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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근대의 소크라테스적 문화를 오페라의 문화라고 부를 경우 우리는 그것의 가장 내면적인 본질을 가장 예리하게 포착하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소크라테스 문화가 특유의 소박성으로 자신들의 의지와 인식을 공공연히 표명한 것은 이 오페라의 영역에서였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발생과 그 전개과정을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는 영원한 진리와 비교해 볼 경우 우리는 (그것들이 서로 달라서 ) 놀라게 된다. 나는 우선 무대조와 음송조의 발생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싶다. 철저하게 외면적이며 불경건한 이 오페라 음악이 팔레스트리나라는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숭고하고 신성한 음악이 탄생한 직후에, 마치 모든 참된 음악의 재생인 것처럼 열광적인 인기를 끌면서 환영과 보호를 받았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 아닌가? 그리고 어느 누구도 유흥을 탐하는 피렌체 사회의 사치스런 생활방식과 연극가수들의 허영심만이 오페라에 대한 흥미를 그렇게 급격하게 확산시킨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일한 시대에 동일한 민족 속에서 중세의 기독교 전체가 이루어 놓은 팔레스트리나적 화음의 대전당 옆에서 저런 반(半) 음악적 화법에 대한 열정이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음송조의 본질 속에 함께 작용하고 있는 예술 외적인 경향 때문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오페라 가수는 노래 속의 말을 똑똑히 듣고 싶어 하는 청중의 욕구에 영합하기 위해서 노래를 부른다기보다는 오히려 말을 더 많이 하며 이러한 반가창 속에서 단어의 열정적인 표현을 첨예하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열정을 첨예하게 표현함으로써 그는 단어의 이해를 용이하게 하고 나머지 반인 음악을 압도 한다. 이제 그가 빠지기 쉬운 위험은 그가 섣불리 음악에 중점을 두게 될 때 발생한다. 이렇게 되면 곧 대사의 파토스와 단어의 명료성이 상실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가수는 음악적으로 자신을 폭발시키고 싶은 충동, 자신의 목소리를 훌륭하게 표현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여기에 그를 도와주러 온 자가 '시인'이다. 시인은 서정적인 감탄, 단어와 문장의 반복 등의 기회를 그에게 충분히 제공할 줄 아는 것이다. 이런 대목에서 가수들은 이제 단어에 구애되지 않고 음악적인 영역 속에서 마음껏 쉴 수 있다. 대사 부분은 감정에 가득 차서 관중에게 호소하지만 반쯤밖에 노래로 불리지 않는 반면에, 감탄 부분은 완전히 노래로 불린다. 이러한 두 부분의 상호교체가 무대조의 본질인데, 어떤 때는 청중의 개념과 표상에 작용하다가는 어느새 청중의 음악적 소질에 작용한다는 식의 이러한 조급한 교체의 노력은 몹시 부자연스러우며 디오니소스적인 예술충동과 아폴론적 예술충동에 내적으로 똑같이 모순된다. 따라서 음송조의 기원은 모든 예술적 본능의 외부에 있다고 추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음송조는 이상의 서술에 따를 경우 서사시적 낭독과 서정시적 낭독의 혼합이라고 정의 내려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적으로 안전된 혼합체는 결코 아니다. 이러한 안정된 혼합은 그렇게 서로 완전히 이질적인 것들 사이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음송조에서 보이는 혼합은 자연의 영역이나 체험의 영역 어느 곳에서도 전혀 선례가 없는 극히 외면적이고 모자이크적인 조합이다. 그러나 이는 음송조 창시자들의 견해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 자신과 그들의 시대는 저 무대조를 통하여 고대 음악의 비밀이 풀리게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비로소 오르페우스와 암피온의 더 나아가 그리스 비극의 거대한 효과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새로운 양식은 가장 효과가 큰 그리스 음악의 부활로 간주되었다. 호메로스의 세계를 원시세계로 간주하는 일반적이고 전적으로 민중적인 견해로 인해서 사람들은 이제 다시 인류가 낙원에 살던 시원상태로 돌아간 것 같은 몽상에 젖을 수 있었다. 인류의 이 시원상태에서는 음악도 전원극 속에서 시인들이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저 탁월한 순수성, 힘, 무구함을 지니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고 사람들은 몽상했던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녕 현대의 고유한 예술 장르인 오페라의 가장 내적인 생성 과정을 보게 된다. 즉 어떤 하나의 강력한 욕구가 여기서 하나의 예술을 무리하게 만들어 낸다. 그러나 이 욕구는 미학적인 종류의 것이 아니고 목가에 대한 동경이며, 예술적이고 선량한 인간이 태고에는 존재했음에 틀림없다는 믿음이다. 음송조는 저 원 시인의 언어를 다시 발견한 것으로 여겨졌고, 오페라는 이 목가적이거나 영웅적으로 선량한 인간이 사는 땅이 다시 발견된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인간은 어떠한 행동을 하더라도 자연스런 예술충동에 따르며, 자신이 하는 말 모두를 반드시 약간은 노래 부르고 조금이라도 감정이 동하면 곧 힘찬 목소리로 노래한다. 낙원의 예술가라는 이렇게 새로 창조된 형상을 가지고 당시의 휴머니스트들이 인간을 본질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한 것으로 보는 중세 교회의 인간관에 대해서 투쟁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오페라는 선량한 인간이라는 관념을 주장하는 대항적인 교의로서 이해되어야 하며, 이 교의가 그 당시의 진지한 사람들이 모든 상황의 무서운 불확실성으로 인해서 가장 강하게 매료되었던 염세주의에 대한 위로의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도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러한 새로운 예술형식의 고유한 매력과 그것의 발생원인은 완전히 비미학적인 욕구의 충족에 있었으며, 인간 그 자체를 낙천주의적으로 미화하고 원시적 인간을 천성적으로 선량하고 예술적인 인간으로 파악하는 데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현재의 사회주의 운동을 고려할 때 오페라의 이러한 원리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어떤 위혐적이며 가공할 요구로 변했다. '선량한 원시인'이 자신의 권리를 찾으려고 한다. 이 얼마나 낙원 같은 전망인가!
오페라가 우리의 알렉산드리아적 문화와 동일한 원리 위에 세워져 있다는 나의 견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나는 또 하나의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오페라는 예술가가 아니라 이론적 인간, 즉 비판적인 문외한들의 산물이다. 이는 모든 예술들의 역사에서 가장 기괴한 사실들 중의 하나이다. 무엇보다도 가사를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요구한 것은 지극히 비음악적인 청중들이었다. 이들은 주인이 하인을 지배하듯이 가사가 대위법을 지배하는 성악 기법이 발견될 경우에만 음악의 재생이 기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는 영혼이 육체보다도 훨씬 더 고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페라의 발생기는 음악과 형상 그리고 말의 결합은 이런 견해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속물적이고 비음악적으로 거칠게 다루어졌다. 이러한 미학에 근거하여, 피렌체의 상류 속물 사회에서 기생하고 있던 시인과 가수들의 손에 의해서 오페라가 처음으로 실험되었다. 예술에 무능력한 인간이 자신이 비예술적 인간 그 자체라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서 하나의 예술형식을 만들어 내었다. 그는 음악의 디오니소스적 깊이를 감지하지 못하기 때문에 음악의 향유는 그에게는 무대조에서 보이는 지성적인 말과 소리의 열정적 수사학으로, 그리고 성악의 기법에 대한 쾌감으로 변질되었다. 그는 환영을 볼 능력이 없기 때문에 도구취급자와 무대장치가를 고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예술가의 진정한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의 취미에 따라 '예술적 원시 인간', 즉 정열에 휩싸여 노래하고 시를 읊는 인간을 눈앞에 불러낸다. 그는 노래와 시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정열만 가지고 있으면 충분한 시대로 자신이 되돌아온 것처럼 몽상한다. 마치 열정이 예술적인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처럼, 오페라의 전제는 예술의 생성과정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며,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원래 감수성을 지니는 모든 인간은 예술이라는 저 목가적인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이 갖는 의미를 염두에 둘 때, 오페라는 예술에서 속물근성의 표현이다. 이러한 속물근성은 이론적 인간의 명랑한 낙천주의와 함께 자신의 법칙을 강요한다.
우리가 오페라가 발생하는 데 작용했던 방금 서술한 두 가지 관념을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하고자 한다면, 우리에게는 오페라의 목가적 경향에 대해서 말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실러의 표현방식과 설명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연이 상실된 것으로, 이상이 도달되지 못한 것으로 표현될 경우 그것들은 모두 슬픔의 대상이라고 실러는 말하고 있다. 이에 반해 양자가 현실적인 것으로서 생각될 경우 그것들은 모두 기쁨의 대상이다. 첫 번째의 경우는 좁은 의미에서 비가를, 두 번째의 경우는 가장 넓은 의미에서의 목가를 제공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곧 오페라가 발생하는 데 작용했던 저 두 가지 관념들의 공통적인 특징에 주목해야만 한다. 공통적인 특징이란 저 두 가지 관념들에서 이상은 도달되지 않은 것이 아니며 자연은 상실된 것이 아닌 것으로 느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느낌에 따르면 인간이 자연의 품 속에 안겨 있었고 이러한 자연 그대로의 상태에서 낙원의 선함과 예술적 천성을 통해서 인간의 이상을 실현했던 원시시대가 있었던 것이 된다. 우리 모두는 이렇게 완전한 원시인의 후예인 셈이다. 아니 지금도 역시 우리는 이 원시인과 동일한 형상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다시 이러한 원시인으로서 인식하기 위해서는 넘쳐 흐르는 박식함과 지나치게 풍부한 문화를 자발적으로 포기하기만 하면 된다. 즉 우리는 우리의 것을 약간만 버리면 되는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교양인은 그리스 비극을 오페라식으로 모방함으로써 자연과 이상의 이러한 조화로, 즉 목가적 현실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그는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를 이용했듯이 비극을 이용해 낙원의 입구에까지 인도될 수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독자적으로 전진하여 최고의 그리스 예술을 모방하는 것으로부터 '만물의 부흥'으로, 인간의 원시적인 예술세계의 모방으로 이행해 갔다. 이론적인 문화의 품 안에서 이처럼 대담한 노력을 하다니 얼마나 확신에 찬 선량함인가! '인간 그 자체가 영원히 유덕한 오페라의 주인공이며 영원히 피리를 불거나 노래하는 목자라는 믿음, 그리고 인간이 언젠가 한 번은 잠시 자신을 상실하게 될지라도 마침내 항상 자신이 영원한 목자임을 다시 발견할 것임에 틀림없다는 위로가 되는 믿음에 의해서 밖에는 르네상스 시대의 교양인의 저 확신에 찬 선량함을 설명 할 길이 없다. 그것은 소크라테스적 세계관의 깊이로부터 달콤하고 유혹적인 향기처럼 솟아오르는 낙천주의의 열매일 뿐이다.
따라서 오페라의 얼굴에는 영원한 상실을 슬퍼하는 저 비가적인 고통은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영원한 재발견을 즐기는 명랑성이 서려 있으며, 사람들이 최소한 그 어떠한 순간에도 현실적인 것으로서 상상할 수 있는 목가적 현실에 대한 태평스런 기쁨이 서려 있다. 이 경우 사람들은 아마도 이 상상의 현실이 환상적이고 분별없는 장난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한 번쯤 예감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 장난거리를 진정한 자연의 무서운 엄숙성에 비추어 측정하고 인류 초기의 진정한 원시적 정경과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장난거리에 대해서 구역질을 느끼면서 이렇게 외칠 것이다. 환영아, 물러가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유령을 내쫓을 때처럼 오페라 같은 어린애 장난 같은 것을 단순히 크게 호통을 쳐서 내쫓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일 것이다. 오페라를 절멸시키려고 한다면 저 알렉산드리아적 명랑성과 일전을 벌여야만 한다. 알렉산드리아적 명랑성은 오페라에서 자신의 본의를 소박하게 표명하고 있다. 아니 오페라야말로 그것의 본래적인 예술형식이다. 이와 같은 예술형식으로부터 예술 그 자체를 위해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미학적 영역으로부터 유래하지 않고 오히려 반도덕적 분야로부터 몰래 예술적 영역으로 넘어와 자신의 잡종적 태생을 여기저기에 숨길 수 있었던 예술형식에서 예술 그 자체를 위해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오페라라는 이 기생충적 존재가 진정한 예술의 수액을 먹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어떠한 수액을 먹고 자라는 것인가? 예술에 주어진 진정으로 엄숙한 최고의 과제는 가공할 어둠 속을 응시한 눈을 구제하고 가상이라는 치료약으로 주제를 의지활동의 경련으로부터 구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페라의 목가적 유혹 아래선느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적인 대중영합적인 예술 아래서는 예술의 이 진정한 과제가 공허한 기분전환의 오락적 경향으로 타락해 버린다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내가 무대조의 본질로 서술했던 그러한 양식 혼합 속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이라는 영원한 진리는 무엇이 될 것인가? 음악은 하인으로 가사는 주인으로 간주되고, 음악은 육체에 가사는 정신으로 비유되고 있는 곳에서? 음악이 향하는 최고의 목표가 과거 아티가의 새로운 주신찬가에서처럼 기껏해야 해설적인 음성그림인 곳에서? 음악이 디오니소스적인 세계의 거울이라는 진정한 존엄성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현상의 노예로서 현상의 형식을 흉내내고 선과 비례의 유희 속에서 외면적인 흥미를 일으키려고 하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곳에서? 음악이 디오니소스적인 세계의 거울이라는 진정한 존엄성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현상의 노예로서 현상의 형식을 흉내내고 선과 비례의 유희 속에서 외면적인 흥미를 일으키려고 하는 일 이외에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곳에서? 엄밀하게 고찰해 보면 오페라가 음악에 미친 이 불행한 영향은 현대 음악의 발전 전체와 일치한다. 오페라의 발생과 오페라에 의해 대표되는 문화의 본질에 숨어 있는 낙천 주의는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음악으로부터 그것의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을 박탈하고 그것에게 형식을 가지고 유희하고 오락적인 성격을 새겨 넣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변화에 비교될 수 있는 것은 아이스킬로스적 인간이 알렉산드리아적인 명랑한 인간으로 변형되었다는 것뿐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실례로 제시한 것처럼 디오니소스적 정신의 소멸을, 가장 눈에 띄면서도 이제까지는 설명되지 않았던 그리스 인간의 변화와 퇴화에 연관시키는 것이 정당하다고 한다면, 우리의 현재 세계 속에서 정반대의 과정, 즉 디오니소스적 정신이 점차 깨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보증하는 가장 확실한 조짐이 보일 때 우리의 마음속에 얼마나 희망이 샘솟겠는가! 헤라클레스가 옴팔레에 의해서 아무리 혹사당하더라도 그의 신적인 힘이 영원히 소진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독일 정신의 디오니소스적 기반으로부터 하나의 힘이 솟아올랐다. 이 힘은 소크라테스적 문화의 근본조건과는 아무런 공통점을 갖고 있지 않으며 소크라테스 문화에 의해서 설명할 수도 변호할 수도 없다. 오히려 그것은 소크라테스 문화에 의해서 두렵고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압도적이고 적대적인 것으로서 받아들여진다. 그 힘이란 독일 음악이다. 그리고 그것은 특히 바흐로부터 베토벤, 베토벤으로부터 바그너에게로 태양처럼 강력하게 운행하는 독일 음악이다. 인식을 갈망하는 우리 시대의 소크라테스주의가 아무리 유리한 입장에 있더라도 이 한없이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다이몬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인가? 오페라의 멜로디라는 톱니와 아라베스크를 가지고서도, 푸가와 대위법적인 변증법이라는 주판을 가지고서도, 세 배나 강한 빛으로 저 다이몬을 굴복시키고 입을 열게 할 수 있는 공식은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요즘 우리의 미학자들이 자신들한테밖에 통하지 않는 아름다움이라는 잠자리채로, 그들 앞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생명을 갖고 움직이고 있는 정령을 때려잡으려고 뛰어다니는 꼴은 얼마나 가관인가! 그들의 그러한 모습은 영원한 아름다움과 숭고함과는 거리가 멀다. 음악 애호가들이 지치지 않고, 아름다움이여! 아름다움이여! 외치고 있을 때 한 번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라. 그 경우 그들이 아름다움의 품 안에서 곱게 자라난 자연의 총아처럼 보이는지, 아니면 그들이 오히려 자신의 조잡함을 숨기기 위해서 어떤 기만적인 형식을 찾고 자신의 빈곤하고 냉랭한 감수성을 감추기 위해서 미학적 변명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이런 사람의 예로서 나에게는 오토 얀(Otto Jahn)이 떠오른다. 그러나 독일 음악 앞에서는 그러한 사기꾼이자 위선자도 조심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의 문화 전체에서 음악이야말로 유일하게 순수하고 맑으며 정화시키는 불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에페소스의 위대한 헤라클레이토스의 가르침처럼 만물이 이중의 원을 그리며, 이 불의 정신으로부터 흘러나와서 다시 그곳으로 흘러들어가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문화, 교양, 문명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은 언젠가 한 번은 속일 수 없는 재판관인 디오니소스 앞에 서야만 할 것이다.
이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상기해 보자. 동일한 원천에서 흘러나온 독일 철학의 정신이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통해 학문적 소크라테스주의의 한계를 증명함으로써 그것의 자기만족적인 생존욕을 파괴할 수 있었고, 이러한 증명을 통해서 윤리적인 문제들과 예술에 대한 무한히 깊고 진지한 고찰이 시작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고찰이야말로 개념적으로 파악된 디오니소스적 지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독일 음악과 독일 철학의 이러한 통일의 신비는 우리에게 하나의 새로운 존재방식을 가리키고 있다. 이러한 존재방식의 내용에 대해서는 단지 고대 그리스의 유사한 예들로부터만 예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두 개의 상이한 존재형식들의 경계선에 서 있는 우리들에게는 저 모든 이행과 투쟁이 고전적이고 교훈적인 형태로 새겨져 있는 그리스라는 모범이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지금 알렉산드리아 시대로부터 비극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역순으로 그리스 존재의 위대하고 중요한 시기들을 유비적으로 두루 체험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이때 우리들은 비극적인 시대의 탄생이 독일 정신에게는 단지 자기 자신으로의 귀환, 축복해 마지않을 자신의 재발견을 의미해야만 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러한 복귀는 구제할 수 없을 정도로 야만적인 형식 속에서 연명해 온 독일 정신을 외부로부터 침입해 오는 엄청난 힘들이 자기의 형식의 노예로 만들어 버린 지 오랜 후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제 마침내 독일 정신은 자신의 본질의 근원으로 되돌아가서 로마 문명의 인도를 받지 않고 모든 민족들 앞에서 대담하고 자유롭게 당당히 활보해도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독일 정신이 확고한 의지로 하나의 민족에게서 배울 줄 알기만 하면 된다. 그 민족이란 그리스 민족을 말하며, 이 민족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드높은 명예이며 너무나 드문 일인 것이다. 우리는 지금 비극의 재탄생을 체험하고 있지만, 이것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알지 못하며 그것이 어디로 가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는 위험에 처해 있다. 이러한 때야말로 그리스 민족이라는 최고의 스승을 필요로 하는 때가 아니겠는가?
눈에비친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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