유학 중 내놓은 을 내놓았고 어떤 특정한 주장이나 견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논변들을 평가하여 문제가 되는 것의 결론과 해결을 추구했다. 신의 관념 안에서 우선적인 것은 지성보다는 의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앙의 문제와 이성의 문제를 구분하고 신학과 철학을 구분했다. 신학은 신과 신의 속성을 다루지만, 신학적 진리는 감각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증거를 제시하는 증명에 좌위되는 것이 아니고 철학 또는 형이상학은 존재와 그 속성에 관한 것이므로, 신이 존재자가 아닌 이상 신의 속성을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따라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존재증명은 받아들일 수 없고 이성을 올바로 사용하면 조명..
아리스토텔레스로 기독교의 신을 변호하려 한 토마스 아퀴나스 토마스 아퀴나스는 나폴리 근처의 로카세카성에서 백작의 7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5살 때 몬테 카지노에 있는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기 시작했고 이후 나폴리대학에서 수학했다. 이후 가족과 불화가 있었던 그는 가족들이 원했던 베네딕트 수도원을 버리고 도미니카 수도회에 등록했다. 하지만 가족을 피해 그를 파리로 피난시킨 도미니카 수도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그를 납치해 1년간 집에 묶어 두었고 토마스는 항복하고 가족의 품에서 교육을 마쳤다. 이후 파리대학에서 수학하였고 교수가 되어 여러 군데에서 강의를 하며 교황을 돕기도 하였다. 1274년 리옹으로 여행하던 도중 건강이 악화되어 포사노바 근처의 시토 수도원에서 사망했고 3년 뒤 교황 요한 12세에 의해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막대한 분량을 저술했고..
기독교 신앙에 플라톤을 접목한 아우구스티누스 아우구스티누스(이하 Au)는 로마제국이 외적의 침략으로 무너져가고 있을 때 아프리카 북부의 티가스테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기독교 신자였고 아버지는 무교였다. 카르타고에서 교육을 마치고 그곳엣 수년간 강의를 하였다. 이 시기는 무절제한 생활을 하면서도 신앙을 찾던 시절이였다. 금욕을 강조하는 마니교에 빠진 적이 있었고 신플라톤주의를 접하고는 기독교에 귀의하였다. 밀라노를 거쳐 북아프리카로 돌아온 뒤 2년간 수도회에서 생활하였고 성직자가 된 뒤에 시간이 지나 교구의 주교가 되었다. 대표적인 저서 에서는 인간의 의지, 신학과 이성의 관계, 역사의 구분 등을 적고 있고 에서는 개인의 경험을 통해 기독교에 귀의한 것을 적고 있다. Au는 기독교 신앙과 이성을 결합시키기 위해 철학, 그 중에서도 플라톤 철학을 활..
플로티누스의 일자와 영혼 플로티누스는 이집트 태생으로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하고 로마에서 강의했다. 로마에서는 철학에 관심이 많았던 갈레리우스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플라톤의 철학을 받아들여 신플라톤주의를 만들었으며 그 철학을 신봉하는 집단의 지도자로 군림했다. 그의 제자 포르피리우스는 스승의 사후 저작을 정리하여 9개의 부분으로 구성된 6가지 부류로 나누고 라는 책으로 내놓았다. 또한 자신과의 관계를 기준으로 플로티누스의 작업을 세 시기로 나누었다. 플로티누스 철학의 주된 주제는 일자, 영혼, 지성의 원리다. 영혼은 플로티누스 철학의 핵심이다. 영혼을 통해 인간의 지위와 한계를 그려낸다. 궁극적인 실재는 일자이다. 그것은 말로 묘사할 수 없고 존재를 초월하여 있는 궁극적 불가지자이면서 존재의 근원이다. 일자 밑에 지성의 원리가 ..
아리스토텔레스의 부동의 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사물이 운동 중에 있고 그것은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것의 원인으로 부동의 동자(Unmoved Mover)를 설정했다. 이는 영원하고 비질료적이며 변화하지 않는 완전한 자로 가능태가 없는 현실태이다. 가능태는 변화를 내포하므로 덜 완전하기 때문이다. 또한 인격체이다. 지성은 인격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사고는 사고 그 자체로서 있을 뿐이고, 모든 사물에 대한 그의 완전한 지식 안에서 무한히 행복하다. 부동의 동자는 사물의 운동을 산출함에 있어 어떠한 물리적 방법도 취하지 않는다. 그저 우주의 목적인으로서 모든 사물을 그것을 향해 가는 궁극적 선으로서 그러는 것이다. 이와 같은 독립적이고 영원하며 지성적인 존재의 개념은 후에 기독교에서의 신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 아리스토텔레스(이하 A)는 논리학을 모든 종류의 연구와 지식의 습득을 위한 도구라 생각했다. 그래서 저서 을 통해 19세기까지 모든 논리적 연구의 기반이 되는 논리학 체계를 구축했다. 그의 논리학은 삼단논법이라 부른다. 이것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세 개의 명제로 구성된다. 위의 둘은 전제가 되고 마지막 하나는 결론이다. 흔히 예를 드는 것으로 다음의 것이 있다. 만일 전제들이 참이고 그 형식이 타당하면 결론은 참이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다른 형태도 있다. A는 열개의 범주 또는 판단형식을 열거한다. 이는 위의 삼단논법의 첫 번째 전제에서 "모든 사람"과 같은 명제의 주어가 "죽는다"와 같은 술어와 관계되는 방식을 열 가지로 나눈 것이다. 그 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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