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운동성을 지향한 베르그송의 사유와는 매우 대조적인 또 하나의 사유는 흔히 분석철학으로 불리는 계열이다. 이 사유는 개념, 범주, 변증법 등 추상적인 사유를 거부하고 논리학의 형식적 분석을 통해 철학의 문제들에 접근한다. 19세기에 부울(George Boole), 밀(John Stuart Mill), 프레게(Gottlob Frege) 등이 현대 논리학의 형성에 크게 공헌했으며, 이 중 프레게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전개되어 온 전통 논리학을 넘어서 현대 논리학을 건설하고자 했다. 전통 논리학이 주어-술어 구조라는 일상어의 구조를 토대로 한 것에 비해 수학적 형식화를 사용해 언어를 형식화하고자 했다.
논리학은 내용이 아닌 형식, 명제를 다룬다. 명제는 문장과 구분된다. 수학적 형식화를 통해서 일정한 집합은 변수로, 집합들끼리의 관계는 함수로, 특정한 경우는 상수로 취급한다. 가령 '한국의 수도', '일본의 수도', '미국의 수도' 등등은 'x의 수도'로 형식화된다. "로미오는 줄리엣을 사랑했다", "이몽룡은 성춘향을 사랑했다", "안토니우스는 클레오파트라를 사랑했다" 등등은 "x가 y를 사랑했다"로 형식화된다. 프레게는 세계의 무수한 경우들이 공통으로 전제하고 있는 논리적 구조를 뽑아내고자 했다. 논리적 구조가 자율적으로 존재하며, 그 논리적 구조에 함수값들이 들어감으로써 구체적인 세계가 성립한다고 보았다. 이 점에서 플라톤적 사유 양식을 따른다. 명제 논리학은 어디까지나 진위 판별이 가능한 명제들만을 다룬다. 감탄문, 명령, ... 등등은 명제 논리학의 관심사가 아니다(이런 한계 때문에 후에 철학자들은 일상 언어 분석으로 방향을 튼다).
프레게의 형식화는 그 후 복잡한 발전 과정을 겪어 현대 논리학의 주춧돌이 되었다. '술어 계산', '논리적 연결사들', '양화사들' 등과 같은 개념들이 개발되었다. "영수 아니면 철수이다. 그런데 철수는 아니다. 그러므로 영수이다" 같은 전형적인 논리적 형식은 'p∨q, -q, p' 같은 식으로 정형화되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전통 논리학의 형식들이 재정리되었고, 또 집합론의 도입으로(예컨대 벤 다이어그램) 더 정교화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러셀과 화이트헤드는 <수학의 원리>에서 이러한 형식화를 일차적으로 집대성했다. 러셀은 우리의 일상 언어를 논리적으로 형식화함으로써 기존 철학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예컨대 "현재 프랑스 왕은 대머리이다" 같은 문장은 "어떤 x가 있고, 그 x는 현재 프랑스의 왕이며, 그 x는 대머리이다"로 분석될 수 있다. 이렇게 분석할 때 지시의 맥락과 서술의 맥락이 분명하게 드러나며, 이런 분석을 통해 전통적인 존재론적 증명의 맹점이 어디에 있는가가 밝혀진다. 또 하나의 예로 내포적 의미와 외연적 의미의 분명한 구분을 들 수 있다. 프레게는 논리적 형식화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두 의미('Sinn'과 'Bedeutung')를 구분한다(샛별과 저녁별의 구분, '플라톤의 가장 뛰어난 제자'와 '알렉산드로스의 스승').
명제의 진위를 구분하는 것은 곧 각 변항들의 진위 구조를 통해서 계산된다. 이런 진리표에 의한 연산은 비트겐슈타인이 고안했다.(예제: p∧q ∨ p∧-q) 비트겐슈타인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베를린에서 공학을 공부했고, 프로펠러 설계에 몰두했다. 그 과정에서 점차 관심이 순수 수학에로, 그리고 철학에로 기울었다. 프레게의 권유로 러셀 밑에서 공부했다. 1차 세계 대전에 참가, 전쟁 중에 배낭에 넣고 다니던 수첩에 생각들을 기록해, 그것을 토대로 1918년에 <논리-철학 논고(이하 논고)>를 출간했다. 책을 출간한 후 철학을 버렸으며 오스트리아 시골 초등학교에서 교사직에 봉사했다. 자신에게 상속된 막대한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지금 내 삶에서 좋은 것 한 가지는 때때로 어린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후 수도사의 정원사로 일하기도 했고, 누이의 집을 설계하기도 했다. 1929년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자신의 전기 철학을 극복하는 사유를 시작했다. 후기 사유는 <철학적 탐구>에 수록했다. 이 책은 언어철학 외에도 심리철학의 중요한 통찰들을 담고 있으며 분석철학적 사유에 깊은 형이상학적 향기를 불어넣었다. "우리의 삶은 꿈과도 같다. 좀 나을 때 우리는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에 우리는 깊이 잠들어 있다."
<논고>의 핵심 사상은 "말로 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하게 말해야 하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로 요약한다. 여기서 전개된 언어철학은 흔히 그림이론으로 부른다. 언어를 실재의 그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전기 철학은 표상/재현이라는 전통 사유의 테두리 내에서 전개된다. 언어는 세계를 그리는 명제들로 이루어진다. 명제들은 사고의 지각 가능한 표현이며, 사고는 사실의 논리적 그림이다. 실재와 언어의 관계가 간단한 것은 아니다. "철수가 내 옆에 있다"라고 말할 때, 실제 이 명제에서 '철수'라는 글자와 '내'는 옆에 있다. 그러나 이런 간단한 경우는 드물다. 때문에 여기에서의 그림이란 논리적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관계가 성립하려면 지시관계가 성립해야 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단어는 복합적인 실재를 가리킨다.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그야말로 막연하기 이를 데 없는 복합체를 가리킨다. 그래서 분석이 요청되며, 명제들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끝없이 쪼개야 한다. 이것은 물질을 쪼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논리적 원자론이라 불렀다. 비트겐슈타인은 세계에 대한 그림을 제공하지 못하는 명제들은 사이비라고 보았으며, 이런 생각을 토대로 전통 형이상학을 맹공했다.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전기 철학을 비판하고 새로운 언어철학을 제시한다. 후기는 흔히 사용론이라 부른다. 이제 의미는 그림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용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자연과학적 언어만이 세계를 그릴 수 있다는 주장도 철회된다. 또 전기에는 철학의 고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심리적 차원들(지향성, 기대, 느낌... )도 논의한다. 이런 논의는 후에 심리철학으로 크게 발전했다.
공사장에서 지붕 위의 사람이 "벽돌!" 하고 외치면, 밑의 사람은 벽돌을 던져준다. 위의 사람은 "당신 내게 벽돌을 던져주시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아래 사람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다. 왜일까? 언어의 의미는 늘 어떤 사용의 맥락에서 성립하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런 언어 사용을 언어 놀이라 불렀다. 이제 의미는 지시 대상과의 관계보다는 사용의 맥락에 중점을 두고 분석한다. 자연과학도 하나의 언어 놀이일 뿐이다. 이런 식의 언어 이해를 언어학에서는 화용론이라 부른다. 비트겐슈타인은 이제 자연과학적 언어가 아니라 일상 언어를 분석한다. 일상 언어를 교정해서 이상적인 언어를 만들려 했던 꿈이 일상 언어에 대한 섬세한 분석으로 대치된다.
일상언어 분석은 비본질주의 철학을 가져왔다. 게임'이라는 말은 어떤 본질을 가지는가? 체스 게임, 교실에서의 어린이들의 게임, 교육용 게임, 스포츠, ... 이 수많은 게임'들을 게임으로 만들어주는 본질은 무엇인가? 이들 게임들 사이에는 다만 가족 유사성이 있을 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니체와 베르그송이 수행했던 본질주의 비판을 언어철학적 차원에서 다시 확인한 것이다. 이 생각은 현대 예술철학에도 큰 영향을 준다. 이런 언어 게임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본적인 존재를 삶의 형태'라 한다.
제 2차 세계 대전(1939-1945)때 유럽의 많은 사상가들은 US로 명명한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언어철학과 비엔나 학파의 과학철학은 US로 이식된다. US은 19세기에 유럽 철학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으나 20세기 초에 퍼스, 제임스, 듀이 등을 통해 실용주의를 정립하고 20세기 후반에는 콰인(Willard Quine) 등이 유럽에서 건너온 분석적-과학적 철학과 실용주의를 통합한다. 이후 분석철학은 논리-언어철학에서 크립키, 데이비슨 등을, 심리철학에서 김재권 등을, 과학철학에서 쿤 등을 낳으며 발전하고 그 이후에는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로티의 신실용주의 등과 같은 지점에 이른다.
눈에비친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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