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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Nietzsche(1844-1900)/바그너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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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너의 경우 서문 나는 약간 마음이 가벼워진다. 내가 이 글에서 바그너를 깎아내리고 비제를 찬양하는 것은 단순한 악의에서가 아니다. 나는 많은 농담 속에 절대 농담일 수 없는 한 가지 문제를 집어넣었다. 바그너에게 등을 돌린다는 것은 내겐 하나의 운명이었다. 어떤 것을 나중에 다시 좋아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의 승리이다. 아마 어떤 사람도 나보다 더 위험하게 바그너적인 것에 밀착해 있지는 않았고, 누구도 그것에 대해 더 강하게 저항하지 않았으며 아무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데에서 더 큰 만족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것은 몹시 오랫 동안의 이야기였다! 이것에 대해 이름을 붙이기를 원하는가? 만일 내가 도덕주의자Moralist였다면 여기에 무슨 이름을 붙였을지 아는가? 아마 '극기'였을 것이다. 그러나 철학자는 도덕주의자..
니체의 비제 예찬 두서없이 이런저런 상념들을 풀어놓은 이 글을 읽기 전에 관련 연보를 잠깐 확인해 두자: 1875년 비제, 초연 석달 뒤 사망 1878년 바그너와 니체의 최종적 단절 1881년 니체, 을 처음 봄. 닷새 뒤 두번째 봄 1883년 바그너 사망 1888년 니체, «바그너의 경우» 저술 1888년 니체가 편지 형식으로 쓴 «바그너의 경우»는 “나는 어제로 비제의 걸작을 스무 번째 들었습니다. 당신은 믿을 수 있겠습니까?”로 시작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비제의 걸작은 오페라 을 가리킨다. 오늘날에야 오디오에 시디를 집어넣기만 하면 들을 수 있는 것이 음악이니 오페라를 스무 번째 들었다는 게 별다른 이야기거리가 아니겠지만, 당시에 스무 번째 오페라를 들었다는 것은 곧 스무 번째 오페라극장을 드나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니체와 데카당스 1. 하이데거와 함께 니체를 읽는다. 하이데거는 니체를 기존 형이상학의 파괴자인 동시에 오히려 그것의 완성자라고 평가하였다. 하이데거는 현실과 유리될 뻔한 형이상학을 구출한 영웅으로 니체를 평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은 많은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한 철학이 아닌, 비논리적인 시 철학으로 몰려 사장될 뻔했던 니체를 형이상학의 완성자로 살려냈다는 점에서 여전히 참고할 만한 중요한 해석으로 평가받고 있다. 2. 데카당스란 무엇인지 안다. 데카당스(décadence)란, 불어로 ‘쇠락’, ‘쇠퇴’, ‘퇴폐’를 의미한다. 어원은 라틴어의 decadentia로, 이 단어는 원래 로마 제국 말기의 문화적인 쇠퇴와 향락성을 가리키는 부정적인 어휘로 사용되었다. 그리스, 로마..
바그너의 경우 벨라 타르의 영화 은 니체의 유명한 일화로 시작한다. 1889년 토리노. 니체는 마부의 채찍질에도 꿈쩍하지 않는 말에게 달려가 목에 팔을 감고 흐느낀다. “어머니 저는 바보였어요.” 그것은 그의 마지막 말이였고 이후 10년간 식물인간으로 침묵하다 세상을 떠난다. 그래서 알지만 ‘모르던’ 니체라는 인간이 ‘알고’ 싶어졌고, 그의 글이 읽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즈음 우연히 내 눈에 들어온 책이, 놀랍도록 우아하고 격조 높은 였다. “바그너가 도대체 인간이란 말입니까? 그는 오히려 질병이 아닐까요? 그는 음악을 병들게 했습니다.” 는 자신이 그토록 숭배했던 바그너를 “위험한 존재”로 규정하고 경멸할 수밖에 없게 된 한 철학자의 고백이다. 회복기에 든 환자가 세상에 보내온, 바그너라는 “질병”을 어떻게 극복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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