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메니데스는 이탈리아 남부 엘레아의 시민으로 엘레아를 위해 훌륭한 법을 만들 정도로 엘레아 학파라 불리는 일군의 철학자들 중에서 핵심적 인물이다. 그는 150행 정도 되는 시 단편들을 남겼다. 이 시들은 진리의 길과 의견의 길로 중심 주제를 나눌 수 있다. 다음은 진리의 길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아직 하나의 길에 대한 설명이 남았으니 '있음'의 길이다. 이 길에는 아주 많은 표식들이 있지만 창조되지도 않았고 없어지지도 않은 것인 그것은 완전한 하나의 종류이며 뒤섞이지도 않고 완벽하다. 그것은 바로 지금 모두 하나로서 연속적이고 결코 그렇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것에 대한 기원을 찾아볼 것인가? 어떻게 그리고 어디에서부터 그것이 자라났는지? 그러나 나는 네가 있지 않은 것으로부터 무엇이건 생각하거나 말하는 것도 허락지 않을 것이다. '있지 않다'는 것은 생각될 수도 말해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실재란 창조되지 않고 초시간적인 사물로 가득 찬 공간이다. 그것은 보이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으며 어느 곳이나 똑같아서, "마치 모든 표면이 완벽하게 둥근 공처럼, 전체적으로 중심으로부터 모든 방향이 똑같이 균형이 잡혀 있는 형태로 완전하다" 그 바뀌지 않는 부동성은 피타고라스가 보았던, 항상 변화하며 상대성으로 이루어진 무한한 실재와는 아주 대조적이다. '진리의 길'은 이성에 의해 파악되는 사물들, 피타고라스의 상대성 도식 왼쪽에 있는 것들을 다루고 있다.
한편 '의견의 길'에서는 감각을 다룬다. 파르메니데스는 그것을 "이제 나는 진리에 관한 믿을 만한 논의와 생각을 끝맺는다. 이제부터는 유한한 인간의 믿음에 관하여 내 말들의 기만적인 배열에 귀를 기울이면서 배우라"고 말한다. 의견의 길을 떠도는 사람들의 실수는 상대성에 빠져버린다는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상대성의 짝은 어두움과 밝음이다. 나머지 모든 것들은 그 짝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파르메니데스는 감각에 의존하는 모든 것을 공박하며, 그러한 의존을 사용했을 경우에 발생하는 오류들까지도 상세하게 서술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이런 오류들의 완전한 정리를 제시하였으며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인간의 어떤 유한한 생각도 너희를 앞지르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언 한다. 이는 오류 가능한 모든 경우를 알게 되면 그럴듯한 실제의 사례에서 좀 덜 쉽게 속을 것이란 의미인 것 같다.
파르메니데스의 저작은 분명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우선 이성과 감각에 관한 구분은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남았다. '진리의 길'은 언어와 논리로 이 세상의 실체를 추리한 최초의 시도다. 또한 이성을 통하여 논의되는 것과 감각을 통하여 논의 되는 것 사이의 불일치에 관한 철학적인 문제를 최초로 다뤘다.
파르메니데스를 관념론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것은 '진리의 길'에서 말하는 실재가 비물질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모든 글에서 이런 생각을 유지하지는 않는다. 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유한한 질료임을 주장하였다. 즉 현실의 존재에 대해선 관념론자라기보다는 일원론적 유물론자에 가깝다. 그는 실재는 사고를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고 했지 실재가 곧 사고라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눈에비친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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