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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chopenhauer(1788-1860)/쇼펜하우어

의지를 극복해야 한다 -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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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현재 폴란드에 속한 그단스크(단치히)에서 태어나 함부르크에서 살았다. "세상사의 비참함을 숙고하는" 성향을 계발하기 위해 유럽을 여행 한 뒤 사업가인 아버지의 뜻을 이어 사업을 했으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는 바로 접었다. 이후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공부하고 괴팅겐 의대에 등록한 뒤 철학으로 옮겼다. 자신의 철학을 "세계의 불가사의에 대한 진정한 해명"이라고 주장했고 <충족이유율에 대한 4가지 근거>,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등의 저서를 남겼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것에는 이유 또는 설명이 존재하고 그것을 4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우선 우리는 인식율에 따라 추리에 의한 물리적 변화의 지식을 가진다. 1번째 근거로 우리는 행위를 결정한다. 동기는 우리 행위의 내적 측면인 의지를 결정한다.  다음 추론의 규칙 또는 논리의 규칙에 따라 개념들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시공간의 법칙으로 수학적 진리를, 동기의 법칙으로 의지하는 주체로서의 우리 자신에 관한 지식을 갖는다. 4가지 근거는 정신의 기능에 근원을 두고 있다. 지성의 기능은 경험적 표상을 설명해주는 원리 또는 인과율을 제공한다. 이성은 개념들의 연결을 위한 규칙을 제공하며 시공의 감성적 직관은 수학을 위한 규칙을 제공하고 내적 자아 또는 자기 의식은 동기의 법칙을 제공한다. 전체 도식은 각 정신의 기능과 그것의 적합한 대상들 사이의 주체-대상의 관계를 전제한다. 표상이란 우리 정신에 나타나는 것, 관념이나 정신적 이미지다. 

 

4번째 근거는 아주 중요하다. 인식하는 주체로서의 개인은 의지하는 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인식주체로서의 개인은 의지주체로서의 자기 자신을 즉각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어떤 개인이 의지하는 것은 동기로 설명된다. "우리에게 있어 동기가 없는 행동은 마치 밀거나 당김이 없는 생명없는 물체의 운동처럼 상상할 수 조차 없다." 의지주체로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은 즉각적으로 의지하는 자아를 파악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체-대상의 관계는 쇼펜하우어가 말한 것처럼 철학적 진리의 열쇠이자 "세계의 매듭"인 신비스럽고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으로 변형된다. 내적 감각에 주어지는 의지의 표상은 외부 세계의 사건의 대응물을 가지며 이러한 외부의 사건들은 첫번째 인과의 원리에 따라 지성의 기능에 나타난다. "동기는 내적으로 이해된 인과율"이고 의지는 우리 행위의 내적인 측면이다. 

 

의지의 직접적인 내적 지식은 우리에게 단지 그것의 외적 측면이 아닌 물자체로서의 의지의 특정한 일시적 나타남을 제공해 준다. 우리의 신체가 의지의 객관화인 것처럼 모든 다른 현상들은 의지 일반의 객관화라는 점을 이해해야만 한다. 경험적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단지 의지로서의 세계의 표면적 얼굴일 뿐이다. 그러나 세계는 그 의지에 대한 자각가능한 이성을 가진 의지로서가 아니라 완전히 맹목적이고 비이성적인 생성의 끊임없는 유출로서의 의지다. 그러므로 의지는 모든 것의 원인이며 각각의 것들이 그 자신의 본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다. 칸트가 말한대로 실재 또는 물자체는 알 수 없다. 단지 현상, 일반적 경험을 구성하는 사물의 겉모습 또는 표상만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모든 개별적 행위는 의지의 표현이며 각각의 행동은 동기로 설명할 수 있다. 행위를 통해 우리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의지이다. 우리의 행위는 필연적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의지이기 때문이다. 세계 안의 모든 사물은 서로 다른 의식 수준에 있다. 모든 것은 자기의 본성에 따라 그렇게 존재하며 결코 다른 것으로 존재할 수 없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존재하는 것의 결과 안에서 특정한 행위를 우리가 의지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의지를 가능하게 하는 총체성으로서의 의지자체는 동기가 없다. 의지자체는 독립적이며 최초의 것이다. 의지자체는 어떤 것에 의해서도 결정되지도 않고, 결정될 수 없다. 그것은 우리 행위의 최초의 기원이기에 우리가 그것을 넘어서 탐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의지의 행위 안에는 의지자체에서 현상계로서의 직접적인 변이가 있다. 개인과 사물의 의지는 의지자체의 단편적 표현으로 자신의 본성에 따라 그 자신의 방식에 따라 존재하려는 욕구일 뿐이다. 그러므로 어떤 인격적 의지의 자유도 믿을 수 없다. 자유를 얻는 한 가지 방법은 각각의 개별자가 끊임없는 욕구의 쳇바퀴로부터 벗어나 평화를 얻는 것이다.

 

쇼펜하우어 플라톤의 이데아와 같은 순수 객관성은 4가지 충족이유율로는 인식할 수 없는 물자체와 달리 영원한 형상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데아에 대한 지식은 개별 지식이 아닌 인식의 순수주체다. 그걸 인식하기 위해서는 의지가 없어져야 한다.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인식주체는 인식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런 형상에 대한 지식은 개별적 의지의 휴식을 가져온다. 휴식은 어떤 상태의 지식에 도달할 때 발생한다. 이로 인해 인간은 자발적 포기, 단념, 진정한 냉정, 완전한 무의지 상태를 가진다. 의지에 대한 진정한 해방은 현상적 경험 세계의 욕망이 무화되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완전한 자체 지식에 이른다. 욕망으로 가득찬 존재는 전망이 무이지만 의지가 정지한 존재에게 일상세계는 무이다. 자살은 무의지가 아니라 의지의 행위다.   

 

눈에비친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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