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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Nietzsche(1844-1900)/비극의 탄생

비극의 탄생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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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이 마지막 예감에 가득 찬 물음을 염두에 두면서 이제 우리는 다음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 두어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영향은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아니 미래에 이르기까지 마치 석양에 점점 커져가는 그림자처럼 후세로 퍼져 나갔으며, 예술의 새로운 창조를 - 그것도 형이상학적인 가장 넓고 가장 깊은 의미에서의 예술을 - 항상 거듭해서 필연적으로 촉진했으며, 그 자신의 고유한 무한성으로 예술의 무한성까지 보장해 주었다.

 

이러한 사실이 인식될 수 있기 전에는, 즉 호메로스에서 소크라테스에 이르는 그리스인들에 대한 모든 예술의 가장 내적인 의존성이 납득할 만하게 설명되기 전까지는 우리들과 그리스인들과의 관계란 마치 아테네 시민과 소크라테스와의 관계와 같은 것에 머무르지 않을 수 없다. 거의 모든 시대와 모든 문화 단계가 깊은 불만과 함께 한 번 정도는 그리스인들에게서 해방되려고 몸부림쳤다. 왜냐하면 그리스인들 앞에 서면 자신들이 이룬 모든 것, 외관상 완전히 독창적인 것, 그리고 진정으로 감탄해왔던 모든 것이 갑자기 색채와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 같고 실패한 복제품, 아니 단순한 회화로 오그라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건방지게도 자기 나라의 것이 아닌 모든 시대의 것을 '야만적'이라고 부르는 저 오만한 소민족에 대해서 언제나 분통이 새롭게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도대체 저들은 누구인가라고 사람들은 자문한다. 그들은 단지 일시적인 역사적 영광, 울스울 정도로 편협한 제도, 풍습상의 미심쩍은 유능성 외에는 보여줄 것이 없고 심지어 추악한 악덕을 특징으로 하면서도, 여러 민족들에게 천재가 대중에게서 마땅히 받아야 할 존엄과 특별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사람들은 그러한 존재를 간단하게 처치할 수 있는 독배를 찾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시기, 중상모략, 격분이 만들어 낸 어떠한 독도 저 자족적인 장려함을 파괴하기에는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그리스인 앞에서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한다. 이렇게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사람들은 진리를 무엇보다도 존중하고 다음과 같은 진리마저 인정할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즉 그리스인들은 마부로서 우리의 문화와 모든 문화의 고삐를 손에 쥐고 있지만, 이 마차와 말은 거의 항상 너무 보잘것 없는 소재로 되어 있어서 마부의 영광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따라서 그는 그런 마차를 골짜기로 떨어뜨리는 것쯤은 장난으로 생각하며, 그들 자신은 이 골짜기를 아킬레우스의 도약으로 뛰어넘는다.

 

그러한 마부의 자리가 소크라테스에게 어울리는 자리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그에게서 그 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삶의 양식을, 즉 이론적 인간의 유형을 발견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이론적 인간의 의의와 목표를 통찰하는 것이 우리의 당면과제이다. 이론적 인간도 예술가와 마찬가지로 눈앞에 있는 것에 무한한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역시 예술가처럼 이러한 기쁨에 의해서 염세주의의 실천적 윤리로부터 그리고 암흑 속에서만 빛나는 린케우스의 눈으로부터 보호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예술가는 진리의 베일이 아무리 벗겨져도 그렇게 벗겨진 후에도 여전히 숨겨져 있는 것에 매혹당한 시선을 고정시킨다면, 이론적 인간은 내던져진 베일에서 기쁨과 만족을 느끼고 그의 최고의 기쁨은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성공적인 베일 벗기기의 과정 자체에 존재하는 것이다. 만일 학문에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저 발가벗은 하나의 여신만이 중요했다면 학문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할 경우에 학문의 사도들은 지구를 꿰뚫어 하나의 갱도를 파려고 하는 사람들의 기분과 유사한 기분을 느낄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 각자는 누구나 자신이 평생 동안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거대한 깊이의 극히 작은 일부만을 파 들어갈 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구멍조차 그가 보는 앞에서 바로 옆 사람에 의해서 다시 메워지고 만다. 그러면 제 삼자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구멍을 뚫기 위한 새로운 장소를 찾는 것이 나아 보일 것이다. 이제 어떤 사람이 이렇게 곧바로 뚫고 나가도 지구 반대편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증명했다고 할 경우, 땅을 파 들어가면서 보석을 발견한다든지 지하자원을 발견한다든지 하는 데에서 오는 만족이 없다면 누가 지금까지 뚫어온 구멍을 계속 뚫어나가려고 하겠는가. 이 때문에 가장 정직한 이론적인 인간인 레싱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은 진리 그 자체가 아니라 진리를 찾는 행위 자체라고 감히 말했던 것이다. 학자들에게는 놀랍고 분한 일이겠지만 이 말과 함께 학문의 비밀이 드러난 것이다. 오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과도하게 정직했던 레싱의 이러한 고립된 인식 옆에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을 통해서 처음으로 세상에 나타나게 된 의미심장한 망상이 존재한다.이러한 망상은 사유가 인과율의 실마리를 따라서 존재의 가장 깊은 심연에까지 도달하고 존재를 인식할 수 있을 뿐아니라 수정할 수도 있다는 저 확고한 믿음이다. 이러한 숭고한 형이상학적 망상은 본능으로서 학문에 주어지며, 학문을 거듭해서 그것의 한계에까지, 즉 학문이 예술로 전환할 수밖에 없는 한계로까지 이끌어간다. 학문은 이러한 메커니즘에서 원래 예술을 지향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가 이러한 사상의 횃불로 소크라테스를 비추어 보면, 그는 우리에게 학문이라는 저 본능의 손에 이끌려 살 수 있었을뿐 아니라 죽을 수도 있었던 최초의 사람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죽음에 임한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지식과 논거에 의해서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인간의 모습으로서 학문의 입구에 걸려 누구에게나 학문의 사명을 상기하게 만드는 문장인 것이다. 이 경우 학문의 사명이란 존재를 이해 가능하고 정당한 것으로 나타나게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논거가 충분하지 못할 경우에는 궁극적으로 신화도 사용되어야만 한다. 내가 방금 말한 바와 같이, 신화는 학문의 필연적인 귀결이며, 아니 오히려 학문의 목적인 것이다.

 

학문의 사제,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철학의 여러 학파들이 밀려왔다 밀려가는 물결처럼 차례로 교체되어 갔다. 지식욕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을 정도로 보편적인 것이 되어서, 학문은 교양 세계의 광대한 영역에서 높은 능력을 갖춘 모든 사람들에게 본연의 과제로 간주되어 드높은 대양으로 이끌려갔으며 그 후 이 대양에서 다시는 완전히 추방되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지식욕이 이렇게 보편적인 것이 됨으로써, 사상이라는 공동의 그물망이 온 지구 위에 펼쳐지게 되었고 더 나아가 태양계 전체의 작용법칙까지도 통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현대의 경이로울 정도로 높은 지식의 피라미드와 더불어 머릿속에 떠올려 보는 사람은 누구나 소크라테스에서 이른바 세계사의 한 전환점과 소용돌이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이러한 세계적 경향을 위해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한 양의 힘이 소모되지만, 이 힘이 인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과 민족의 실천적 목표, 즉 이기적인 목표를 위해서 사용될 경우를 생각해 보자. 그러면 곳곳에서 파괴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민족 이동이 끊임없이 일어나면서 삶에 대한 본능적 욕구는 약화되고 말 것이다. 그리하여 자살은 상습적인 것이 되고 피지 섬의 주민들처럼 자식은 양친을 목 졸라 죽이고 친구는 친구를 목 졸라 죽임으로써 자신들의 마지막 의무를 다했다고 느끼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것은 동정심에서 민족을 살육한다고 하는 몸서리쳐지는 윤리를 낳을 수 있는 일종의 실천적 염세주의다. 이러한 염세주의는 예술이 어떠한 형식으로든, 특히 종교와 학문이라는 형식으로 저 무서운 독기의 치료제와 예방제로서 나타나지 않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볼 수 있었으며 지금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적 염세주의에 반해서 소크라테스는 이론적 낙천주의자의 원형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그는 사물의 본성을 철저하게 규명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지식과 인식에 만병통치약과 같은 효력이 있음을 인정하고 오류야말로 악 그 자체로서 파악한다. 저 근거들을 천착하고 가상과 오류에서 참된 인식을 분리해 내는 것이 소크라테스적인 인간에게는 가장 고귀한 소명, 유일하고 진정한 인간의 소명이라고 여겨졌다. 개념, 판단, 추리의 메커니즘은 이렇게해서 소크라테스 이래 다른 어떤 능력보다 높이 평가되어 최고의 활동이자 자연의 가장 경탄할 만한 선물로 간주되었다. 동정심, 희생심, 영웅심과 같은 가장 고귀한 윤리적 행위들까지도 그리고 아폴론적 그리스인이 소프로슈네라고 불렀던 저 쉽사리 얻기 어려운 잔잔한 바다와 같은 영혼의 저 고요함마저도 소크라테스와 그의 사상적 후계자들에 의해서 지금까지도 저 지적 변증론으로부터 연역되었으며 따라서 가르칠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소크라테스적 인식의 즐거움을 단 한 번이라도 몸소 맛보고, 이 인식이 갈수록 판도를 확대하면서 현상계 전체를 포괄하려고 하는 것을 느끼는 자는 이때부터는 생으로 몰고 가는 어떠한 자극도 저 인식의 세계 정복을 완성하고 물샐틈 없이 인식의 그물을 치려고 하는 욕망보다 더 강렬하게 느끼지 못한다. 이러한 자극에 휩싸인 사람은 플라톤이 묘사한 소크라테스를 전혀 새로운 형식의 그리스적 명랑성과 삶의 축복에 대한 교사로 볼 것이다. 이 새로운 형식의 명랑성과 삶의 축복은 행동으로 발산되려고 하며, 궁극적으로 천재를 산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면서 고귀한 청년들에게 산파술적이고 교육적인 감화를 주는 방식으로 발산된다.

 

그런데 학문은 그 강력한 망상에 의해 자극받으면서 쉬지 않고 서둘러 달리면서 자신의 한계에 도달한다. 이러한 한계에서 논리학의 본질에 숨겨져 있는 낙천주의는 좌절된다. 왜냐하면 학문의 원주 위에는 무한히 많은 점들이 있으며 이 원주를 완전히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보이지 않는데, 고귀하고 재능있는 인간은 생애의 중반에 도달하기도 전에 불가피하게 원주의 그러한 한계점에 부딪혀서, 그곳에서 해명할 수 없는 것을 응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가 여기서 논리학이 그 한계점에 부딪혀 자기 주위를 빙빙 돌면서 마침내 자신의 꼬리를 무는 것을 보면서 몸서리칠 때, 새로운 형식의 인식, 즉 비극적 인식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비극적 인식을 참고 견뎌 내기 위해서만이라도 예술이 보호제와 치료제로서 필요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강화된 눈, 그리스인들을 접하여 활기를 띠게 된 눈으로 우리 주위에 넘쳐 흐르는 그리스 세계의 최고의 영역들을 바라본다면, 소크라테스에게서 모범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욕망, 즉 만족할 줄 모르는 낙천주의적 인식욕이 비극적 체념과 예술에 대한 욕구로 전환되는 것을 보게 된다. 물론 이 인식욕은 낮은 단계에서는 예술에 적대적이며 특히 디오니소스적 비극예술을 깊이 혐오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소크라테스주의에 의해서 아이스킬로스의 비극이 몰락하는 과정의 실례를 들어 서술한 바 있다.

 

이제 여기서 우리는 설레는 가슴으로 현대와 미래의 문을 두드려 보자. 저 '전환'은 끊임없이 새롭게 천재가 형성되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특히 음악을 하는 소크라테스가 형성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인가? 종교의 이름으로든 학문의 이름으로든 존재 위에 펼쳐진 예술의 그물은 갈수록 더 강하고 정교하게 짜일 것인가? 아니면 그것은 '현대'라 불리는 불안하고 야만적인 분주함과 소용돌이 아래서 갈기갈기 찢겨질 운명인가? 근심하면서 그러나 희망을 버리지는 않고 우리는 잠깐 옆에 서서 저 엄청난 싸움과 변동의 증인이 될 것을 허락받은 방관자가 되어 보자. 아아! 이러한 싸움을 바라보는 자는 이 싸움에 가담해야만 한다는 것. 이것이 이 싸움의 마력인 것이다!

 

 

눈에비친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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