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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사

고갱과 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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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갱(Paul Gauguin, 18480607 ~ 19030508)과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0330 ~ 18900729)는 외형적인 형태보다는 마음과 영혼을 표현하려고 했다. 고갱은 단순한 색과 선을 이용해 정신을 담아내려 했고 고흐는 거친 붓터치와 강렬한 색채로 심리상태를 담아낸다. 

 

고갱은 처음에 인상파의 기법을 따라갔으나 시각효과에만 신경쓰는 것이 맘에 들지 않아 독자노선을 고민하던 중 민속예술은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지도 않고 검고 뚜렷한 윤곽선, 순수하고 평평한 채색들로 이루어진 것을 알게 된다. 이후 발표하는 검은색 윤곽, 밝은 면의 특징을 가진 작품들로 종합주의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도시를 버리고 남태평양의 타히티 섬으로 들어가 원시생활과 토속적인 모습들을 담아낸다. 한때 딸의 죽음으로 자살을 결심할만큼 바닥을 친 적도 있으나 그로 인해 우리는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D' où Venons Nous / Que Sommes Nous / Où Allons Nous)와 같은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고갱은 사실을 주관적인 감정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제시했으며 그림이란 자연을 모방할 수도 있지만 개인의 관념을 담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종합주의(생테티즘, synthetism)는 이미지나 꿈, 환상 등 신비로운 주제를 담아내는 상징주의와 장식미를 추구한다. 

 

고흐밀레(Jean-François Millet)의 그림을 보고 화가에 대한 열정을 키우며 밀레의 작품을 모사하며 유화 290점, 데생 250점 등을 그렸다. 파리에서는 인상파를 접하고 외광과 점묘법을 익혔고 일본 목판화를 좋아했다. 아를로 가서는 사실적 표현보다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마음상태, 불안에 집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기서는 유화 190점을 남겼고 생레미 정신병원에 들어가서는 1년간 150점의 그림을 그렸다. 이 시기는 소용돌이 모양, 강한 붓질 등이 특징이다. 파리 북부에 가서는 70여점과 자살하기 전 작품들 중 대표적으로 까마귀가 나는 밀밭(Korenveiden onder dreigende luchten met kraaien)을 남겼다. 야수파와 독일 표현주의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고갱고흐는 파리에서 만났다. 고흐가 아를에 둥지를 틀고 화가들의 공동체 생활을 꿈꿀 때 고갱만이 와 주었다. 하지만 둘의 목적은 달랐다. 고갱은 몇 달 동안의 숙박 문제와 재정적 지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어느 정도의 여비와 초기 정착에 필요한 돈만 마련되면 열대 지방으로 떠날 생각이었다. 반면 고흐는 영원한 공동생활을 꿈꾸었다. 형제처럼 생활하며 작업할 예술가 공동체를 생각했고, 이를 발전시켜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창작과 관련한 예술적 전수까지도 꿈꾸었다. 그리고 둘은 그림의 방향성이나 창작성을 두고 자주 다투었던 것으로 보인다. 암튼 그림을 팔아 돈을 마련한 고갱은 떠나고 고흐는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으로 간다. 

 

 

 

눈에비친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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