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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일반/서양철학사

헬레니즘과 로마제정시대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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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시대에 한 가지 정신사적인 과정이 완성된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들의 견해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것은 철학을 일종의 특수과학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에 있어, 철학자란 과학자, 의사, 기술자, 정치가 및 현자 등으로, 모든 분야의 지식을 통달한 사람이었다. 또 학문을 하는 기관으로서의 아카데메이아와 페리파토스도 모든 분야의 지식을 포괄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고대의 페리파토스학파에서는 개별 과학들이 정신적인 특징을 부여받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헬레니즘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개별과학들은 각기 분화하여 독립을 하게 된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페르가몬 및 로오도스 등지에 여러 학문 연구의 중심지가 생겨 전문적인 연구가 행해졌다. 

 

그렇게 해서 이제 철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본래적인 철학의 문제라고 제시했던 커다란 문제, 즉 논리학, 윤리학 및 형이상학만 국한되어 연구하게 되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철학은 깊어지고, 세계관의 학문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인간 자체에도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 때의 인간은,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 후계자들에 의해서 야기되었던 전쟁 때문에 들뜨고 불안해진 시대에 처한, 내면적인 구원과 행복을 찾아 헤매는 군상들이었다. 외부의 현실들은 인간에게 행복과 구원을 가져다주기는 커녕, 오히려 폐허만 만들어냈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윤리학이 중요시되었다. 무엇보다도 윤리학은 옛날의 종교적인 신화들이 해온 과제들까지도 이어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신화는 점차 허물어져 합리적인 사고에 의해 해체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루스학파는 일종의 새로운 영혼지도를 떠맡아 아카데메이아와 페리파토스가 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게 인간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여기서 형성된 여러 가지 세계관들로 인해 또다른 독특한 학파들이 형성되었다.

  

인간의 불확실한 삶은 그 뒤 로마의 황제들이 등장함과 동시에 시국은 한층 더 혼란해졌다. 인간이 내적으로 한층 더 불안해지고 절박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몰락의 구렁텅이 속에서 갑자기 예수라는 인물이 난세의 영웅처럼 나타나 자신이 세상의 빛이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했다. 이제 시대는 전환되기 시작했다. 예수의 제자들이 만든 기독교는 철학의 권위를 빼앗고 인간을 구원의 세계로 데려갈 수 있는 희망이 되었다. 로마제정시대까지 철학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곧 하나 둘씩 인간의 삶에서 멀어져갔다. 그에 대한 반발로 여기 저기서, 고대문화의 정신을 한 번 더 살펴보려는 영웅적 노력들이 행해졌다. 특히 신플라톤학파가 두드러졌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신학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529년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아카데메에이아를 폐쇄하고 아테네에서 철학을 금지시켰을 때는 이미 그런 조치가 다 이뤄져 있는 것을 문서화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철학은 다시 기독교를 통해 부활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철학의 빈곤을 느낀 기독교는 이후 그리스 철학을 흡수하고 그리스 철학의 가치들은 기독교에 의해 또 다시 전승된다. 

 

 

눈에 비친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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