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논리
고대의 철학자들은 감각(aisthesis)을 이데아 세계에 비해 존재론적으로 열등하고 그 세계를 보는 지적 직관에 비해 인식론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여겼고 중세의 신학자들 역시 인간을 죄로 이끄는 쾌락과 결합되었다 하여 윤리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격하했다. 이어 근대의 합리주의자들은 아예 존재론적, 인식론적, 윤리학적으로 폄하했다. 18세기에 이르러 비로소 바움가르텐에 의해 감각은 복권되나, 이때조차 여전히 추상적 사유, 이성적 판단, 합리적 추론의 아래에 놓인 '저급한 인식'에 불과했다. 이러한 합리주의적 인식은 예술을 '이념의 감각적 현현'으로 보고 그것을 철학적 인식의 아래에 놓은 헤겔에까지 이어진다.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는 ‘감각에 대한 이성의 우위’라는 이 수천 년 묵은 도식을 뒤집는 극적 반전이다. 들뢰즈에게 감각은 이성과 합리성에 선행하여, 그 바탕에서 그것을 비로소 가능케 해주는 어떤 근원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감각의 논리’는 그 안에 있는 '논리'라는 표현 때문에 (로코코라는 감각적 양식을 배경으로 한) 바움가르텐의 <감성론(Aesthetica)>과 비슷한 인상을 준다. 사실 미학을 예술철학으로 한정하지 않고 감성능력 일반에 관한 학으로 상정한다는 점에서 두 기획은 비슷하다.1) 하지만 들뢰즈의 감각론은 한 가지 점에서 바움가르텐의 감성론과 구별된다. 즉 후자가 합리주의의 관점에서 감각을 이성의 아래에 포섭해 ‘인식론적으로’ 구원하려 한다면, 들뢰즈는 포스트-프로이트적 유물론이라는 관점에서 감각을 ‘존재론적으로’ 복권하려 한다는 점이다.
신체의 코기토
먼저 들뢰즈가 말하는 '감각'(sensation)이란 근대철학에서 말하는 인식론적 의미의 '지각'(perception)과 구별된다는 점을 지적해 두어야 한다. ‘지각'이 감관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정신으로 퍼 올리는 인식론적 현상이라면, '감각'은 감관에서 직접 몸으로 내려가는 존재론적 사건이다. 들뢰즈에게 감각은 생명체의 몸과 바깥의 환경이 서로 접하는 삼투막의 표면에서 “진동”처럼 발생하는 어떤 유물론적 사건이다. 그것은 단지 자극-반응의 생리 현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우리의 세계가 ‘세계’로서 주어지는 방식, 후설(E. Husserl)의 표현을 빌면 '사상 자체'가 주어지는 근원적 사건이다. 그런 의미에서 들뢰즈의 감각론은 현상학적 미학, 특히 메를로-뽕띠의 <지각의 현상학>을 포스트-프로이트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메를로-뽕띠는 일찍이 데까르뜨적 코기토(cogito)를 비판하며 거기에 ‘신체의 코기토’를 대립시켰다. 그는 '관조'라는 모델에 근거한 전통적 지각론의 정학(靜學)을 비판하며 거기에 '살'(chair)이라는 신체에 의해 이루어지는 촉각적 지각의 동학(動學)을 대립시킨다.2) 시(視)지각은 구멍을 통해 들어온 빛을 받아들이는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가 아니다. 우리는 지각을 "행동 속에서" 체험한다. 사물을 지각할 때 우리의 안구(眼球)는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렇게 "행동 속에서" 지각된 세계는 사진이나 원근법에 따른 그림처럼 일목요연하지 않다. 초점이 여러 개 있어 부분들 사이에 아귀가 맞지 않는 세잔느의 그림처럼 산만하다. 그것이 실제의 지각이며, 그렇게 세계를 표상하는 것이 바로 '체험된 원근법'(perspective vecue)이다. 고정된 정신의 눈이 아니라 움직이는 육체의 안구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세잔느의 '지각'이다.
정신이 아닌 육체에 결부된 운동감각(kinaesthesia)를 얘기함에도 불구하고 뽕띠는 아직 거기에 '지각'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이렇게 인식론의 틀 내에서 머무는 것이 뽕띠에게 남아 있는 근대철학의 요소다. 하지만 들뢰즈가 말하는 '감각'(sensation)은 근대철학에서 말하는 '지각'(perception)과는 다르다. 뽕띠의 '지각'이 아직 주객 이원론에 근거한 관념론적 인식론의 패러다임에 머문다면, 들뢰즈의 '감각'은 이와는 전혀 다른 유물론적 존재론을 함축한다. 가령 지각의 대상이 감각을 통해 받아들여진 후 추상적 인식을 위해 곧 사상되어야 할 어떤 현상학적 질(qualia)이라면, 감각은 주객의 이분법에 기초한 인식적 활동에 선행하는 어떤 존재론적 사건을 가리킨다. 감각은 인식(=정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이전에 욕망(=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감각은 주체로 향한 면이 있고, 대상으로 향한 면도 있다. 차라리 감각은 전혀 어느 쪽도 아니거나 불가분하게 둘 다이다. 감각은 현상학자들이 말하듯이 세상에 있음이다. 나는 감각 속에서 되어 지고 동시에 무엇인가가 감각 속에서 일어난다. 하나가 다른 것에 의하여, 하나가 다른 것 속에서 일어난다. 결국은 동일한 신체가 감각을 주고 다시 그 감각을 받는다. 이 신체는 동시에 대상이고 주체이다.3)
‘지각’에서는 지각되는 ‘대상’과 지각하는 ‘주체’가 서로 분리된다. 하지만 ‘감각’에는 아직 대상과 주체의 구별이 없다. '감각'은 동시에 "대상이고 주체"가 되는 현상, 뽕띠의 표현을 빌리면 "내재성과 초월성의 모순을 내포하는" 현상이다. 감각은 이렇게 주객의 근대적 이분법에 선행하여 그 바탕에서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어떤 원초적인 사건이다. 그것은 "세상에 있음" 즉 세계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방식, 아니 그 이전에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 그 자체이다.
뽕띠가 자신의 지각의 현상학을 위해 세잔느를 원용한다면, 들뢰즈는 자신의 감각론을 위해 아일랜드 출신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작품을 선택한다. 이는 한갓 우연이 아니다. 가령 베이컨의 작품 속에는 종종 17세기 바로크 정물화 속의 푸줏간을 연상시키는 고깃덩어리가 무정형의 형상을 띠고 등장한다. 이 고깃덩어리는 뽕띠가 말하는 '신체의 코기토'의 주체로서 '살'(chair)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들뢰즈가 말하는 감각의 주체는 이 '살'을 “고기”로, 즉 포스트-프로이트적인 리비도(libido)적 욕망의 주체로 재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깨어진 거울
오늘날 "회화란 재현할 모델도, 재현해주어야 할 스토리도 없다." 이것이 현대회화의 상황이다. 현대회화에서 재현성(=대상성)을 파괴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처럼 “추상을 통해 순수한 형태를 지향하는 것”이다. 하지만 들뢰즈는 이 방법과는 거리를 둔다. 왜? 추상은 "두뇌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다른 길은 없을까? 다른 하나의 길은 프랜시스 베이컨처럼 “추출 혹은 고립을 통해 순수하게 형상적인 것으로 향하는 것”이다. 베이컨은 구상과 비구상 사이에서 외줄타기를 한다. 그는 정형도 비정형도 아닌 기괴한 형상(le figural)의 창조를 통해 구상성(le figuratif)을 파괴하려 한다. 그 결과 화폭에는 충격적 형상들이 발생하고, 이 형상들은 "두뇌를 통과"하지 않고 우리의 "신경 시스템에 직접 작용"한다.
재현은 “대상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닮음)를 내포할 뿐 아니라 또한 “한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들과 맺는 관계”(=서사적 연관)를 함축한다. 그래서 닮음을 포기하는 것만으로는 재현을 피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재현은 필연적으로 서사(=이야기)를 포함”하기에, 재현을 피하려면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의 서사적 연관 역시 파괴해야 한다. 여기에 사용되는 것이 ‘격리'라는 수법이다. 격리는 “재현과 단절하고 서술을 깨뜨리기 위해 (...) 필요한 가장 단순한 방법이다.” 베이컨은 동그라미, 입방체 혹은 트랙을 이용해 형상을 격리시키고, 이로써 형상이 그림 속의 다른 요소들과 서사적 연관을 맺지 못하게 방해한다. 그의 작품 안에는 종종 둘 이상의 형상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때조차 작품 속의 형상들은 서로 서사적 연관을 맺지 않는다. 형상들은 고독하다.
형상들의 고독. 여기서 들뢰즈는 근대의 재현적 인식모델의 파괴를 본다. 이 모델에 따르면 우리는 외부의 대상을 일단 이미지의 형태로 의식이라는 거울에 비추어 놓고(=닮음) 이 이미지들을 시간적, 공간적 혹은 인과적으로 결합(=서사적 연관)시킨다. 이렇게 의식의 스크린 위에 현실의 사태를 영상처럼 떠올리는 것이 곧 인식이라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회화는 이 모델의 위에서 현실의 재현을 추구해 왔다. 그림 속에는 사물을 닮은 이미지들이 있고,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우리에게 어떤 사태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베이컨은 형상의 고립을 통 베이컨은 재현을 가능하게 하는 이 두 원리를 파괴한다. 여기서 들뢰즈는 ‘거울’이라는 사유 이마주의 파괴를 본다. 그런 의미에서 <감각의 논리>는 근대의 재현적 인식론에 대한 근본적 비판이라 할 수 있다.
감각의 폭력
재현을 포기하고 대체 무엇을 그릴 작정인가? 재현을 포기하고 그가 그리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감각’이다.4) 그의 작품 속에서 “그려지는 것은 감각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감각을 어떻게 그린단 말인가? 이 과제를 그는 기괴한 형상의 창조를 통해 해결한다. 실제로 그의 “그림 속에 그려지는 것은 신체다." 기괴하게 생긴 살덩어리들이다. 하지만 “그 신체는 대상으로서 재현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푸주간의 고깃덩이 혹은 전쟁이나 교통사고로 형편없이 뭉개진 인체 따위의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순수 형상, 즉 그 충격적인 형태와 색채의 효과로 우리를 감각의 체험 속으로 몰아넣는 어떤 모양일 뿐이다.
베이컨의 작품의 효과는 ‘시각적’인 것이 아니다. 그 효과는 ‘촉각적’이다. 그의 그림에서 우리는 형태와 색채의 유희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조화를 관조하지 않는다. 그 기괴한 형상들은 바라보는 이들에게 충격을 준다. 그의 그림은 우리의 신경시스템에 직접 작용해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고, 그로써 우리에게 어떤 체험을, 즉 감각을 느끼는 체험을 매개해 준다. “관객으로서 나는 그림 안에 들어감으로써만 감각을 느낀다.” 베이컨의 그림 속의 그 기괴한 신체는 우리로 하여금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신체이자, 동시에 “그러한 감각을 느끼는 자로서 체험된 신체”이다. 다시 말해 그 충격효과로써 내 감각을 일깨우는 그 기괴한 신체는 동시에 그런 감각을 느끼는 순간의 내 신체의 상태이기도 하다. 그것은 동시에 나의 몸이다. 그리하여 그의 그림을 바라볼 때 우리는 “느끼는 자와 느껴지는 것의 통일성에 접근한다.”
베이컨의 회화는 폭력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쟁의 폭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는 아일랜드의 내전과 유럽대륙을 휩쓴 2차 대전을 보았지만 그의 작품의 폭력은 그가 체험한 폭력의 재현이 아니다. 폭력의 재현은 그림에 어쩔 수 없이 구상을 도입하고, 그 결과 그림은 지루한 ‘스토리 텔링’을 하게 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스토리로 우회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그는 재현된 폭력 대신에 회화의 폭력, “감각의 폭력”을 내세운다. 그의 작품의 잔혹성은 현실의 잔인함이 아니라 회화의 잔인함, 즉 색채와 형태가 행사하는 잔혹함이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폭력의 재현(representation)이 아니라 회화를 통해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폭력의 현시(presentation)다. 굳이 이를 ‘재현’이라 부른다면, 아르토를 따라 잔혹함의 원본적 재현(representation originaire)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의 작품의 효과는 인식론적인 것이 아니다. 그의 작품은 존재론적 효과를 낸다. 여기서 우리는 ‘관조’라는 인식론적 에피스테메에 기초한 전통적인 모델과는 다른 새로운 예술수용의 모델을 갖게 된다. 그의 작품은 더 이상 시각적 관조가 아니라 촉각적 체험의 대상이다. 아니, ‘대상’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신경시스템을 때리는 또 하나의 주체다. 그것은 “변형의 주역이고 신체를 변형시키는 행위자다.” 전통적인 구상회화나 현대의 추상회화는 “두뇌를 통과하지, 신경 시스템 위에 직접 작용하지 않는다. 이들은 형태의 변형은 할 수 있지만 신체의 변형을 이루지는 못한다.” 하지만 구상과 추상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그의 작품은 다르다. 그것은 신경시스템에 직접 작용하여 그 쇼크 효과로 우리의 신체를 변형시킨다.
동물-되기
베이컨의 그림에서 동물과 인간은 하나가 된다. 교황은 침팬지의 입을 갖고 있고, 여인의 입에서는 멧돼지의 어금니가 자라나고, 아이는 네 다리로 걷는 개가 되고, 투우장의 투우사는 소와 한 몸이 된다. “인간인지 동물인지 구분할 수 없고 명확히 할 수 없는 영역.” 여기서 인간은 동물이 된다. 이때의 동물은 "형태로서의 동물이 아니라 특색으로서의 동물"이며, 그 특색은 "동물적 형태가 아니라 기(氣)로부터 온 것이다." 베이컨이 표현하는 인간의 동물 되기는 단순히 “인간과 동물의 형태의 결합”에 불과한 게 아니라 “차라리 둘 사이의 공통의 사실이다." 베이컨에 따르면 “고통 받는 모든 인간은 고기”이다. “고기는 인간과 동물의 공통영역이고 그들 사이를 구분할 수 없는 영역이다."
'이성'을 근거로 인간을 다른 동물의 위에 올려놓는 인간중심주의는 이로써 무효가 된다. 도살장과 정육점, 예수의 십자가 책형과 푸주간에 다리를 벌리고 걸린 고기 사이에서 묘한 동일성을 보는 들뢰즈는 데카르트를 대신하여 말에게 사죄를 했다던 니체를 연상시킨다. 물론 인간과 동물의 교감, 인간과 동물 형태의 결합은 가령 샤걀에게도 나타난다. 하지만 베이컨이 말하는 인간의 동물 되기는 "짐승에 대한 연민"도, "인간과 동물의 화해"도, 둘 사이의 "닮음"도 아니다. "그것은 근본적인 동일화며, 모든 감정적인 동화보다 훨씬 깊은 비구분의 영역이다. 고통 받는 인간은 동물이고, 고통 받는 동물은 인간이다." 베이컨은 푸주간에 들어가 도살된 짐승들이 걸려 있는 것을 볼 때마다 이렇게 자문한다. ‘저기에 걸려 있는 것이 왜 내가 아닐까?’
다른 곳에서 들뢰즈는 ‘되기’(devenir)에 대해 이야기하며 몇 가지 예를 제시한다.5) 가령 영국의 음악에 나타나는 카운터 테너는 ‘여성-되기’의 예다. 남성이면서 기교를 통해 여성의 음역을 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카스트라토는 ‘아이-되기’의 예다. 카스트라토는 글자그대로 변성기가 지나기 전의 소년 시절에 거세를 당해 목소리가 보이 소프라노의 음색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되기’의 예는 도처에 널려 있다. 슈만의 음악에는 ‘아이-되기’(「어린이 정경」)와 ‘여성-되기’(클라라의 영향)가 나타난다. 모차르트의 음악에는 온통 ‘말-되기’와 ‘새-되기’가 가로지르고 있다. ‘동물-되기’는 그저 동물을 흉내 내는 외적 모방(imitatio)이 아니다. 카멜레온이 환경에 따라 제 몸의 색을 바꾸는 것과 같은 존재론적 닮기(mimesis)이다.
화가나 음악가는 동물을 모방하지 않는다. 화가나 음악가는 동물이 되지만, 이와 동시에 동물도 화가나 음악가가 바라는 것이 되며, 화가나 음악가는 가장 깊은 곳에서 자연과 공모하는 것이다.6)
알렉시스라는 청년은 사람들을 웃기기 위해 곧잘 말을 흉내 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하모니카를 불 때 비로소 말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종종 그는 화성의 빠르기를 두 배로 하고 달리는 말의 속도를 연상시키는 비인간적 템포로 사람들을 압도하곤 했는데, 이렇게 “말의 재갈이 하모니카가 되고, 말의 속보가 두 배의 박자가 되었을 때 알렉시스는 더 할 나위 없이 말이 되었던 것이다.”
‘동물-되기’는 ‘앙띠 외디푸스’의 기획, 즉 프로이트주의에 대한 비판과 관련이 있다.7) 모든 것을 ‘외디푸스 컴플렉스’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프로이트는 한스라는 아이의 ‘말-되기’라는 증상에서 오직 아버지만을 찾는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이 증상을 설명하는 다른 틀을 제시하며, 거기서 치유해야 할 질병이 아니라 외려 창조적 가능성을 본다. ‘동물-되기’는 진화의 방향을 거슬러 동물의 수준으로 돌아가는 “퇴행”이 아니다. 그것은 “창조적이며 동시적인 역행”이다. ‘되기’는 인간이 자신을 하나의 정체성에 한정시키지 않고, 이 존재의 상투형이 굳어지기 전의 가능성의 지대로 돌아가, 다른 것과의 접속을 통해 제 존재의 지평을 창조적으로 넓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되기'란 인간이 예술적으로 존재하는 방식이자 동시에 예술이 존재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얼굴 지우기
베이컨은 종종 몸에서 얼굴을 지워버리고 그 자리에 얼굴 없는 머리가 솟아나게 한다. “신체는 형상이기에 얼굴이 아니며 얼굴도 없다." 그 대신 "형상은 머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왜 얼굴을 지우는 것일까? 얼굴이 신체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로부터 신체에서는 얼굴이, 얼굴에서는 ‘영혼의 거울’이라는 눈이 특권적 지위를 누린다. 얼굴의 역사를 들뢰즈는 특유의 지정학(geopolitique)으로 설명한다. 신체에서 얼굴이 특권적 영역으로 솟아나는 것은 동물의 코드에서 벗어나는 탈영토화, 이렇게 솟아난 얼굴을 합리적 주체의 초상으로 조직하는 것은 그것을 다시 인간의 코드에 가두는 재영토화다. 형상에서 얼굴을 지움으로써 베이컨은 여기서 또 한 번 탈영토화를 시도한다.
얼굴에서 들뢰즈는 정치를 본다. “얼굴이 정치라면, 얼굴 해체하기 역시 정치의 하나다.” 물론 이 미시정치학은 소위 ‘주체의 해체’라는 탈근대의 프로젝트와 관련이 있다. “얼굴 해체하기, 그것은 (...) 주체화의 검은 구멍에서 빠져 나오기와 같은 것이다.” 들뢰즈에게 ‘얼굴’은 곧 유기체(=신체의 기관으로의 분화와 조직화)이며, 의미생성과 주체화의 바탕을 이루는 것이다. 얼굴은 “동물뿐 아니라 인간이라는 유기체의 지층으로부터 머리를 빠져 나오게 해서, 그것을 의미생성이나 주체화의 지층과 같은 다른 지층들에 연결접속”8)한다. 따라서 얼굴을 지우는 것은 곧 유기체의 해체, 의미작용의 해체, 주체화의 해체를 의미하게 된다. “그렇다. 얼굴은 파괴되고 망가지는 한 거대한 미래를 갖는다. 탈기표 작용으로 향하는, 탈주체성으로 향하는 길에서.”9)
일찍이 고야는 광인들의 관상(physiognomie)에 매료된 바 있다. 그는 광인들의 얼굴을 관찰해 그림으로 남기기도 했는데, 거기에 나타난 광인들의 표정은 이목구비의 짜임새(=영토화)가 풀려 어딘지 모르게 인간으로, 즉 합리적 주체로 보이지 않는다. 들뢰즈라면 이를 얼굴의 탈영토화라 부를 것이다. 이렇게 얼굴을 해체할 때 얼굴 너머로 “완전히 다른 비인간성”이 드러난다. 하지만 이는 인간이 얼굴을 갖지 못했던 시절로 퇴행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제는 다시 한 번 “창조적이며 동시적인 역행”이다. 얼굴 없는 머리. “그것은 더 이상 원시적인 머리의 비인간성이 아니다. 그것은 새롭고 낯선 생성과 다성성을 형성하면서 탈영토화의 첨점들의 작동이 일어나고, 탈영토화의 선들이 절대적으로 긍정되는 ‘더듬이-머리’(tete chercheuse)의 비인간성이다.”
얼굴에는 오감의 기관이 모두 모여 있다. 백색의 장벽에 뚫린 검은 구멍들, 이것이 하나의 영토를 형성한다. 이 영토의 경계를 지우고, 영토화의 원리를 해체할 때 그 자리에 얼굴 없는 비인간적인 머리가 솟아난다. 이 머리는 온갖 감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고감도의 거대한 안테나(tete chercheuse)와 같다. 얼굴이 지워진 머리. 그것은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영토, 즉 '평면성의 지대' 역할을 한다. 얼굴 없는 머리는 감각이라는 사건이 발생하는 장을 이루는 신체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베이컨의 작품에서 가끔 신체 전체가 통째로 머리가 되기도 한다. 형상에서 얼굴을 지울 때 ‘데카르트적 코기토’(=정신으로서의 주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고기가, ‘신체의 코기토’(=순수감각의 주체로서의 몸)가 솟아난다.
기관 없는 신체
제 몸 속의 기관들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체험. 이는 원래 정신의학의 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령 우울증 환자가 느끼는 몸 (“x 양은 이미 머리도, 신경도, 가슴도, 위도, 장도 없다고 단언한다. 조직이 해체된 몸체에는 피부와 뼈 밖에 남아있지 않다.”), 편집증의 몸 (“그는 오랫동안 위도 장도 폐도 거의 없이 살아왔다.”), 마약 중독자의 몸 (“언제 뒤죽박죽될지 모르는 입이나 항문 대신, 먹고 배설하는 것을 동시에 하는 하나의 다기능의 구멍을 가지면 어떨까?”) 마조히스트의 몸 (“그는 사디스트나 창녀에게 눈이나 항문, 요도, 가슴, 코를 꿰매게 한다.”), 그리고 분열자의 몸. 여기서 몸은 “기관에 맞서 능동적으로 싸우는” 데에까지 이른다.
1947년 분열증적 시인이자 극작가인 아르토는 기관들에 전쟁을 선포한다. “신체는 물질 덩어리다. 그는 혼자이며 기관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신체는 결코 유기체가 아니다. 유기체들이란 신체의 적이다.” 아르토를 읽었기 때문일까? 베이컨의 그림에도 기관 없는 신체가 등장한다. 아니, 그가 만들어 낸 그 형상 자체가 곧 기관 없는 신체다. 형상에는 기관들(organes)의 분화가 없다. 얼굴에서는 눈, 코, 귀, 입의 구별이 지워지고, 몸체에서는 사지(四肢)가 탈구되고 가슴과 배의 구별이 사라진다. 이렇게 머리를 위해 얼굴을 지우고, 신체를 위해 유기체(=몸의 기관으로의 분화)를 해체할 때, 베이컨은 아르토와 함께 기관들에, 그것들의 유기적 조직화에 전쟁을 선포하고 있는 셈이다.
왜 이들은 제 몸의 기관들에 전쟁을 선포하는 것일까? 들뢰즈에 따르면 세 개의 지층이 우리를 직접적으로 구속하고 있다. 유기체의 면(面), 의미생성의 각(角), 주체화의 점(點)이 그것이다. 들뢰즈는 이를 “신의 심판”이라 부른다. “신의 심판, 신의 심판의 체계, 신학체계는 바로 유기체 또는 유기체라 불리는 기관들의 조직화”를 만들어낸다.
너는 조직화되고 유기체가 되어 네 몸을 분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변태에 불과하게 된다. 너는 기표와 기의, 해석자와 해석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일탈자에 불과하게 된다. 너는 (...) 언표 행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떠돌이에 불과하게 된다.10)
신의 심판은 기관 없는 신체를 유기체, 기표작용, 주체로 만든다. “유기체 자체가 이미 신의 심판”이며 “의사들은 이것을 이용해 신의 권력을 훔친다.” 때문에 유기체를 해체하여 기관 없는 신체로 돌아가는 것은 이 3중의 구속을 벗고 “탈영토화를 향해 몸체를 여는 것”을 의미한다.
CsO(=기관 없는 신체)는 지층들의 집합에 고른판의 성질로서 탈구(또는 n개의 분절들), 이 평면 위에서의 작용으로서의 실험(기표는 없다! 절대 해석하지 말라!), 운동으로서의 유목(설령 제자리에서라도 움직여라, 끊임없이 움직여라...)을 대립시킨다.11)
기관 없는 신체는 힘의 감수성이라는 ‘속성’과, 그 고른 판 위에 일어나는 파동? 진동? 강렬함 등의 ‘양태’로 이루어진 스피노자적 신체다.12) 이런 신체로 돌아가는 것은 진화를 거스르는 퇴행이 아니다. 그것은 기관의 영토화를 지움으로써 존재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다. 기관 없는 신체는 의미작용을 포기한다. 분열자들의 말은 그 신체 속에 들어가 파열되어, 무의미한 음성이 되어 나온다. 이 역시 말 못하는 아기들의 수준으로의 퇴행이 아니다. 여기서 ‘무의미’란 글자그대로 ‘의미 없음’이 아니라, ‘모든 의미’, 즉 다다이스트들의 무의미 시(=물체적 무의미)나 루이스 캐럴의 넌센스 놀이(=비물체적 무의미)처럼 즉 새로운 의미가 무한히 생성되는 잠재성의 영역이다. 나아가 기관 없는 신체는 새로운 주체를 준비한다. 여러 개의 인격을 바꾸어 갖는 분열자처럼, 이 신체를 바탕으로 하나의 정체성에 함몰되지 않고 끝없이 제 존재를 다양화하는 유목적 주체가 형성된다.
“너희 자신의 기관 없는 몸체를 찾아라. 그것을 만드는 법을 알아라. 이것이야말로 삶과 죽음의 문제, 젊음과 늙음, 슬픔과 기쁨의 문제이다.”13)
신에스테지아
부화되다가 만 달걀. 그 안에 들어 있는 정형도 무정형도 아닌 유체. 들뢰즈의 형상은 이것을 닮았다. 들뢰즈는 '기관이 없는 신체'를 막 부화하고 있는 달걀의 내부 상태에 비유한다. 알의 내부에선 미쳐 다 형성되지 못한 기관들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서로 자리를 바꾸기도 한다. 이렇게 분화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기관들의 겹침과 횡단이 존재한다. “어떤 기관도 기능과 위치와 관련해서 항상적이지 않다. 성기는 어디에서나 출현하며 항문은 여기저기서 입을 벌리고 오물을 뱉어내고 다시 닫힌다. 10분의 1초마다 조정되면서 유기체 전체가 색과 고름을 바꾼다. 탄트라적인 알.”14) 감각의 주체로서의 신체는 바로 이 부화중인 달걀과 같다. 우리의 몸은 이미 기관을 갖추고 있으나, 감각을 하는 순간 우리의 몸은 아직 기관으로 분화되지 않은 상태다. 베이컨이 형상에서 '얼굴'을 지울 때 그는 이미 각 기관으로 분화를 마친 유기체에서 그 분화의 흔적을 지우고, 그것을 원초적인 감각의 주체로 되돌리고 있는 것이다.
"회화는 선과 색을 재현으로부터 해방시키면서 동시에 그 눈을 그 유기체적 종속에서 해방시키고, 고정되고 규정된 기관의 성격으로부터 해방 시킨다(…) 회화는 우리의 눈을 어디에나 놓는다. 귓속에, 뱃속에, 허파 속에 아무 데나 놓는다(회화는 숨 쉰다)."15)
회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가시화한다. 이 힘을 들뢰즈는 “리듬”이라 부른다. 리듬은 “시각이나 청각 등보다 더 깊은 것”이다. 이 리듬은 “청각적 층리에 투여하면 음악처럼, 시각적 층위에 투여하면 회화처럼” 나타난다. 말하자면 여러 기관으로 분화되기 전에 어떤 미분화된 원초적 감각(=리듬)이 있는데, 이것이 청각, 시각 등 다양한 개별 감각들이 나타나는 바탕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합리적이거나 두뇌적인 것이 아닌, 세잔느가 말한 '감각의 논리'”다. 아직 개별 감각들로 분화되지 않은 리듬 속에서는 "하나의 색, 맛, 촉각, 냄새, 소리, 무게 사이에 신경 흥분적인 존재론적인 소통"이 이루어진다. 베이컨의 그림은 이 "감각의 원초적 통일성을 보게 해주고 복수감각을 가진 형상을 시각적으로 나타나게" 해준다. 그 때문에 투우를 그린 그림 속에서 사람들은 동물의 발굽소리를 듣고, 1976년의 삼면화에서는 머리로 꽂히는 새의 떨림을 감촉하며, 또 고기가 재현될 때에는(...) 고기를 만지고 그 냄새를 맡으며 그 무게를 다는 것이다.16)
하나의 자극을 동시에 둘 이상의 감각으로 느끼는 현상. 의학적으로 이는 ‘착란’으로 간주되나, 예술에서는 이 ‘착란’이 외려 창조성의 근원이 된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들이 이 공감각(synaesthesia)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 가령 알파벳에서 색깔을 보는 랭보(J. Rimbaud), 회화에서 음악을 듣는 칸딘스키(V. Kandinskii), 음악에서 색채를 느끼는 스크랴빈(A. N. Skryabin). 원래 감각을 영토화 하는 관습, 즉 감각을 오감으로 엄격히 구별하여 위계를 지우는 전통은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비롯된다. 그는 감각들이 서로 섞이는 것을 매우 위험시했다고 한다. 이 위험을 무릅쓰고 들뢰즈가 ‘기관 없는 신체’가 감지하는 ‘리듬’ 속에서 여러 감각의 교차와 횡단을 볼 때, 그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수천 년 동안 지속되어온 이 전통적인 감각론을, 이 감각의 영토화를 전복하고 있는 것이다.
히스테리
베이컨의 그림 속에는 종종 근육위축, 마비, 과민반응, 감각상실 등 전형적인 히스테리 증상을 보여주는 형상들이 등장한다. 그 유명한 <교황> 연작 역시 입을 벌리고 비명을 지르고 있다. 문명의 과잉이 자연적 신체에 발작을 불러일으키듯이, 감각이 기관의 분화를 마친 유기체를 통과하여 우리 신체와 접할 때 히스테리가 발생한다. “신체는 전적으로 살아 있지만 유기적이지 않다. 따라서 감각이 유기체를 통해 신체를 접하면, 감각은 과도하고 발작적인 모습을 띤다.” 한 마디로 히스테리로서의 감각을 만들어내는 것은 현재의 집요함, 즉 "유기체 이후까지 남아 있는 신체의 악착성, 성격이 규정된 기관들의 후에까지 남아 있는 전이적 기관들의 악착성"인 셈이다.
들뢰즈에게 감각이란 삼투압을 하는 식물세포처럼 신경계와 외부의 자극 사이에 벌어지는 운동, 이 양자의 충돌로 발생하는 진동이다. 분화된 기관을 통해 받아들여지는 감각은 감각주체와 감각대상의 분리를 낳으면서 지각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기관 없는 신체 위에 발생하는 감각은 다르다. 그것은 재현적 인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존재론적 사실이다. "유기체가 아니라 신체에 의거할 때, 감각은 재현적인 것이 아니라 사실적인 것이 된다." 이때 “도처에서 현재함이 신경 시스템 위에 직접 작용하고, 재현이 자리를 잡거나 재현을 하도록 할 만한 거리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히스테리로서의 감각은 이렇게 내재성과 초월성(=주체와 대상)의 구별을 지우고, 거울에 비친 영상(=재현적 인식모델)을 파괴한다. 그리하여 히스테리 속에서 나는 ‘자기 모습을 보는 착란’을 일으킨다. 가령 “나는 나를 거울 속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는 신체 속에서 나를 느끼고, 옷을 입고 있는데도 이 벗은 신체 속에서 나를 본다.” 베이컨의 작품 속에서 신체는 자기 몸을 이루는 유기체를 빠져나가고, 옷을 입은 형상이 거울이나 화폭 속에서 벌거벗은 자신을 본다. 이런 상태에서는 합리적 사유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회화는 이 두뇌의 회의주의를 신경의 낙관주의로 전환한다.”
회화는 히스테리다. 그것은 우리 앞에 신체의 현실을 세우고, 재현으로부터 해방된 선과 색을 세운다. 신체의 순수한 현전이 일어날 때 눈은 이러한 현전에 걸 맞는 기관이 된다. 눈은 더 이상 하나의 기능으로 특화된 유기적 기관이기를 그만두고 다기능적이며 전환적인 기관이 된다. 회화는 바로 이런 눈의 변화, 몸의 변화를 일으킨다. 회화는 감각을 그리는 것이기에 "회화와 함께 히스테리는 예술이 된다." 회화는 곧 히스테리다. 이는 물론 히스테리 환자가 그린 그림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회화가 곧 히스테리라 할 때, 그 히스테리는 "화가의 히스테리가 아니라 회화의 히스테리"를 가리킨다.
힘
재현으로부터 해방된 선과 색. 이것이 현대 회화의 특징이다. 파울 클레는 현대 회화의 본질은 가시적인 것의 재현이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하는 데에 있다고 했다. 들뢰즈에게 회화가 가시화해야 할 그 ‘비가시적인 것’은 ‘힘’이다. 회화의 임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이 ‘힘’을 보여주는 데에 있다. 비가시적인 힘의 가시화. 이 모순적 과제를 예술적으로 해결한 예 중의 하나는 고딕 성당이다. 그 안에서는 십자형 아치의 천장에서 네 기둥을 타고 바닥으로 내려오는 ‘립-볼트’(rib-vault)의 율동을 통해 건물의 추력(推力)이 그대로 드러난다. 회화가 가시화해야 하는 이 힘을 들뢰즈는 ‘리듬’이라 부른다. 말레비치는 회화란 ‘장식’이 아니라 “리듬 감각의 묘사”라고 한 바 있다. 들뢰즈 역시 회화에서 “궁극적인 것은 리듬과 감각 사이의 관계”라고 말한다.
베이컨의 회화는 크게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다. 첫째는 그림의 빈곳을 채우는 물질적인 구조, 즉 그가 아플라(aplat)부르는 단색의 배경, 둘째는 그가 형상을 고립시키는 데에 사용하는 트랙이나 동그라미 혹은 유리 상자, 그리고 셋째는 그 안에 세워지는 이미지, 즉 기괴한 형상이다. 이 각각의 요소들은 자기 고유의 힘을 갖고 있기에, 들뢰즈는 베이컨의 회화를 이 힘들이 만들어내는 벡터의 장으로 읽는다.
"보이지 않는 첫 번째 힘은 격리의 힘이다. 이 힘은 아플라 속에 들어 있으며 윤곽 주위에서 둥글게 감싸질 때, 그리고 아플라를 형상 주위에 감돌게 할 때 보여 진다. 두 번째 힘은 변형의 힘으로 형상의 신체와 머리에 침범하여 머리가 얼굴을 뒤흔들거나 신체가 그 유기적 조직을 뒤흔들 때마다 보인다. 세 번째는 형상이 지워져 아플라에 합쳐질 때 나타나는 흩뜨리는 힘이다."17)
베이컨의 회화는 세 시기를 거치며 변화해 갔다. 첫 번째는 정밀한 형상과 생생하고 판판한 아플라를 대비시킨 시기, 두 번째는 회화적 형태를 커튼을 가진 구조적인 배경 위에서 처리하는 시기, 세 번째는 생생하고 판판한 배경으로 되돌아오나 부분적으로 줄을 긋거나 솔질을 해 흐릿한 효과를 만들어내는 시기다. 여기에 들뢰즈는 형상 자체가 흩뿌려진 물이나 수증기처럼 사라지는 네 번째 시기를 덧붙인다. 이 단계에서 형상은 절규하는 입을 통해 빠져 나와 단색의 배경 속으로 해체되어 없어지고 만다.
이 네 시기의 운동을 통시적으로 관찰하면, 거기서 힘의 움직임이 드러난다. 먼저 구조에서 형상으로(아플라가 윤곽을 감싼다), 형상에서 구조로(형상은 수축되거나 팽창된다). 이 운동의 결과, 형상은 마침내 윤곽을 빠져 나와 아플라와 결합하면서 구조 속으로 사라진다. 그림 속의 이 모든 움직임들의 공존, 그것이 바로 리듬이다. 이 리듬을 그리는 가운데 회화는 동시에 시간을 묘사하게 된다. 회화는 감각을 그린다. 회화가 그리는 감각의 상관자(Korrelat)는 리듬이다. 베이컨의 회화는 이 보이지 않는 힘을 가시화하는 가운데 시간성을 내포하게 된다. 회화는 전통적으로 공간예술에 속했으나, 베이컨의 그림은 이처럼 리듬을 묘사함으로써 시간예술에 근접한다. 시각은 다시 청각과도 서로 간섭한다.
만지는 눈
형상과 그 주위를 둘러싼 아플라. 형상은 인물, 아플라는 공간적 배경. 따라서 일상적인 회화에서라면 화폭 위에서 형상과 아플라가 동일한 면에서 서로 접해도 양자는 공간적으로 떨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위에서 본 것처럼 베이컨의 그림에서 형상과 아플라는 서로 접한 채 하나는 압박하고 풀어주고, 다른 하나는 팽창하고 수축한다. 베이컨의 작품은 이렇게 공간의 환영이 아니라 평면 위에서 서로 접촉하는 색면들, 그것들 간의 팽팽한 긴장관계로 보아야 한다. 리글의 표현을 빌면 베이컨의 회화 속의 공간은 “광학적”이라기보다는 “촉지적”이라 할 수 있다. 들뢰즈가 “많은 것이 베이컨을 이집트인으로 만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집트 저부조의 평평한 면은 눈으로 하여금 촉각적으로 움직이도록 한다.
모든 화가는 제 나름의 방식으로 회화의 역사를 요약한다. 들뢰즈는 미술사를 ‘촉지적-광학적’이라는 개념 쌍으로 요약한다. 가령 얇은 선으로 새겨진 이집트의 저부조를 볼 때 우리의 시선은 마치 손으로 만지듯이 윤곽을 더듬어 나간다. 이렇게 이집트의 예술은 ‘촉지적’이었다. 하지만 원근법을 발명한 그리스인들은 3차원의 광학적 공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고전적인 그리스의 공간은 ‘촉지적-광학적’ 공간이다. 그 이후의 예술사는 이 고전적 공간의 이중성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흐른다. 동구의 비잔틴 예술은 그리스 예술의 촉지적 측면과 작별하고 그 화려한 빛의 효과로 순수 광학적인 예술을 발전시키고, 반면 서구의 고딕 예술은 힘을 드러내는 선들로 이루어진 순수 촉지적인 예술을 추구한다.
비잔틴과 고딕이 뒤를 이은 르네상스 예술에서 고전적 그리스의 공간, 즉 ‘광학적-촉지적 공간’은 부활한다. 원래 ‘선적/회화적’ 혹은 ‘촉각적/시각적’이라는 개념 쌍은 뵐플린이 르네상스와 바로크 예술을 비교하는 가운데에 사용한 것이다. 르네상스의 회화는 공간의 시각적 재현이면서도 윤곽선이 뚜렷해 마치 조각 작품을 더듬는 듯 한 촉각적 느낌을 준다. 여기서 “눈은 그의 만지는 기능을 포기하고 광학적으로 되면서 촉각적인 것을 제2차적인 힘으로 종속”시키게 된다. 17세기의 바로크 회화에 이르면 선은 포기되고 빛과 색채의 효과가 더 중시되기에 이른다. 여기서 회화는 ‘윤곽’의 촉각적 효과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빛과 색채의 효과를 추구하게 된다. 이때 회화는 그나마 남아 있던 촉지적 특성을 결정적으로 잃고 순수 광학적 현상이 된다.
베이컨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가 회화의 세 요소로 간주한 골격(=아플라), 형태(=형상), 윤곽(=트랙)은 마치 ‘공간을 배경으로 받침대 위에 놓인 조각’을 연상시킨다. 실제로 그는 조각에서 기대하는 것을 회화에서 실현하려 했고, 이집트의 저부조처럼 회화와 조각의 중간적인 것을 만들려고 했다. 물론 베이컨은 윤곽이 아니라 색채로 작업을 한다. 가끔 그는 마치 바로크 예술처럼 회화적인(malerisch) 느낌을 주는 작품들을 만들기도 한다. 색채는 본디 광학적 요소이나, 그의 작품에서 “혼합색조는 형상에게 신체를 주고, 생생한 혹은 순수한 색조는 아플라에게 골격을 준다.” 이 뛰어난 색채주의자는 이렇게 색채의 ‘변조’를 통해 눈의 만지는 기능을 회복하고, 그로써 색채로 촉지적 효과를 내는 새로운 이집트인이 된다.
“색채주의는 추상화를 피하면서도 구상화와 스토리를 한꺼번에 추방한다. 그리하여 끝없이 순수상태의 회화적 사실에 접근하고, 그 사실 속에서는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 사실이란, 시각의 만지는 기능을 형성하거나 혹은 재형성하는 것이다. 우리는 색에 의해서 그리고 색으로만 새로운 이집트, 지속적이 된 우발적인 것의 이집트가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18)
손과 눈의 전이적 교차는 작품 속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이미 그림을 그리는 행위 속에서도 나타난다. 베이컨은 종종 형상을 솔, 비, 스펀지, 헝겊 등으로 문질러생기는 자유로운 표지들을 사용한다. 이것은 "비합리적이고, 비의지적이며, 사고적이고, 자유롭고, 우연에 의한 것", 한 마디로 회화 속에 도입된 알레아토릭(Aleatorik)의 요소다. ‘알레아토릭’은 창작과정이나 공정의 일부를 우연에 맡기는 제작방식인데, 존 케이지와 마르셀 뒤샹 같은 현대 예술가들은 의식적으로 이 방식을 창작에 도입했다. 전통적인 회화는 데생에서 시작한다. 때문에 창작의 결과가 그림을 시작하는 순간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베이컨은 데생 없이 바로 그림을 시작한다. 그리고 손으로 물감을 뿌리거나 문질러 우연의 효과를 도입한다. 이로 인해 그의 작품에는 시작과 결말을 잇는 결정론적인 절차가 사라진다.
구상에서 벗어나려는 베이컨 앞에는 두 개의 길이 놓여 있었다. 하나는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처럼 손을 눈으로 대체하는 길, 다시 말해 우발적 흔적을 정신화한 시각적 코드로 대체하는 추상회화의 길이다. 여기서 우연적인 손의 흔적은 모두 배제된다. 다른 하나는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처럼 눈을 손으로 대체하는 길, 즉 모든 것을 드리핑의 우연에 맡겨버리는 길이다. 여기서 베이컨은 그 어느 쪽도 택하지 않고 제3의 길을 개척한다. 즉 화폭에 우연을 도입하되, 거기에 모든 것을 맡기지는 않는 것이다. 그는 먼저 손으로 화폭에 우연적인 사건을 발생시키고, 거기서 어떤 내적 필연성을 발견하여 눈으로 그것을 따라간다. 이렇게 그는 ‘눈’의 길도, ‘손’의 길도 아닌, “만지는 눈, 눈의 만지는 시각”이라는 ‘제3의 눈’에 따른다.
사진
베이컨이 사진에 집착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그의 작업실은 온통 잡지에서 오려낸 사진 쪼가리들로 덮여 있었다. 머이브리지의 연속촬영 사진, 구강질환 환자의 입을 찍은 사진첩, 잡지에서 오려낸 동물들의 사진, 히틀러와 괴벨스의 사진.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형상들의 상당수는 사진에서 비롯된다. 그 유명한 <이노켄티우스 10세 연작> 역시 바티칸에 있는 벨라스케즈의 원작이 아니라 사진을 보고 그린 것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자신을 사로잡은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에 체류하던 시절 그는 원작을 보러 애써 바티칸에 들르지 않았다. <교황> 연작에서 비명을 지르는 교황의 입도 에이젠슈쩨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의 오뎃사 계단 장면에 나오는 여인의 스틸 사진을 보고 그린 것이다. 사진의 위험성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가 왜 이렇게 사진에 묻혀 살았을까?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이것이 그가 재현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었다.
근대 이전에 재현에서 자유로운 예술이 있었다. 중세에 기독교의 신은 제 모습은 물론이고 눈에 보이는 어떤 것도 그리거나 만드는 것을 금지했다. 이것이 종교예술 속에서 정작 신을 볼 수 없는 “회화적 무신론”의 역설을 낳고, 덕분에 당시의 회화는 재현의 의무를 벗고 색과 형의 자유로운 유희가 될 수 있었다. 재현을 포기한 현대예술도 같은 처지에 놓였을까? 그렇지가 않다. 종교적 감성을 포기한 오늘날의 화가들은 형상금지의 계율을 알지 못한다. 게다가 그들은 온통 사진의 이미지에 포위당한 상태라, 외려 중세인들 보다 구상과 단절하기가 더 힘들다. “화가가 순백의 처녀지 위에 작업한다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표면은 화가가 단절해야 할 온갖 종류의 이미 고정적인 것들에 의해 미리 완전히 잠재적으로 덮여 있다.”
작업을 하기 전에 화가들의 눈은 이미 신문, 영화, 텔레비전 영상에 간섭을 받는다. 사진의 이미지는 이렇게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회화의 선험적 조건처럼 텅 빈 화폭을 점령하고 있다. 여기에 저항하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그래서 베이컨은 사진에서 벗어나기를 “비겁하게 포기”하고, 일단 그 상투적 이미지들에 완전히 몸을 맡겨버린 후 거기서 빠져 나오는 길을 모색한다. 하지만 이것이 사진을 창작과정에 도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베이컨에게 화가의 작업은 사진을 그림에 도입하는 순간이 아니라 거기서 벗어나는 순간에 비로소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는 사진의 미학적 가치를 단호히 부정한다. 이 점에서 그는 사진을 작품의 일부로 끌어들여 변형시키는 다른 화가들과 구별된다.
사진은 사실의 기록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베이컨은 이를 부인한다. 그가 사진을 즐겨 사용한다면, 그것은 사진으로써 사진의 사실성, 진실성, 기록적 성격을 부정하기 위해서다. 그는 사진을 혐오한다. 그가 사진에서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사진이 무엇인가가 된다는 사실”, “시각에 스스로를 강요한다는 사실”, “그럼으로써 눈 전체를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진은 그 그럴듯한 이미지로 우리의 시각을 사로잡고, 그 판에 박힌 이미지로 세계의 모습을 상투화하여, 그것을 ‘사실’인 양 우리에게 강요한다. 베이컨이 사진으로 사진을 파괴하는 것은 사진이 보여줄 수 없는 또 다른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카메라로 찍은 판에 박힌 ‘사진적 사실’이 있다면, 카메라로 찍을 수 없는, 그리하여 오직 회화만이 보여주는 “회화적 사실”이 있다. 회화의 임무는 바로 이 “회화적 사실”을 형성하는 데에 있다.
“사실 그 자체, 손으로부터 온 회화적 사실은 만지는 눈, 눈의 만지는 시각, 이 새로운 명증성인 제3의 눈의 구성이다. 그것은 마치 촉지적인 것과 광학적인 것의 이원성이 디아그람으로부터 온, 눈으로 만지는 기능을 향해 극복되는 것과 같다.”19)
사진적인 사실과 회화적 사실. 정신의 눈을 통해 의식에 주어진 리얼리티와 감각을 통해 몸에 주어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리얼리티. 이 둘의 차이를 표상하려면 보통의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열(熱)감지 카메라로 찍은 사진의 차이를 생각하라. 하나는 데카르트가 말한 연장의 세계, 즉 공간적으로 조화롭게 배열된 실루엣의 세계, 다른 하나는 니체가 말하는,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역동적인 에네르기의 세계다. 전자가 영원의 상(相) 하에서 바라본 존재의 세계라면, 후자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영원히 반복하는 순간적인 생성의 세계다.
디아그람
구상과 추상을 동시에 벗어나려는 모순적 효과를 얻어내기 위해 베이컨은 ‘디아그람’20)이라는 전략을 도입한다. 그는 화폭에 우연적인 표시들을 하고, 어떤 부분은 쓸거나 문지르고, 그 위에 여러 각도에서 물감을 뿌리기도 한다. 한 마디로 “디아그람이란 비의미적이고 비재현적인 선들, 지역들, 흔적들 그리고 얼룩들 전체이다.” 인물의 머리를 헝겊으로 문지르면 갑자기 사하라 사막이 생기고, 솔이나 비로 문지르면 거기에 코뿔소의 피부가 펼쳐진다. 이렇게 디아그람은 화폭에 혼돈과 재난을 도입한다. 이 혼돈과 재난 속에 빈 화폭을 미리 점령한 기존의 판에 박힌 이미지들은 무장해제 되고, 새 이미지들이 생성될 장이 열린다. 이렇게 디아그람은 “혼돈이며 파국이나 동시에 새로운 질서 혹은 리듬의 싹이기도 하다.” 디아그람의 파국은 숭고의 미학이다. 그것은 지상의 모든 것을 쓸어가는 대홍수처럼 기존의 이미지를 모두 무효화하고 생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사건을 도래하게 한다.
베이컨의 초상화들은 이 전략의 효과를 가장 잘 보여준다. ‘초상’은 장르의 성격상 ‘닮음’을 전제한다. 하지만 닮음을 추구하는 한 회화는 구상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때 디아그람(=돌발흔적)이 개입한다. 우연적 흔적들은 재현도, 이야기도, 의미작용도 하지도 않는다. 그것들은 구상을 지우고, 화폭을 혼란에 빠뜨린다. 액션페인팅이나 앵포르멜은 바로 이 단계에서 멈춘다. 하지만 베이컨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에게 “돌발흔적은 사실의 가능성이지 사실 그 자체는 아니다.” 이 가능성에서 하나의 사실을 끌어내려면 돌발흔적에서 빠져 나와 감각을 명확함과 엄밀함으로 가져가야 한다. 손의 길은 이제 눈에 의해 정돈되고, 이때 낡은 구상으로부터 전혀 다른 새로운 구상이 얻어진다. 들뢰즈는 이 전략을 이렇게 요약한다. “닮도록 하여라. 단 우발적이고 닮지 않는 방법을 통하여.” 베이컨의 <자화상>을 보라. 하나도 닮지 않았으면서도 동시에 너무나 닮지 않았는가.
이 ‘디아그람’이 <천개의 고원>에서 들뢰즈가 말하는 “추상기계”와 관련이 있음은 분명하다. 거기서 디아그람은 “어떤 것을 표상(=재현)하는 기능을 하지 않으며, 오히려 도래할 실재, 새로운 유형의 현실(=실재성)을 건설”21)하는 장치로 규정된다. 이 맥락에서 디아그람이라는 추상기계가 건설하는 “새로운 유형의 현실”이란 베이컨이 그것의 형성을 회화의 임무로 규정한 바, “회화적 사실”일 것이다. 디아그람은 ‘사진적인 사실’을 지우고 그 자리에 ‘회화적 사실’을 도래하게 한다. 마치 노아의 대홍수처럼 디아그람은 화폭에 파국을 도입하고, 이 우연의 물결이 빠진 후에 화폭에는 또 하나의 세계가 솟아난다. 이 두 사실, 두 현실의 차이를 보려면 베이컨의 사진과 그의 자화상을 비교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B'----diagramme---->B''
베이컨(B)과 그의 사진(B')과 그의 자화상(B''). 너무나 다른 B'와 B''라는 두 개의 사실 사이에는 ‘디아그람’의 전략이 존재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디아그람을 ‘이미지 변형의 기계’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변형을 들뢰즈는 “변조”라 부른다. 이 변조 기계의 특이성은 그것의 기호적 성격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퍼어스 기호론의 용례를 따르면 B’(사진)는 B(원본)의 도상(icon)이다. 양자는 ‘닮음’의 관계에 있다. 사진만이 아니라 전통적인 초상화도 원본의 도상을 지향한다. 하지만 돌발흔적을 거쳐 도래한 B''(자화상)는 어떠한가? 그것은 파국을 도입하여 애초에 구상을 심하게 변형시켰기 때문에 B의 도상이라 부르기 힘들다.
사물의 도상이기를 포기한 현대회화는 추상으로 나아갔다. 이때 사물들은 관습화한 코드에 따라 변형이 된다. 이때 사물의 복잡한 외형은 원뿔, 원기둥, 사면체 등 간단한 기하학적 형태로 번역이 된다. 가령 복잡한 나무의 모습을 점점 단순화하여 몇 가지 선만 남긴 몬드리안의 습작에서 이 시각적 추상의 최종결과로 얻어진 선들은 원본인 나무를 전혀 닮지 않았다. 그것은 더 이상 나무의 도상이 아니라 ‘나무’라는 말처럼 나무를 전혀 닮지 않았으면서 나무를 가리키는 관습적인 기호, 즉 상징(symbol)이 된다. 하지만 B''는 어떠한가? 그것은 시각적 추상을 통해 관습적 코드로 번역해 얻어낸 이미지가 아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원본을 닮았다. 따라서 그것은 ‘상징’으로 볼 수도 없다.
현대회화의 또 하나의 흐름은 소위 서정추상이다. 액션페인팅에서 중요한 것은 그림 자체가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행위다. 화폭에 떨어진 물감들은 현실을 재현하지 않고 페인팅의 액션, 즉 그 위로 지나간 손의 움직임을 지시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인접성에 기초한 기호, 즉 지표(index)다. 베이컨의 작품에도 손의 흔적은 남아 있다. 돌발흔적 자체가 실은 손의 우연성에 따른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서 쓸거나 문지르거나 뿌린 부분은 그 위로 지나간 손의 움직임을 지시한다. 하지만 베이컨은 행위를 기록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사실을 기록”하려 했다. 그의 작품 속의 돌발흔적은 ‘그리는 행위’를 지시하지 않는다. 그 흔적들은 그의 화폭에 도래하는 또 하나의 사실, 즉 “회화적 사실” 속에 들어가 그것을 기록하는 요소로 참여한다. 그런 의미에서 돌발흔적은 ‘지표’라 볼 수도 없다.
디아그람은 이렇게 도상/상징/지표라는 전통적 분류의 어느 항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모든 것에 속한다. 바로 이 기호적 특이성에서 그가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얼마나 독창적인 회화의 길을 걸었는지 알 수 있다. 그것이 또한 베이컨이 회화사에서 차지하는 독보적인 위치를 말해 준다. <천 개의 고원>에서 들뢰즈는 디아그람의 장치를 “창조적인 도주선을 그려내고 긍정적인 탈영토화의 특질들을 결합”시키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동시에 베이컨이 걸어온 회화적 여정의 기술이기도 하다. 왜? 그 역시 구상과 추상으로부터 창조적인 도주선을 그려내고 도상(=재현)과 지표(=액션페인팅)와 상징(=추상)으로부터 긍정적인 탈영토화의 특질들을 취함으로써 특유의 예술언어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그의 작품은 “유목적 횡단성의 기념비”라 할 수 있다.
유물론적 미학
들뢰즈에게 회화는 한갓 '형태의 변형'이 아니라 “만지는 눈, 눈의 만지는 시각”을 획득하기 위한 활동이다. ‘눈으로 만진다’는 관념은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의 그리스인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들에게 시지각은, 눈에서 뻗어나간 시선이 대상의 둘레를 더듬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술이 광학적 공간의 정복에 몰두하면서 시각에 내재된 촉지적 기능은 점차 망각된다. 20세기에 회화가 재현을 포기한 후 다시 촉지적 기능이 강조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시각'에서 ‘촉각’으로 지각모델이 변화한 것을 ‘모던’의 징후로 꼽았다. 그에게 인간의 지각이란 불변하는 자연의 사실이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으로 변화하는 것이었다. 들뢰즈 역시 지각의 역사성을 지적하며 “시각의 만지는 기능”을 회복하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감각의 논리>는 “사적-유물론적인 지각의 역사”22)를 구성하려는 벤야민의 뒤를 잇는 또 다른 기획이라 할 수 있다.
들뢰즈에게 회화는 그저 미적 관조의 대상이 아니다. 회화는 감각의 폭력을 통해 “신체의 변형”을 이룬다. 그것은 우리의 몸을 ‘기관 없는 신체’로 변형시킨다.23) 기관의 분화를 지우고, 의미작용을 무효화하고, 주체를 해체함으로써 얻어지는 이 스피노자적 신체는 미리 ‘존재’하는 상투성의 틀을 전복하고 끝없이 새로운 것을 ‘생성’해 내는 새로운 유목적 주체다. 그가 추구하는 미시정치는 바로 이 몸의 획득을 둘러싸고 펼쳐진다. 그에게 미학은 더 이상 '예술의 예술'을 다루는 Aesthetik(=미학)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체를 변화시키는 삶의 예술로서의 Aisthetik(=감각론)이다. 벤야민이 대중의 신체에 직접 작용하는 영화예술에서 혁명적 가능성을 보았다면, 들뢰즈는 대중의 신체를 변화시키는 회화에서 그보다 더 깊은 혁명적 의미를 본다.
재현을 포기한 현대회화는 형과 색의 미적 유희가 되었다. 하지만 현실을 재현할 의무에서 해방된 현대 회화 앞에는 또 다른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바로 사소해질(trivial) 위험이다. 하지만 베이컨이 보여준 것처럼 현실의 재현을 포기한다고 굳이 리얼리티 자체를 희생할 필요는 없다. 베이컨에게 회화의 임무는 형식의 유희가 아니라 사실의 기록에 있다. 회화는 이미 주어진 상투적인 리얼리티를 재현하는 게 아니라 아직 도래하지 않은 새로운 리얼리티를 창조한다. 미셸 레리스가 지적한 대로 베이컨은 리얼리티를 새로이 정의함으로써 새로운 리얼리즘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근대의 리얼리즘 미학은 의식철학의 에피스테메 위에서 의식과 대상의 이분법을 설정하고, 예술과 세계 사이에 반영관계를 상정했다. 들뢰즈의 <감각의 논리>는 이 근대 리얼리즘의 한계를 넘어서면서도 추상회화의 사소한 형식주의에 빠지지 않는, 새로운 리얼리즘 미학을 제시하고 있다.
들뢰즈의 미학에는 스토아학파의 ‘사건’, 스피노자의 ‘역능’과 욕망의 ‘내재성’, 니체의 ‘권력의지’, 프로이트의 ‘리비도’, 퍼어스의 3분법적 기호학 등 여러 가지 사상적 단초들이 접합을 하여 복잡한 리좀의 구조를 이루고 있다. 미학적으로는 아방가르드의 예술 강령 외에도, 니체의 ‘창조자 미학’, 메를로 뽕띠에서 미켈 뒤프렌느로 이어지는 ‘현상학적 예술론’, 하이데거가 <예술작품의 근원>에서 개진한 개시(Ertschließung)와 일어남(Ereignis)이라는 존재론적 진리관, 그리고 벤야민의 미메시스 개념과 촉각적 지각론 등의 영향이 눈에 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요소는 아마도 예술과 실천을 연결시키는 혁명적 파토스이리라. <감각의 논리>은 이미 수명이 다한 마르크스주의 미학을 대체할 새로운 유물론적 미학의 정식화로 볼 수 있다.
'들뢰즈(G. Deleuze, 1925-1995) > 들뢰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들뢰즈 - 언어의 정치성 (0) | 2011.03.27 |
---|---|
들뢰즈의 내재성 (0) | 2011.03.27 |
들뢰즈 가타리 용어 설명 (0) | 2011.03.27 |
차이나는 것만이 반복돼 돌아온다 (0) | 2011.03.27 |
들뢰즈와 가타리의 기계개념 (0) | 2011.03.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