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케인즈(J. M. Keynes, 1883-1946)

(2)
신자유주의의 명암 케인즈의 유효수요 이론은 2차 세계대전으로 엄청난 물자의 수요가 생기고 , 100% 완전 고용을 달성하며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베트남전쟁, 중동산유국들이 석유 판매를 거부한 오일쇼크 등이 발생하며 적자로 빠졌고 경제 침체가 시작되었다. 거기에 물가가 상승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이 나타났다. 케인즈는 소득 재분배를 권고했다. 하지만 US 정부는 채권 발행만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세금을 확충하기에는 자본가 계급의 반발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무리한 채권 발행으로 전쟁을 대비했던 US는 전쟁의 패배와 함께 부채가 늘어났고 인플레이션의 급증을 야기했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통화(화폐공급량)가 물가(인플레이션)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며 통화주의를 주창했다. 밀턴은 공황도..
케인즈와 수정자본주의 유럽은 세계1차대전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을 때 US는 군수품 수출을 판매하며 전쟁으로 인한 수혜를 톡톡히 받았다. 주가는 영원히 하락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929년 10월 24일 역사상 유례없는 주가의 대폭락이 시작되었다. 이 불황은 장기간 이어지며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세이의 법칙은 통하지 않았다. 약 8만 5천개의 기업이 사라지고 경제인구 4명 중 1명은 실업상태가 되었다. 고전경제학자들이 믿고 있던 자유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자동 조절 장치는 그 기능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었다. 이 때 US에는 두명의 영웅이 등장한다. 한 명은 US 대통령 사상 전후무후한 4선에 당선된 루즈벨트 대통령이고 또 한 명은 UK 경제학자 케인즈다. 이 둘은 시장을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두는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