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는 법가면서도 도학자이기도 하다. 주로 무위의 교리를 제창했기 때문이다. "해와 달이 비치고 사계절이 돌아 구름이 퍼지고 바람이 불듯이 통치자는 지식으로 자기 마음을 가리지 않고 사리로 자신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선정을 위해 법에 의존해 시비를 상과 벌로 다스리고 그 무게를 저울에 단다." 초기 중국 봉건 사회에서 귀족은 예로 다스리고 평민은 오직 벌로만 다스렸다. 공자는 후자를 폐지하고 예를 만인에게 적용하기를 주장했다. 한비자는 여기에 예 대신에 법을 넣어 평등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귀족의 지위를 끌어내렸다.
"현명한 군주가 다스리는 나라는 문서를 꾸미지 않고 백성을 위한 법전을 발포한다. 이런 나라는 선왕들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관리들로 하여금 백성의 주인이 되게 한다. 이 나라는 사사로운 반목을 관용하지 않고 그 대신 민중으로 하여금 전장터에서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게 한다. 이 나라에서는 만인은 법을 준수하고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기꺼이 싸움터에 나간다." 한비자는 "요순우탕과 문문의 도를 지금 시대에 칭찬하는 자가 있다면 현대 현인들의 비웃음을 살 것이다. 지금은 지금의 시대를 연구한 후에 채택할 방법을 궁리한다. 법은 흐름에 따라 유동적이어야 하고 정치란 현재의 긴박한 사정에 부합해해야 한다"라고 말해 옛 방법을 신뢰하지 않았다. "옛날에는 밭을 갈지 않아도 먹을 것이 풍부했고 길쌈을 하지 않아도 털과 가죽이 넉넉했기 때문에 백성을 평화롭게 다스리는 일은 쉬웠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또한 옛 방법이란 다음의 우화와 같다고 생각하였다. "옛날 송나라에 농부가 한 명 있었다. 밭 한복판에 큰 나무 그루터기가 하나 있었는데, 어느날 토끼 한 마리가 마구 달려와 그 그루터기를 정면을 들이받고는 죽었다. 그러자 이 농부는 그때부터 쟁기를 던져버리고 토끼가 나타나 그루터기에 들이받기만을 기다렸다."
당시 유행했던 남존여비에 대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하였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들과 딸은 다같이 어머니의 자궁에서 나왔건만 아들이 태어나면 기뻐하고 딸이 태어나면 죽음이 따르기도 하다니. 부모는 나중에 편할 것을 생각하고 장기적인 이익만을 계산한다. 이렇듯 부모마저도 자식에 대한 이해타산만을 따지는 세상이다."
"군주는 측근들을 신임하면 위험하다. 군주와 정승들은 혈연관계가 아닌만큼 그들의 봉사는 주위 환경에 따라 하는 것이다. 주군이 아들을 신임하면, 아들을, 아내를 신임하면, 아내를 이용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울 것이다. 하인이 열심히 일하는 것은 충성때문이 아니라 댓가 때문이다. 주인도 마찬가지로 하인을 둘 때의 이득 때문이다. 서로의 생각은 이용 가치에 집중되고 서로 자기의 이익만을 도모한다. 사람들은 이기적인 목적으로 서로 주고받는다. 서로의 이해가 엇갈린다면 부자간이라도 투쟁만이 남을 뿐이다."
한비자가 위와 같은 인간의 본성 이기주의자로 결론내리고 그것을 토대로 인간사회는 결국 반목만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엄격한 법과 가혹한 처벌만이 이런 아비규환의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고 서로의 화목을 만든다고 주장하기 위함이다. 한비자의 정신을 한 마디로 줄이면 "법으로 인도하고 벌로 법을 시행하라"일 것이다.
한비자를 비롯한 법가는 또한 나라를 하나의 조직체로 개조할 목적으로 농업과 경제적 자족을 역설하였다. "땅을 경작하는 사람은 부를 즐기고 적과 싸우는 사람은 세력을 얻는다. 백성의 부를 증대시키기 위해 농사와 토지의 개간을 중요시하고 모든 백성들에게 병법을 가르쳐 불의의 공격에 방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 시대는 농사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많지만 쟁기는 드는 사람은 적다."
한비자는 백성의 부를 증대시키기 위한 농사와 토지의 개간, 부패한 이들을 위한 형벌의 시행, 기아 해소, 군대 부양, 과세와 징세, 군사 훈련 등을 주장하며 농민들과 무사들은 유용한 계급, 부패한 귀족과 비현실적인 학자, 유학자들을 무용한 사람들로 구분했다. 정치적으로는 관료제도를 통한 절대 군주제, 속국의 경제적 자족, 싱상필벌을 수반한 엄중한 법의 시행 등을 주장했따. 이 원칙들은 진나라에서 처음으로 채택되었고 이후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법과 벌의 강력한 주장은 평등보다는 왕의 규율에 힘을 주는 것이여서 백성들이 더욱 성숙했을 때 마주하게 되는 민주주의와 같은 사상을 준비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눈에비친햇빛
'한비자(韓非子, 기281-기233)'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비자의 법가 정리 (1) | 2024.01.27 |
---|---|
한비자의 삶 (0) | 2024.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