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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erkeley(1685-1753)/버클리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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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같은 시대의 사람들과 후계자들 

 

1734년부터 클로인의 주교였던 조지 버클리는 - 후기의 저작들에서는 달리 생각했지만, 적어도 청년기의 철학에서는 - 로크의 철학을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그때에 나타난 것들 안에는, 로크 자신에게 있어서도 아직은 감춰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그의 사상을 움직이게 하고 있는 요인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짐작케 하는 것이 있다. 로크는 감각의 제2성질을 주관적인 것이라고 했는데, 버클리도 이런 노선을 이어받아, 제1성질까지도 주관적인 것이라고 한다.

 

그에게 있어서는 초주관적인 실재는 아무것도 없고, 의식의 내용, 즉 관념들(ideas)만 있다. 로크에게 있어서는 초월자(trans cendens)였던 존재가, 여기서는 관념화된 것과 하나로 되고 만다. 이런 것을 표현하는 공식이 「존재는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라는 것이다. 이런 것을 관념론이라고 이름 붙일 때, 우리는 영어의 idea가 관념(Vorstellung)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것, 따라서 플라톤이나 헤겔의 관념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식설(意識說, Konszientialismus)이라고 일컬어질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하튼 그 전체는 내재철학(Immanenzphilosophie)이며, 특히 심리주의적인 뜻으로 그렇다. 그리고 이런 것 안에서, 로크에게서 싹텄던 <객관으로부터 주관으로> 전환하는 경향이 드러난다. 칸트가 버클리의 이런 관념론에 대해 커다란 거리를 두고 있었던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는 「존재는 지각된 것」이라는 공식을 간단히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칸트를 따르자면, <물자체>(das Ding an sich)가 내재적인 것이 아닌 것으로서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나 자신의 존재라고 하는, 단순하나 경험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의식은 공간 안에 있는 나 이외의 대상들의 존재를 증명해준다」고 버클리에 대한 반론을 전개하고 있다(B275).

 

뒤에서 말한 바와 같은 개관으로부터의 전회는 버클리의 유명론에 한층 더 분명하게 드러나 있을는지 모른다. 그는 날카롭고 철저한 비판을 함으로써 로크의 기본적인 입장을 유명론으로까지 발전시켜나갔다. 그는 로크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즉 로크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보편관념(general idea)이란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가 하고 묻는다. 예컨대 보편관념으로서의 세모꼴은 모든 세모꼴을 표상해내야 하나, 이것은 직각세모꼴이어서도 안 되고 - 왜냐하면 둔각세모꼴에는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 또 둔각세모꼴이어서도 안 된다 - 왜냐하면 직각세모꼴에는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관념도 하나의 세모꼴인가? 버클리는 이런 관념은 세모꼴이 아니라고 대답한다. 모든 것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절대로 있지를 않다. 이런 것은 오직 이름(명칭)일 뿐이요, 그 이상의 것이 아니다. 여하튼 이런 것은 실재(현실)가 아니다. 모든 관념들은 개별적이며, 우리들은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그대로 이 관념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관념들은 순수하게 사실적인 것이지, 형이상학적인 본질연관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견해에서, 진정한 경험론적인 사고유형을 볼 수 있다.

 

여하튼 버클리도 형이상학을 완전히 없애고는 지탱해나갈 수 없을 것만 같다. 우리들의 의식내용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것을 물을 때, 그는 우리들이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관념들, 예컨대 공상의 내용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강제적으로 우리들에게 마주쳐 오는 관념들, 즉 질서와 내적인 관계를 제시해주고, 우리들이 조금도 변경시킬 수 없는 그런 관념들도 가지고 있다. 이런 관념들은, 우리들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밖에 있는 한 가지의 원인에서 생겨난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원인을 물체적인 사물 안에서 찾는 것은 버클리에게는 유물론으로 생각되었다. 왜냐하면 관념에 작용을 할 수 있는 것은 관념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관념들은 하나의 정신에서 생겨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생각하는 정신만이 관념들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들은 관념들을 서로 마음대로 연결 지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이 관념들을 낳은 보다 더 높은 정신이 있어야만 한다. 이러한 관념들의 총체가 자연이며, 그 근거는 하느님이다. 우리들이 생각을 할 때엔 하느님이 작용을 한다. 이런 것은 기회원인론과 말르브랑슈를 연상케 하는 한 가지의 해결이다. 후기의 버클리에게 있어서는 이런 경향이 한층 더 강해진다. 후기의 버클리에게 있어서는 아이디어(idea)가 관념으로부터 실제로 「이념」(idee)으로 되는 데, 그것도 신플라톤적인 뜻의 이념으로 된다. 버클리 자신은 철저한 종교적인 인간이었다. 물론 심리주의적인 바탕 위에 세워진 하느님에 관한 형이상학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역설이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버클리에게 있어서는, 이런 것에 대한 신앙이 한 가지의 사실이었다. 또 로크의 다른 두 사람의 후계자들, 즉 하틀리와 프리스톨리에게 있어서도 사태는 이와 꼭 같았다.

 

 

서양철학사 下 /경험론 / 같은 시대의 사람들 / 297 - 299p / 힐쉬베르거 Johannes Hirschberger / 강성위 옮김 / 이문출판사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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