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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Ockham(1285-1349)/오컴

오컴의 면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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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중심의 중세적 세계관을 붕괴시켜 근대적 서양을 가능케했던 요소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오컴의 면도날’이다. 논리적이지 않은 군더더기는 무의미한 것이므로 ‘사유의 면도날’로 다 잘라내야 한다는 것이며, 논리적 연역에 필요한 가정이나 전제는 적을수록 좋다는 것이었다. 오컴의 이런 철학은 당시 도시 상공인 계층인 부르주아 시민계급의 성장을 배경삼아, 중세 스콜라 철학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근대적 세계관의 지평을 연 지적 혁명의 기폭제라는 평가를 받는다.

 

런던 근교 오컴에서 태어난 그는 수도사가 됐으나 전통적 교황의 권위를 공격하고 당대 주류 신학을 위태롭게하는 과감한 주장을 펴 ‘이단’으로 고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중세 철학자 중 가장 위대한 논리학자라는 평을 받는 오컴의 ‘면도날 사유’는 훗날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의 지동설에 영향을 끼치고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데카르트의 근대 철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불필요한 생각을 없앤 것이 세상을 바꾼 것이다.

 

단순함과 간결함을 추구하는 흐름인 미니멀리즘은 ‘최소한’이라는 minimal에 ‘ism’을 덧붙인 합성어로 196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시각 예술 분야에서 출현해 음악, 건축, 패션, 철학 등 여러 사회영역으로 확대돼 생활에 파고들고 있다. 이 흐름은 기교나 각색을 최소화하고 사물의 근본, 즉 본질만을 남기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제거한다. 현실과의 괴리가 최소화돼야 진정한 리얼리티가 달성된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최근 이 미니멀리즘은 최첨단 산업 기술과 접목돼 ‘와이퍼 없는 자동차’의 등장과 같은 산업 경쟁력까지 갖추고 있다. 오컴의 면도날과 미니멀리즘은 똑같이 불필요한 것은 없앤다는 면에서 요즘 화두인 경쟁력 강화와 일맥상통하는 구석이 있다.

  

최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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