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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朱子, 1130-1200)/주자

1, 리(理) 태극(太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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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리·태극

 

주자의 형이상학은 주렴계의 『태극도설』을 골간으로 삼아 강절이 논한 수(數), 횡거가 논한 기, 정씨 형제가 말한 형이상·하 및 리, 기의 구분 등을 융합했다. 따라서 주자의 학문은 가히 이전 도학자들을 집대성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형이상의 도(道)와 형이하의 기(器)의 구분에 관해서 주자는 말했다.

 

무릇 형체가 있고 모습이 있는 것은 기(器)이고, 그것이 기인 까닭으로서의 리가 도이다.

이른바 "도"는 추상적 원리 또는 개념을 지칭하고 "기"는 구체적 사물을 지칭한다. 따라서 주자는 말했다.

 

형이상의 존재는 형체도 없고 그림자도 없는 것, 즉 리이다. 형이하의 존재는 실상도 있고 모습도 있는 것, 즉 기이다.

 

무극이면서 태극이니 무슨 물건처럼 그곳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초 그곳에는 한 사물도 없었고 단지 리만 있었을 뿐이다는 말이다.... 온갖 리가 있기 때문에 온갖 사물이 있는 것이다.

 

현대철학의 술어로 형이상자는 시공을 초월하여 자존하는 것이고 형이하자는 시공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시공을 초월한 것은 보이는 형체가 없으므로 태극은 "무슨 물건처럼 그곳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무극이면서 태극이다"의 뜻이다. 주자는 "무극이면서 태극이다고 함은 형테가 없고 리만 있다는 말일 따름이다"고 했다. "온갖 리가 있기 때문에 온갖 사물이 있는 것이다." 그 리가 없으면 그 사물도 존재할 수 없다. 주자는 말했다.

 

어떤 일이 생겼으면 곧 그 안에는 그 리가 존재한다. 무릇 천지에 어떤 사물이 생겼으면 그 안에는 그 리가 존재한다."

 

자연의 사물에만 각각 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위(人爲)의 사물에도 각각 리가 있다. 어록은 말한다.

 

"마른 사물에도 그 성이 있다고 함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 자체에 본래 그 리가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천하에 성 밖의 사물은 없다'고한 것이다."

주자는 계단을 걸으면서 "계단의 벽돌에도 벽돌의 리가 있다"고 말했고 앉으면서 "대나무 의자에도 대나무 의자의 리가 있다"고 말했다.

 

"리는 사람과 사물이 하늘로부터 다같이 타고난 것인데, 감정이 없는 사물의 경우에도 리가 있는지요?"

"물론 리가 있다. 예컨대 배는 물에서만 운행할 수 있고 수레는 물에서만 운행할 수 있는 것 따위가 그것이다"

 

천하의 사물은 천연의 것이든 인위의 것이든 모두 그것이 그러한 까닭으로서의 리가 있으며 또한 그 리는 사물에 앞서서 존재한다. 주자는 말했다.

 

리를 놓고 보면 비록 사물이 아직 생기지 않았을 때도 이미 사물의 리가 존재했다. 그러나 그 리만 존재했고 실제 그 사물은 없었다.

 

예컨대 아직 배나 수레가 없었을 때에도 배나 수레의 리 또는 배나 수레의 개념은 이미 선재(先在)했다. 그러나 그때는 단지 개념만 있었고 실례는 없었다. 즉 "그 리만 존재했고 실제 그 사물은 없었다." 이른바 배나 수레의 발명은 배나 수레의 리를 발견하고 그 리에 따라 실제의 배나 수레, 즉 배나 수레 개념의 실례를 만들어낸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존재 가능한 모든 사물은 천연의 것이든 인위의 것이든 형이상의 리세계 내에 본래부터 이미 그 리가 구비되어 있다. 따라서 형이상의 리세계는 실제로 이미 지극히 완전한 세계이다. 어록은 말한다.

 

"천지가 개벽되기 전 아래의 온갖 것들은 이미 모두 존재했었습니까?"

"단지 그 리만 있었다. 천지가 천만년 사물을 낳고 있으나 예나 지금이나 온갖 사물은 없어지지 않는다."

 

"천지가 개벽되기 전 아래의 온갖 것들"은 존재 가능한 모든 사물들을 지칭한다. "천지가 개벽되기 전에" 사물은 아직 존재하지 않으나 그 리는 먼저 이미 "모두 존재했다." 천지가 천만년 사물을 낳고 있으나 예나 지금이나 온갖 사물은 없어지지 않는다." 리에 있는 것들은 존재할 수 있고 리에 없는 것들은 존재할 수 없다.

한 사물의 리는 그 사물의 가장 완전한 형식이자 그 사물의 최고 기준이니 이른바 "극(極)"이다. 어록은 말한다.

 

"모든 사물은 저마다 그 극이 있는데 도리의 정점을 지칭한다."

장원진이 말했다. "예컨대 임금의 인, 신하의 공경이 곧 극이지요?"

"그것이 각 사물의 극이다. 또 천지만물의 리의 총화가 태극이다. 태극은 본래 그 이름이 없으니 태극은 단지 별명일 뿐이다."

 

태극은 천지만물의 리의 총화이자 천지만물의 최고 기준이다. 주자는 말했다.

 

태극은 최고 훌륭하고 지극히 선한 도리이다.... 염계가 말한 태극은 천지, 인, 물의 온갖 선 가운데 지극히 훌륭한 것의 별명이다.

 

그러므로 태극이 천지만물이 최고 기준이라는 점에서 보면 태극은 곧 플라톤이 말한 선의 이데아이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신이다.

태극은 천지만물의 리의 총화이기 때문에 태극 안에는 모든 리가 다 구비되어 있다. 주자는 말했다.

 

태극에는 음양오행의 리가 다 들어 있으니 텅 빈 것이 아니다. 만약 텅 비었다고 한다면 불교의 성(性)에 대한 논의와 비슷해진다.

불교는 다만 껍데기만 통찰하고 이면의 온갖 도리는 고려하지 않는다. 그들은 모두 군신부자의 도리를 헛된 망상으로 간주한다.

 

이백문이라는 자가 일찍이 불학을 맛보고, 자신의 소견을 자부하여 여러 해 동안 논변을 했지만 전혀 굽힐 줄 몰랐다. 근래에 나를 찾아와 다시 이전의 논리를 펼치자, 나는 이렇게 질문했다. "선생이 보기에 '하늘이 명한 것이 성이다'는 구절은 성이 공허하여 하나의 도리가 없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모든 리가 다 구비되어 있다는 것입니까? 공허하다고 여겨지면 불학이 이기고 과연 실제적이라고 여겨지면 유학이 옳은 것입니다." 그러자 역시 두말없이 결판이 났다.

 

태극은 형이상의 도이며, 음양은 형이하의 기(器)이다. 드러난 현상에서 보면 동정(動靜)은 병존하지 않고 음양은 같은 장소에 병존하지 않지만 태극은 그 어느 경우에든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면에서 보면 태극은 공허하고 고요하여 아무 조짐이 없지만 동정 음양의 리가 모두 그 안에 구비되어 있다.

 

"드러난 현상에서 보는 것"은 구체적 사물 가운데 보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면에서 보는 것"은 태극의 본체에 대해서 보는 것이다. 태극은 형체가 없으나 그 안에는 온갖 리가 다 구비되어 있으니, 즉 "공허하고 고요하여 아무 조짐이 없지만 동정 음양의 리가 모두 그 안에 구비되어 있다"는 말이다. 주자는 이 점을 바탕으로 도학과 불학의 차이를 지적했다. 태극은 영원히 존재한다. 주자는 말했다.

 

그 리가 있어야 비로소 그 기가 있으며, 그 기가 있어야 그 리는 의지처가 있게 된다. 크게는 하늘과 땅, 작게는 땅강아지와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든 생성은 다 그러하다.... 요컨대 리라는 한 글자는 유무의 범주로 논할 수 없다. 아직 천지가 생기기 전에도 그와 같았다.

 

"크게는 하늘과 땅, 작게는 땅강아지와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 먼저 그 리가 있고 그 후에 구체적 개체가 비로소 생길 수 있다. "리는 유무의 범주로 논할 수 없고" 리는 영원히 존재하니 즉 "아직 천지가 생기기 전에도 그와 같았다."는 말이다. 태극은 리의 전체이니 역시 그러하다. 태극은 또한 공간 안에 있지 않다. 주자는 말했다.

 

태극은 방향과 장소도 없고 형체도 없으며 놓인 지점도 없다.

 

태극은 동정(動靜)도 없다. 『문집(文集)』은 말한다.

 

"「태극도에 태극이 운동하여 양을 낳고 운동이 극에 달하면 고요에 이르고 고요하여 음을 낳는다'고 했는데 태극은 리인데 리가 어떻게 동정이 있습니까? 또 형체가 있어야 동정이 있는데 태극은 형체가 없는 만큼 동정을 논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장식도 "태극에는 동정이 있을 수 없다"고 말했는데,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리에 동정이 있기 때문에 기에도 동정이 있는 것이다. 만약 리에 동정이 없다면 기에 어찌 저절로 동정이 생기겠는가?"

 

어록은 말한다.

 

"저 운동의 리가 있으므로 운동하여 양을 낳을 수 있고, 저 고요의 리가 있으므로 고요하여 음을 낳을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운동하면 리가 운동 속에 존재하고, 이미 고요하면 리가 고요 속에 존재한다."

"운동과 고요는 기인데, 그 리가 기를 주재하고 있으므로 기가 곧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다."

 

"동정은 기이다." 태극 가운데 동정의 리가 있기 때문에 기는 그 리를 얻어 동정의 실례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운동하는 것은 양이고 고요한 것은 음이다. 음양은 또한 형이하의 존재이다. 형이상의, 동정의 리의 경우는 운동도 없고 고요도 없으므로 즉 "동정을 논할 수 없다."

각 사물에는 그 사물이 그러한 까닭으로서의 리가 구비되어 있을뿐더러 태극의 전체도 구비되어 있다. 어록은 말한다.

 

사람마다 하나의 태극이 들어 있고 사물마다 하나의 태극이 들어 있다.

 

"만물과 하나는 각기 정당하고 대소가 원래 정해진다"함은 만상이 하나이고 하나가 만상이라는 말이다. 온 전체는 하나의 태극이고 또한 하나하나의 사물마다 하나의 태극이 구비되어 있다.

 

"『통서(通書)』의 「리성명(理性命)장의 주에서 "근본에서 말단에 이를때 하나의 리의 실재가 만물에 나누어져 구체화되기 때문에 모든 사물마다 하나의 태극이 들어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태극이 분열된다는 말씀입니까?"

 

"본래 다만 하나의 태극이 존재하나 만물마다 타고난 바가 있으므로 각 사물마다 하나의 태극을 온전히 구비하는 것일 뿐이다. 이는 마치 달은 하늘에 오직 하나 있으나 강호에 흩어지면 가는 곳마다 보이지만 달이 분열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경우와 같다."

 

이로써 보면 모든 사물은 그것 자신이 그러한 까닭으로서의 리 이외에 또 태극, 즉 모든 리의 전체를 구비하고 있다. 태극은 모든 사물 안에 존재하지만 "조각조각 분할되는 것이 아니고 마치 달빛이 모든 강에 드리워지는 경우와 비슷하다." 이는 화엄종에서 말한 인다라망경계 그리고 각 사물은 여래장 전체이고 그 안에 모든 법성이 있다는 천태종의 설과 흡사하다. 주자는 이런 설들의 영향도 받은 것 같다. 다만 화엄종에서 말한 인다라망경계는 하나의 구체적 사물 속에 모든 구체적 사물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고, 또 천태종에서 말한 하나하나의 법성은 하나하나의 사물의 잠세태인 반면, 주자는 한 구체적 사물에 하나의 태극, 즉 모든 사물의 리가 구비되어 있다고 말한다. '모든 사물의 리'는 결코 '모든 사물'도 아니고 '모든 사물의 잠세태'도 아니다. 그런데 한 종류의 사물의 경우 그 리가 어떻게 그 종류의 모든 개체 안에 동시에 나타날 수 있는가? 이 점은 주자가 밝히지 않았는데 그의 뜻을 미루어보면 역시 "달빛이 모든 강에 드리운다(月印萬川)"는 비유로 설명할 수 있겠다.

 

 

중국철학사 / 펑우란 / 박성규 옮김 /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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