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철학과 존재론
철학적 문제들에 대한 논의의 전개에서 파르메니데스만큼 강한 영향을 남긴 사상가는 없다. 기원전 485년에서 490년 사이에 태어나 어쩌면 백 세 이상을 살았던 시칠리아의 레온티노이 출신의 수사술가 고르기아스가 자신의 저서 『비존재에 대하여 혹은 자연에 대하여』에서 파르메니데스의 전제들이 정반대의 추론을 낳기도 한다는 것을 보이고자 시도하기는 했었다. 그렇지만 파르메니데스적 존재론의 추상적인 요청들을 실질적으로 고찰한 것은 아낙사고라스, 엠페도클레스, 그리고 압데라 출신의 데모크리토스였다. 아낙사고라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생성과 소멸에 대해서 그리스 사람들은 올바르게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사물은 생성하거나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었던 사물들로부터 혼합되거나 다시 분해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생성 대신에 혼합이라고, 소멸 대신에 분해라고 말했어야 옳았던 것이다.
엠페도클레스도 비슷한 생각을 제시한다.
이 미숙한 사람들! 이들의 노력은 정말이지 깊은 생각에서 나온 게 아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생겨날 수도 있고 그렇게 생겨난 것이 전적으로 사라지고 뿌리째 소멸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는 어떤 것도 생겨날 수 없으며, 존재하는 것이 완전히 소멸된다는 것도 불가능하기는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은 누군가 그 것을 세워놓은 거기에 언제고 서 있을 것이다.
원자론의 대표적 사상가인 데모크리토스는 더 나아가 파르메니데스적인 존재자의 속성들을 자신의 원자 개념에 적용한다.
이렇게 볼 때 파르메니데스 이후의 자연철학에서 결정적인 문제는 다음과 같이 제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논리적 관점에서 고찰하면 생성과 소멸이라는 의미에서의 변화는 불가능하다. 생성과 소멸이 실제로 무엇인가가 비존재로부터 생겨난다거나 무엇인가가 비존재로 된다는 것으로 각각 파악되어야 하는 한, 이런 의미의 생성과 소멸은 불가능하다는 파르메니데스의 생각은 옳다. 그러나 변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부정될 수 없다. 비록 우리가 경험세계를 망상이나 환영으로 치부하고 싶을지라도 말이다. 이렇게 해서 파르메니데스 이후 모든 철학자들의 과제는 변화라는 부인할 수 없는 형상을 논리에 위배되지 않고 해명하는 일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그리고 데모크리토스의 자연철학적인 작업들은 ‘존재’와 ‘생성’을 둘러싼 엘레아학파와 헤라클레이토스 학파의 대립된 주장 사이에서 종합을 이끌어내려는 시도인 것이다.
엠페도클레스
예언가이자 교훈가, 영적인 교사로도 등장하고, 자신의 자연철학적 전제들을 파르메니데스와 비슷하게 신적 계시의 내용으로 특징지었던 엠페도클레스는 파르메니데스와 마찬가지로 생성이나 소멸과 같은 개념들은 현실세계에서 전혀 그 대응물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물론 그는 변화와 변동이 있다는 사실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엠페도클레스는 의식적으로 - 그의 뒤를 이어 아낙사고라스와 데모크리토스도 비슷한 방식으로 그랬던 것처럼 - 파르메니데스의 테제가 타당할 수 있는 범위를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생성과 소멸은 불가능하다는 정도로 제한한다. 변화와 변동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거스르지 않는 이 중요한 제한은 엠페도클레스의 존재론이 지니는 반일원론(反一元論)적 경향과 잘 맞아 떨어진다. 즉 그의 존재론에 따르면 우리는 흙, 공기, 물, 불이라는 네 요소들, 다시 말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요 물질적인 ‘모든 사물들의 네 가지 뿌리들’과 관계를 맺는다.
왜냐하면 이 네 가지 요소들만이 실재하지만, 이것들이 서로 얽혀서 사람도 되고 각종의 다른 동물들도 되기 때문이다. 즉 개별적 사물들은 때로는 사랑에 의해서 하나의 정돈된 질서로 결합되고, 또 때로는 불화로 인한 미움에 의해서 분리된다. 이렇게 해서 여럿으로부터 하나가 생겨나고 다시 그 하나가 여럿으로 분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런 방식으로 그것들은 생겨나고, 이런 점에서 삶이란 불변의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끊임없는 교환을 결코 멈추지 않는 한, 그것들은 순환의 과정 안에서도 언제나 변함없는 것들로 있다.
파르메니데스가 ‘존재한다’는 이름으로 부른 것을 표상하는 이 네 가지 요소들은 끊임없는 결합과 분리의 과정 안에 있다. 따라서 엠페도클레스는 아낙시메네스와 비슷하게 변화와 변동을 양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상태들의 형태로 분석될 수 있는 과정으로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이때 엠페도클레스는 결합과 분배의 비율을 생각한다. 이 점은 그가 뼈의 속성을 불, 물, 흙의 부분들이 4 : 2 : 2의 비율로 결합되어 있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질료 자체와는 구별되는 ‘사랑’과 ‘불화’라는 두 가지 힘이 도입되는데, 이 두 가지 힘이 요소들에 영향을 미치고 변화 과정을 조종한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식의 실체화가 사랑과 미움을 자연에 투사한 것임을 시사했다. 엠페도클레스는 이와 같이 물질적인 것 자체와는 다른 두 가지의 근본 힘을 끌어들임으로써 변화와 변동이라는 현상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이 자연철학적 단초가 순환적인 세계 형성의 과정을 담고 있다고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엠페도클레스는 이 과정을 아마도 네 시기가 반복적으로 순환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첫 번째 시기는 사랑이 지배하는 시기로서 불화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실재 자체는 동질적인 구체(球體)로 묘사되는데, 이는 아마도 파르메니데스적인 존재의 스파이라(sphaira)와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시기에는 불화가 생겨나고 사랑이 구체의 중심부로 점점 쫓겨난다. 이때 동질적인 일자(一者)는 계속적으로 다자(多者)로 된다. 즉 각각의 요소들이 분리되면서 각종 생명체와 같은 개별적인 사물들이 형성된다. 하지만 이 개별적인 사물들은 우리의 지금 세계가 그러하듯이 해체와 분해의 과정에 직면해 있다. 세 번째 시기에는 사랑이 구체 밖으로 완전히 쫓겨난다. 그러다 네 번째 시기에는 사랑이 힘을 얻어 차츰 미움을 가장자리로 몰아내고, 이 과정은 스파이로스의 상태에서 한 바퀴를 마쳐 완성되는데, 이 스파이로스는 다시금 불화가 지배하는 상태로 떨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세계의 순환적 과정을 그려 보이는 이러한 시적 묘사는 확실히 많은 물음을 던지게 한다. 특히 불명료한 채로 남아 있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그 하나는 ‘질료’와 ‘힘’이라는 이원론이요, 다른 하나는 앞의 것과 연관된 것으로서, 변화가 있다는 상식적으로는 자명한 사실을 엘레아학파의 반대 의견에 대항해서 실제로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그래서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는 엠페도클레스가 “변화 자체에 대해서는 (다시 말해서 사랑의 지배가 불화의 지배로 변환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도 하지 않고 기껏해야.... 마치 변화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듯이 본성상 그렇다고만 말한다. 이러한 필연성의 원인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그는 열어 보이지 않는다.”라고유감을 표시했다.
아낙사고라스
엠페도클레스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저술이 뒤늦게 나오는 바람에 그보다 나중에야 철학의 무대에 등장하는 아낙사고라스는 한권의 책을 펴냈으며 이 책은 당시에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이 그것을 읽었던 모든 이에게 이해되었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오늘날까지 논의되고 있는 파르메니데스의 제자 제논의 역설들과 이미 대결했던 아낙사고라스는 분명히 현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가장 어려운 사상가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엠페도클레스가 그랬던 것처럼 아낙사고라스는 변화 일반이란 이미 존재하는 사물들이 새로 구성되거나 다시 구성되는 것이라고 파악함으로써 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을 통해서 생겨난 생성․소멸과 연관된 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다. 기본적으로 아낙사고라스의 생각은 그의 뒤에 등장하는 데모크리토스와 다르지 않다. 공간적․시간적인 사물들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일체의 언표들은 다른 종류의 사물들의 혼합과 분해에 대한 언표들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다른 종류의 사물들은 어떤 변화의 연쇄도 겪지 않는다. 이제 제기될 수 있는 물음은 아낙사고라스가 ‘존재하는 사물들’ 혹은 ‘현존하는 사물들’이라는 말을 정확히 무엇으로 이해했는가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로 거슬러 올라가는 해석에 따르면, 이 존재-입자들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질료이며, 질료의 각 부분들은 그것들이 속해 있는 전체와 같은 성질을 지닌다고 한다. 그렇지만 아낙사고라스는 한편으로는 엠페도클레스와는 달리, 또 다른 한편으로는 데모크리토스와는 달리 질적으로 단순해서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근본 질료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살, 뼈, 골수 등과 같은 실체들의 무한히 분할 가능한 몫을 생각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그는 엠페도클레스 식의 ‘모든 사물들의 뿌리들’이라는 방식으로 파악된 요소들이 이미 어떤 혼합, 즉 이런저런 ‘씨앗들’의 혼합을 드러낸다는 견해를 표방한다고 한다.
다른 해석, 특히 아낙사고라스의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전승된 자료에 의거한 해석에 따르면, 아낙사고라스는 ‘존재하는 사물들’이 어떤 근본 질료라고는 결코 이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따뜻함, 축축함, 건조함, 어두움 등과 같은 특정한 기본 성질들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런 방향의 해석에 의하면 아낙사고라스는 공간적․시간적인 사물들은 질적으로 대극적인 형성물들의 혼합과정을 통해서 구성된다는 견해를 표방한 셈이 된다.
확실한 것은 아낙사고라스가 “수에서 그리고 작음에서 비한정적인 모든 것들이 함께 있었다.”고 함으로써 어떤 시원의 상태가 존재함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모든 것들’이라는 표현이 여기에서 문자 그대로의 ‘모든 것들’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모든 것들은 모든 것들 속에 있었다.”와 같은 주장은 일련의 괴상한 추론들을 동반 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낙사고라스는 시원적 혼합의 상태에 나란히 있는 것들을 보면서 아마도 전체 대상의 각각의 몫들을 포함하고 있는 부분소들을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떨어져 나오기 전, 즉 모든 것이 아직 함께 있었을 때에는 어떤 색깔도 분명히 식별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든 것들의 혼합, 이를테면 축축함과 건조함, 따뜻함과 차가움, 밝음과 어두움의 혼합이 그것을 막았기 때문이며, 특히 많은 흙이 혼합 속에 있었고 어떤 점에서도 닮지 않은 무수히 많은 씨앗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밖의 사물들 가운데 어떤 것도 같은 것이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전체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상태는 혼합의 과정과 같은 어떤 것이 시작되는 순간에야 변화라는 것을 비로소 겪을 수 있으며, 이 혼합의 과정은 계속해서 일련의 변화들로 이어지고, 또 이 일련의 변화들은 경험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난다.
엠페도클레스가 질료적인 것 자체와는 다른 사랑과 불화라는 두 가지 근본 힘을 끌어들인 것과 유사하게, 아낙사고라스는 시원적 혼합에서 계속적으로 확대되는 소용돌이 운동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운동의 원리가 있다고 상정한다. 이 원리를 그는 누스(Nous)라고 부른다. 이 역동적인 원리는 아낙사고라스에 의하여 의심할 바 없이 지성적이요 질서를 부여하는 본질로 특징지어진다. 이렇게 해서 아낙사고라스는 최초로 목적론적 자연 고찰의 강한 계기를 포착한다.
그렇지만 다음과 같은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아낙사고라스의 ‘누스’ 개념은, 한편으로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다른 한편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순수 형상으로서 부동의 원동자인 신개념을 특히 배경으로 해서 고정화하기 시작하는 저 정신형이상학과는 아직 멀리 떨어져 있다는 사실이다. 하물며 신플라톤주의 이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왜냐하면 아낙사고라스는 ‘누스’를 일단 전적으로 질료적인 형상물로 보기 때문이다. 즉 ‘누스’는 “모든 것들 가운데 가장 섬세하며 가장 순수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이다. 이 지성적인 원리는 “단일하며 그 자체로”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이런 특징은 독보적인 질료로서의 이 본성이 특별한 물질적 지위를 가리키는 것이지, 어떤 초월적 지위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아낙사고라스는 ‘누스’가 어느 특정한 시점에서 운동을 불러일으켰으며, 또 ‘누스’는 “그와 동시에 움직이게 된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플라톤이 『티마이오스』에서 관념성으로부터 실재성으로의 신화적인 변환을 그려 보이며, 아낙사고라스의 ‘누스’를 연상시키는 장인이라는 문학적 조연을 등장시키는 것은, 아낙사고라스의 ‘누스’가 자립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비판에 깔려 있는 것은 예컨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신의 불변성으로부터 출발하는 사상이다. 이 비판은 아낙사고라스가 목적론적 세계고찰이라는 자신의 기획에 철저하지 못했다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의 제기와 마찬가지로 옳지 못하다. 아낙사고라스는 의식적으로 목적론적 세계고찰이라는 선택을 취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즉 그의 ‘누스’ 개념은 오히려 역학의 기초를 놓으려는 시도로서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아낙사고라스가 운동의 시원을 전제하는 것을 페리파토스 학파적인 반론, 그렇지만 실제로는 신파르메니데스적 색채를 띤 반론에 대항해서 방어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반론에 따르면 아낙사고라스가 운동을 자의적으로 특정한 시점에서 T1에서 시작되게 했다는 것이다. 아낙사고라스 같으면 여기에서 지나간 시점 T1은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은 변화를 함축한다. T1 이전에 어떤 변화도 없었다면, 그 안에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시간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아마도 아낙사고라스는 인과성의 원리도 부인했을 것이고, “우주 발생이 시간 T1에 시작되고 정신이 마침 지금 활동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대답했을 것이다. “어떤 이유도 없다. 나는 이것을 철학적 문제로 보지 않는다.”
데모크리토스
존재와 생성을 둘러싼 엘레아 학파와 헤라클레이토스 사이의 대립적인 견해들을 종합하려는 노력들 가운데에서 레우키포스(Leukippos)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생겨나는데, 이 원자론이야말로 역사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자연철학적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가 젊었을 때 아낙사고라스는 이미 노인이었다고 한다. 데모크리토스는 아낙사고라스와 비슷하게 존재하는 사물들이 새로 구성되거나 다시 구성되는 것으로 변화를 파악한다. 그래서 공간적․시간적인 사물들의 생성과 소멸에 대한 언급들은 이 존재하는 사물들의 재구성에 대한 언급들로 번역될 수 있다. 엠페도클레스나 아낙사고라스와는 달리 그는 파르메니데스가 있는 것에 부과한 조건들을 매우 엄격하게 해석했다. 왜냐하면 변화과정들의 기초가 되는 존재하는 것들이 절대적 불변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 절대적 불변성은 문제가 되는 사물들이 첫째, 견고하고, 둘째, 영원하며, 즉 생성되지도 않고 소멸되지도 않으며, 셋째, 변화를 겪지 않는다는 것, 혹은 수동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통해서 보장된다. 이러한 속성들은 앞에서 보았던 엘레아 학파적인 조건들을 연상시킨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이라고는 오직, 이 속성들이 엘레아 학파적 논의들의 과정에서 나온 것인지, 또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그런 것인지 하는 것이다.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가 허공의 존재도 주장했으며, 그들에 의해서 설정된 물체들의 형성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비존재의 존재를 전제함으로써 의심의 여지없이 파르메니데스의 두 가지 근본 구별에 대항하는 전선을 형성한다는 사실은 앞의 물음에 조심스럽게 대답하도록 경고한다. 그렇지만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가 말하는 견고함의 기본 특징이 파르메니데스의 제자인 멜리소스에 의해서 표현된 것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멜리소스는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파르메니데스에게는 기껏해야 암시적이었던 사상을 명시적으로 만든 것이다. 영원성의 관점, 곧 생성되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는다는 성질에 대해서 보자면, 레우키포스도 데모크리토스도 “있는 것만 있다”는 근본 구별을 촉구하는 파르메니데스의 생각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만일 비존재(빈 공간)가 존재(충만) 못지않게 존재한다면, 엄밀히 엘레아적인 논의의 모든 정당성의 근거가 허물어지기 때문이다. 나아가 시간 자체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도 데모크리토스에게서 비롯된다. 확실히 그는 이런 생각으로써 최소한 생성되지 않은 무엇인가가 있다고 주장하고자 했는데, 아마도 스스로에게는 자명한 이 사태를, 시간의 존재는 사실상 어떤 사물들이 주어져 있음을 포함한다는 취지로 이해했던 것 같다. 오로지 이 생각이 밝힐 수 없는 것은 문제가 되는 사물들이 실제로 생겨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세 번째 관점, 즉 변화를 겪지 않는다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데모크리토스는 견고함이 변화 가능성을 배제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설득력 있는 논변인가? 어떤 사물이 견고하며, 따라서 이미 전제된 대로 사실상 허공을 분유(分有)하지 않는다는 정황이 실제로 모든 종류의 변화가능성을 배제하는가? 데모크리토스는 견고함이라는 특징이, 단어의 완전한 의미에서 단일성과 분할 불가능성이라는 특징을 포함하는 것으로 본다. 뚜렷한 연쇄적 변화과정의 기초가 되지만, 그 과정 자체로부터는 어떤 방식으로도 자극되지 않는 저 영원한 사물들은 집적물이 아니라 엄격히 단일하며 실체의 성격을 갖는 형성물이다. 데모크리토스에 의해서 때때로 ‘원자(atoma)’라고 불리는 이 형성물들은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분할될 수 없는가? 이 원자들은 물리적으로, 또 이론적으로 분할될 수 없는가? 빈틈없이 꽉 차고 엄밀한 의미로 견고한 형성물들은 아마도 물리적 필연성으로 인해 분할될 수 없을 것이다. 즉 엄격하게 단일하며 비집적적인 형성물은 기껏해야 논리적 필연성으로 인해서는 분할될 수 없다.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보고들은 실체들로서 엄격하게 단일한 형성물들은 극히 작으며 지각되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다른 보고들에 의하면 “원자들은 그 크기도, 수도 한정되어 있지 않고”, “몇몇 원자들은 실제로 대단히 크며” “어떤 원자는 심지어 우주만하다”는 것도 가능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론에 대항해서 원자론을 정합적인 전제들의 체계로 재생시키고자 했던 에피쿠로스는 원자들이 어떤 크기도 가질 수 있다는 견해에 명백히 반대 했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의문이 남아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그런 전제들의 가능한 함축들을 물리적이요 이론적인, 혹은 개념적인 분할 불가능성에 대한 요구와 조화시킬 수 있는가? 이 물음에 대한 판단은 원자론의 철학적 발생이 그 본질적인 점에서 불명료한 채로 있다는 사실 때문에 대단히 어려워진다. 만일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가 그들의 자연철학적 테제를, 아리스토텔레스가 암시하고 있는 것처럼 제논의 논변에 대한 답변으로 내놓은 것이라면, 그 전제는 그저 물리적인 분할 불가능성만을 전적으로 충족시킬 뿐이다. 제논의 논변은 분할될 수 없는 문제들이 실제로 있다는 사실만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는 무한히 많은 수의 원자들이 있고, 이 원자들은 서로서로 무한히 상이할 수 있지만, 이 상이성은 ‘형태’, ‘배열’, ‘위치’라는 요인들로 환원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우리는 이 점을 다음과 같이 생각해볼 수 있다고 한다. 즉 철자 A와 N은 그 형태가 다르며, NA와 AN 사이에는 배열상의 차이가 있고, Z와 N의 차이는 위치상의 차이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것은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가 아낙사고라스와는 달리 이 작은 입자들에 어떤 질적 규정도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원자들은 순전히 양적으로 규정되며, 후대의 철학에서 제1성질이라는 개념으로 파악되는 것만을 지닌다. 색깔, 온도, 맛과 같은 감각적 성질들은 의식에 독립적인 대상들에 속하지 않고, 제2성질들로서 지각하는 주체의 의식 안에서, 다시 말해서 감각기관들 안에서 생리적 과정들을 불러일으키는 외부 자극들의 결과로 만들어진다. 이 이론은 일종의 철학적인 전환을 예고한다. 한편으로는 특히 금세기의 철학적 논의에서 논란을 빚어온 현상론의 출발점이 되는 지점이 외부세계의 대상들과 관련한 물음들과 함께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식론적 측면에서 볼 때 고대 원자론의 사변적, 혹은 가설적 성격이 분명해진다. 데모크리토스 자신이 이런 정황을 정확히 포착했다. 즉 데모크리토스는 “흔히 색깔, 단맛, 쓴맛이 있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사실은 ‘원자’와 ‘허공’만 있다”고 감각적 지각에 대한 불신을 나타낸 다음 감각이 지성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한다. “가엾은 지성이여, 그대는 우리들로부터 신뢰를 얻고는 우리를 내팽개치려 하는가? 그 버림은 곧 그대의 몰락이다.” 이를 통해서 데모크리토스는 원자 개념이 전혀 경험적인 개념이 아니며, 원자론의 입장은 결과적으로 난점이라고는 없는 가설을 기술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키고자 한다. 이 점은 “어떤 일도 부질없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어떤 근거를 지니고 그리고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는 전제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세계가 빈 공간을 떠다니는 입자들이 뭉쳐져서 구성된다는 견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 그럼에도 그 가설은 데모크리토스에게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데모크리토스를 회의론에 근접시키는 그 자신의 일련의 입장 표명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서 문제되고 있는 것은 외부세계의 인식 가능성과 관련된 부분적 회의론임이 명백하다. 게다가 이 부분적 회의론은 원자론을 채택함으로써 비로소 생겨난 것이다. 레우키포스와 마찬가지로 데모크리토스에게서도 경험세계에 대한 일반적인 파악과 변화를 겪지 않는 존재자가 있다는 엘레아적 사상을 조화시키자면 원자론이 유일하게 남은 길이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Andreas Graeser 이강서 옮김
'Parmenides(기515-445) > 파르메니데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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