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양명은 중국 저장성 출신
본명은 왕수인으로 지금의 저장성 출신이다. 어려서 진사에 급제, 그 이후 학자, 정치가, 군인으로 크게 공헌하였다. 불교, 무예, 시학 등 여러가지 면에서 빼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왕양명도 처음에는 그 당시 지배 이데올로기로 군립하던 주자학에 심취했다. 21세 때 모든 사물에 있는 리(理)를 찾으라는 주자의 격물궁리(格物窮理)의 가르침에 따라 뜰에 있는 대나무 앞에서 일주일을 밤낮으로 앉아 대나무의 리를 찾으려고 할 정도였다. 이렇게 해도 대나무의 리가 무엇인지 찾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병만 얻었다.
이런 경험에서 그는 주자가 말하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一木一草)'를 포함하여 그 많은 사물에 들어 있는 각각의 리를 찾는다고 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발견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산중에서 귀양살이를 하는 도중, 어느날 밤 갑자기 깨침에 이르렀다. <대학>의 기본 가르침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이다. 이런 와중에 육상산의 심즉리(心卽理)라는 가르침을 접하게 되었다. 심을 중심으로 하는 육상산의 학문이야말로 맹자의 학을 계승하고 있다고 믿고 57세에 죽기까지 심학을 발전시키고 완성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 했다.
심즉리는 맹자의 학 계승
왕양명의 주된 관심은 수행방법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윤리적 실천이었다. 왕양명도 육상산과 마찬가지로 심이야말로 리 자체와 다를 것이 없으므로 리를 알기 위해 우리 속에 있는 심을 궁구하면 된다고 했다.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에 성(誠)과 경(敬)을 다할 뿐이지, 구태여 외부 사물의 리를 섭렵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런 태도는 경서라든가 정치적 권위나 질서 등 외부적인 것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파격적인 생각일 수 있다. 어느 면에서 선불교에서 말하는 불립문자(不立文字)나 교외별전(敎外別傳)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왕양명의 사상 중 가장 독창적이면서 중요한 것을 들라면 치양지(致良知) 혹은 양지(良知)라 할 수 있다. <대학>에 나오는 격물치지에서 치지(致知)를 치양지로 바꾸었다. 양지란 <맹자>에서 양지양능(良知良能)이라고 하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왕양명은 양지를 나름대로 '어리석은 남자나 어리석은 여자나 성인이나 똑같이'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생래적 도덕지(道德知) 혹은 직관 같은 것으로서 인간 생명력의 근원이라 풀었다. 천리나 성이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이라면 양지는 인간이 본래부터 타고 나는 본 마음임을 강조한 것이다. 따라서 치양지란 이런 생래적 본마음을 최대로 활성화한다는 말과 같다. 누구나 이렇게 활성화한 순수하고 선한 마음을 따르는 한 그 행동은 자연히 선하고 바르고 의연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왕양명은 이런 생각을 사구교(四句敎)로 요약했다. "선도 없고 악도 없는 것을 마음의 본체라 하고 선은 있고 악은 없는 것을 의지의 움직임이라 하고 선을 알고 악을 아는 것을 양지라 하고,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리는 것을 격물이라 한다" 리 자체인 심은 선악의 구별을 초월하는 원초적 본질인데, 거기에 의(意)가 움직이면 선과 악의 구별이 생기고 이 때 선과 악을 구별할 줄아는 것이 양지요, 양지에 따라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리는 것이 격물이다. 주목할 것은 격물을 '사물을 궁구함'으로 푸는 대신 '선을 행하고 악을 버리는 것'이라는 실천 윤리적 차원에서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격물치지가 아니라 치양지를 통해 격물할 수 있다는 치양지격물을 주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치지 대신 치양지 주장
여기서 중요시 되는 것은 양지를 통해 내적 깨달음이 있으면 거기에는 반드시 행동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것이 왕양명이 강조하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이다. 그는 <대학>에 나오는 "좋은 색을 좋아하고 나쁜 냄새를 싫어한다"는 말을 가지고 이를 설명한다. '좋은 색이다'라는 지적판단에는 이미 그것을 '좋아함'이라는 행동이 들어가 있다. 따라서 지와 행은 서로 떨어질 수 없이 하나다. 굳이 구별하자면 지는 행의 시작이고 행은 지의 완성이다.
여기에 왕양명은 심학을 처음 시작한 정호의 만물일체론을 수용하여 양지와 조화시킨다. 정호가 말한 것처럼 천지만물은 인간과 원래 일체다. 왕양명은 인간이 사욕을 일으키지 않으면 양지에 의해 만물과 일체성을 깨닫고 타자와 아픔을 같이 할뿐만 아니라 자연히 고통을 줄이려 노력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일이 가능할 때 인간사는 물론 우주가 지선체라는 최고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