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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1762-1836)/정약용

다산이 성리학을 비판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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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주희가 완성한 성리학을 비판하면서 공자와 맹자가 말하였던 실천 중심의 유학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이 같은 정약용의 입장은 인간에 대한 이해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정약용은 인간의 본성을 선천적인 도덕성으로 이해하고 형이상학적으로 설명한 성리학자들과 달리, 마음이 인간 생명의 실체이며, 마음의 속성인 성은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기호(嗜好)에 따라 실천에 의해 후천적으로 얻어지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다산은 그 증거로 도둑도 깨끗한 사람이라고 하면 좋아하며, 착한 일을 하고 나면 스스로 만족스러워 하지만 나쁜 짓을 하고 나면 부끄러워한다는 예를 들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선을 좋아하는 것은 사슴이 들을 좋아하고 꿩이 산을 좋아하며 벼가 물을 좋아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같은 관점에서 다산은 타고난 기질에 따라 선악이 갈라지게 된다는 견해에 대해서도 반대하였습니다. 만일 타고난 기질에 따라 선악이 정해진다면 요순 같은 훌륭한 사람들은 나면서부터 선한 존재이므로 배울 필요가 없게 되며, 걸주처럼 포악한 사람들은 나면서부터 악한 존재라서 아무리 열심히 수양을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이란 몸과 정신이 합쳐진 존재이므로 한계를 지닌 육체와 생리적인 감각 때문에 착한 일보다는 나쁜 일을 하기가 더 쉽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착한 일을 좋아하고 악한 일을 부끄러워하는 신령스러운 자각 능력이 있기 때문에 선을 택하고 악을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다산은 악을 버리고 선을 택할 수 있는 능력을 하늘에 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주적인 선택 의지에 두었습니다.

 

즉 선으로 갈 수도 있고 악으로 갈 수도 있지만, 벌이 맹목적으로 여왕벌을 호위하고 개가 무조건 주인을 따르는 것과 달리 그 완성은 개개인의 자주적인 결단과 실천에 달려 있다고 본 것입니다. 이 같은 다산의 인간 이해는 자유 의지에 따른 실천 속에서 도덕의 근거를 찾으려고 한 데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다산은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의 사단(四端)도 인간의 내면에 들어있는 도덕성이 겉으로 드러나는 단서가 아니라, 실천을 통해 덕으로 향해 가는 실마리라고 해석하였습니다.....

 

그는 사람에게 몸이 있는 한 욕망이 없을 수 없으며, 욕망이 없으면 그 실천의 결과인 선악도 없을뿐더러 글도 못 쓰고 일도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말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산에게 욕망은 구체적인 삶의 추동력이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산은 인간을 박제처럼 보면서 형이상학적이며 보편적인 존재로 이해하려 한 성리학자들과 달리, 인간을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존재로 이해하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인간의 본모습을 찾아보려고 하였으며, 그 결과 자유 의지에 근거한 실천에서 인간의 고유한 성질을 파악해 냈던 것입니다. 즉 인간을 고정된 실체로서가 아니라 활동하는 모습으로 이해하였던 것입니다

 

 


-김교빈, [한국 철학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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