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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erkeley(1685-1753)/버클리

버클리 - 물질적 실체의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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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물질적 실체의 부정

 

버클리(George Berkeley) 철학의 중심주제는 물질적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의 이런 주장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과 오해를 받았다. 버클리는 자신의 관념론이 과학과 상식 모두에 모순된다는 반론에 대해 적극적으로 항변했다. 버클리의 관념론은 17세기 철학의 계승인 동시에 입자론에 대한 반론이다. 입자론은 사물이 그 안에 자기 속성의 원인을 지니고 있으며, 그 원인이란 물체가 포함하는 내적 본질로서의 미세한 입자들의 모양, 수, 운동, 크기라는 주장이다. 이 입자론에 대한 반박은 곧 이를 기반으로 한 당시의 과학적 유물론에 대한 비판이다. 한편 버클리의 관념론은 경험주의를 논리적으로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점에서 경험론의 지속이라 할 수 있다.

 

물질적 실체를 부정하는 버클리의 논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우선 버클리는 표상적 실재론의 이론적 근거인 제1성질과 제2성질의 구분을 부정한다. 표상적 실재론자들은 제2성질에 대해 우리가 갖는 관념은 마음바깥의 어떤 존재와도 유사하지 않지만, 제1성질에 대한 관념은 물질적 실체와 닮았다고 주장한다. 곧 물체의 제1성질은 비감각적인 실체로서 그 안에 실제로 존재하는 연장성, 형태, 운동성 등이다. 이에 대해 버클리는 우선 연장성을 갖고 움직이면서 색깔과 같은 감각적 성질을 전혀 갖지 않는 물체란 상상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제1성질과 제2성질은 분리되지 않으며, 제1성질 역시 제2성질이 존재하는 마음속에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달리 말하면 제1성질이든 제2성질이든 모두 지각자의 주관성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동일한 물체가 한 손에는 차게 다른 한 손에는 뜨겁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두고 온도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것이라고 여긴다면, 지각자의 위치에 따라 동일한 물체가 크거나 작게 또는 운동중이거나 정지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사실로부터 크기나 운동과 같은 제1성질 역시 주관적이고 상대적이라고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버클리가 로크의 것이라 여긴 제1성질과 제2성질의 구분은 엄밀히 말해서 로크가 한 것은 아니다. 로크는 데모크리투스와 같은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자와 갈릴레이나 가쌍디 같은 근대 입자론자들이 해놓은 구분을 학계에 유행시켰을 뿐이다. 어쨌든 로크는 제2성질에 관한 우리의 관념들을 전적으로 心的인 것으로 보았고, 그 관념들을 생기게 하는 대상이 본질적으로 갖는 특성을 제1성질이라 불렀다. 물체의 성질에 관한 버클리와 로크의 차이는 분명하다. 로크가 관념들은 마음 안에 있지만 그것의 원형인 성질들은 대상 안에 있다고 말하는 데 비해, 버클리는 물리적 대상의 모든 성질은 관념을 넘어선 것일 수 없다고 말한다. 로크가 대상이 가진 본질이나 성향이라는 뜻으로 사용했던 ‘성질’이라는 낱말을 버클리는 ‘관념’ 곧 ‘경험’의 내용으로 사용한다. 성질을 관념으로 해석하는 그에게는 제1성질과 제2성질이 모두 마음 의존적이며 구분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버클리에 의하면 오직 정신만이 감각적 성질들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입자의 구조를 감각적 성질들의 원안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다. 이러한 버클리의 입장은 오직 정신만이 모든 현상의 원인이라는 그의 중심주장에서 비롯된 것으로 다음과 같이 집약된다. 첫째, 존재하는 것은 관념과 정신(인간의 마음과 최고정신으로서의 신)뿐이다. 둘째, 우리는 관념으로부터 어떤 힘이나 작용력을 지각하지 못한다. 셋째, 따라서 관념은 어떤 것의 원인일 수 없으며, 관념에는 어떤 원인이 있어야 한다. 넷째, 다른 관념이나 물질적 대상이 관념의 원인일 수는 없다(물질적 대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섯째, 따라서 관념의 원인은 비물질적인 정신이다.

다음으로 버클리는 추상주의자들의 추상관념을 공박한다. 추상주의자들은 물질적 실체가 감각적 성질을 전혀 갖지 않는다고 상정하므로 그에 상응하는 관념은 추상관념이다. 그러나 버클리는 추상관념이란 있을 수 없으므로 ‘물질적 실체’란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는 무의미한 낱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철학적 문제는 언어 남용의 결과인데, 이 남용은 본질적으로 낱말의 의미가 추상관념일 수 있으며, 추상관념은 외연을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데 기인한다. 그는 데카르트 이래 근대 철학자들이 공통으로 사용하던 내적 반성에 호소함으로써, 추상관념이 획득되는 과정인 추상작용을 공격한다. 즉, 추상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추상관념을 마음속에 아무리 떠올리려고 노력해도 결코 성공할 수 없으므로 추상관념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여러 종류의 추상작용을 공격하는데, 그중 하나는 대상의 특성들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해도 우리가 그것들을 서로 독립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상의 특성들이 서로 독립적인 것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예를 들어 색깔은 실제로 크기나 운동, 형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추상주의자들은 하나의 특성이 그것이 의존하는 다른 특성들로부터 그것을 추상해서 생각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버클리에 의하면 움직이고 있는 어떤 개별적인 대상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운동을 생각할 수 없으며, 형태 없이 어떤 크기의 관념도, 크기 없이 어떤 색깔의 관념도 형성할 수 없다. 물론 추상관념을 형성할 수 없다는 버클리의 주장으로부터 곧바로 어느 누구도 추상관념을 갖지 않는다거나 추상관념이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을 수는 없다. 그는 비철학적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상관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추상관념을 갖지 않는다는 훌륭한 증거라고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추상관념은 단지 학자들에게 국한된 것이다.

 

버클리는 언어에 한 사물 이상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는 일반어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일반어의 의미가 추상관념이거나 그에 의존한다는 것은 부인한다. 예를 들어 삼각형의 추상적 일반관념은 ‘빗각 삼각형도 직각 삼각형도 아니고 등변 삼각형도 부등변 삼각형도 아니지만, 동시에 이 모든 것이면서 어느 것도 아닌 것’이다. 이른바 추상관념이 포함해야만 하는 특성들은 질적으로 다양해서 그것들을 동일한 관념에 모두 포섭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추상관념에 관한 서술은 모순을 낳기도 하고 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존재할 수 없으므로 추상관념은 없다. 추상관념에 관한 논박에서 버클리는 로크보다 더 철저한 경험주의자였다. 물질적 실체의 부정을 주장하는 버클리의 세 번째 논증은 의미론적 논증 또는 인식론적 논증이라 불린다. 버클리는 실체가 특성들을 ‘지지 한다’는 말이 은유적인 것임을 지적한다. 예를 들어 ‘지지 한다’는 말이 건물을 받치는 기둥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될 때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백하다. 이것은 ‘지지 한다’는 말을 경험적으로 사용한 경우이다. 하지만 우리는 추상적인 실체와 그것의 제1성질들의 관계를 같은 방식으로는 알 수 없으며, 그 개념은 일단 은유적인 또는 경험적인 내용을 빼앗기면 전적으로 공허한 것이 된다. 따라서 물질적 실체개념은 존재할 수 없다. 버클리에 따르면, 설령 물질적 실체 개념이 유의미해서 마음과 무관한 물리적 대상들이 논리적으로 있을 수 있다고 상정하고, 우리가 그 가능성을 받아들인다 해도 그것이 참인지는 결코 알 수 없다. 우리는 단지 감각기관을 통해서만 관념들을 직접 알 수 있기 때문에 감각기관은 지각되지 않은 채 존재하는 물리적 대상들을 우리에게 알려 줄 수 없으며 이를 증명할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esse est percipi)이라는 버클리 철학의 대전제가 의미하는 바이다. 버클리는 회의주의와 무신론, 악의 근원이라고 보았던 물질적 실체라는 장막을 걷어내고 우리 앞에 펼쳐지는 감각적 사물세계의 지위를 원상복구 시켰다. 그는 자신의 관념론이 우리에게 상식적으로 나타나는 세계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는 책이나 탁자 같은 사물들이 모두 존재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것들이 우리의 지각과 무관하게 존재하거나 또는 그 본성이 물질적인 특성이라는 것은 부인한다. 버클리는 책이나 탁자 같은 사물들이 ‘관념’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언어의 일상적 용법과 어긋나게 사물대신 관념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사물이라는 말이 보통 마음 밖에 존재하는 것을 가리키며, 관념뿐 아니라 사유하는 실체까지 다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버클리는 감각적 정신 대상이 정신 속에만 존재하며 비사유적, 비활동적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관념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다.

 

그런데 관념을 갖는 존재 없이는 관념이 있을 수 없다. 버클리는 관념과 그것을 지각하는 존재를 근본적으로 구별한다. 물리적 대상에 적용되는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라는 원리는 정신에 대해서는 ‘존재하는 것은 지각하는 것’(esse est percipere)이라는 원리가 된다. 이처럼 버클리 철학에서 존재는 수동적으로 지각되는 관념의 세계와 능동적으로 지각하는 정신의 세계로 나뉜다. 그리고 각각의 분야를 다루는 학문이 바로 자연철학, 곧 과학과 형이상학이다.

 

 

서양근대철학 / 서양근대철학회 엮음 / 이재영 / 창작과비평 / 2007년 8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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