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 불교 수용의 토대
곽상이 춘추 전국 시대부터 시작된 순중국적 사유를 종결하였다. 중국적 사유란 “유”와 “무”를 근간으로 하는 본체론 혹은 우주론적 논의와 “자연”과 “명교”로 대표되는 현실적 삶과 관련된 사상이다. 그런데 이 대립된 두 경향을 곽상은 “자성”을 매개로 통일시켰다. 대립된 두 경향의 화해와 통일은 새로운 유형의 사상을 발생시킬 수 있는 대립적 갈등이 소멸해버린 것이다. 이런 국면은 앞이 보이지 않는 최종적 종국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출로가 없는 이런 상황에서 중국인들에게는 혁명적 돌파구가 필요했을 것인데, 중국인들에게 漢代에 유입되었던 불교가 그 혁명적 돌파구로서 역할을 하면서 서서히 내부로 진입하였다.
현학의 완결 이후에 새로운 자양분으로 중국인에게 다가온 것은 불교의 반야학이었다. 그런데 중국의 사상은 곽상에 의해서 “자성”의 존재가 선언되는 형식으로 완결되었는데, 새로운 자양분으로 다가온 불교 반야학은 “자성”의 존재를 부정[“本無自性”]하는 사상이었다. 이제 사상계의 대립은 “유”와 “무”의 대립으로부터 “자성”을 긍정하는 사상과 “자성”을 부정하는 사상 사이의 대립으로 바뀌었다. “자성”을 부정하는 반야학의 진정한 소개는 승조에 의해서 이루어지는데, 존재의 실존성을 철저히 부정하는 즉 “자성”의 존재성을 철저히 부정하는 이런 사상은 현학적 사상에 길들어 있던 중국인에게는 매우 낯선 것이었다. 중국인은 한 번도 이 세계의 비존재성을 믿어본 적이 없다. 모두 실지 존재하는 전체 세계와 인간과의 합일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향했을 뿐이다. 소위 “천인합일”이 그것이다. 이런 “천인합일”의 일관된 추구를 포기하고서는 중국인의 마음에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불교에서 이런 역할을 한 사람은 “解空第一”의 승조가 아니라 “涅槃聖”인 道生이었다. 반야의 부정법(遮詮)은 열반의 내용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어서 반야 실상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면 열반 불성의 의미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것인데, 당시 중국 사람들은 그렇게 이해하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반야의 공에 집착하여 열반의 유를 의심하였다. 당시 중국인들은 반야는 "공"으로 열반은 "유"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사실 도생은 “불교 반야의 실상관과 열반 불성관을 결합하고 현학의 사유방식을 채용하면서 자기의 독특한 불성 돈오 학설을 제출하여 중국 불교에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리고 도생의 철학 안에는 다양한 현학적 개념들이 그대로 등장한다. 인도 반야학의 참모습을 소개하는데 치중하였던 승조보다는 중국적 현학을 최대한 계승한 도생이 불교의 중국화에 훨씬 더 큰 공헌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불교의 중국화는 또 다른 의미에서 현학의 창조적 발전이자 새로운 중국 사상의 건립을 위한 준비이다. 그런데 이 도생이 불교의 중국화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곽상의 사상과 단절되지 않고 밀접한 연관을 지킴으로써 중국 사상이 연속성을 유지한 채 창조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余敦康에 의하면 축도생의 철학에서 불교 용어만 뺀다면 사실 곽상의 그것과 매우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축도생은 최고의 정신적 경지를 획득한 사람을 佛이라 하고, 곽상은 성인이라 한다. 곽상이 방내와 방외, 자연과 명교를 동일한 것으로 보았다면, 축도생은 진제와 속제, 淨土와 穢土를 동일한 것으로 본다. 부처가 되던(成佛) 성인이 되던(作聖)모두 현실 생활을 벗어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현실 생활을 기초로 해야 하는데, 관건적인 것은 깨달음의 수준을 향상시키고 본체를 체인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불교와 현학이 완전히 합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전체적인 사상 체계에서 보면 도생과 곽상 사이에는 이런 계승 관계가 있는데, 여기서 곽상의 사상 체계는 “자성”을 근거로 하고 있고, 도생의 이론 체계는 “불성”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도생 철학의 가장 중요한 핵심 내용은 모든 것에는 불성이 있다(“一切衆生本有佛性”)는 불성론이다. 내가 보기에 이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개별적 존재들이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것은 모든 존재들에게는 각각의 “자성”이 있다(“物各有性”)는 곽상의 사상적 흐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을 것이다. 도생의 “불성”론은 중국에 『열반경』 번역되기 전에 이미 도생의 독자적인 사유에 의해서 형성되었다는 것이 정설이고 또 도생의 철학 안에 현학 특히 곽상의 잔영이 남아 있는 것을 긍정한다면 곽상의 “자성”과 도생의 “불성” 사이의 긴밀한 계승 관계는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특히 곽상의 “자성”이 맹자 등에게서 나온 “성”처럼 자신을 실현하는 가능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자신이라는 본체적 성격이 있음은 앞에서 언급하였다. 즉 모든 존재는 그 “자성”을 근거로 그 “자성”의 한계 안에서 존재하는 것이다. 도생이 말하는 불성도 “이른바 ‘성불의 가능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제불의 당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일종의 ‘본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곽상이 본체적 성격을 갖는 “자성”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도생의 본체적 불성론이 그렇게 쉽게 중국인의 환영을 받지는 못했을 것이다.
최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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