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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chopenhauer(1788-1860)/쇼펜하우어

쇼펜하우어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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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염세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프로이센 제국의 국가 철학자였던 헤겔의 정신철학에 반대하여‘의지의 형이상학’을 주창하였다. 그의 사상은 정신분석학과 실존철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비합리주의에 주목한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적 사상가로 평가받아도 좋다.

서양철학에서 쇼펜하우어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는 헤겔 사후 서양철학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할 정도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니체, 프로이트, 키에르케고르, 베르그송, 비트겐슈타인쇼펜하우어의 사람들이며 프란츠 리스트, 바그너, 톨스토이, 뜨르게네프, 토마스 하디, 프루스트, 토마스 만, 사무엘 베케트, 구스타프 말러, 슈트라우스, 보르헤스 등의 작가들이 그에 심취하였다. 니체는 장차 쇼펜하우어헤겔보다 더 유명해질 것이라고 말했으며, 톨스토이쇼펜하우어를“가장 천재적인 인간”으로 불렀다. 쇼펜하우어의 의지형이상학은 그의 제자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의 무의식 철학과 니체의 권력의지를 매개로 하여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쇼펜하우어의 의지는 사실상 정신분석학에서의 리비도와 같은 것이다.

1809년 가을에 괴팅겐대학교 의학부에 들어가서 자연과학을 공부하다가 1년 만에 인문학부로 옮겨서 플라톤칸트 철학에 심취하였다. 그로부터 1년 후에 베를린대학교로 옮겨서 당대의 거장이었던 피히테슐라이어마허의 강의를 들었으나 감동을 받은 것 같지는 않다. 1813년에 그는 바이마르에서 괴테와 친교를 나누었으며, 이듬해에 헤르더의 제자인 동양학자 프리드리히 마이어로부터 뒤페롱이 번역한 <우파니샤드>를 소개받아 읽음으로써 인도철학의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는 인도를‘가장 고대적이고 원시적인 지혜의 땅’이라고 보면서 브라만주의와 불교가 유럽에 들어와 기독교로 각색되었다고 믿었다. 쇼펜하우어는 유럽의 불교 수용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서양 최초의 불교사상가로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서양인들이 불교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된 것도 사실이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체계가 놀라울 정도로 불교와 일치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를‘불교철학의 해설자’혹은‘불교적 염세주의자’로 불렀다. 특히 르네 게농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가 그의 제자 에두아르트 폰 하르트만이나 다른 유럽 학자들에 의하여 불교와 동일시됨으로써‘불교적 염세주의’라는 개념이 정착되었으며, 이로써 불교의 무아사상을 쇼펜하우어의 극단적 비관주의 사상과 동일한 것으로 오해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쇼펜하우어는 죽기 몇 해 전에 벽난로 위에 있는 셰익스피어, 데카르트, 칸트, 괴테의 조각상 옆에다가 붓다상도 함께 놓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쇼펜하우어는 불교를 어떻게 접하였으며,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철학에 반영한 것일까? 쇼펜하우어가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자신의 철학을 수립하였는지, 아니면 불교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독창적으로 불교와 비슷한 사유체계에 이르렀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하다. 그의 대표작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초판(1818년)>이 발행된 시점에는 불교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3판(1859년)에서는 불교에 대한 해박한 이해가 개진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서, 그 중간에 불교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갖추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초기 저작에는 힌두교의 가르침에 대한 기쁨은 발견할 수 있으나 불교에 대한 언급은 찾을 수 없다. 쇼펜하우어의 대표작이 출판된 1818년 무렵의 유럽 지성계는 낭만주의 열풍에 젖어 있었다. 유럽의 계몽주의자들이 중국사상에 심취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낭만주의자들은 인도사상에 열렬히 반응하였다. 그러나 쇼펜하우어가 접한 것은 인도 베단타 사상이었다. 제2판(1844년)이 간행될 무렵에 불교는 유럽에 활발하게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쇼펜하우어가 즐겨 읽었던 뷔르누프<인도불교사 입문(1844)>스펜스 하디<불교입문(1853)>이 출판되었으며, 이어서 쥘르 바르텔레미 셍틸레르<붓다와 그의 종교(1858)>가 간행되었다. 따라서 제3판(1859년)에서야 비로소 불교의 영향이 체계적으로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여기에서 불교를 다른 종교보다 훨씬 출중한 것으로 평가하였으며, 불교 교리가 자신의 핵심 명제들을 확립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밝혔다.

쇼펜하우어는 고대 인도의 베단타사상 이외에 플라톤칸트로부터도 큰 영향을 받았다. 플라톤칸트에서 공통점은 세계를 이데아(물자체)와 현상으로 나누어 본다는 것이다. 플라톤이 존재론적으로 구분했다면 칸트는 인식론적으로 파악한 것이 다를 뿐이다. 플라톤칸트에 의지하여 쇼펜하우어는 우리의 모든 인식은 오직 세계에 대한 표상일 뿐이라고 보았다.“세계는 나의 표상이다.”이 점에서 그는 칸트와 일치한다. 여기에서‘표상’(Vorstellung)이란‘앞에 있는 것’, 즉 나의 주체에게 나타난 것을 뜻한다. 칸트에서는 현상의 배후에 ‘물자체’가 존재한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에서 표상은 의지가 객관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의지는 알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니라 모든 현상의 가장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본질이다. 세계는 궁극적으로 맹목적이고 비인격적인 의지에 의하여 추동된다. 우리에게 나타나는 모든 표상은 의지의 발현이다. 우리의 신체 또한 의지이며, 삶에의 맹목적 의지이다. 치아와 식도는 배고픔이 객관화된 것이고, 생식기는 성적 충동이 객관화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의지가 그 자신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이처럼 표상을 통하여 의지가 객관화되는 과정에서 고통이 출현한다. 의지가 자기를 실현하려는 것, 즉 삶의 현상에서 고통은 필연적으로 나타나며, 따라서 고통은 모든 삶의 근본이다. 이러한 고통은 모든 존재 자체의 내부에서 발현하며, 그리하여 이 세계는 고통으로 가득 차 있다는 명제가 성립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나로부터 벗어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자기 자신의 부정은 곧 개체화의 원리를 부정하는 것이고, 그것은 또한 마야의 베일, 즉 우주적 환상의 장막을 걷어내는 것을 뜻한다. 인간은‘나’라는 개체성의 환상에서 벗어날 경우에만 그 고통스러운 실존적 조건을 순간적으로 벗어나는 미적 관조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관조의 기쁨은 개인의 완전한 무화(無化)가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일시적인 진정제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고통으로부터 완전하게 해방되기 위해서는 삶의 의지 자체를 완전하게 소멸시켜야 한다. 개체적 자아에 대한 인식, 개체화의 원리는 마야의 장막이자 환상이다. 그 장막을 벗어나야만 자신과 타인을 구분하지 않고 자기를 희생하여 다른 사람의 고통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전 세계의 고통과 재난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여기게 될 경우에 그는 어떤 고통도 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이를‘동고’(同苦, Mitleid)의 감정이라고 불렀으며, 이러한 생각은 대승불교의 보살사상과 일치한다. 나 자신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바로 내가 세계 그 자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우파니샤드에서“너는 그것이다.”라고 기술한 것, 즉 아트만과 브라만의 일치[梵我一如] 상태를 뜻한다. 개체화의 원리에서 벗어난 사람은 이제 삶을 긍정하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모든 향락을 거부하고, 다른 사람이 해를 가해와도 대항하지 않으며, 마음속에 더 이상의 분노나 욕망의 불씨가 타오르지 않게 할 수 있다. 이로써 쇼펜하우어는 기독교, 힌두교, 불교 등의 종교에서 모든 성인들의 실천을 사랑, 연민, 동정, 정적주의, 금욕주의, 신성성 등과 같은 종교의 궁극적인 본질을 철학으로 이론화했다고 자부하였다. 생의 의지를 부정하는 것이 바로 이 모든 종교적 실천의 바탕이 되는 것이다.

이제 쇼펜하우어는 영원과 시간, 존재 자체와 실존을 구분함으로써 의지를 부정한 사람들의 사후 존재에 대한 독자적인 이해에 도달하고자 하였다. 죽음은 일시적인 실존이나 개별적 인식의 종언이다. 그러나 쇼펜하우어에 의하면 죽음은 우리 존재의 본질인 의지 자체를 훼손하지는 못한다. 죽음은 단지 시간이 지배하는 것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시작, 지속, 종말은 현상 세계에 속한 것이고, 따라서 죽음은 모든 개별 현상의 토대이자 사물 자체로서의 의지 자체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리하여 우리 존재의 은밀한 본질은 언제나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말한다. 죽음은 개체의 상실이고 탄생은 새로운 개체의 시작이지만, 의지는 그대로 머물러 있다. 따라서 쇼펜하우어는 인식 주체로서의 영혼이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 의지만이 윤회한다고 보았다. 의지는 새로운 탄생과 더불어 새로운 지성과 새로운 존재를 갖는다. 이것은 윤회보다는 재생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리하여 쇼펜하우어는 새로운 탄생은 불멸의 의지 자체에 도달하려는 갈망의 표현이며, 여러 가지 형태의 탄생을 통하여 정제되다가 결국에는 완전한 부정의 방식으로 자기완성에 도달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처럼 나와 세계가 표상이고, 그 배후에 의지가 도사리고 있으며, 삶의 의지의 긍정은 고통을 유발하므로, 고통을 벗어나려면 의지의 완전한 부정을 통하여 동고(同苦)의 감정을 가져야 한다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분명 불교의 중심사상과 일치한다. 그러나 그가 불교 지식을 갖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1818년도 초판의 결론에서 의지의 완전한 부정을 통하여 완전한 신성(神性)과 만날 수 있으며, 고통의 세계로부터 벗어날 경우에 남은 마지막 일은 무(無) 속으로 소멸되는 것이라고 이미 언급한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 신성(神性)과 무(無)의 일치는 바로 불교의 열반과 같은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로제 폴 드루아르네 지라르에 의하면 불교와 쇼펜하우어는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불교가 실존적 한계를 진단하고 치유하는 치료술인 반면에, 쇼펜하우어의 의지부정론은 삶의 치유보다는 삶의 포기를 권장하는 염세주의이다. 그리고 불교가 상견(常見)과 단견(斷見)의 극단을 회피하는 중도주의인 반면에, 쇼펜하우어는 생의 의지를 일방적으로 폐기하는 극단주의에 머무른다. 비록 쇼펜하우어가 낭만주의를 유대-기독교적 굴레에서 해방시켜‘신 없는 종교’, 즉 무신론적 신비주의에 도달하게 하였지만, 이 같은 사실에서 쇼펜하우어와 불교의 차이는 엄존한다.

법보신문 / 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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