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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Ockham(1285-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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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자는 기호에 불과, 오직 개별적인 것만이 실재한다 - 오컴 윌리엄 오컴은 UK 서레이 오컴에서 태어났다. 프란치스코회에 들어갔고 옥스포드에서 수학했다. 피터 롬바르트의 에 관한 주석서를 썼으나 이에 관한 매우 논쟁적인 소재로 강의를 진행해 이단으로 고소를 당했고 1324년 교황청에 소환되어 2년간 그곳에서 보냈다. 1326년 오컴이 쓴 명제 중 51개가 이단으로 결정나자 오컴은 이를 철회하길 거부하고 교황의 반대파인 영성프란치스코회에 가담해 같은 단원들과 함께 교황청을 탈출했다. 그러자 교황은 오컴을 파문하였고 오컴은 뮌헨에서 루이 황제의 보호를 받으며 교황에 반대하는 글을 쓰며 지냈다. 유럽에 흑사병에 발발하고 10년 정도 후에 감염되어 사망했다. 오컴은 극단적인 경험주의자이다. 그는 감각의 개별적 대상들만이 유일한 실재라고 주장하며 유명론의 권위자가 되었다...
오컴의 면도날 신 중심의 중세적 세계관을 붕괴시켜 근대적 서양을 가능케했던 요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오컴의 면도날’이다. 논리적이지 않은 군더더기는 무의미한 것이므로 ‘사유의 면도날’로 다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며, 논리적 연역에 필요한 가정이나 전제는 적을수록 좋다는 것이었다. 오컴의 이런 철학은 당시 도시 상공인 계층인 부르주아 시민계급의 성장을 배경삼아, 중세 스콜라 철학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근대적 세계관의 지평을 연 지적 혁명의 기폭제라는 평가를 받는다. 런던 근교 오컴에서 태어난 그는 수도사가 됐으나 전통적 교황의 권위를 공격하고 당대 주류 신학을 위태롭게하는 과감한 주장을 펴 ‘이단’으로 고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중세 철학자 중 가장 위대한 논리학자라는 평을 받는 오컴의 ‘면도날 사유’는 훗날 코페르니..
정치인의 변명과 오컴의 면도날 정치인의 변명과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 오컴(William of Ockham)은 면도기 회사가 아니라 14세기 중세 철학자의 이름이다(정확히는 지명인데, 옛 사람들의 성(姓)은 땅 이름에서 나온 게 많다). 그래도 면도날이라면 뭔가를 베거나 자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칼날이 아니라 면도날이니까 아주 예리하게 베어내야 한다. “Entia non multiplicanda sunt praeter necessitatem." 읽기도 어려운 이 라틴어 문구는 윌리엄 오컴이 면도날을 정의하는 대목이다. “필요이상으로 많은 실체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뭔가 심오한 의미 같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근본 원리는 필수불가결한 것에 국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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