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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Nietzsche(1844-1900)

니체 철학,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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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성숙한 철학은 '형이상학과 허무주의 이후의 철학(Nach metaphysische und Post-nihillistische Philosophie)'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물론 이 규정은 '생성의 철학(Philosophie des Werdens)' 혹은 '생성에 대한 긍정의 철학(Philosophie der Affirmation)',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Philosophie der dionysischen Bejahung)'이라는 규정과 그 대표성에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 규정들은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갖고 있고, 하나의 규정은 다른 규정이 갖는 내용들을 필연적으로 포함한다. 따라서 이중 어떤 것을 선택하여 니체 철학을 규저하든 다른 규정들은 필연적으로 병렬하게 된다. '생성의 철학'과 '생성에 대한 긍정의 철학'이란 규정은 실제에 대한 니체의 경험에서 출발한 문제 의식에 중점을 두는 규정이며, '형이상학과 허무주의 이후의 철학'은 이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니체 철학의 기능에 착안한 규정이다.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이란 규정은 니체 철학의 귀결점에 중점을 둔 규정이다. 따라서 이 규정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든 그 내용은 동일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굳이 '형이상학과 허무주의의 이후의 철학'이라는 명칭을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니체가 1881년 이후 느끼는 인간의 삶과 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필요성 니체의 후기 사유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니체의 사유가적인 고민이었다. 니체는 인간에게 자기 자신과 세계를 생성하는 존재로서 인정하고 긍정하는 해석을 제공하고 싶어한다. 이러한 해석의 필요성에 대한 요구는 그가 전통적인 세계 해석을 거부하는 이유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난다. 전통적인 세계 해석은 무엇보다도 형이상학적-목적론적-도덕적인(metaphysische - teleologische - moralische) 해석의 결합체로 간주되고, 형이상학이라는 명칭은 이 결합체에 대한 총괄 개념이다. 니체가 이 형이상학적 해석을 거부하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인간과 세계, 인식과 실재, 존재와 당위와의 긴장 관계를 포함하고, 인간의 현실적 삶을 부정하는 귀결을 가지며, 인간에게 허무적 경험을 하게 하는 해석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해석이 수행해야만 하는 과제는 이러한 긴장 관계를 해소시키고, 인간의 삶과 정신세계를 절대적으로 지배하던 이 해석을 거부할 때 생길 수 있는 정신적, 현실적, 아나키즘을 극복하는 일이다. 또한 궁극적으로는 생성하는 실제에 근본적인 부정이 아닌, 근본적인 긍정을 하는 디오니소스적 긍정(dionysisches Jasagen)을 하게 하는 일이다. 이런 과제가 니체의 새로운 해석에 의해 수행되기 때문에 니체의 철학에 형이상학과 허무주의 이후의 철학이라는 명칭이 정당하게 부과될 수 있다.

 

니체의 이러한 사유는 오버엥가딘의 실봐프라나에서 니체에게 영원 회귀 사유가 떠오르는 1881년의 사건과 함께 시작한다. 여기서 그의 사유에 한 전환점이 이루어지고 있음이 니체의 자서전적 책인 『이 사람을 보라』에 명시되어 있다. 영원 회귀 사유는 사실 바젤에서 행해졌던 강연에서 피상적으로  이미 떠오르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지만 1881년의 경험은 니체에게 새롭게 다가오는데, 그 이유는 이 사유가 '긍정하는 파토스(Jasagendes Pathos)'로부터 탄생하기 때문이다. 영원 회귀 사유를 제시하게 하는 긍정적인 파토스는 영원 회귀와 힘에의 의지, 위버멘쉬, 관점적 세계 경험 등의 여러 사유의 상호 의존 관계를 통해, 니체의 핵심 사유들을 역동적인 다양성 속의 통일성(dynamisches Viel in Einheit)을 이루는 새로운 해석으로 탄생하게 한다. 먼저 영원 회귀에 의해, 힘에의 의지라는 존재론적 원리를 가지고 구성된 니체의 존재에 대한 논의(생기 존재론)가 보증되고 정당화되며, 이런 방식에 의해 보증된 존재에 대한 논의만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이의 급진적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이 급진적 변화는 물론 인간이 자신과 세계를 힘에의 의지가 수행되는 한 장소로서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하다. 인간은 형이상학적 실체가 아니며 고정할 수 없는 생성되는 주체로서, 해석하고 평가하는 주체로서 이해된다. 인간은 이렇게 해서 세계의 중심이라는 위치를 다시 차지하지만, 이것은 단지 힘에의 의지라는 실재(Realitat)와의 관계 하에서만 가능하다. 이런 새로운 인간 이해는 니체에게서 몸(Leib)이란 개념으로 대변된다. 몸으로서의 인간은 바로 위버멘쉬이며, 창조와 해석활동을 하면서 자기의 현 상태를 극복하는 인간이다. 위버멘쉬적 존재로의 인간 자의식의 변화는 새로운 인식의 장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의 인식 노력은 자기 극복과 몸적인 삶, 즉 위버멘쉬적 삶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인식은 종결되지 않은 힘과 삶의 의지의 수행 현상이다. 인식은 이렇게 해서 해석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고, 의욕적인 창조 행위가 된다. 해석은 인간의 부단한 힘과 삶의 의지로부터 행해지고, 인식 행위의 내적 조건인 관점성은 내재적 한계이며, 해석들은 역사성과 시간 제약적 성격을 갖는다. 이런 해석은 절대적 진리가 될 수 없다. 이것이 관점적 세계 경험이며, 이것은 완전한 허무주의자로서의 니체가 결코 비합리주의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 그는 오히려 인간과 인간 이성의 한계를 인정하는 철저한 이성 비판가라는 점을 알려준다. 

 

이렇듯 니체의 후기 사유는 긍정적 파토스로부터 시작하고, 그의 전 후기 사유를 지배한다. 후기 사유의 당야한 주제 영역들은 이 파토스를 통해 하나의 역동적인 다양성 속의 통일성을 형성한다. 

 

니체 철학을 이렇게 특징짓는 것은 니체 철학의 발전 단계에 대한 기존의 구분과는 다르다. 니체 사유의 발전 단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구분이 있어왔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는 살로메가 제안한 연도순에 의거한 3단계 발전 도식이 형식에 치우쳐 있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통용되어 왔다. 3단계 발전 도식이 제안하는 첫 번째 단계는 니체의 첫 글부터 1876년 여름까지이다. 이 시기는 바그너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적 의지의 철학으로부터 영향받은 예술가-형이상학적 사유가 특징적이며,니체 철학의 낭만적 시기라고도 불린다. 이 시기에 니체 새로운 인간 문화의 창달과 특히 독일 문화의 재건이라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고대 그리스 비극 문화에서 그 가능성을 탐지한다. 하지만 이 시기의 특징적인 예술가-형이상학은 나중에 니체 자신에 의해 포기된다. 두 번째 단계는 시기적으로는 1882년 여름까지인데, 이 시기에 보이는 사유의 성향은 쇼펜하우어 바그너로부터 이탈하여 자유 정신적 존재로서 기존의 것을 파괴하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 이상에 대한 미망이나 환상에서 깨어나 비판적이고도 실증적인 경향을 강하게 보이기에, 이 시기를 실증주의적 시기라고도 부른다. 니체 스스로 이 시기에 해당하는 시간들에대해, 거기서 그 자신 환상에서 출발했고 이 환상을 문화의 근거로서 보았다고 회술하고 있다. 소위 이 첫 시기를 저술상으로 보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부터 『즐거운 학문』까지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함께 건설적이고 창조적인 세번째 시기가 시작되고 이 시기는 1889년 초에까지 이른다. 세번째 시기에서 니체의 철학 내용들, 즉 위버멘쉬, 신의 죽음, 영원 회귀, 힘에의 의지, 허무주의 극복, 디오니소스적 세계관 등이 집중적으로 사유된다.

 

그러나 이런 3단계 구분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물론 니체의 사유가 그의 철학적 관심 대상 그리고 문제 해결 방식 등에서 변화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니체 철학의 핵심적인 면들이 위의 피상적인 분류를 뛰어넘어 뚜렷한 연계를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니체의 언어철학적 입장, 몇 가지의 인식론적인 그리고 역사주의에 대한 입장들은 그의 초기의 사유에 미미한 변동만을 가하여 후기 철학에 수용된다. 또한 니체의 존재론적인 입장은 초기 사유가 후기에까지 단계적으로 발전하는 형태를 보여준다. 따라서 니체 철학에서 '본질적인 단절이나 완전한 반동'을 말할 수는 없다는 피글의 논변은 설득력이 있다. 니체 철학의 이런 특징은 무엇보다도 위의 3단계 도식에서 말하는 두번째 시기 후반부터 세번째 시기를 이끌어가는, 니체가 자신의 철학적 과제로 삼은 생성에 대한 철학적 정당화와, 이 과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보면 뚜렷이 나타난다. 따라서 니체 자신의 의도에 충실하게, 생성에 대한 철학적 정당화를 니체 철학의 주제로 삼으면, 이 주제가 표명되고 그 이후의 니체 철학이 이것에 의거해 진행되는 1881년 이후의 시기를 함께 묶어 니체의 '후기 철학'으로, 니체 철학을 대변하는 사유로 정당하게 말할 수 있다. 이 주제는 전통적인 세계 해석을 탈피한 인간이 어떻게 다시 자신의 세계 안에서의 위치를 정립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니체의 고민을 대변한다.

 

눈에비친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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