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F. Nietzsche(1844-1900)

(42)
비극의 탄생 - 17 17 디오니소스적 예술도 우리에게 삶의 영원한 즐거움을 확신시키려고 한다. 우리는 단지 이러한 즐거움을 현상 속에서가 아니라 현상의 배후에서 구해야 한다. 우리는 생성하는 모든 것이 고통스런 몰락을 각오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우리는 개별적 실존의 끔찍함을 들여다보도록 강제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겁을 먹고 마비되어서는 안 된다. 형이상학적 위로가 일시적으로 우리를 무상한 세상살이로부터 구출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느 실제로 짧은 순간 동안 근원적 존재 자체가 되어서 그것의 제어하기 어려운 생존욕과 생존의 희열을 느낀다. 삶 속으로 서로 부딪히면서 몰려드는 무수한 생존형식들의 과잉과 세계의지의 넘쳐나는 생산성에 접하게 될 때 우리에게는 이제 현상들의 투쟁, 고통, 파멸은 필연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비극의 탄생 - 16 16 이상의 상술된 역사적 예에서 우리가 밝히려고 한 것은 비극이 음악정신으로부터만 탄생될 수 있는 것처럼 음악정신이 소멸될 때 비극도 몰락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이 갖는 기이한 성격을 완화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인식의 근원을 제시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제 자유로운 눈으로 우리 시대의 유사한 현상들을 관찰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내가 방금 말한 것처럼 현 세계의 최고의 영역들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 즉 만족할 줄 모르는 낙천주의적 인식과 비극적 예술에 대한 욕구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의 한가운데로 들어가야만 한다. 이 경우 나는 어느 시대든지 예술 특히 비극예술에 대해서 대항하는 모든 적대적 충동들을 무시하고 싶다. 이러한 충동들은 현대에도 의기양양하게 확산되고 있어서, 무대예술 중..
비극의 탄생 - 15 15 이 마지막 예감에 가득 찬 물음을 염두에 두면서 이제 우리는 다음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 두어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영향은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아니 미래에 이르기까지 마치 석양에 점점 커져가는 그림자처럼 후세로 퍼져 나갔으며, 예술의 새로운 창조를 - 그것도 형이상학적인 가장 넓고 가장 깊은 의미에서의 예술을 - 항상 거듭해서 필연적으로 촉진했으며, 그 자신의 고유한 무한성으로 예술의 무한성까지 보장해 주었다. 이러한 사실이 인식될 수 있기 전에는, 즉 호메로스에서 소크라테스에 이르는 그리스인들에 대한 모든 예술의 가장 내적인 의존성이 납득할 만하게 설명되기 전까지는 우리들과 그리스인들과의 관계란 마치 아테네 시민과 소크라테스와의 관계와 같은 것에 머무르지 않을 수 없다. 거의 모든 시대와 모든 문..
비극의 탄생 - 14 14 이제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키클롭스의 눈처럼 큰 눈으로 비극을 바라보는 모습을 생각해 보자. 그 눈에는 한 번도 예술적 감동의 불꽃이 불타오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눈이 왜 디오니소스적인 심연 속을 기쁜 마음으로 들여다볼 수 없었는지를 생각해 보자. 플라톤이 말한다. '숭고하고 높이 찬양받는' 비극예술에서 그 눈은 본래 무엇을 보아야만 했던가? 그것은 원인 없는 결과, 결과 없는 원인과 같이 비합리적인 것을 보았다. 더구나 비극예술은 모든 것이 너무나 다채롭고 다양하여 사려 깊은 기질에는 반감을 불러 일으키고, 민감하고 쉽게 매혹되는 영혼에는 위험한 도화선이 된다. 우리는 그가 이해할 수 있었던 유일한 문학 장르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그것은 이솝 우화이다. 그는 이솝우화를 정직하고 선량한 겔레..
비극의 탄생 - 13 13 경향 면에서 볼 때 소크라테스가 에우리피데스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당시의 고대인들도 간과하지 않았다. 이러한 예리한 통찰은 소크라테스가 에우리피데스의 시작을 도와주곤 한다는 당시 아테네에서 떠돌던 풍문에서 가장 웅변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훌륭했던 옛날'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현재의 민중 선동가들을 열거할 경우 두 사람의 이름이 동시에 거론되었다. 육체와 정신 면에서 옛날의 마라톤적인 건장한 기풍이 점차 쇠약해지면서 미심쩍은 계몽에 갈수록 희생되어 간 것은 그 두 사람의 영향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식의 말투로 반은 분개하고 반은 경멸하면서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은 저 두사람에 대해서 말하곤 했는데, 이는 근대인에게는 놀라운 일이었다. 근대인은 에우리피데스쯤이야 버려도 상관없는 일이..
비극의 탄생 - 12 12 이 다른 관객의 이름을 거론하기 전에 우리는 잠깐 멈춰서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의 본질 속에 들어 있는 모순되고 헤아릴 수 없는 것에 대한 앞서 언급된 인상을 상기해 보자.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의 합창단과 비극적 주인공에 대해서 우리가 가졌던 낯선 느낌을 생각해 보자.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우리의 습관이나 전통과 조화시킬 수 없다. 우리가 저 이중성 자체를 그리스 비극의 근원이자 본질로서, 즉 서로 얽혀 있는 두 예술충동인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표현으로서 재발견하게 될 때 까지는 말이다. 저 근원적이고 전능한 디오니소스적 요소를 비극으로부터 제거하고 비극을 순수하면서도 새롭게 디오니소스적인 예술, 관습과 세계관 위에 건립하는 것, 이것이 이제 보다 밝은 조명 아래서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비극의 탄생 - 11 11 그리스 비극은 그것과 자매관계에 있는 보다 오래된 예술 장르와는 다른 방식으로 몰락했다. 그것은 풀 수 없는 갈등의 결과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것은 비극적으로 죽은 것이다. 반면에 다른 모든 예술들은 고령의 나이에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고 평온하게 숨을 거두었다. 훌륭한 자손을 남기고 고요하게 세상을 하직하는 것이 행복한 자연상태에 어울리는 것이라면, 저 보다 오래된 예술 장르들의 종말은 그러한 행복한 자연상태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것들은 서서히 사라져 갔다. 그리고 죽어가는 자들의 눈앞에는 이미 그들보다 더 아름다운 자손들이 서 있으며 기운찬 모습으로 초조한 듯 머리를 쳐들고 있었다. 이에 반해 그리스 비극이 죽었을 때는 엄청난 공허가 생겼고, 이러한 공허는 도처에서 통절하게 느껴졌다...
비극의 탄생 - 10 10 그리스 비극이 가장 오래된 형태에서 디오니소스의 고뇌만을 표현했으며, 오랜 시간 동안에도 무대 주인공이 디오니소스뿐이었다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없이 분명하게 전승에 나타나 있다. 그러나 에우리피데스에 이르기까지 비극의 주인공은 항상 디오니소스였고 프로메테우스나 오이디푸스 등과 같이 그리스 무대상의 유명한 인물들 모두 저 원래의 주인공인 디오니소스의 분장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위의 사실과 마찬가지로 확실하게 주장할 수 있다. 이 모든 분장 뒤에 어떤 신성이 숨어 있다는 점이야말로 그 유명한 인물들이 놀라울 정도의 전형적 '이상성'을 가졌다는 사실의 근본적인 이유이다. 누가 주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개인은 개인으로서는 우스꽝스럽고 따라서 비극적이 못 된다는 주장이 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