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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Nietzsche(1844-1900)/비극의 탄생

비극의 탄생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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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소스적 예술도 우리에게 삶의 영원한 즐거움을 확신시키려고 한다. 우리는 단지 이러한 즐거움을 현상 속에서가 아니라 현상의 배후에서 구해야 한다. 우리는 생성하는 모든 것이 고통스런 몰락을 각오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우리는 개별적 실존의 끔찍함을 들여다보도록 강제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겁을 먹고 마비되어서는 안 된다. 형이상학적 위로가 일시적으로 우리를 무상한 세상살이로부터 구출해 주기 때문이다. 우리느 실제로 짧은 순간 동안 근원적 존재 자체가 되어서 그것의 제어하기 어려운 생존욕과 생존의 희열을 느낀다. 삶 속으로 서로 부딪히면서 몰려드는 무수한 생존형식들의 과잉과 세계의지의 넘쳐나는 생산성에 접하게 될 때 우리에게는 이제 현상들의 투쟁, 고통, 파멸은 필연적인 것처럼 여겨진다. 우리는 이러한 고통들의 난폭한 가시에 찔리게 된다. 그러나 바로 이 순간 우리는 말하자면 존재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근원적 희열과 하나가 되고, 이 희열의 불멸성과 영원성을 디오니소스적인 황홀속에서 예감하게 된다. 두려움과 동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하게 사는 자들이다. 그것은 우리가 개체로서가 아니라 근원적인 일자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며, 이러한 근원적 일자가 느끼는 생식의 기쁨과 우리가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비극의 발생사가 분명히 말해 주고 있는 것처럼, 그리스인의 비극적인 예술작품은 사실상 음악정신에서 탄생했다. 이러한 고찰과 함께 우리는 처음으로 합창단의 근원적이고 놀라운 의미를 제대로 파악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앞에서 제시된 비극적 신화의 의미가 그리스 철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리스 시인들에 의해서도 개념적으로 명확히 파악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 비극의 주인공들이 하는 말은 그들의 행동보다도 어떤 의미에서는 더 피상적이다. 신화는 말 속에서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다. 무대 장면들의 구성과 구체적인 형상들이 시인 자신이 말과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깊은 지혜를 드러낸다. 동일한 사실을 셰익스피어에서도 볼 수 있는데, 예를 들자면 이와 유사한 의미에서 햄릿의 대사는 햄릿의 행위보다도 피상적이다. 따라서 내가 7장에서 피력한 햄릿관은 극 중의 말에서가 아니라 극 전체에 대한 깊은 관조와 개관으로부터 얻을 수 있다. 물론 우리는 그리스 비극을 말의 연극으로서만 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내가 앞에서 암시한 것처럼 신화와 언어의 불일치로 인해 그리스 비극을 실제보다도 더 천박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이에 따라서, 고대 중국인의 증언에 의거해서 볼 때 비극이 실제로 가졌음에 틀림없는 효과보다도 피상적인 효과를 가졌던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이는 우리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너무 쉽게 망각하기 때문이다! 당시 신화의 최고의 정신화와 이상성에 도달하는 것은 언어 시인에게는 불가능했지만 창조적 음악가로서의 시인에게는 언제나 성공 가능했다는 사실 말이다. 우리는 물론 참된 비극의 고유한 것임에 틀림없는 저 비할 바 없는 형이상학적 위안을 어느 정도라도 느끼기 위해서는 이 음악적인 효과의 압도적인 위력을 학문적으로 재구성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인일 경우에만 음악의 이러한 압도적인 효과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반면에 우리는 그리스인의 음악이 흐르는 것을 들으면서 - 우리에게 잘 알려지고 친근하며 그래서 무한히 보다 풍부한 것 같은 음악에 비해서 - 오직 자신의 힘을 아직 모르고 수줍게 노래하기 시작한 음악적 천재의 소년 시대의 소리를 듣는다고 믿는다. 그리스인들은 이집트 사제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영원한 어린아이들이며 비극적 예술에서도 또한 영원한 어린아이들에 불과하다. 그들은 어떠한 숭고한 장난감이 자신들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졌고 파괴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형상과 신화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는 음악정신의 저 고투는 서정시에서 발단이 되어 아티카 비극에 이르기까지 점차 고조되어 가지만, 풍성한 만개를 어렵게 쟁취한 후 갑자기 중단되어 버리면서 그리스 예술의 표면에서 그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고투 속에서 탄생한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은 그 후에도 비밀제의 속에서 계속 살아남아 가장 놀라운 변신과 변질을 겪으면서도 진지한 정신들을 계속해서 매료한다. 이러한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이 신비스런 심연으로부터 언젠가 다시 예술로서 떠오르지 않을까?

 

여기서 우리를 사로잡는 물음은 비극을 파괴한 힘이 비극과 비극적 세계관의 예술적 부활을 영원히 방해할 정도로 강한 힘을 과연 지니고 있는가이다. 고대 비극이 지식과 학문의 낙천주의로의 변증법적 충동에 의해서 궤도를 벗어나게 되었다면, 이러한 사실로부터 그 후에 예상되는 것은 이론적 세계관과 비극적 세계관 사이의 영원한 투쟁일 것이다. 그리고 학문의 정신이 그것의 한계에 도달하고 이 한계가 입증됨으로써 보편적 타당성에 대한 그것의 요구가 포기된 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비극의 재탄생을 희망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한 문화형식에 대해서는 앞에서 논했던 의미에서의 '음악을 하는 소크라테스'가 적합한 상징이 될 것이다. 학문정신과 비극정신의 이러한 대조에서 내가 학문의 정신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소크라테스라는 인물에게서 세상에 처음으로 나타난 저 신념, 즉 자연의 이론적 규명 가능성과 지식의 보편적인 치료능력에 대한 신념이다.

 

쉴 새 없이 앞으로 돌진하는 이 학문정신이 초래한 가장 가까운 결과들을 상기해 보는 사람은 그것을 통해서 신화가 파멸되었으며, 이러한 파멸을 통해서 시가가 그것의 자연적인 이상적 지반에서 추방되어 고향을 잃었다는 사실을 곧 떠올리게 될 것이다. 신화를 다시 낳을 수 있는 힘을 음악이 가졌다는 우리의 주장이 정당하다면, 우리는 학문의 정신을 그것이 음악의 신화 창조적인 힘에 적대적으로 대항하는 장소에서도 찾아야만 할 것이다. 이 장소는 아티카의 새로운 주신찬가에 존재한다. 이것의 음악은 내적 본질, 즉 의지 자체를 더 이상 표현하지 않고 단지 현상을 불충분하게, 개념들을 통해서 매개된 모방의 형식으로 재현한 것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음악적 천성을 지닌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의 예술 살해적인 경향에 대해서 느꼈던 것과 동일한 혐오감과 함께 이 내적으로 타락한 음악에 등을 돌렸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소크라테스라는 인간과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그리고 새로운 주신찬가의 음악을 똑같이 미워하고 이 세 현상 모두에서 퇴락한 문화의 징표들을 탐지해 냈는데, 정확하게 파악하는 그의 본능은 확실히 정곡을 찔렀다. 음악은 이 새로운 주신찬가로 인해서 모독적인 방식으로, 예를 들면 전투나 해상의 폭풍 같은 현상들의 모사가 되었고, 이와 함께 음악은 자신의 신화창조적인 힘을 완전히 빼앗기게 되었다. 왜냐하면 음악이 삶과 자연의 사건과 음악의 어떤 리듬 형식 및 특징적인 음향 사이에서 표면적인 유사성을 찾으라고 우리에게 강요하는 방식으로만 우리의 흥취를 북돋우고, 우리의 지성이 이러한 유사성을 발견함으로써 만족하게 된다면, 우리는 신화적인 것을 수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어떤 기분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신화는 무한 속을 응시하는 보편성과 진실성의 유일한 실례로서 직관적으로 느껴질 것을 요구한다. 참으로 디오니소스적인 음악은 세계의지의 보편적 거울로서 우리에게 나타난다. 저 구체적인 사건은 디오니소스적 음악이라는 이 거울에 반사되어 우리의 느낌에는 곧 영원한 진리의 형상으로 크게 확대된다. 이에 반해 그러한 구체적인 사건은 새로운 주신찬가라는 회화적인 음악에 의해서 곧 모든 신화적 성격을 박탈당하고 만다. 이제 음악은 현상의 초라한 모사가 되고, 이 때문에 현상 자체보다도 훨씬 빈약한 것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빈약함으로 인해 음악은 우리의 감각에서 보면 현상 그 자체를 더욱 끌어내리게 되므로 이제 예컨대 음악적으로 모방된 전투는 진군의 소음과 신호 소리 등에 그칠 뿐이며, 우리의 상상력은 이러한 피상적인 것에 얽매이게 되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회화적 음악이라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신화창조의 힘을 가진 참된 음악의 대립물이다. 그러한 음악을 통해서 현상은 그 실제의 모습보다도 빈약하게 된다. 이에 반해 디오니소스적 음악을 통해서는 개개의 현상은 세계상으로까지 풍부해지고 확장된다. 비디오니소스적 정신은 새로운 주신찬가가 발전되는 과정에서 음악을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키고 현상의 노예로 끌어내렸다. 그리고 이때야말로 비디오니소스적 정신이 당당한 승리를 거두게 된 순간이었다. 보다 높은 의미에서 전적으로 비음악적인 인물이라고 해야 하는 에우리피데스는 바로 이런 이유로 새로운 주신찬가 음악의 열정적인 애호가이며, 이 음악에서 효과를 내기 위해서 사용되는 모든 도구와 수법을 강도처럼 대담하게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소포클레스의 비극에서 성격 묘사와 심리적 섬세함이 현저하게 우세해지는 것에 시선을 돌릴 경우, 우리는 이 비디오니소스적이고 반신화적인 정신력이 또 다른 방향에서 활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격은 그전처럼 영원한 전형으로 확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반대로 성격은 인위적인 부차적 특징들과 인위적인 명암에 의해서, 그리고 모든 선의 가장 섬세한 명확성에 의해서 개체적인 것으로서 작용해야만 한다. 그 결과 관객은 신화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되며 강한 사실성과 예술가의 모방능력을 느끼게 될 뿐이다.  여기에서 인식되는 것도 보편성을 압도한 현상의 승리며 개개의, 말하자면 해부학적인 표본에 대한 희열이다. 우리는 이미 이론적 세계의 공기를 마시고 있으며, 이러한 세계에서는 학문적 인식이 세계법칙의 예술적 반영보다도 높이 평가된다. 성격적인 것의 세밀한 선까지도 묘사하려고 하는 이러한 움직임은 그 후 급속도로 진행된다. 소포클레스가 아직 전체적인 성격들을 묘사하고 이들 성격의 섬세한 전개를 위해서 신화를 사용하고 있는 반면에, 에우리피데스에 이르면 벌써 격렬한 정열 속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개개의 커다란 성격적 특징들만이 묘사되고 있다. 그리고 아티카의 새로운 희극에서는 경솔한 노인들이나 기만당한 뚜쟁이라든가, 교활한 노예들과 같이 단 하나의 표정밖에 없는 가면들만이 지칠 줄 모르고 반복될 뿐이다. 이제 신화를 형성하는 음악정신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제 음악에 남아 있는 것은 선정적 음악이거나 특정한 인상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이다. 즉 둔감하고 피로한 신경의 자극제이거나 회화적 음악이거나 둘 중의 하나이다. 전자에게는 바탕이 되는 텍스트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미 에우리피데스에서 주인공이나 합창단이 노래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통제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물며 그의 추종자들의 희극에서는 어떻게 되었을 것인가?

 

그러나 비디오니소스적 정신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새로운 연극의 결말부이다. 과거의 비극에서는 형이상학적 위로를 마지막 부분에서 느낄 수 있었으며 이러한 위로 없이는 비극을 보았을 때의 기쁨을 설명할 수 없었다. 이러한 위로란 다른 세계로부터 들려오는 화해의 소리인 바, 이러한 소리가 가장 순수하게 울려 퍼지는 곳은 아마도 『콜로누스의 오이디푸스』일 것이다. 이제 음악의 영혼이 비극에서 사라져 버리자 엄밀한 의미에서 비극은 죽어 버렸다. 그러면 사람들은 어디에서 저 형이상학적 위로를 길어낼 수 있을 것인가? 이 때문에 사람들은 비극적 불협화음의 해결을 현세적으로 꾀하려고 했다. 즉 주인공은 운명에 의해서 시달릴 대로 시달린 후, 화려하게 결혼하거나 신의 은총을 받는 방식으로 응분의 보상을 받았다. 주인공은 혹사당하고 만신창이가 된 다음에, 경우에 따라서는 때때로 자유가 선사된 노예 검투사가 되었다. 기계장치의 신이 형이상학적 위로를 대신하게 되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물밀듯 밀려오는 비디오니소스적 정신에 의해 비극적 세계관이 도처에서 그리고 완전히 파괴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비극적 세계관이 예술로부터 쫓겨나, 말하자면 비밀의식이란 변질된 형태로 지하세계로 도주해야만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리스적 정신의 표면에서는 광대한 범위에 걸쳐서 비디오니소스적 정신의 독기 어린 숨결이 맹위를 떨쳤다. 이러한 비디오니소스적 정신은 이미 앞에서 노쇠한 비생산적 생존욕으로서 언급되었던 '그리스적 명랑성'이라는 형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노쇠한 명랑성은 고대 그리스의 훌륭한 '소박성'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이 소박성은 앞에서 내가 설명한 것처럼 어두운 심연으로부터 자라나온 아폴론적 문화의 꽃으로서, 즉 그리스적 의지가 아름다움의 거울을 가지고 고뇌와 고뇌의 지혜에 대해서 거둔 승리로서 파악 될 수 있다. 본래의 '그리스적 명랑성'과는 다른 형식의 명랑성인 알렉산드리아적 명랑성의 가장 고귀한 형식은 이론적 인간의 명랑성이다. 그것은 내가 방금 비디오니소스적 정신으로부터 이끌어낸 것과 동일한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이론적 인간의 명랑성은 디오니소스적 지혜와 예술을 공격하고 신화를 해체하려고 하며 형이상학적 위로 대신에 현세적인 협화음을, 아니 고유한 기계장치의 신을 내세운다. 이 신은 기계와 도가니의 신, 즉 고도의 이기주의에 봉사하기 위해서 인식되거나 이용되는 자연의 정령들의 힘이다. 또한 이론적 인간의 명랑성은 지식에 의한 세계 개선과 학문에 의해서 인도되는 삶을 믿으며, 실제로도 개개의 인간을 해결 가능한 과제들이라는 극히 협소한 영역 속에 가두어 놓을 수 있다. 이 영역 속에 갇힌 채로 인간은 인생을 향해서 명랑하게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여, 나는 그대를 원한다. 그대는 인식될만한 가치가 있다"라고.

 

 

눈에비친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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