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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의 역사에서 어떤 시대에 그리고 어떤 인물들에 의해서 독일 정신이 그리스 민족으로부터 배우려고 가장 열심히 노력했는지가 언젠가는 공정한 재판관의 눈 아래서 신중하게 판단될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유일무이의 영예는 괴테, 실러, 빙켈만의 더할 나위 없이 고귀한 교양상의 투쟁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확신을 갖고 인정할 경우에, 저 시대와 저 투쟁이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시대 이후부터는 동일한 길을 밟으면서 교양과 그리스인에게로 이르려고 하는 노력이 불가해하게도 점차 약해져 갔다는 사실도 반드시 부언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독일 정신에 전적으로 절망하지 않기 위해서 이러한 사실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끌어내어도 되지 않을까? 그것은 어떤 중요한 점에서 저 투사들도 그리스 본질의 핵심 속으로 뚫고 들어갈 수 없었으며, 독일 문화와 그리스 문화 사이에 지속적인 사랑의 유대를 맺는 것에 성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 결과 후대의 보다 진지한 사람들은 저 결함을 무의식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선배들의 뒤를 따라서 동일한 교양의 길을 밟을 경우에 선배들보다 더 멀리 나아가게 될 것인지 그리고 도대체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의심에 사로잡혔고 의기소침하게 되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저 시대 이래로, 교양에 있어서 그리스인들이 갖는 가치에 대한 판단이 가장 우려할 만한 방식으로 퇴락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정신과 비정신의 온갖 다양한 분야에서 그리스 문화보다 자신을 우월한 것으로 보면서 그리스 문화를 가엾게 여기는 표현들이 들려온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런 쓸모없는 미사여구들이 '그리스적 조화'니, '그리스적 미'니 '그리스적 명랑성'이니 하며 시시덕거리고 있다. 그리고 고등교육기관의 교사회 자체는 독일의 교양을 구원하기 위해서 그리스라는 허상으로부터 끊임없이 길어내는 것을 존엄한 사명으로 하고 있지만, 그 단체로부터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리스 사람들과 적당한 시기에 안일하게 타협하는 것이었다. 마침내는 그리스적 이상에 대해서 회의를 품은 나머지 포기해 버린다든가 모든 고대 연구의 진정한 목적을 완전히 전도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일반적으로 그러한 교사사회에서 고대 문서의 신뢰할 만한 교정자나 언어를 현미경을 통해서 조사하는 것처럼 세심하게 연구하는 박물학적인 연구가가 되는 데에 몰두한 나머지 심신이 완전히 지쳐 버리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는 아마도 그리스 고대를 다른 나라의 고대와 마찬가지로 '역사학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도 틀림없이 요즘 우리의 교양 있는 역사서술의 방법에 따르면서 (그리스인들에 대해서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태도와 함께 행해질 것이다. 그 결과 고등교육기관 본래의 교육능력은 현재 그 어느 시대보다도 저하되고 허약해져 있는 상태이다. 교양에 관한 모든 점에서 고등교육의 교사들에 대해서 승리를 거둔 것은 매일 종이의 노예가 되고 있는 저 '저널리스트'였다. 교사들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길은 이미 자주 보였던 일이지만 변신을 통해서 이제는 저널리스트적으로 말하고 저널리즘 특유의 '경쾌한 우아함'을 갖추고 명랑하고 교양 있는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는 것뿐이다. 이러한 현대에서 그와 같은 교양인들은 이제 까지 이해되지 않았던 그리스적 정신의 가장 깊은 근저로부터만 유비적으로 파악될 수 있는 저 현상, 즉 디오니소스적 정신의 부활과 비극의 재탄생을 도대체 얼마나 비참하게 혼란스러워하면서 바라보아야만 할 것인가? 이른바 교양이라는 것과 본래의 예술이 우리가 현재 눈앞에 보는 것보다 더 서로 낯설어하고 혐오감을 느끼면서 대립했던 예술 시기는 없었다. 그렇게 허약한 교양이 진정한 예술을 왜 그렇게 증오하는 지를 우리는 알고 있다. 그것은 예술에 의해서 교양 자신이 몰락할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화의 한 종류 전체, 즉 저 소크라테스적, 알렉산드리아적 문화는 그것이 현재의 교양에서 보는 것처럼 화사하고 연약한 종말에 도달해 버린 후 그 생명을 마쳤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실러와 괴테와 같은 영웅들도 그리스의 마의 산에 통하는 마법의 문을 부수는 데 성공할 수 없었다. 그들의 용감한 투쟁에 의해서도 괴테의 이피게니아가 야만의 땅 타우리스에서 바다 저편 고향으로 동경의 시선을 보내는 것 이상으로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렇다면 괴테의 아류들에게 남아있는 희망이란, 그들의 눈앞에 이제까지의 문화가 행했던 모든 노력에 의해서 전혀 건드려지지 않은 다른 측면으로부터 부활한 비극 음악이 신비스럽게 울리는 가운데 갑자기 저 마법의 문이 저절로 열리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리스적 고대의 재생이 임박해 있다는 우리의 이 믿음을 흔들지 말기 바란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믿음에서만 음악이라는 불의 마력에 의해서 독일 정신을 혁신하고 정화한다는 희망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황폐하고 지쳐 버린 현대 문화에서 미래에 위로가 되는 기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그러한 믿음 외에 무엇을 들 수 있겠는가? 헛된 일이지만 우리는 땅 속에 굳세게 뻗어 있는 나무뿌리의 하나만이라도 붙잡고, 풍요하고 건전한 토양을 한 조각만이라도 찾으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도처에 먼지, 모래, 마비, 초췌함뿐이다. 이렇게 아무런 위로도 발견하지 못하고 고독한 자는 뒤러가 우리에게 그려준 <죽음과 악마를 거느린 기사>보다 자신의 신세에 대해서 더 적합한 상징을 선택할 수 없을 것이다. 그 기사는 갑옷을 입고 청동처럼 준엄한 시선과 함께 공포의 길을 아무런 동요도 아무런 희망도 없이 단지 홀로 말과 개를 거느리고 전진할 줄밖에 모른다. 이러한 뒤러의 기사가 바로 우리의 쇼펜하우어였다. 그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저 진리를 원했던 것이다. 그와 견줄 만한 자는 없다.
그러나 내가 방금 그렇게 어둡게만 묘사했던 우리의 황량하고 지쳐 버린 문화가 디오니소스적인 마력에 접할 때 그것은 어떻게 변하는가! (디오니소스라는) 일진광풍이 불어 모든 노쇠, 부패, 파손, 위축을 휩싸고 소용돌이치면서 붉은 먼지 구름 속에 휘감아 독수리처럼 저 멀리 허공 속으로 채어가 버린다. 어찌할 줄 모르고 당황해하면서 우리의 눈은 사라진 것을 찾는다. 왜냐하면 이 때 우리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리가 마치 나락의 밑바닥에서 금빛 찬란한 곳으로 솟아오르기나 한 것처럼 완전하고 초록빛이고 넘칠 것처럼 생기 있고 무한히 동경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넘치는 생명, 고뇌, 쾌락의 한 가운데에, 숭고한 황홀경에 잠긴 채 앉아 있는 것이 비극인 것이다. 비극은 저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애수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 이 노래는 광기, 의지, 비통이라는 존재의 어머니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들의 이름은 광기, 의지, 비통함이다. 그렇다. 내 친구들이여, 나와 함께 디오니소스적 삶과 비극의 재탄생을 믿자. 소크라테스적 인간의 시대는 끝났다. 담쟁이 넝쿨을 가지고 그대들의 머리를 장식하라. 바쿠스의 지팡이를 손에 들어라. 호랑이와 표범이 그대들의 무릎 아래에 와서 상냥하게 누워도 놀라지 말라. 이제 과감히 비극적 인간이 되어라. 그러면 그대들은 구원될 것이다. 그대들은 인도로부터 그리스로 향하는 디오니소스의 축제 행렬에 가담하라! 격렬한 전투를 준비하라. 그러나 그대들 신의 기적을 믿으라!
눈에비친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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