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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Ockham(1285-1349)/오컴

정치인의 변명과 오컴의 면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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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변명과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

 

 

오컴(William of Ockham)은 면도기 회사가 아니라 14세기 중세 철학자의 이름이다(정확히는 지명인데, 옛 사람들의 성(姓)은 땅 이름에서 나온 게 많다). 그래도 면도날이라면 뭔가를 베거나 자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칼날이 아니라 면도날이니까 아주 예리하게 베어내야 한다.

 

“Entia non multiplicanda sunt praeter necessitatem."

 

읽기도 어려운 이 라틴어 문구는 윌리엄 오컴이 면도날을 정의하는 대목이다. “필요이상으로 많은 실체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뭔가 심오한 의미 같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근본 원리는 필수불가결한 것에 국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설명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전제나 가정을 끌어들여서는 안 되며, 꼭 필요한 것만으로 제한해야 한다.

 

 오컴은 이 상식적인 원리를 왜 들이댔을까? 중세 철학의 최대 쟁점은 실재론과 유명론의 대립이었다. 실재론은 사물의 보편적 실체(보편자)가 별도로 존재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를테면 사과, 배, 밤 같은 개별 과일들 이외에 보편적인 과일이 실재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유명론은 그런 보편자 따위는 이름만 존재할 뿐 실체는 없다고 보는 입장을 취했다. 이 대립에서 오컴은 유명론의 기수였다.  오컴의 면도날은 바로 유명무실한 보편자를 베어내기 위한 개념이다. 하지만 교회는 실재론을 지지했다. 유명론의 입장에서 서면 신이나 영혼 같은 개념들도 그저 인간이 붙인 이름에 불과해 보이기 때문이다. 오컴은 교회의 미움을 산 탓에 교황과 대립하고 있던 독일 영주의 성에 숨어 살았다.

 

 오늘날에도 오컴의 면도날은 “가설은 가장 단순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 혹은 “가장 단순한 것이 되도록 가설을 구성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적용된다. 말하자면 전제나 가정을 필수적인 것에만 국한하고 최대한 아껴 쓰자는 ”경제의 원리“요 ”절약의 원리“다. ”간단한 것이 좋은 것이다“란 뜻이다. 진리는 단순하다고 믿었고 실제로 E=mc2 이라는 간결한 공식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아인슈타인의 신념과 같다.

 

 간결하다는 것이 깔끔하고 명쾌하기는 하지만 반드시 진리에 가까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더욱이 설명하려는 대상이 복잡할 경우에는 이론도 복잡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간결한 이론이라는 기준은 미학적인 가치는 있을지언정 진리를 위한 기준은 아닐 수도 있다. 면도날이 너무 날카로우면 오히려 얼굴을 베기 쉽다.

                                     

 개념어사전/ 남경태 /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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