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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일반/서양철학사

엘레아 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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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서해안에 위치한 그리스의 식민도시 중 하나인 엘레아. 밀레토스의 쇠락과 함께 철학의 중심지는 이 곳으로 옮겨가게 된다. 그리고 이 곳에선 밀레토스의 관심사와 달리 영구불변의 존재에 관한 유사한 생각을 가졌던 세 명의 철학자가 탄생한다. 크세노파네스(Ξενοφάνης, 기원전 570~480), 파르메니데스(Παρμενίδης, 기원전 540~470), 제논(Ζήνων ὁ Ἐλεάτης, 기원전 490~420)이 그들이다. 

 

크세노파네스는 고대 그리스 종교를 공격했다. 인간이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느라 신도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은 오직 하나이며 유한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항존자, 우주의 통합자이다. 이렇듯 크세노파네스는 다양한 현상의 배후에 영구불변의 존재인 신이 있다고 말한다. 크세노파네스의 신은 우주의 통합자라 범신론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신에 대해 영원히 확실한 지식을 가질 수 없다는 불가지론자의 모습도 갖고 있어서 신이 어떻다고 함부로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파르메니데스는 후대의 학자들이 이 학파의 창시자로 인정하는 철학자다. 그는 진리에 대한 참다운 지식과 허상에 대한 속견을 구분하고 참다운 지식이란 이성적 인식으로만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오직 존재자만 있을 뿐 무(無)는 있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라고 말했고 운동과 변화를 부정하는 입장을 취한다. 무란 아무 것도 없는 것이므로 운동이나 그에 따른 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고 운동과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인간의 감각적 착각에 불과하다. 존재하는 것은 영구 불변의 항구적 존재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파르메니데스의 존재는 불생불멸하며 불가분적이고 변하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존재가 생성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존재는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생겨나거나 전혀 없는 것에서 생겨나야 하는데 이미 존재하는 것에서 생겨난다면 생성되는 것이라 볼 수 없고 전혀 없는 것에서 생겨난다면 있지도 않은 것에서 생겨나야 하므로 불합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존재가 없어져야 하는 소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해당되는 것이다. 불가분이라 하는 것은 존재가 만약 나누어진다고 했을 때 존재는 존재와 존재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구별하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존재를 구별하는 존재 이외의 것이어야 하므로 존재 이외의 것이란 비존재에 해당하고 비존재란 없는 것이므로 존재를 분리하거나 구별할 수 없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존재가 움직이기 위해선 텅빈 공간으로서의 비존재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불합리하므로 존재는 움직이거나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가 존재에 집착하는 이유는 종교인, 사변론자들이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있는 것을 없다하고 없는 것을 있다 하는 궤변이나 속설을 퍼뜨리며 자신들의 주장을 그럴 듯하게 펼친다. 파르메니데스는 이런 궤변과 그로인한 착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존재한다고 해 두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간의 사유와 존재가 일치하므로 모든 것은 존재에 충만되어 있다고 말했다. 존재가 없으면 사유도 없을 테니 존재에 대치되는 사유는 있을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제논은 토론에 있어 반대의 입장을 먼저 받아들이고 그 주장이 모순에 빠진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논증을 한 철학자로 유명하다. 이런 이유로 아리스토텔레스(Αριστοτέλης 기원전 384~322)는 제논을 변증법의 창시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제논은 운동의 실재성을 인정하면 해결불능의 모순을 낳는다고 보았기 때문에 운동과 변화를 기본적으로 받아들이는 이후의 변증법적 사고와는 차이가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경주를 예로 든다. 아킬레스와 거북이가 경주를 할 때 과연 아킬레스가 거북을 따라잡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제논에 의하면 만약 아킬레스보다 거북이가 먼저 출발하였을 경우 아킬레스는 절대 거북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아킬레스가 거북을 따라잡기 위해 먼저 거북이 있던 지점까지 와야 하는데 그 순간에 거북은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전개되면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완전히 따라잡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예로는 "날아가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제논은 화살이 날아가는 순간 순간을 떼어서 관찰하면 각 순간은 정지해 있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마치 정지해 있는 각각의 장을 모두 연결해야 전체적으로 움직이는 장면을 얻을 수 있는 영화의 필름처럼 말이다. 제논은 이런 예를 통해 운동이나 변화를 상정하는 것은 모순임을 보여주고자 했다. 

 

 눈에 비친 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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