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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墨子, 기470-기391)

묵자의 생애와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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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자(墨子)는 여타의 중국 철학자들과 달리 미천한 가문의 출신이다. 본명은 묵적이고 묵학이라는 학파를 창시해 공리주의의 원칙을 수립했다. 그것을 토대로 봉건주의의 번잡한 예를 배격하고 겸애를 가르쳤다. 묵자에 대한 유력한 설은 묵이 성이 아니고 노예에 대한 일종의 처벌 형태인 문신이라는 것이다. 고대의 노예들은 전쟁포로들로 특정 지역에 살면서 특수 공예 분야를 연마하는 훈련을 받았다. 묵자도 이에 속하는 신분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노나라 사람이고 송나라에서 말단 관리를 맡은 적이 있고 여러 나라를 돌다가 주나라에서 생애를 마친 것으로 보고 있다. 유년시절에는 공자 학파의 문하생이었으나 공자 학설에 실망하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2세기의 저서 <후아이난추>에는 묵자가 봉건적인 예의 번잡함에 고통스러워했다고 나온다. 가령 장기간 치르는 장례식은 너무나도 사치스러워 백성들에게 해를 끼친다고 생각했다. 

 

묵자는 시아왕국의 창시자 우왕을 존경했다. 홍수와 범람을 성공적으로 대처한 업적을 가지고 있다. 우왕은 자기 희생과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은 인물로 꼽힌다. 홍수 생각만 하느라 음식과 의복에 별 관심을 갖지 않았고 자기의 어린 아들이 우는 소리를 듣고서도 세 번이나 자기 집을 지나쳤다고 한다. 또한 그렇게 생활하느라 비가 올 때에야 비로소 목욕을 했고 바람으로 머리를 빗었다고 한다. 이런 우왕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했던 묵자는 자기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고통도 감수할 용의를 갖고 살았다. 그러기 위해 행동에 있어서는 엄격한 규율과 금욕을, 사상적으로는 세상 사람은 누구나 다른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차별없이 사랑해야 한다는 겸애와 전쟁에서의 불침략을 주장했다. 불침략을 막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쪽의 반대에 서서 효과적인 방어를 하기 위해 노력했다. 전문적인 방위군을 만들고 장비를 설계했다. 묵자의 집단은 공예인 계급으로 실제적인 군사 지식을 갖고 있었다. 

 

묵자는 하늘이 초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신에게 하나의 사명을 하사했다고 믿고 살았다. 그래서 집다능ㄴ 종교적 색채를 띠기도 했다. 묵자학숙을 세우고 숙장으로 지내며 문하생들을 교육했다. 묵자의 제자들은 동거동락하며 불속에 들어가거나 칼날 위에 서라는 명령을 수행할 정도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묵자의 사상은 기원전 1세기까지 내려오며 3개의 파로 나뉘었고 서로가 정통이라 주장하며 싸우고 헐뜯다 쇠퇴하였다. 제자들이 남긴 저서 <묵자>는 중국철학에서는 다루지 않는 논리학을 다루고 있기도 하고 기술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 일반인들에겐 난해한 부분도 있다. 

 

 

눈에비친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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