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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일반/서양철학사

둔스 스코투스와 오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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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아퀴나스는 온갖 논리를 총동원 해 교황의 권위를 치켜 세우고 이데아와 보편이 실재한다는 실재론을 주창했다. 하지만 실재론의 기세는 차츰 기울고 있었다. 아퀴나스는 신의 교리가 이성과 모순되지 않아, 신의 명령이 선하고 신도 그것을 알고 있기에 명령을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는 그것은 신이 이성에 의해 제약을 받는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오직 신이 명령하기에 명령이 선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성이나 신의 지성보다는 신의 의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신의 의지는 무한하고 전지전능하기에 지성에 의해 미리 계획된 어떤 것에 인도될 필요가 없다. 아퀴나스가 신의 정신에 존재한다는 보편자나 원리에 대한 이해는 받아들일 수 없다. 신의 의지는 신 밖에 있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결정되지 않고 신 안에 있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좌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성으로 인식할 수 없고 신앙 또한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신학은 계시에 의해 성립하는 것이고 철학은 현실세계의 분석에만 국한해야 한다. 

 

오컴(William of Ockham)은 논리를 전개하고 설명하는 데 있어 쓸모없는 것들은 모두 잘라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오컴의 면도날'이란 별명이 생겼다. 그는 논증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것 외에는 아무것도 가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동일한 현상을 설명할 때 복잡한 설명보다 단순한 설명이 더 정확한 설명일 수 있다. 신학을 예로 들면, 모든 신학은 계시된 것이므로 인간이 다양한 가설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설명이 들러붙은 가설일뿐, 신의 진리를 확립할 수는 없다. 그 동안의 다양한 가설들은 믿을 수는 있지만 증명된 것은 아니다. 가설들을 제거하면 현실세계가 필연적 존재에 의존하고 있는 지도 알 수 없고 의존한다 하더라도 그 필연적 존재가 신인지도 알 수 없으며, 그 신이 기독교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지도 알 수 없다. 오컴은 신학은 어떤 법칙이나 원리에 의한 것도 아니고 인간의 이성 또한 신학의 견지에서 보면 전혀 소용없는 말만들기일 뿐이다. 

 

오컴 스코투스의 주장을 이어받아 아퀴나스의 보편자에 대한 세 가지 정의들 중 사물에 앞서 있다는 보편자를 잘라버린다. 그리고 사물 속에 존재한다는 보편자마저 잘라내 보편자란 오로지 사물이 있고 난 후에 존재하는 개념이 되었고 이것 마저도 이름에 불과한 것으로 사물의 집합을 나타내는 기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로서 보편자란 이름에 불과하다는 유명론은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구체적인 현실 사물에 대한 관심을 강화시키고 개별 사물을 인지하면서 인간의 전개를 시작하는 근대의 경험론이 열리는 길을 마련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의 의지와 인간의 이성을 별개로 보기에 신학과 철학이 완전히 분리되어 각자의 길을 가기 시작한다. 신학에 의해 강제 종살이를 했던 철학은 이제 자유를 찾아 근대로 날아간다. 

 

오컴의 이런 주장은 신학자들의 분노를 일으켜 결국 교황재판소까지 끌고간다. 오컴은 아비뇽에 유폐되었지만 도주하여 당시 교황과 다투고 있던 루트비히 4세에게 달려가 "저를 지켜주시면 저도 펜으로 지켜드리겠습니다"라고 맹세한다. 이후 오컴은 제후의 대변자이자 대표적인 반 아퀴나스파가 되었다. 이전의 신학적 문장들을 철저하게 언어학적이고 의미론적으로 분석을 가해 새롭게 조명할 수 있게 만들고 과학에도 영향을 끼쳤다. 또한 일상언어학파의 시원이 되었다. 

 

 

눈에비친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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