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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G. Deleuze, 1925-1995)/들뢰즈

차이나는 것만이 반복돼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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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는 그의 친구 미셸 푸코가 평가한 것처럼 "프랑스의 유일한 철학 정신"이었다. "두 세기 후에 니힐리즘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예고했던 니체 이후의 철학을 예비하는 과정에서 들뢰즈의 철학적 면모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현대 철학자들 가운데서 그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형이상학, 인식론, 예술 및 문화철학, 영화이론, 정치철학, 섹슈얼리티, 심리철학 등의 영역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들뢰즈는 1925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철학을 배웠으며, 1947년에 데이비드 흄에 관한 논문을 썼다. 1947년에 철학교사 자격시험을 통과한 후 그는 여러 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1957년부터 소르본대학 철학사 분야 조교로 활동하면서, 철학사에 대한 특별한 연구 역량을 축적했다. 그의 철학사 연구는 흄, 니체, 칸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베르그송, 베이컨에 관한 저서 발간으로 연결됐다.

1960년부터 4년 동안 국립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1962년에 출판된 <니체와 철학>에 대해 푸코는 적극적인 찬사를 보내면서 열광했다. 들뢰즈에게 니체는 분명 새로운 시대의 철학을 정립하기 위한 출발점이었다. 1963년에 출간된 <칸트의 비판철학>에서도 들뢰즈는 칸트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 이외에 이성능력의 활동적인 측면을 부각시켰다. 1964년부터 1969년까지 리옹대학교의 철학부에서 강사로 재직하는 동안에 <프루스트와 기호들(1962)>, <베르그송주의(1966)>를 출간했으며, 1967년에는 푸코와 함께 니체 전집의 불어판 책임을 맡았다.

1968년에 들뢰즈는 국가 박사학위논문으로 <차이와 반복>과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를 제출했다. <차이와 반복>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헤겔의 <정신현상학>, 그리고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나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에 걸맞은 들뢰즈의 대표작이다.

그는 이 책에서 플라톤으로부터 칸트와 헤겔에 이르는 철학사의 족적을 해체하려는 니체와 하이데거를 지지하는 한편 그들에게 남겨진 미완의 과제들을 새로운 형이상학 구축을 통해 완수하고자 했다.

들뢰즈의 '초월적 경험론'은 분명 포스트모던 시대의 새로운 형이상학이다. 그는 전통철학자들이 강조한 존재, 인식, 개념 대신에 감성적 물질적 강도를 가진 것들을 직접 다루고자 했다. 이 점에서 그의 철학은 스피노자나 니체, 그리고 베르그송과 통하며, 그 서술 방식은 헤겔의 <논리학>이나 화이트헤드의 <과정과 실재> 만큼 체계적이다. 그가 부논문으로 제출한 스피노자 연구 역시 이러한 새로운 철학의 수립과 관계가 있다. 우리에게 범신론자로 알려진 스피노자는 자기 자신의 존재를 구성하고 유지하려는 기초적인 욕망(코나투스)과 정서를 중시했다.

스피노자에게 정신은 '정신적 자동기계'와 같은 것이었다. 사물들이나 인간에게 나타나는 모든 것들은 신의 절대적 자기 생산성이 구체화된 것이다. 신이 곧 자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든 존재는 절대적인 위치를 가질 수 없으며, 단지 '유목적'일 뿐이라는 것이다.

유목사회에서는 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존재도 그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주장할 수 없다. 모든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차이이고, 니체의 영원회귀조차도 차이의 반복적 출현에 다름 아니다. 그와 같은 차이는 존재 안팎에서의 주름 운동과 그 존재를 받치고 있는 모든 바탕의 주름 운동에 의해 결정된다.

1969년부터 들뢰즈의 사유방향은 달라지기 시작했으며, 파리 8대학(벵센)의 철학과 교수로 발탁됐다. 이 해에 출간된 <의미의 논리>에서 들뢰즈는 '사건의 존재론'을 전개했다. 존재자 대신에 '사건'으로 파악하는 철학적 관점은 베르그송과 화이트헤드에 의해 이미 개진된 바 있다. 들뢰즈는 연기(緣起) 사상이나 기(氣) 철학에서처럼 역동적인 사건 그 자체를 파악하려고 했으며, 결코 대상화되지 않은 사건을 '의미'라는 표현과 동일시했다. 사건과 의미가 하나의 동일한 현상이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들뢰즈는 '시뮬라르크'라는 말을 사용한다. 1970년, 푸코는 <비평>지에 '철학의 극장'이라는 제목으로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과 <의미의 논리>에 대한 서평을 기고했으며, 이 글에서 지금은 이미 전설이 돼버린 "아마 언젠가 20세기는 들뢰즈의 세기로 인식될 것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1972년에 들뢰즈는 정신과 전문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펠릭스 가타리와 공저로 <안티 오이디푸스>라는 대작을 냈다. 들뢰즈가 가타리와 친교를 맺은 것은 1969년이었으며, 가타리의 만남은 그에게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그는 가타리와 함께 네 권의 책을 낼 정도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안티 오이디푸스>는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의 첫째 권이다. <안티 오이디푸스>는 오이디푸스를 반대한다는 뜻이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비판하는 상징적인 어휘이기도 하다. 1977년에 나온 영어판 서문에서 푸코는 이 책이 프랑스에서 아주 오랜만에 나온 윤리적 저술이며, 슬픈 정서와 부정과 원한의 힘으로부터 정치를 벗어나게 하는 동시에 우리를 '비-파시스트적인 삶으로 인도하는 안내서'라고 평가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우리 주변의 모든 존재들을 무차별적으로 욕망하는 프로이트의 본능, 즉 '이드'와 같은 것으로 파악한다. 인간조차도 '욕망하는 기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욕망 현상을 가족주의의 틀 안에서 규정했지만, 들뢰즈는 그것이 사회현상, 즉 정치경제적 상황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자본주의적 경제순환의 과정에서 욕망하는 기계들의 자연적 흐름이 차단돼 정신분열의 결과를 빚은 것이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모든 역사적 생산을 기만하고 있는 회피 불가능한 환상"을 '오이디푸스'라고 규정하고, 그것을 폭로하고자 했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공저 퍼레이드는 1975년 <카프카: 소수문학을 위해>, 1980년 <천 개의 고원>, 1991년 <철학이란 무엇인가>로 이어진다. <안티 오이디푸스>가 성공을 거둔 것과는 대조적으로 두 번째 책 <천 개의 고원>은 세인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대학가에서 혁명의 불길이 사그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이 책에서 '다양한 것들'이 곧 현실이며, 그것이 어떻게 의식과 무의식, 자연과 역사, 영혼과 육체의 분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려고 했다. 이 다양한 것들은 어떤 통일도 전제하지 않고, 어떤 총체성이나 절대 주체로 회귀하지도 않는다. 총체성 또한 다양한 것들 속에서 출현하는 하나의 과정일 뿐이다. 다양한 것들이 갖는 독자성은 그것을 둘러싼 여러 가지 요소들에 의해 결정된다. <차이와 반복>에서의 사유세계가 여기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또한 유목적 주체의 철학 노마돌로지(Nomadology)가 체계화된다. 유목적 주체는 일정한 영토가 없으므로 어떤 사회적 지배질서에도 제약받지 않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끊임없이 분열 확장시키면서 새로운 대상과 가치를 창조하는 주체이면서 창조적 상상력을 가진 주체라는 측면에서 국가 기구의 구조화를 방해하는 하나의 '전쟁기계'이기도 하다. 들뢰즈의 유목론은 다양한 개별 주체들이 고정된 관점에서 해방돼 자신들의 욕구를 실현하도록 지도하며, 이처럼 다양한 것들의 유목적 존재방식을 리좀(Rhizome)으로 비유한다. 리좀은 나무뿌리에 무질서하게 붙어있는 잔뿌리들로서 무질서하고 제각각이지만 그 각각의 줄기들은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가 될 수 있는 가능적 존재들이다. '나무'가 전통철학의 체계적 사유틀이나 국가 개념에 해당된다면, 리좀은 이 세계 속에 무수한 다양한 것들의 하나로 존재하는 유목적 주체에 다름 아니다.

가타리가 죽기 1년 전에 들뢰즈는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발표했으며, 1981년에 <프랜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 1983년에 <영화I: 운동 이미지>, 그리고 1985년에 <영화II: 시간 이미지>를 각각 발표했다. 특히 그의 영화철학은 차이와 반복, 사건과 시뮬라르크의 개념쌍을 바탕으로 유목학(노마돌로지)의 형이상학을 중첩적으로 재현하고 있다.

중병을 앓고 있었던 푸코는 죽기 전에 들뢰즈와 만나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푸코와 들뢰즈는 테러리즘의 역할 등에 대한 정치적 견해 차이로 인해 1978년 이후 결별했으며, 들뢰즈의 화해 시도를 푸코가 묵살한 바 있었다. 둘 사이의 반목은 푸코의 장례식에서 풀어졌다. 들뢰즈는 1984년 푸코의 추도식에서 곧 출간될 <성의 역사> 제2권 '쾌락의 활용'의 서문 한 구절을 낭독했다. 그리고 2년 후 '항상 수많은 위기와 동요를 넘어서는' 푸코의 사유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푸코>를 출간했다.

1993년부터 호흡기 질환으로 투병 생활을 했으나 결국 병증을 이기지 못한 그는 1995년 11월4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국내의 들뢰즈 연구는 김상환, 이정우, 장시기, 박성수 등의 소장학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들뢰즈의 거의 모든 저작들이 번역 소개돼 있으며, 거기에는 <차이와 반복>을 비롯해 <의미의 논리>, <앙띠 오이디푸스>, <천개의 고원>, <니체와 철학>, <칸트의 비판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프루스트와 기호들>, <감각의 논리>, <베르그송주의>,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 <비물질노동과 다중>, <철학이란 무엇인가>, <푸코>, <시네마>, <매저키즘>, <중첩>, <디알로그>, <비평과 진단>, <대담>, <소수 집단의 문학을 위해: 카프카론>,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 등이 들어 있다.

들뢰즈의 입문서로는 알랭 바디우, 마이클 하트, 클레어 콜브룩, 토드 메이의 저서가 번역 소개돼 있다. 정치철학으로는 니콜래스 쏘번과 폴 패튼의 책이 번역됐고, 문학과 예술철학으로는 미레유 뷔뎅, 로널드 보그, 클레어 콜브룩의 저서가, 그리고 특히 영화론과 관련해서는 쉬잔 엠 드 라코트, 그레고리 플랙스먼, 데이비드 노먼 로도윅, 파트리샤 피스터르스, 로널드 보그의 저서가 번역 소개돼 있다.

국내학자들의 들뢰즈 연구서들 가운데서는 박성수의 <들뢰즈와 영화>, 장시기의 <노자와 들뢰즈의 노마돌로지>가 탁월하며, 그밖에도 이정우, 신지영, 윤성우, 서동욱, 사공일, 고미숙, 오길영, 정형철, 정정호, 장석주, 전경갑 등의 연구서가 출판됐다.

 

김 진(울산대 교수·제22차세계철학대회 한국조직위원)/20080827/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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