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독일(당시 동프로이센, 현재는 러시아)의 쾨니히스베르크(칼리닌 그라드)에서 마구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형이상학과 논리학교수가 되었다. 여행을 하지 않고 쾨니히스 베르크에서만 지냈으며 루소의 <에밀>을 읽다 오후 산책에 늦은 일이 사건이 될 정도로 시간을 엄수하는 것으로 전설적인 명성을 얻었다. 인과율의 무근거성을 주장한 흄 덕분에 "독단의 잠"에서 깨어났다고 고백했고 그간 당연시 되어왔던 "신은 존재한다"나 "영혼은 불멸한다"와 같은 명제는 인간의 경험안에 예시할 수 없기 때문에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순수이성비판>, <<미래 형이상학 서론>,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실천이성비판>, <판단력 비판>,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 등을 저술했고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의 주장이 문제가 되면서 더 이상 종교에 관한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형이상학의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 칸트는 인간 경험구조를 검토한다. 지식은 감각에 영향을 주는 외부의 사물로 만들어진 주관적 경험에 기초한다. 외부의 감각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감성이라 하고 이것은 지성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형식적 원리에 따라 12가지 범주 안에서 이해되고 지식이 된다. 이런 방법으로 주관적인 감각경험은 객관적인 개념적 지식으로 변형된다. 시간과 공간은 우리 정신 안에 경험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미리 주어진다. 인간이 경험하는 것은 물자체가 아닌 그것을 인간의 형식을 통해 경험한 현상을 직관하는 것이다. 물자체는 인간은 경험할 수 없다. 따라서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
지식의 획득에 있어 두번째 단계는 다양성의 종합이다. 첫번째 단계인 직관의 수동적 수용에 비해 적극성을 포함할 수 있다. 이 종합은 다양한 표상의 요소들을 통일한다. 그래서 하나의 개념 아래 통합할 수 있다. 이런 개념의 사용이 지식을 산출하지는 않는다. 지식을 위해선 순수지성의 개념을 필요로 한다. 순수지성은 경험과 독립적으로 이미 정신 안에 있는 판단의 형식이다. 개념이 지식이 되기 위해선 이런 판단형식과 일치해야 한다. 이렇게 만든 주관적 경험은 객관적 지식으로 전환할 수 있다.
"모든 사건은 원인을 갖는다." 이 명제는 명제 안에 있는 용어들의 분석에 의해 확립되지 않는 종합 명제이다. 인과율은 순수지성의 개념이라 우리 경험의 선천적이고 필연적인 조건이다. 우리는 현상세계 안에서 인과율에 대한 지식을 가질 수 있다. 오로지 인간의 경험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물자체와 형이상학적 명제들만 가질 수 없다. 이는 믿음의 영역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눈에비친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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