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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朱子, 1130-1200)/주자

주자의 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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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사물마다 理가 있으니, 국가 사회의 조직도 반드시 그 理가 있다. 그 理를 근본으로 국가를 다스리지 않으면 국가는 태평하고 그 리를 근본으로 국가를 다스리지 않으면 국가는 혼란하다. 따라서 그 理가 곧 이른바 치국평천하의 道이다. 그 道는 역시 객관적으로 自存한다. 주자는 말했다.

 

1,500년간.... 요, 순, 삼왕, 주공, 공자가 전한 道는 하루라도 천지간에 실행된 적이 없으나, 道의 영원성은 애초부터 사람이 간여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오직 그것만은 그 스스로 고금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하며 소멸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록 그 道는 1,500년 동안 사람에 의해서 파괴되기는 했어도 또한 사람이 그 道를 모조리 없애지는 못했습니다.

 

道는 잠시도 멸식된 적이 없으나 사람 자신이 그것을 멸식시켰을 뿐입니다. 이른바 道가 멸망한 것이 아니라 유왕, 여왕 이 道를 실행하지 않았을뿐입니다. 

 

 

치국평천하의 道는 영원한 것이다.  그러나 道가 행해지거나 행해지지 않는 것, 즉 道의 실현 여부는 사람의 실행 여부에 달려 있다. 다만 사람이 실행하지 않더라도 그 道는 여전히 그러하며 결코 사람이 실행하지 않는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조금이라도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업적을 성취했던 사람이라면 그 道에 따라 행하지 않은 적이 없었겠으나 다만 인식하지 못했거나 혹은 온전히 실행하지 못했을 뿐이다. 주자는 말했다.

 

항상 저는 예나 지금이나 영원히 오직 하나의 도리만 존재하고 그것에 순응한 자는 성공하고 그것에 어긋난 자는 패망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옛날의 성현만 그랬던 것은 아니고 후세의 이른바 영웅호걸들도 그것의 理를 벗어나 성취할 수 있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만 옛 성현은 근본적으로 오직 정진하고 전일하는 공부가 있었기 때문에 중도를 견지하여 철두철미 완전히 선하지 않은 바가 없었으나 후세의 영웅들은 그러한 공부를 한 적이 없고 다만 이욕의 마당에서 부침을 했을 따름입니다. 그중에서 자질이 훌륭한 사람은 우연히 일치하여 각자의 기량대로 업적을 세웠지만 시비를 막론하고 완전히 선하지 못했던 점은 똑같았습니다. 보내주신 편지에서 말씀하신 "삼대에는 철저히 행했지만 한당 때는 철저히 행하지 못했다"고 함이 바로 그 말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저 철저하고 철저하지 못한 사실만 언급하고 철저하고 철저하지 못한 까닭을 논하지 않으며 성인의 행위를 이욕의 마당으로 끌어들여 비교하고 헤아려 약간 비슷한 점을 발견하면 곧 성인의 경우도 그 정도에 불과하다고 간주한다면, 이른바 "사소한 차이가 결국은 큰 과오가 된다"는 경우에 해당됩니다.

 

 

우리가 집 한 채를 지으려면 반드시 건축학상의 원리에 따라야 그 집을 지을 수 있다. 그 원리는 사람이 인식하지 못하거나 사용하지 않더라도 물론 그 자체로 영원불변하고 하루라도 없어진 적이 없다. 위대한 건축가는 그 理에 아주 밝으므로 항상 그것에 따라 행하면 그 원리는 실현될 수 있고 그가 지은 집도 틀림없이 견고하고 오래 유지될 것이다. 위대한 건축가만 그런 것이 아니고 집 짓는 사람 치고 집을 제대로 지을 수 있었다면 건축학의 원리에 따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다만 그 理를 몰랐거나 그저 우연히 부합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원리를 연구하지 않으면 그가 짓는 집은 건축 원리에 완전히 부합하지 못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즉 그것의 완벽성 정도는 순전히 얼마나 건축 원리에 부합했느냐 하는 그 정도에 달려 있다. 요컨대 아주 완전할 수는 없다. 성현의 임금의 정치와 영웅호걸의 임금의 정치의 차이도 역시 이와 비슷하다. 따라서 영웅호걸의 임금의 정치는 최대로 성공해도 겨우 소강의 정치일 따름이다. 성현의 임금이 행하는 정치는 왕정이고 영웅호걸이 행하는 정치는 패정이다.

 

"옛 성현은 근본적으로 오로지 정진하고 전일하는 공부가 있었기 때문에 중도를 견지하여 철두철미 완전히 선하지 않은 바가 없었다." 반드시 그런 수양이 있어야 비로소 성현의 임금이 될 수 있고 그가 행하는 정치라야 비로소 왕정이 될 수 있다. 주자는 더욱 상세히 말했다.

 

'인심은 위태롭고 도심은 미미하니 오직 정진하고 전일하여 진실로 중도를 견지하라'는 것이 요, 순, 우 임금이 서로 전수한 밀지입니다. 무릇 사람은 탄생할 때부터 개인의 육체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물론 人心이 없을 수 없으나 반드시 천지의 올바름에서 받은 것이 있으므로 또한 道心도 없을 수 없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이 두가지가 병행하여 교대로 지배하니 일신의 시비득실과 천하의 치란안위 등 모두 일이 다 거기에 달려 있는 바, 세심하게 분별하여 인심이 도심에 섞여들지 않게 하고 또 전일하게 견지하여 천리가 인욕에 빠져 들지 않게 한다면 그의 모든 행위는 어느 하나라도 중도에 맞지 않는 것이 없게 되고 천하 국가의 일도 모든 경우마다 다 합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이상 속의 철인왕은 먼저 매우 깊은 수양을 하여 현상세계를 초월하여 이데아의 세계에 도달하여 직접 선의 이데아를 보아야 한다. 반드시 그 수준이 되어야 비로소 뭇 사람을 주재할 수 있다. 주자가 여기서 말하는 내용도 그런 의미다. 우리의 性에는 모든 理가 완전히 구비되어 있으므로 기품의 구속을 제거할 수 있으면 性속의 온갖 理가 밝아지고 "그의 모든 행위는 어느 하나라도 중도에 맞지 않는 것이 없게 된다." 즉 하나라도 理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 없게 된다. 따라서 "천하 국가의 일도 모든 경우마다 다 합당하게 된다." 그러나 영웅호걸의 임금은 본래 이러한 수양이 없고 행위는 주로 개인적 인욕에서 나온 것이므로 그의 정치적 조치는 더러 천리와 우연히 부합한 것이 있더라도 역시 부합하지 못한 것이 더 많다. 이 때문에 그에게는 소강의 정치만 있게 된다.

 

이상의 인용문은 모두 주자의 「답진동보서」에 있다. 진동보의 이름은 양이다. 그의 정치적 주장은 삼대의 왕정과 한당의 패정은 근본적인 차이가 없고 다만 "삼대에는 철저히 행했지만 한당때는 철저히 행하지 못했을"뿐이라고 여겼다. 당시의 이른바 영강학파가 이설을 견지했다. 주자는 그들에 대해서 "철저하고 철하지 못한 사실"만 논해서는 안 되고 나아가 "철저하고 철저하지 못한 까닭"을 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것이 곧 왕패의 분기점이다.

 

중국철학사/펑우란/박성규옮김/주자

 

눈에비친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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