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천적 종합판단이 가능한 근거
칸트는, 학문으로서 성공했다고 생각한 수학 특히 자연과학에서 얻는 지식의 본성은 어떤 것이며, 그러한 자연과학적 인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밝힘으로써 참다운 인식론을 확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칸트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지식은 여러 종류의 판단을 내용으로 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칸트에 의하면 모든 판단에 있어서 주어와 객어의 관계를 생각할 때 판단은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으로 분류된다(A6, B10).
분석판단은 술어의 개념이 이미 주어의 개념속에 포함되어 있는 판단이며, 칸트는 그 예로서 「모든 물체는 연장되어 있다.」(A7, B11. 여기서 A는 순수이성비판의 초판을 의미하고, B는 순수이성비판의 재판을 의미한다.) 라는 명제를 든다. 물체라는 개념은 연장성이라는 개념을 이미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물체라는 개념을 넘어서지 않고 이 판단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분석판단은 우리의 인식을 확장시켜 주지 않는다.
종합판단은 술어의 개념이 주어의 개념에 포함되어 있지 않는 판단이다. 칸트는 종합판단의 예로서 「모든 물체는 무겁다」(A7)라는 것을 들고 있다. 무겁다는 개념은 물체라는 개념중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물체개념으로 부터 나와서 경험을 통해 무겁다라는 술어를 물체라는 주어에 결부시켜야 이 판단에 이를 수 있다. 종합판단은 우리의 인식을 확장시켜준다.
칸트에 의하면 종합판단은 경험적인 판단과 선천적인 판단으로 분류된다(A8). 경험적 종합판단은 후천적인 판단으로서 경험에서 부터 술어개념을 얻어와 주어 개념과 결합시킨다. 경험적 종합판단은 가령 a가 b임을 보고하는데 그칠 뿐 a가 b이어야 함을 주장하지는 못한다. 즉 경험적 종합판단은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지지 못한다 (A2). 판단이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경험으로 부터 독립적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선천적으로 얻은 판단만이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진다(A2).
칸트는 이러한 선천적 종합판단이 수학과 자연과학에서 가능하다고 보았다(B14~18 참조). 칸트에 의하면 수학에서 ‘7+5=12’ 라는 판단이나 ‘직선은 두 점간의 최단거리 이다’ 라는 판단은 선천적 종합판단 이다. 물리학에서 ‘물질계의 모든 변화에 있어서 물질의 양은 불변이다’ 혹은 ‘운동의 모든 전달에 있어서 작용과 반작용은 항상 서로 같아야 한다’ 는 명제는 선천적 종합판단이다.
칸트는 이러한 선천적 종합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것에 대한 답을 얻는 것이 올바른 인식론을 전개하는데 필요하다고 보았다. 서두에서 언급한 수학과 자연과학에서 얻는 지식의 본성은 바로 선천적 종합판단이라고 칸트는 생각하였으며, 이러한 인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밝힘으로써 참다운 인식론을 확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칸트 이전의 데카르트를 비롯한 합리론적 찰학에서는 두 가지 종류의 필연성 즉 분석판단의 논리적 필연성과 선천적인 종합판단의 필연성 사이의 차이를 깨닫지 못했다고 칸트는 생각하였다. 경험론자들은 선천적인 종합판단을 부인하였다.(S. P. Lamprecht, 김태길 외 2인 역, 서양철학사, 을유문화사, 1991, 518쪽 참조.)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의 양자에 대하여, 자신의 새로운 인식론 즉 선천적 종합판단을 가질 수 있게 하는 여러 조건들을 드러내고 밝혀주는 인식론을 확립했다.
선천적 종합판단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밝히기 위해 칸트는 자연과학에서 적용하는 사고법을 도입했다. “그것은 「우리가 사고법의 변혁이라고 생각하는 것, 즉 우리가 사물에 투입한 것 만을 우리는 사물에 관해서 선천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B,ⅩⅧ) 라는 사고법이다.”(한서석, 칸트 철학사상의 이해, 양영각, 1987, 76쪽.) “이것은 우리가 이성에 의하여 미리 생각한 것을 대상 속에 투입하여 보고, 그 결과에 의하여 이성적으로 생각하였던 것이 정당한가의 여부를 검토하는 방법 즉 실험적 방법이라 할 수 있다.”(같은 책, 78~79쪽.) 좀더 자세히 말하면 실험적 방법은, 경험적인 사실로부터 시작하여 경험하지 않은 같은 종류의 사실들을 통일적으로 설명하기 위한 법칙을 가설로서 생각하고 이 법칙을 실험에 의해 확인해가는 것이다.(같은 책, 86쪽 참조.)
칸트는 인식론에 있어서, 실험적 방법을 따라 대상에 투입되어야 하는 것은 선천적인 인식형식으로 생각하였다. (한서석, 칸트 철학사상의 이해, 양영각, 1987, 89쪽.) 인간의 주관 속에는 주관의 성질과 능력으로서의 선천적인 인식형식들이 존재하고, 이 형식들이 대상에 투입됨으로써 경험의 대상이 성립한다는 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바로 이러한 인간의 선천적 인식형식들이 선천적 종합판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칸트 이전까지는 인식작용이 대상에 준거(準據)해야 한다는 것이 지배적인 이론이었다. 그러나 칸트는 대상이 우리의 인식작용에 준거해야만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즉 칸트의 인식론에 있어서 경험의 대상은 주관과 대상의 만남에 의해서 성립된다. 이때 대상이 우리의 주관에 준거하며, 우리주관의 선천적 성질과 능력인 인식형식들에 관해 경험의 대상과 관련하여 선천적 종합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선천적 인식형식들은 시간과 공간 그리고 범주이다. 시간과 공간은 감성의 형식이고 범주는 오성의 형식이다. 감성은 대상으로부터 받은 감각재료를 시간과 공간에 의해 정돈한다. 오성은 감성에 주어진 내용들을 범주와 구상력(상상력이라고도 함)에 의해 종합하여 경험의 대상으로 성립시킨다.
결국 칸트에 의하면 선천적 종합판단이 가능한 근거는 우리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인식형식으로서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범주이다. 이들에 대한 판단은 경험으로 부터 독립적이므로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진다. 그러므로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지는 선천적 종합 판단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참고 문헌]
한서석, <칸트 철학사상의 이해>, 양영각, 1987.
I. Kant, 최재희 역, <순수이성 비판>, 박영사, 1989.
S. P. Lamprecht, 김태길 외 2인 역,<서양철학사>, 을유문화사, 1991.
I. Kant, N. K. Smith 역, "Immanuel Kant's Critique of Pure Reason", London,
Macmillan, 1983.
I. Kant, "Kritik Der Reinen Vernunft", Felix Meiner Verlag, Hamburg, 1971.
곽윤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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