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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Berkeley(1685-1753)/버클리

버클리의 관념 실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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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클리의 관념 실재론

 

로크와 흄의 사이에 자리매김하는 조지 버클리는 아일랜드의 남부에서 태어나 더블린에서 대학 공부를 했다. 졸업 후 성공회의 성직자로 생활하면서 자신의 철학적 관심을 좇아서, 무엇보다도 데카르트와 로크의 이론에 몰두했다. 그가 갖는 철학사적 의의는 로크에서 흄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시도에 있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다음과 같이 짧은 말로 간단히 요약하고 있다. “나는 새로운 사상을 세우려고 하지는 않는다. 내가 하려는 것은 다만 지금까지 세상의 보통 사람들과 철학자들이 알고 있던 진리를 통일하고 이를 보다 더 밝은 빛 속에 드러내려 하는 것뿐이다. 이 진리의 첫 번째는 우리가 직접 자각하는 것들이 실재하는 것이요, 두 번째는 직접 지각된 것들은 관념이고 관념들은 오로지 마음속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생각을 합친 것이 결국 내가 내세우려는 주장의 핵심이다.” 이로써 그가 추구하는 철학적 방향은 실재론과 관념론을 통일하려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존재는 지각된 것이다.

 

버클리는 우선 관념이란 외부적인 것을 감각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라는 물질주의적 사고를 거부한다. 그는 오직 관념만이 의식 활동의 직접적인 대상이 된다고 하는 데서 시작한다. 버클리의 기본 입장은 사물의 존재는 지각된 것이고, 주체는 이를 지각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관념과 정신만이 실제로 존재하며, 물질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된다. 그는 정신과 관념을 구별하는데, 정신의 활동은 관념들의 관계나, 관념을 기억하고 확인하는 데 있다. 물질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추상적인 관념이 있다고 생각하는 데서 비롯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라 본다.

예를 들면 ‘운동’이라는 관념은 감각적 특성을 갖고 있는 느리고 빠른 것에 대한 상상 없이는 할 수 없고, ‘연장’에 대한 관념은 색깔이나 크기에 관한 상상을 통해서 이해된다. 따라서 그에게는 ‘청소년’이라는 관념은 ‘고민하는 청소년’이라든지 ‘문제 많은 청소년’이라는 어떤 구체적인 생각과 더불어 이해되는 관념이다.

그렇다면 주관에 의해 인식되지는 않지만 실제로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감각으로 파악되는 사물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하고 버클리는 묻는다. 우선 이 외부세계의 사물은 감각적이라고 해서 곧 물질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 정신에 의해 파악되지 않은 것이라 해도 다른 어떤 정신에 의해서 지각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그는 “나의 정신과는 상관없이 존재하는 한 나무는 무한한 신의 정신에 의해 지각 된다”고 말한다. 사물이란 그에게 있어서 신에 의해서 지각되고, 인간의 정신에 의해서 생겨난 복합적인 관념이라는 주장이다. 이 주장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라 해도 물질적이 아닌, 우리의 생각에서 오는 것이라는 버클리 철학의 근거가 된다. 이렇게 보면 버클리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외부세계가 있음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이 세계의 ‘물질적인 성질’이다. “내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는 그 사물들이 실제로 있다는 것은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부인하는 것은 바로 철학자들이 말하는 물질 혹은 물질적 실체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떤 것을 감각을 통해서 알게 되더라도 그것은 주관적이며, 그래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그것의 물질적 실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만 하면 머리가 아프다는 친구가 있다면 어떤 쪽이 이 음악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여기에 맞는 예가 되겠다.

로크가 주관적 합리론을 ‘땅으로’ 끌어내려 인간의 실천적 문제를 다루었다면 버클리는 다시 ‘하늘로’ 날아오르는 철학을 펼쳤다고 볼 수 있다. 성직자였던 그가 신앙과 도덕의 편에서 철학을 다루고자 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버클리는 유물론에서 무신론의 원인을 보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을 위한 서양 철학사 / 박해용 / 두리 미디어 /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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