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은 인간이 지식을 소유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경향과 지식의 진정한 대상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1차적으로 관심을 갖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국가』에서처럼 존재론적인 논제와 인식론적인 논제들이 번번히 뒤섞이거나 같은 보조로 취급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의 존재론에서 인식론을 분리시키려는 시도는 플라톤 인식론의 특성상 전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지식은 감관 지식이 아니다
비가류적(非可謬的 : 오류일 수 없음) / 존재자에 대한 것
소크라테스(이하 S)는 소피스트와 마찬가지로 실제적인 행위에 관심을 가졌지만, 진리는 상대적이며 지속적인 규범은 없고 지식의 항구적인 대상도 없다는 생각을 따르기는 거부했다. S는 윤리적 행위가 지식에 기초하여야 하며, 그 지식은 감관이나 주관적 견해의 변화하는 인상들에 종속되지 않고 모든 사람들과 모든 민족들 그리고 모든 세대에게 똑같은 지식으로 영원한 가치를 지닌 지식이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플라톤은 그의 스승으로부터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타당한 지식이라는 의미의 지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 신념을 물려받았다. 플라톤은 이 사실을 이론적으로 증명해보이기 위해 지식은 무엇이며 지식의 대상은 어떤 것인지 지식의 문제들을 깊이 탐구해 들어갔다.
『테아이테토스』에서 플라톤의 첫번째 목표는 잘못된 이론들을 논파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식은 지각이라, 한 개인에게 진실로 보이는 것은 그 개인에겐 진리라는 프로타고라스의 이론에 도전했다. 플라톤의 방법은 헤라클레이토스의 존재론과 프로타고라스의 인식론이 함의한 진술을 대화술로 이끌어내고 그렇게 얻어진 지식의 개념은 진정한 지식의 요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플라톤은 진정한 지식이란 비가류적이고 존재자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감관 지각은 전자도 후자도 아니라고 못 박았다.
S는 젊은 수학도인 테아이테토스(이하 T)에게 지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T는 기하학, 과학, 기술 등을 언급한다. S는 지식의 대상이 아니라 지식이 무엇인지 물었다고 지적한다. T는 "지식은 단지 지각(주로 시각)일 뿐"이라는 답변을 제시한다. S는 프로타고라스의 견해를 들어 지각은 외관을 의미하고 외관은 주관에 따라 달라 질 수 있다는 것, 지식은 언제나 존재하는 그 무엇에 관한 것이고 지식의 자격을 가지려면 비가류적이어야 한다는 것의 동의를 이끌어 낸다.
T는 나의 지각은 나에게 참이며 내가 나에게 보이는 것을 알고 있다면 나의 지식은 비가류적이므로 지각이 지식이라고 말한다. S는 내가 내 감관 지각 그 자체에 대해 최고의 심판관이면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보다 더 현명할 수가 없다며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면 자신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있을 수 없으니 당대 최고의 논술 과외 강사인 프로타고라스는 어떻게 정당화해야할까? 가령 프로타고라스의 논리가 틀렸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자신의 지식에 따라 진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각자가 자기 지혜의 척도라면 인간은 왜 무지를 느끼는 것일까? 또한 지식과 지각이 동일한 것이어서 보는 것과 아는 것 사이에 하등의 차이가 없다면 과거에 어떤 대상을 보았고 그 대상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어떤 사람은 비록 그것을 기억하고 있더라도 지금 그것을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모른다는 결론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S는 이런 비판 후에 지각은 지식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과 지각은 자신의 영역에서조차 지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먼저 지각이 지식의 전부가 아닌 이유는 지식으로 인정되는 일반적인 것들이 지각의 대상이 아닌 것들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감각적 대상에 관해 아는 것은 지적인 반성으로 알려지지 직접적으로 지각에 의해 알려지지지는 않는다. 가령 신기루의 존재성에 대해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은 즉각적인 감관이 아니라 이성적인 반성뿐이다. 또한 수학에서의 결론이나 논증, 한 개인의 성격 등은 감관에 의해 파악되지 않는다.
우리가 어떤 것의 존재성이나 비존재성, 그것의 다른 사물과의 유사성과 상이성에 관한 것을 알 수 없다면 그것을 실재로 안다고 말 할 수 없다. 두 개의 흰 표면이 있을 때 감각은 우리에게 흰 표면을 제공할 수 있지만 양자간의 유사성을 판단하는 것은 마음의 활동이 있어야 한다. 감관 지각은 실재로 존재한다기 보단 전화(轉化)하는 과정에 있다고만 할 수 있기에 지식의 적절한 대상이 아니다.
지식은 단순히 '옳은 판단'이 아니다
T는 그릇된 판단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판단이 지식이 아니라 옳은 판단이 지식이라는 안을 내놓는다. 하지만 판단을 내리는 사람 쪽에서 그것이 옳다는 사실을 모르고도 옳을 수 있다는 것이 지적된다. 그것이 추측이나 우연한 적중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은 정황이 매우 불리해 자신의 결백을 입증할 수 없어 변호사를 고용하여 그 변호사의 속임수와 감동적인 설득에 의해 무죄 평결을 얻었다면 그 사실은 올바른 판단이지만 변호사가 그 죄수의 결백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판단은 지식에 기초하기보단 신념에 기초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옳은 판단은 옳은 신념을 의미할 수 있지만 옳은 신념은 지식과 동일하지 않다.
지식은 옳은 판단 + 해설도 아니다
T는 그러면 옳은 판단에 해설이나 설명을 더하면 되지 않겠냐고 말한다. 위에서 정확하게 판단을 내리는 것과 정확하게 아는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보았기에 옳은 신념이라는 의미에서 정확한 판단이 단어들로 표현된다고 할 수는 없다. 해설의 제공이란 게 알 수 있는 부분들로 분석해 들어가는 것일 경우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그 분야의 전문가일 것이기 때문에 옳은 신념을 지식으로 바꾸지 못한다. 세번째로 해설이란 것이 질문을 받는 사물의 그 밖의 모든 것과 다르도록 하는 어떤 특징을 댈 수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가령 T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 이 정확한 개념을 지식으로 바꾸기 위해 어떤 두드러진 특징을 첨가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두드러진 특징이 정확한 개념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정확한 개념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만약 정확한 개념 안에 그 특징이 포함되어 있다면 차이점을 추가함으로써 정확한 개념을 지식으로 바꾸는 것 역시 터무니 없다. 이미 다른 것과 구별되어 파악된 T에게 다른 것과 구별짓는 특징을 첨가함으로써 정확한 개념을 지식으로 바꾸는 것일 테니 말이다.
참된 지식
플라톤은 지식은 획득될 수 있으며 반드시 비가류적이어야 하고 실재하는 것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테아이테토스』에서 플라톤은 감관 지각도 옳은 신념도 이 두 특징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지식이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감각적 특수자는 우리가 찾는 대상이 아니다. 참된 지식은 불변적이고 항구적이며 고정되어 있고, 명백하고 학문적인 정의로 파악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보편자를 대상으로 한다.
학문적 지식은 정의를 목표로 한다. 분명하고 명료한 정의 안에다 지식을 구체화하고 고정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정의는 보편자에 관한 것이고 참된 지식은 보편자에 대한 지식이다.
인간의 마음이 무지로부터 지식으로 발전해나가는 데는 두 개의 주요한 영역이 있는데, 그것은 견해의 영역과 지식의 영역이다. 이 두 기능의 구별은 대상의 구별에 기초한다. 견해는 영상에 관계하고 지식은 지적 직관의 형태로 관계한다. 어떤 사람이 절대적 정의의 원리와 규범과 표준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정의가 무엇인지 질문을 받았을 때 정의의 불완전한 구현체들, 보편적 이데아에 못 미치는 특수한 사례들, 가령 특정인의 행위나 특정한 하나의 헌법을 가리킨다면 그의 마음 상태는 견해다. 그는 영상이나 복사물을 보고 원형질로 오해한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정의 그 자체를 파악한다면 그 마음 상태는 지식이며 앎, 또는 인식의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지식의 등급
지식
1. 지적 직관
2. 추론적 사고 :
견해
1. 신념 : 특정한 하나의 사태나 한 개인의 정의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 상태는 신념이다. 실재적인 학문적 지식이 결여 되어 있음 - 동식물, 인공물.
2. 억측 : 말 잘하는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경험적인 정의에 미치지 못함에도 그럴듯한 설명과 추론으로 듣는 사람을 설득한다면 그는 억측의 상태다 - 영상, 예술.
눈에비친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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