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에 있어서 존재의 문제
목 차 1. 서 론 2. 체계시대 이전의 존재 3. 학적 시원으로서의 존재 4. 직접태로서의 존재 5. 규정태로서의 존재 6. 절대자로서의 존재 7. 맺는 말 |
1. 서 론
우리는 항상 존재에 대한 이해속에서 행동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존재에 대한 평균적인 이해일 따름이다. 그러나 존재가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의 역사는 철학의 역사와 그 궤를 함께하고 있다. 역사적 탐구의 과정을 통하여 제시된 탐구의 영역은 G.Schmitt의 지적과 같이 대략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첫째, 존재의 의미는 우선 사물에 대한 파악에서 이해되며, 모든 언어와 담화의 인식 가능성을 위한 조건이다. 둘째, 존재는 유한한 존재자와 구별된다. 셋째, 존재의 통일성을 유개념의 통일성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넷째, 존재의 무규정성은 그 자신의 초월 및 매개를 내포하고 있다. 다섯째, 논리적으로 존재는 하나의 유의미한 대립자로서 무를 갖는다. 존재론적 탐구의 영역에서 논의되는 것이 이와 같은 문제들이라 하드라도, 현실적으로 존재라는 말은 우리들의 학문적, 일상적 대화에서 끊임없이 사용되는 매우 친숙한 말이며, 또한 존재에 대한 판단은 경험되거나 사유되는 외부적 실재와의 연관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존재에 대한 이와같은 선 개념적 혹은 선 존재론적 이해는 존재를 개념적으로 존재론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당위성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당위적 요청은 현대의 철학적 상황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 것으로서 형이상학의 정초 가능성이 만성적인 불확실성에로 매몰되어가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다면 그 중요성은 더욱 강열해 진다. 따라서 철학의 가능적 단초를 형이상학의 가능적 단초의 정립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한다면 형이상학의 완성에 대한 적극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는 헤겔로 돌아가서 헤겔이 말하고 있는 존재 개념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은 의의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존재의 개념을 논의한다는 것 자체가 비생산적이며 무의미한 것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철학이 상식의 정체를 폭로하고 변증법적 전개를 통하여 절대자에 이르려는 열망이라고 할 때 존재의 신비스런 베일을 벗겨보려는 헤겔의 시도가 결코 무가치한 것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물론 헤겔의 존재 개념을 논의하면서 헤겔에 있어서의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직접적으로 제기하기는 어렵다. 그것은 맥타가르트의 지적과 마찬가지로 "존재의 이념에 대해서는 어떠한 정당화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가정되고 있을 뿐이다. 또한 그로부터 이어지는 모든 결과들은 그 자체로는 아무리 설득력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을 현실성에 귀착시킬 명시적 논증이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말하자면 공중에 떠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겔의 존재 개념에 대해 천착하는 이유는 가다머가 지적하고 있는 바와 같이 현대 형이상학의 정점에 있는 하이덱거가 끊임없이 헤겔의 주위를 맴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헤겔 철학 자체에 있어서도 또한 변증법의 선결 문제로서 존재개념이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헤겔에 있어서 존재 개념은 명시적인 구체적 형태로 제시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존재 개념은 진리는 전체라는 헤겔의 명제에서 보는 것처럼 헤겔철학 전체를 통해서 규명되어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방대한 헤겔의 철학을 이해하기 위한 예비적 단계로서 헤겔의 청년기 단편에서 논리학에 이르기까지의 존재개념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2. 체계시대 이전의 존재
헤겔철학에서 존재개념이 최초로 문제되기 시작한 것은 프랑크푸르트 시대이며, 이 시기에 그는 이 시기의 종교 및 종교적 원리에 대한 탐구를 통하여 생동적인 통일을 신앙과 존재의 관계에서 논의하고 있다. 이러한 프랑크푸르트 시대의 헤겔철학에 대하여 루카치는 "프랑크푸르트 시대의 헤겔사유에 있어서 아주 특징적인 것은 객관성에 대한 그의 생각이 심하게 동요되고 있으며, 그는 다양한 방식으로 객관성을 정식화시키려고 분투하지만 궁극적인 해결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 이러한 동요는 무엇보다도 헤겔이 종교속에서, 생속에서 모든 표상이나 개념보다 고귀한 존재, 즉 반성의 일면성과 경직성을 모두 지양하고 또 수정해 줄 존재를 쁹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이러한 복합적인 사유속에서 분투하는 가운데 헤겔은 존재가 의식으로부터 독립해 있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이와같이 만약 존재가 의식으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정립된다면 통일로서의 존재의 의미는 상실되고 만다. 즉 철학이 표상들을 개념으로 분해하고 분해된 개념을 따로 따로 떼어서 그 자체로 정립한다고 한다면 이와같은 방식으로는 결코 참된 무한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의식과 독립된 반성에 의한 존재만이 승인된다면 이것은 일련의 경험적 제약들이 끝없이 계속되는 악무한의 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결과는 헤겔이 그의 철학체계를 통하여 끊임없이 추구하고 있는 무한과 유한의 진무한으로서의 통일이라는 근원적 문제를 방기하는 것으로 되어버린다. 이와같은 존재의 독립성은 존재의 절대성이라는 의미로 나타난다. 존재의 독립성은 존재가 우리에 대해서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간에 우리로부터 분리된 어떤 것이라는 사실에 있는 것이다. 이와같이 존재의 절대성이 용인된다면, 그것은 결코 우리의 의식에 표상될 수 없는 것으로 전제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전제로 부터 귀결되는 것은 "신앙은 존재자체가 아니라 반성된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하는 것이 신앙되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되는 것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신앙은 존재를 전제로 한다는 이러한 귀결에 대하여 루카치는 "헤겔은 한편으로는 사유에 대한 존재의 우위를 입증하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신앙속에서 보다 높은 종교적 원리를 발견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그 원리의 도움으로 객관적 관념론적 통일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율배반적 대립들의 통일의 인식근거이자 존재근거로서의 존재개념은 존재의 독립성과 아울러 절대성이라는 지평을 확보함으로써 논리학에 있어서 존재의 변증법적 전개를 위한 단서를 마련해주고 있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 시대에 있어서의 존재 개념은 변증법적인 개념을 토대로 하여 형성된 체계적인 것이 아니라 불분명한 형태로 제시되고 있다. 오히려 이와같은 헤겔의 존재 개념은 그와 친밀한 관계를 가졌던 횔더린의 존재개념과 유사한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러한 관계에 대해 타카코 시카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헤겔의 존재개념은 횔더린의 단편 판단과 존재에서의 존재개념과 유사하다. 이 단편에서 횔더린은 피히테의 자아의 원리에 대한 그의 비판과 관련하여 그의 존재개념을 전개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존재는 주체와 객체의 결합을 나타낸다. 주체와 객체가 곧바로 결합되는 곳에서 존재에 관한 언명이 있을 수 있다 … 그러나 횔더린에 있어서 그러한 존재는 헤겔과 달리 지적직관이었다 … 따라서 횔더린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적이고 단순한 존재가 철학의 제일원리여야 한다는 것이다." 신앙과 존재의 문제에서 나타난 존재의 독립성과 절대성은 주체와 객체의 분열이 아니라 그 통일을 위한 근거로써의 의미를 갖게되나, 그 통일은 아직 불완전한 형태에 머물고 있다. "실질적인 신앙이란 유일하게 가능한 통일 대신에 다른 것을 내세우는 통일이며, 유일하게 가능한 존재 대신에 다른 존재를 내세우는 신앙이다. 따라서 그러한 신앙은 대립자들을 통일시키기는 하지만 그 통일은 불완전하다, 다시 말해서 그것들은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방식으로 통일되어 있지는 않다" 이렇게 헤겔이 통일의 주체를 주관성의 측면으로 방향전환 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존재의 개념을 헤겔적 사유의 지평에 최초로 드러낸 프랑크푸르트 시대의 문제의식이 종교안에서 철학의 정점을 보고자 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통일로써의 존재개념이 갖는 분열의 지양문제는 객관적이고 변증법적인 체계 시대를 준비하는 예비적 시도이며 또한 단순성으로서의 순수한 삶이라는 문제의 해결을 위한 시도인 것이다. 통일로서의 존재개념은 "기독교 정신과 그 운명"의 칸트 윤리학에 대한 비판에서 도덕성을 전제로하는 이성과 감성사이의 분열을 넘어서 있는 것으로 제시되고 있다. 존재는 주체와 객체의 종합이며, 이 종합속에서 대립은 지양된다. 더 이상 구별, 대립하지 않는 것으로서의 경향성과 법칙의 일치, 통일은 근원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이러한 근원적인 것은 삶, 사랑, 존재로 말해진다. 이와 같이 근원적인 통일성과 일체화의 원리를 나타내는 삶, 사랑, 존재는 대립의 통일의 원리로 나타난다. 이러한 연관에서 삶은 그 자신을 분열시켰다가 다시 통일시키는 것이며, 이러한 전체는 다양한 특수자들의 총합속에 유지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속에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삶은 사랑속에서 그 자신과의 분열과 아울러 그 자신과의 통일을 발견한다. 삶은 원환의 형성을 완전한 통일성에로 나아가게 하는 미 발전된 통일성에서부터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서 헤겔에게 문제되고 있는 것은 단순성으로서의 순수한 삶이며 또한 삶은 근원적 통일성으로서의 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근원적인 통일성으로서의 삶과 존재의 단순성은 한갓된 추상적이고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원천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와 같은 존재론의 순수한 삶은 종교로서 나타난다. 즉 유한한 삶에서 무한한 삶에로 고양되고자 하는 노력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이러한 방식은 유한자에서 무한자에로의 고양이 아니다. 왜냐하면 유한자나 무한자는 한갓 반성의 산물이기 때문에 그 분리 또한 절대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헤겔에 있어서 철학은 반성으로서 나타나기 때문에 철학은 종교와의 관계를 중단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철학은 유한자속에서 유한자의 유한성을 밝혀내어야 하며, 또한 이성을 통하여 유한자의 완전화를 요구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에 요구되는 것은 이러한 유한성의 해명을 통하여 참된 무한성을 정립하는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시대의 헤겔은 삶 또는 존재를 주관과 객관의 근원적인 일치, 통일로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헤겔은 그러한 삶과 존재를 반성과 동일시되는 철학의 대상이 아니라 신앙 내지 종교의 대상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헤겔이 의식을 넘어서 있는 존재의 개념으로서 철학을 단순한 반성철학으로 파악하는 한, 헤겔에 있어서 학으로서의 형이상학 역시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존재에 대한 어떤 설명을 시도할려고 한다면 헤겔은 이러한 착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착상의 변화는 유한과 무한의 관계에 관한 형이상학이라는 헤겔의 근본명제에 따라 나타나게 되며, 그것은 체계의 형태로 나타난다. 따라서 "성숙기의 헤겔은 무한한 것에로의 본래적 접근을 이제는 종교에 두지 않고 철학에 둔다. 그리고 거기에 비추어서 그는 종교를 단순한 표상의 직접적 방식이라하여 철학아래 두었다. 이러한 자리바꿈의 이유는 헤겔 자신이 최초에 종교와 철학 사이에 세운 대립을 지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는 슐츠의 지적은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헤겔은 그의 체계단편에서의 정신개념을 통하여 철학적 접근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즉 체계단편에서 정신은 잡다한 것과의 통일속에 있는 활동적인 법칙으로 파악된다. 정신이 다양성속에 내재하면서 활동하는 것이라 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철학의 문제이며 또한 한갓된 반성철학이 아닌 체계로서의 철학이 요청되는 것이다. 헤겔의 이러한 변화는 초기 예나시대에서 더욱 명확하게 나타난다. 즉 "철학이 주관과 객관의 동일성을 발생시키는 사변이라면 더이상 종교에로의 지양은 필요하지 않다. 더우기 단순한 반성은 종교에로가 아니라 사변에로 즉 철학 그 자신에게로 지양되지 않으면 안된다" 따라서 예나시대 초기의 헤겔에 있어서 철학은 존재를 비존재 속에서 생성으로, 유한과 무한의 대립적 이분화를 절대자속에서 정립하는 것이다. 이와같은 종교와 철학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통하여 헤겔은 존재개념에 대한 변화를 야기하고 있다. 즉 프랑크푸르트 시대에는 생을 통일화의 의미로서의 존재로 파악하는데 비해, 예나시대 초기에는 생을 형이상학의 목표로서의 존재로 파악한다. 환언하면 존재는 이념으로서의 정신, 절대적 실체, 광의의 의미에서의 존재로 파악된다. 결국 존재개념은 의식을 넘어서는 존재의 절대성에서 의식에 대해 구체화되는 절대성의 개념으로 파악된 것이다. 따라서 체계시대 이전의 헤겔에서 나타나는 존재개념에 대한 해석의 지평은 의식을 넘어서는 통일성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의식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의식내부의 반성단계로 이행함으로서 논리학에서의 존재개념이 범주체계로서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개방한 것이다.
3. 학적 시원으로서의 존재
3-1. 예나시대 앞에서 살펴본 바와 마찬가지로 체계시대 이전의 존재개념은 절대성을 확보하면서 또한 의식에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절대자 자체는 의식에 대해서 구성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되며, 절대자의 현상 즉 분열은 반성의 지평위에서 전개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분열이란 절대자의 형상이며 객관으로서의 존재란 절대자라는 해석은 이제 형이상학의 과제로서 제기된다. 이러한 이해의 가능성은 예나시대에서 나타나는 헤겔의 논리학과 형이상학의 관계에 관한 논의에서 명확하게 표명되고 있다. 즉 논리학은 형이상학의 단순한 입문이 아니라 그 근거를 형이상학에서 확보하며 또한 형이상학을 통하여 정당화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논리학에 내재하는 인식이 형식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인식이 절대적인 것으로 되는 형이상학에로 이행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예나시대 논리학에서 시원으로서의 존재는 자신에 대한 오성적 규정으로 정립된 것이다. 즉 헤겔이 논리학의 시원을 존재로 설정한 의도가 자기에 대해서 정립된 유한한 오성규정이 그것과 대립적인 규정들과 모순됨으로써 타자와의 관계속에서 존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밝히고자 한 것이라면 시원으로서의 존재는 오성적 규정으로 정립되는 추상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존재자체는 사유되기 위해서 그 자신 공허한 것으로 나타나며 또한 타자를 필요로 한다. 이와같은 공허한 존재는 무와 동일한 것이며, 무 또는 공허성은 순수존재와 동일한 것이다. 따라서 시원으로서의 존재는 무규정적 직접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논리학에서의 무규정적 직접성은 형이상학에서는 절대정신과의 관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해진다. "절대정신은 스스로 자기자신에 대해 관계하는 자기동일적인 것이다. 자기자신에 대한 정신의 관계는 그 자신과는 대립적인 것 또는 정신이 자기자신으로서 발견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그 자신의 타자이기도 한 자기자신에 대한 정신의 관계는 무한한 것이다." 이와 같이 오성적 논리학의 존재가 타자 즉 절대자의 자기동일성으로서 또는 그 자신에 대한 절대자의 관계로서의 형이상학에서 입증된다면 사변철학의 체계로서의 대논리학의 순수존재와는 차이를 갖게된다. 이러한 차이는 이후의 정신현상학에서의 성과를 통하여 비로소 지양되게 된다. 정신현상학에서 헤겔은 예나 논리학에 있어서의 존재범주와 일치하는 우리에 대한 존재와 감각적 확실성에 대한 존재에 관해 말하고 있다. 여기서의 존재개념은, 첫째 순수존재는 단순한 직접성이다. 둘째 직접적인 것으로서의 존재는 현재와 존재성의 지평에서 해석되며, 이 때의 직접성에서는 근본적으로 매개성이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따라서 순수존재는 부정 또는 매개를 그 본질로 하며, 추상 혹은 순수한 보편자라는 규정성을 갖는 존재이다. 넷째 존재는 가장 추상적이며 빈약한 개념이다. 이러한 존재개념이 대논리학의 시원으로서의 존재개념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가라는 것은 해석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는 문제이다. 그러나 대논리학이 정신현상학의 결과이며 또한 정신현상학을 전제하고 있다는 견해를 고려한다면 시원으로서의 존재가 한갓된 직접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프랑크푸르트 시대 이후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온 절대자와의 관계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또한 헤겔이 전개해 온 존재개념에 관한 발전사적인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학적 시원으로서의 존재개념은 이전의 존재개념을 총체적으로 포섭하면서 또한 그 출발지점으로 되돌아가는 원환적 체계구조의 결절점으로서 이해된다. 3-2. 뉘른베르크 시대
헤겔의 형이상학적 사변철학의 체계를 구축하고 있는 뉘른베르크 시대의 대논리학은 순수한 학의 절대적 형식을 문제삼고 있다. 헤겔은 이러한 순수한 학의 절대적 형식을 객관적 논리학과 주관적 논리학으로 구분하여, 객관적 논리학에서는 존재개념 그 자체를 고찰하는 존재의 논리와 반성규정으로서의 본질의 논리를 논의하고, 주관적 논리학에서는 개념 그 자체를 고찰하는 개념의 논리학을 논의하고 있다. 즉 대논리학은 존재일반의 본성을 탐구하는 존재론으로서의 의미 뿐만이 아니라, 순수한 사유형식으로서의 형이상학이기도 한 것이다. 헤겔은 학적 시원은 무엇으로부터 마련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통하여 학적 시원은 순수지, 즉 정신이 도달한 궁극적이며 절대적인 진리로부터 시작됨을 밝힘으로써 대논리학의 시원이 정신현상학의 성과를 토대로 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이행에 관하여 헤겔은 "기본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더 없이 직접적인 것이 시원인 것이 아니라 오직 전체가 그 자체내에서 원환작용을 이루는 가운데 최초의 것이 곧 최후의 것이며 최후의 것이 곧 최초의 것이 된다는데 있다." "절대자는 그 자체로 이러한 의식의 요소이다. 현실성은 절대자에 있어서 그의 고유한 정신으로서 드러난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절대지에서 존재로의 이행은 의식의 요소로서의 절대지가 그 자체의 특수한 반성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 바꿔 말하면 절대지에 있어서의 그 요소는 존재라는 사실을 언표하고 있다.이와 같이 대논리학은 존재, 순수존재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헤겔은 예나 시대의 존재개념에 내포되어 있는 존재는 가장 추상적이고 빈약한 개념이라는 해석을 단순한 직접성의 개념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단순한 직접성을 뜻하는 진정한 표현은 순수존재 혹은 존재일반으로서, 다시 말하면 그 밖에 아무것도 없는, 즉 다른 어떤 규정이나 내실도 갖춘 바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라고 함으로써 존재를 순수한 무규정적인 공허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공허하다는 것은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적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을 내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러한 공허한 존재가 문제된다는 것은 절대지에서 순수존재로의 이행에서 사유가 문제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존재가 공허한 직관이나 사유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라면 존재하는 것은 자기규정의 운동 즉 생성이 문제된다. 이와 관련해서 D. 헨리히는 시원으로서의 존재에 대한 해석은 부정적 진술의 형식에 근거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그는 "부정성의 사상과 결합되어 본래적으로 근거에 놓여 있는 헤겔 논리학의 사유에 있어서 그 사유가 최초에는 부정성과는 독립적으로 사유되며, 이와 같이 독립적으로 사유되는 것이 절대적이고 다시 말하자면 자기관계하는 부정성 일반에 대한 사유를 도입할 수 있는 전제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D. 헨리히는 존재개념을 그 자체로서 사유할 수 있게 하는 것으로서 무규정적 직접성과 자기와의 동등성을 지적하고 그러한 표현의 특징은 부정성의 구조를 갖고 있으며, 헤겔은 이중적인 부정을 존재론에 도입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직접적으로 설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규정된 개념들로부터 존재를 경계지우려는 시도, 혹은 절대지의 자기외화로 파악된다. 이러한 해석은 시원의 문제에 대한 방법적인 접근을 의미한다. 즉 시원의 직접성은 절대적 지식에로 나아가는 도정의 출발점을 구성하는 것으로써 그 본성은 그것이 최초로 전개시키는 운동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직접성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절대적 시원으로서의 시원은 그 자체로 절대적 운동의 시작이 되는 것이며, 절대적 방법의 시원이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절대적 방법은 그 시원으로부터 독립적인 완성된 결과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절대자의 궁극적이고 최종적인 윤곽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논리학의 체계가 원환적이고 절대적인 운동이기 때문에 절대적 시원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논리학에 있어서의 시원설정의 문제는 최초의 범주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W. 빌란트의 지적과 마찬가지로 "헤겔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범하기 쉬운 근본적인 위험은 항상 존재의 개념 이면을 지나치게 파헤쳐 보려고 하는데 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여기에서 존재의 개념에는 아무것도 직관할 수 있는 것이 없으며 … 이와 마찬가지로 그 존재의 개념에서 어떠한 것도 사유될 수 있는 것은 없다." 따라서 시원으로서의 순수존재는 그 자체 개념, 사유규정, 범주로서 나타나게 되며, 시원으로서의 존재개념은 후속하는 절대적 이념에 이르기 까지의 범주적 운동과정에 의해 해명되어야 할 과제로서 남게된다.
4. 직접태로서의 존재 4-1. 대논리학에서의 직접적 존재
헤겔에 있어 학적 시원의 문제는 순수사유의 문제로써 절대적 이념자체의 범주적 구조로 나타난다. 이것은 시원으로서의 존재가 곧 직접태로서의 존재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범주의 연역은 절대적 방법이며 그 최초의 범주는 존재이다. 즉 "절대적 학문의 시원은 그 자체가 곧 절대적 시원으로서, 이것은 결코 그 어떤 것도 전제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시원, 시초는 그 무엇에 의해서도 매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또 그 어떤 근원을 가져서도 안될 뿐더러 오히려 그것은 스스로가 학문전체를 이루는 근원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절대적 시원이란 단적으로 하나의 직접적인 것, 아니 오히려 직접적인 것 그 자체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 이럼으로써 시원은 곧 순수존재라는 것이 된다." 이와 같은 헤겔의 진술은 시원의 개념 그 자체가 추상적 보편성의 특징들인 절대적 단순성, 무전제성, 무규정성, 무내용성, 무관계성을 갖기를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한 직접성으로 총괄되는 이러한 절대적 추상적 직접성은 그것이 시작하는 운동을 근거지우며 또한 완료된 운동에 의해 근거지어 진다. 이러한 과정은 바로 자기 자신으로 되는 과정으로서 시작과 끝이 일치하는 하나의 원환구조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원은 순수존재로 나타나는 것이다.그런데 이러한 시원은 또한 그 자체 범주의 전개가 가능할 수 있는 잠세태로서 기능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에 헤겔은 "이 순수존재는 다름아닌 순수지가 복귀하는, 귀착되는 통일성을 뜻할 뿐더러 여기서는 순수존재가 순수지의 내용이기도 한 바, 이럼으로써 또 절대적이며 직접적인 것으로서의 순수존재는 그에 못지않게 절대적으로 매개된 것이라고 하는 일면을 지니기도 하는 것이다 … 만약 순수존재가 이렇듯 순수한 무규정성이 아니라 가일층 규정되어야만 하는 것, 규정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 한다면 이것은 매개된 것이라고 해야만 하겠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순수존재는 하나의 범주, 즉 질의 범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하면 유한한 사물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절대자와의 연관에서 규정적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존재가 시원이라면, 즉 최초의 범주라면 앞에서 열거한 시원으로서의 특성들을 충족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그러한 특성들을 충족시킬 때 비로소 존재는 절대적인 최초의 시원으로서 무규정적 존재일 수가 있다. 이러한 특성들을 충족시키는 무규정적 직접성의 의미를 헤겔은 파르메니데스 이래의 전통적 원리들에 의거해서 논의하고 있다. 그런데 존재의 일자성이라는 맥락에서 시원으로서의 존재를 설정하고 있다면 당연히 어떻게 이러한 존재로부터의 생성이 가능한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는 존재론이 해결해야 할 하나의 난문으로서 헤겔은 개념의 유동화를 통하여 존재가 사유의 변증법적인 시원일 뿐만 아니라 실재의 변증법적인 시원이라는 입장에서 이를 극복하고 있다. 따라서 존재에 대한 더욱 심오한 구별과 규정 그리고 연역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구별과 규정을 헤겔은 "이럼으로써 어느덧 존재의 무규정성 자체가 존재의 질을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이제 최초의 단초적인 존재도 이미 그자체에 있어서 규정된 것이라는 점이 밝혀지게 되었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헤겔의 논리학이 특정한 내용을 가진 실재성과 연관되는 것으로서의 정신현상학에 있어서의 존재개념을 내속시키고 있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4-2. 정신현상학에서의 직접적 존재
정신현상학에서 직접적 존재는 개념이 아니라 주어진 것, 즉 현상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존재는 감각적 확실성과의 관계에서 나타난다. 감성적 확실성은 '이것'을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즉 특정한 내용을 가진 '이것이 있다'라는 것이 의식 경험의 출발점으로서 제시된다. 이를 헤겔은 "따라서 여기서는 다만 사물이 있다고 밖에 할 수 없으려니와 이와같이 그것이 있다고 밖에 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그것이 있다고 하는 한마디가 감성적 지에 있어서는 본질적인 것일 뿐더러, 이와 같은 순수존재 혹은 단순한 직접성이 바로 감성적 확실성의 진리를 구성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정신현상학의 직접적 존재는 특정한 존재를 갖는 실재성과 연관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감성적 확실성에서 출발하는 정신현상학의 목표는 현상하는 지의 절대지에로의 지양을 통하여 주관과 대상, 자아와 타자의 화해를 이루는 것이며, 의식의 편력과정을 통하여 개념과 존재의 동일성을 그 궁극적인 극복의 필연성에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에서 정신현상학은 의식이 그 본성에 따라 절대지에 이르기까지의 편력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편력의 과정에서 자연적 의식은 자신이 진리를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으나 그와 같은 지가 참된 지가 아님을 자각함으로써 점차로 고차적인 단계로 이행하고 마침내 참된 지의 개념을 실현하는 절대지에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정신현상학은 그 단서를 감성적 확실성에 두며, 감성적 확실성에서 나타나는 의식은 직접적 정신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감성적 확실성은 최초의 직접태라는 의미에서 논리학의 존재에 상응하는 것이며 또한 감성적 확실성이 그 진리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 존재라는 점에 있어서도 논리학에 상응한다. 즉 감성적 확실성에 있어서의 진리는 단지 사물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순수한 존재 내지 단순한 직접성이 사물의 본성을 이루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감성적 확실성의 유일한 진리는 '이것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그것이 있다고 말해질 때 사실은 이미 있지 않는 것이다. 즉 그것은 무이다. 역으로 또 새로운 지금과 여기로서의 이것은 이전에는 무이었으며 그것이 존재에로 이행하여 새로운 통일에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이행의 문제는 학적 시원으로서의 순수존재가 그 범주적 연역의 과정에서 매개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과 일치한다. 따라서 정신현상학에 있어서 단순한 직접태로서의 존재는 추상적이고 빈약한 개념이라는 측면에서 대논리학의 시원과 비교될 수 있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정신현상학의 자연적 의식을 통하여 드러나는 것은 직접적 존재자로서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것이 매개된 보편자라는 사념을 갖는다는 것일 뿐이라고 할 때, 정신현상학의 존재개념이 대논리학의 존재개념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 것인가는 단언하기 어려운 문제로 남는다.
5. 규정적 존재
규정적 존재는 질적으로 규정된 존재에서 이행한 현존재로서 순수 존재의 자기 부정적 특성을 변증법적으로 극복한 단계이다. 즉 변증법적 진행과정의 시원으로서의 존재개념이 자기를 부정하면서 지양한 결과로서 나타난 것이다. 이를 헤겔은 "결국 생성속에서는 이 양자가 발생과 소멸을 뜻하는가 하면 또한 서로가 달리 규정된 통일로서의 현존재 속에서는 역시 이들은 또 달리 규정적 계기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존재와 무가 상호 구별적이면서 또한 그 통일성에서 지양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와같이 존재와 무는 구별적 계기로 몰락하면서 지양된 통일체로서 나타난다. 따라서 "현존재는 규정된,규정적 존재이다. 이로써 모름지기 현존재 자체는 그가 지닌 규정성, 피규정성으로부터 구별되게 마련이다. 바로 이 규정성 속에서 질의 개념이 대두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규정성은 마침내 성질과 변화의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끝내는 대자적 존재속에서 스스로 해소되는 유한자와 무한자의 대립으로 진행되어 간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본래적인 개념속에 함축적으로 내포 내지 은폐되어 있는 내용들을 드러내는 과정으로서 이해된다. 왜냐하면 헤겔이 말하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종국은 시원속에 있기 때문이며, 또한 본래적인 개념은 그러한 과정에서 대립과 종합을 통해 확장되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헤겔에서 항상 주목되어 온 것은 각각의 범주들이 내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유기체와 같이 가변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행의 과정이 필연성을 갖는다는 데 변증법의 특징이 있다. 이와 같은 필연성에 따른 최초의 변증법적인 삼계기적 전개는 존재와 무 그리고 생성으로 이행하는 단계이다. 즉 존재와 무의 상호 동일성 및 상호 대립에서 생성의 범주가 발생한다. 이러한 생성은 발생과 소멸의 결과적인 균형상태로서의 통일이다. 이러한 생성의 통일성 속에서 존재와 무는 소멸하는 계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계기들의 소멸과 더불어 생성 또한 소멸된다. 이것은 생성이 존재와 무의 자기해체적 통일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를 헤겔은 "생성은 존재와 무의 통일로 이행하는 것이 되거니와 더우기 이때의 통일은 존재하는 것을 의미하거나 혹은 이상 두 계기의 직접적 통일이라는 형태를 띠는 다름아닌 현존재인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규정적 존재로서의 현존재는 질적인 것으로서의 규정적 존재와는 구별된다. 그것은 질적인 규정적 존재가 직접성에 머무는 것인 반면, 현존재로서의 규정적 존재는 양으로도 규정될 수 있는 더욱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규정적 존재로서의 현존재는 실재성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현존재 자체가 일단은 존재와 무의 직접적인 통일이긴 하지만, 그러나 이제 존재와 무는 더 이상 직접성의 형식을 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성적 현존재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를 헤겔은 "결국 그것은 오직 그 자신을 즉자적 존재이며 또 대타적 존재로 규정하는가 하면, 더 나아가서는 그 양자의 통일이 바로 현존재의 계기를 의미하는 한에서의 현존재인 것이다. 이와 같은 반성적 현존재라는 점에서 마침내 현존재는 실재성이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실재성이 현존재 일반을 나타내는 것으로 된다. 따라서 실재성으로서의 현존재는 하나의 비존재 즉 한계를 내포하게 된다. 이와같은 실재, 한계, 부정의 범주들과 더불어 규정적 존재는 규정적인 '어떤 것'의 개념에로 이행한다. 이 '어떤 것'의 개념에서 실재와 부정의 구별이 지양된다. 이는 부정의 부정으로서 '어떤 것'은 단순히 그 자신에 대한 반성 혹은 관계가 아니라 그 타자를 통해 제한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결국 현존재는 부정을 통해 자기를 보존하는 대타 존재로 나타나는 것이다. 즉 자기내적 존재로서 부정을 통한 자기관계인 현존재는 외타적 존재의 비존재성 속에서 어떤 것으로서의 현존재의 존재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를 헤겔은 "현존재는 존재이며 자기 자신에의 단순한 관계이면서도 또한 이것은 더 이상 직접성으로서가 아닌 자기 자신에의 부정적 관계로서 있는 것이니, 바로 이와 같은 부정적 자기 관계가 현존재의 존재성을 구성하는 셈이다"말하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 자기관계를 통하여 규정되고 한정된 것으로서의 현존재는 유한성의 단계로 이행하게 된다. 유한성의 문제에 있어서 헤겔은 유한자와 무한자의 상호규정과 무한성의 자체내로의 귀환을 통하여 진무한의 개념을 도출한다. 이로써 규정적 존재로서의 현존재는 대자적 존재의 단계로 이행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를 헤겔은 "현존재란 처음에는 본질적으로 타자에 관계되는 규정적 존재이며, 또 비존재는 존재로서의 현존재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었으나 이제는 이 비존재가 바로 그 자체에 있어서 다름아닌 무한성으로 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타자에 대한 관계로서의 현존재의 규정성이 자취를 감추면서 그 규정성은 스스로 자기와 관계하는 규정성으로, 그리고 절대적이며 무제한적인 피규정자로 화하게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은 규정적 존재에 관한 헤겔의 논의에 대하여 G. 슈미트는 그 주목되는 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첫째, 헤겔에게 있어서 어떤 것이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은 범주의 정당화이면서 동시에 결코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의 정당화이다. 따라서 전체 체계는 신정론으로 말해질 수도 있다. 둘째, 논리적 결과는 특정한 사물의 관찰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개념에 관계한다. 마찬가지로 유한자는 유한한 사물로써 사유되는 것이 아니라 관념으로서 사유된다. 셋째, 논리적인 것에서 자연적인 것에로,논리학에서 자연철학에로의 전환이, 즉 절대자의 전환이 요구된다. 넷째, 존재하는 것이란 어떤 것으로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볼 때 헤겔은 파르메니데스의 불변적, 무관계적, 추상적, 절대적인 보편자와 매우 유사한 존재 개념으로서 출발하여 어떻게 규정적 존재가 사유속에서 발생하는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개념이 정당화될 수 있는 가의 문제를 변증법적 연역의 과정으로써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존재 개념과 관련해서 볼 때 규정적 존재의 단계는 절대적 존재의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순수 존재로서의 존재가 그 범주적 연역과정을 통해서 귀결되는 최종적인 개념이 무엇인가는 다음의 절대자로서의 존재가 무엇인가에 따라 논의되어야 할 과제로 남는다.
6. 절대자로서의 존재
일반적으로 절대적이란 완벽하고 완전한이라는 긍정적 의미와 속박되지 않고 조건지어지지 않은 것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절대자란 무조건적인 것, 무제약적인 것, 스스로 현존하는 것, 완전한 것 등을 의미한다. 헤겔은 이러한 절대자에 대하여 참된 실재는 타자속에서 그리고 타자로부터 자신의 자아를 반성하는 자기동일성을 회복하는 과정이며, 본래적이고 원초적인 통일성 그 자체 또는 직접적인 통일성 그 자체는 아니다. 절대자는 그 자신의 생성의 과정이며, 그 종국을 목적으로 전제하고 그 시원에서 종국을 갖는 원환운동이다. 즉 절대자는 수행됨으로써, 그리고 그것이 포함하는 종국에 위해서 구현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절대자가 관계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절대자는 자기이외의 타자를 생성하면서 그 자신을 회복하는 과정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겔철학의 전 체계는 그 방법과 실체가 절대자라는 점에서 결론지어진다. 즉 절대자는 절대자에게로 나아가는 모든 계기들 속에 현현하며, 이러한 계기들의 이행의 과정은 절대자의 자기 운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절대자의 자기운동은 결국 절대적 시원과 절대적 종국사이의 변증법적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며, 그 종국은 절대이념에서 나타난다. 절대적 종국의 필연성은 변증법적 대립이 지양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통해 추론된다. 따라서 절대이념은 최고의 통일로서 그 자신에로 나아가는 과정에 의해서 요구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과정의 특성이 곧 절대 이념의 특성을 규정하게 된다. 이러한 절대 이념은 절대적인 자기 반성으로서 그 형식은 개념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절대이념에 관해 헤겔은 "주관적인 이념과 객관적인 이념의 통일이야말로 이념의 참된 개념이며, 이와 같은 개념에 있어서는 이념 자체가 대상이 되며 또 객체도 이념이다. 이와같은 객관은 모든 규정을 전부 포괄한 객관이다. 따라서 이와같은 통일이야말로 절대적이며 완전한 진리, 즉 자기 자신을 사고하는 이념이며, 특히 논리학에 있어서 논리적인 이념이라고 하는 것은 사고하는 이념보다도 이와 같은 통일을 의미한다"고 말함으로써 절대 이념의 개념이 논리학의 다른 범주와 마찬가지로 발생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즉 개념은 인간의 이념속에 내포되어 있는 대립으로부터 발생한다. 그것은 인식의 이념속에 내포되어 있는 대립,즉 참된 것과 선한 것 사이의 대립이나, 이론적인 것과 의지적인 것 사이의 대립으로부터 발생한다. 이와 같은 그 자신의 내적 모순에 의해 일자는 타자에로 이행하는 것이고, 절대 이념은 그와같은 모순들에 통일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절대 이념은 결국 시원으로부터 전개되어 온 각각의 존재의 의미를 총체적으로 함의하고 있는 개념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각 범주에서의 존재 개념의 근저에 하나의 포괄적인 존재가 절대 이념으로써 놓여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헤겔은 "자기의 직접적인 존재에서 출발하여,자기의 분화와 그 고양을 통하여 자기를 그 본질과 결합시키는 개념은 실재화된 개념, 즉 자기의 모든 규정, 규정된 존재로서의 규정을 자기의 객관적인 존재의 형식으로서 그 자신속에 포함한 개념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이념으로 볼 때에는, 이 최후의 것이 동시에 최초의 것으로 나타나며, 따라서 시원은 직접적인 것이고, 이념은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이념이 유일한 전체성이라고 하는데 대한 인식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절대 이념은 결국 직접성과 자기 반성의 총괄개념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절대 이념은 자신 속에서의 총체적인 운동이며, 그 결과로서 포착되는 것이다. 이로써 절대 이념은 그 자신을 순수 개념과 실재성과의 절대적 통일로 정립하면서 그 자신을 존재의 직접성 속으로 수렴하게 된다. 즉 절대이념은 바로 존재이며, 자기 인식적 진리이고 또한 모든 것의 진리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절대이념은 존재의 진리이며, 또한 존재의 의미로 나타나는 것이다.
7. 맺는 말
이상에서 헤겔의 존재 개념이 전개되어 온 과정을 그 발전사적인 맥락에서 살펴보았다. 그 결과 헤겔의 존재 개념이 시기별로 다소 변형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더라도 언제나 사유 및 절대적인 것과의 관련 속에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단언적으로 헤겔의 존재 개념을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개념으로 제시하기는 어려운 문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존재개념에서 출발하여 순수존재와 현존재를 거쳐 절대 이념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통하여 존재 개념이 끊임없이 범주적 이행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유한한 범주를 통하여 존재 개념을 우리의 의식속에 내재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절대적인 이념과의 특정한 관계 혹은 원환적 관계로 파악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헤겔은 존재 개념을 경시하고 있다거나 혹은 존재 망각의 첨단에 있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그러나 절대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을 신앙이나 직관적 방법이 아니라 학적 체계로서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진지한 결의를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이와 같은 체계적인 변증법적 접근의 방법이 희랍적 로고스 사상에서부터 제기되어 온 형이상학의 근원적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쁹으려는 노력의 한 결절점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남는 것은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또 하나의 물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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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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