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 미학 이론
제1장 들어가는 말
제1절 칸트 미학 이론 연구의 문제들
칸트의 3비판서 중 제1비판인 '순수이성비판'은 과학적 인식의 주장이 갖는 본성과 지위에 관한 비판(비판 : 철저한 탐구와 검토라고 생각하자)적 고찰이고, 제2비판인 '실천이성비판'은 도덕적 인식의 주장이 갖는 본성과 지위에 관한 비판적 고찰이고, 제3비판인 '판단력비판'은 미감적 인식(자연과 예술에서의 미와 숭고)과 합목적적 인식 일반의 주장이 갖는 본성과 지위에 관한 고찰이다.
칸트가 생각한 미학의 주요 문제는 "이것은 아름답다"라는 형식의 판단을 "만인의 동의를 요구할 수 있는" 필연적이고도 보편적인 판단으로 만드는 권리에 관한 것이다.(칸트에게서 이런 판단의 바탕에는 어떤 선험적 원리가 놓여져 있고, 그 원리를 발견해 내는 것이 문제가 된다.) '이것은 아름답다'라는 형식의 판단들은 자연계(현상계)에서의 보편적인 인과성의 개념(결정론)과 모종의 초감성계(예지계)에서의 자유의 개념을 매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판단 능력은 정신의 순수 인식 능력과 욕구 능력 사이에 있는 간격을 연결 지어 주는 것)
<판단력 비판>의 난해성
①판단 능력은 정신의 순수인식 능력들과 욕구 능력 사이에 있는 간격을 연결지어 주는 것으로 이야기 된다.(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의 주요 원리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②예술미와 자연미의 경험을 자신의 철학 체계 안에 편입시키고자 시도함에 있어서, 칸트는 "합목적성의 형식으로 된 목적론"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 불가피함을 발견하였다. '판단력 비판'의 구조는 제1부 미감적 판단력 비판(자연과 예술에서의 미와 숭고에 대한 판단)은 쾌 또는 불쾌(고통)의 감정에 의해서 자연 또는 예술의 형식적 합목적성을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우리의 판단에 관계되고, 제2부 목적론적 판단력 비판은 이성과 지성에 의해 자연 안의 합목적적인 현상들을 객관적으로 판정하는 우리의 판단으로 사물들을 자연 목적으로 판정하는 판단과 그것들이 지닌 상대적 합목적성에 관한 판단이라는 두 개의 주제로 갖고 있다. 이 글에서는 '미감적 판단력의 비판'에 완전히 포함되어 있는, 칸트 미학 이론의 여러 다양한 요소들을 통일시키는 복합적인 논증을 다룬다.(두 부분간의 관계는 애매 모호하다)
③칸트는 미감적 판단의 두 가지 유형 즉 미의 판단과 숭고의 판단을 자세하게 다루는데, 오늘날 양자 중 어느 것도 우리의 미감적 경험의 결과를 특징짓는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다.
④칸트는 그의 대부분의 주장을 심성 능력이라는 술어로 나타내고 있다.
⑤다양한 예술에 대한 칸트 자신의 한정된 진술과 오히려 편협하기조차 한 견해들은 예술의 본성과 궁극적인 가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로 하여금 그것에 대한 통찰을 다른 곳에서 찾도록 내몰기에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난점들에도 불구하고 칸트의 미학 이론은 이전의 저술가들이 이루어 놓은 결실들을 한데 묶는 그의 능력과 예리한 비판력은 그로 하여금 미학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의 핵심을 관통하게 하고, 그것들이 지닌 깊이와 상호 연관성을 인식하게 하며, 그 문제들에 대한 설득력 있는 해답을 제시할 수 있게 해준다.
제2절 칸트의 철학 체계에서 본 <판단력 비판>
1. 취미 비판의 가능성
{미와 숭고의 감정에 관한 고찰들}에서나 {판단력 비판}이 실제로 구상되기 전까지만 해도 칸트는 "취미 비판"의 가능성, 즉 미감적 경험과 가치의 기초에 관한 철학적 탐색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표명했다. {고찰들}은 평이하고 통속적인 평론으로서, 우리의 미와 숭고의 경험들에 대해 그것들이 각각 시대, 성별, 국적, 기질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식의 설명을 가한 것이다. 칸트의 평론은 실제로 인간들의 차이에 관한 것이었다. <고찰들>에서 칸트의 방법은 합리주의적이라기보다 경험적인 편이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 초판에서 취미의 기준 또는 원리의 존재에 대해 경험적인 일반화 이상으로 관여할 의사가 없었지만, 그에 관한 문제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 초판의 경우 취미 비판에 대한 어떠한 합리주의적인 시도도 거부하면서, 어떤 대상에 대한 지각이 산출하게 될 쾌 또는 불쾌의 감정으로 그 대상이 인간의 심성에 미칠 효과를 규정할 수 있는 어떤 선험적인 규칙이나 원리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흄이나 버크는 취미의 기준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여 그 기준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보이지만, 그 기준은 다양성 속의 통일성, 또한 표현의 호소력과 같이 대상이 지닌 특정한 성질과 특성이 정상적인 관조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에 관한 경험적인 일반화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한다.→칸트는 경험적으로 추출된 기준이 어떤 것이 아름답다고 하는 개인적인 주장을 위한 객관적인 토대를 어떻게 마련해 줄 것인가를 알 수 없다는 근거에서 이런 주장의 적합성에 이의르 제기한다.)
칸트의 질문의 핵심은 '어떤 대상이 아름답다고 하는 나의 개인적인 판단이 다른 사람의 동의를 요구한다는 것을 나는 무슨 권리로 상정할 수 있는가?'이다.
칸트의 취미의 규칙 또는 기준에 대한 변화 : <순수이성비판>의 제1판에서는 "취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의거해야 하는 선험적 법칙의 구실을 결코 할 수 없다"라고 했지만, 제2판에서는 "취미의 규칙 혹은 기준은 취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의거해야만 하는 (규정적인) 선험적 법칙의 구실을 결코 할 수 없다"라고 수정한다. 이는 선험적인 취미의 규칙 또는 원리가 존재하되 그것은 결코 규정적인 것은 아니다라는 {판단력 비판}의 중요한 학설을 예견하게 한다. 이것이 "취미의 이율배반"을 해결하게 하는 학설이다. "이율배반"의 반정립 명제는 '취미판단이란 분명히 어떤 규칙 또는 원리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립명제는 '취미판단이란 어떤 규칙 원리에 기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율배반"에 대한 칸트의 해결책은 취미판단들이 의거하는 규칙 또는 원리는 반드시 비규정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칸트는 자연의 주관적인 합목적성이라는 비규정적인 개념이, 취미판단들의 논리적 특징 때문에 우리에게 부과된 것처럼 보이는 주관-객관의 이분법의 해소 또는 종합이라고 본다.
2. 세 비판서의 조망
{순수 이성 비판}은 종합적인 선험적 인식 판단의 소유가 어떻게 가능한가를 설명하는 문제를 자신의 과제로 삼았다. 즉 경험을 통해 확정된 것보다는 강하지만, 그것의 부정이 곧 자기 모순은 아닌 인식 주장이 그의 과제였다. 칸트의 관심은, 선험적 종합 판단에 대한 우리의 주장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으며, 또한 특정한 심성 작용이 과연 인간의 의식과 경험이 갖는 좀더 일반적인 특징들이 부여된 모종의 필연적인 것으로 연역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 놓여 있다.
{실천 이성 비판}에서는 종합적인 선험적 도덕 판단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보여주려 한다. 여기서도 보편적으로 타당하고 구속력이 있는 도덕적 판단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는 선험적인 심적 원리(욕구 능력의 원리)가 탐구의 대상이다.
{판단력 비판}에서는 판단력을 지배하는 선험적 원리를 발견하는 것이 목표였다. 칸트에게 판단이란 개별적인 인식을 보편자 또는 개념에로 가져가는 것이다. 이는 개별적인 사물은 모두 하나의 일반적인 성격 또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즉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하는 판단(취미 판단)은 경험에서 찾아지지도 않고 개념의 분석이나 말뜻의 분석에서도 도출될 수 없는, 보편성과 필연성을 은연중에 주장한다.
칸트는 세 개의 비판서에서 첫째,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것에 대한 판단, 둘째 우리가 해야 하는 것에 대한 판단, 셋째 아름다운 것에 대한 판단들이, 필연성과 보편타당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즉 칸트는 우리의 인식 주장, 도덕 판단, 취미 판단이 어떻게 개인적인 타당성 이상의 것을 가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칸트의 관심은 우리의 도덕 판단 및 미감적 판단이 단순한 주관적 보고가 아니라는 것을 무엇을 근거로 해서 알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데 있다.
3. 칸트의 건축술과 <판단력 비판>
{판단력 비판}의 전반적인 구성은 피상적으로 볼 때 <순수 이성 비판>의 구조와 유사성을 갖고 있다. <판단력 비판>의 두 주요 부분, "미감적 판단력 비판"과 "목적론적 판단력 비판"은 {순수 이성 비판}의 "초월적 논리학]에서와 동일한 방식으로, "분석론"과 "변증론"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유사성은 자명한 것은 아니다. 취미 판단의 성질이라는 용어에서 긍정되는 것은 개념이 아니라 쾌의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쾌의 감정은 판단을 내리는 사람의 것으로 긍정되지 판단되는 대상의 것으로 긍정되지는 않는다. 취미 판단의 분량과 관련해서도 칸트는 취미 판단은 단칭 판단이라고 한다. 이는 어떤 개별적인 사물을 아름답다고 하는 판단임을 의미한다. 즉 칸트에게서 전칭 판단이나 특칭 판단은 취미 판단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칸트의 취미 판단은 보편적 전칭 형식을 취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전칭 판단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즉, 누구나 이 대상물을 아름답다고 보아야 한다.) 관계의 계기에서 고려되는 것은 '목적'의 관계이지만, 칸트는 '목적'이라는 하부 양상은 원래의 도표에는 나타나지도 않고, 취미 판단의 분석이 합목적성이라는 말에 어떻게 관계되는지도 자세히 거론하지 않는다. 양식이라는 표제 아래 칸트는 미감적 판단을 필연적 판단이라 생각한다. 이는 {순수이성 비판}의 판단표에서 "apodiktisch"(실연적)에 해당되나 이 술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칸트는 철두철미하게 체계적이고자 하며, 그의 건축술을 철학의 전 영역에서 작용할 것을 희망한다.
4. <판단력 비판>과 비판철학
<판단력 비판>이 차지하는 위치는 판단 능력이 인식 능력(지성)과 욕구 능력(이성)간의 매개적 연결을 어떻게 성취하는 가를 제3비판이 보여준다고 하는 칸트의 주장에 의존한다. 칸트는 두 비판서가 인과성의 현상계와 예지적인 자유의 초감성계를 확립했기에 {판단력 비판}에 두 영역간의 통일의 가능성을 부여하였다.
칸트가 {판단력 비판}의 주요한 체계적 추진력으로 삼은 것은 "우리의 인식 능력들의 순서에 있어서 지성과 이성 사이에서 매개 고리를 형성하는 판단력도 과연 스스로를 위한 선험적 원리들을 가지고 있는가의 여부, 그 원리들은 구성적인가 아니면 단순히 규제적인가의 여부, 또한 판단력은 인식 능력과 욕구 능력의 매개 고리로서 쾌-불쾌의 감정에 대해서 선험적으로 규칙을 부여해 주는가의 여부"에 대한 물음이다. 칸트는 "판단력이 완전히 선험적으로 자연에 대한 반성 토대로 삼고 있는 원리, 즉 자연이 그것의 특수한 (경험적) 법칙들에 따라 우리들의 인식 능력에 대하여 가지는 형식적 합목적성의 원리"를 미감적 판단력이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판단력 비판}이 확립했다고 믿는다. 칸트의 주장은 "판단력의 초월적인 원리가 이미 지성으로 하여금 목적의 개념을 자연에 적용하도록 준비시켰다"는 것이다. 즉 자연의 형식적인 합목적성, 곧 그 형식이 갖는 유기적 연관성과 의미를 규정하려고 함으로써 우리는 예술뿐만 아니라 자연을 이해한다.(자연의 형식적 합목적성이란 그것이 결코 자연 안에서 실제적 목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주관적 합목적성은 "초월적"이다. 왜냐면 이는 자연 현상들을 경험적 법칙들에 따라서 이해하고자 함에 있어 우리의 인식 능력이 이미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주관적인 형식적 합목적성이라는 원리는 어떻게 해서 쾌의 감정과 연결되는가? 칸트의 분석에 있어서 쾌 또는 만족은 우리의 심적 능력들의 요구와 능력이 자연과 이루는 조화를 지각하는 데에서 결과한다. 따라서 우리가 느끼는 쾌는 대상의 형식을 우리가 포착함으로써 유래되는데, 이는 그러한 형식이 그에 대한 반성에서 우리의 인식 능력들의 작용에 조화될 때 이루어진다.
판단력의 원리가 어떻게 지성과 이성, 나아가 인식과 도덕성을 매개하는가? 자연에서의 형식의 합목적성이 우리로 하여금 자연이 우리의 능력들에 적합하게 되어 있다고 믿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는 이러한 형식의 합목적성을 파악함에 있어서 우리의 심성 능력들의 자유로운 놀이가 우리에게 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칸트는 도덕적 규칙들의 근거가 되는 초감성적 개념 또는 원리가 판단력의 선험적 원리, 즉 자연의 형식적 합목적성과 동일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가? 특수로부터 주어져 있지 않은 보편으로 옮겨가는 반성적 능력에서의 판단력의 기능은 "경험적 원리들 상호간의 체계적 종속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이 종속관계는 특수한 경험들과 자연 법칙들에 의한 이들의 통합을 하나의 체계로서 간주하는 것이다. 칸트는 판단력의 원리는 경험적 법칙들 일반 아래에 있는 자연 사물들의 형식에서 볼 때 곧 다양한 자연의 합목적성이다. 다시 말해 자연은 이 개념에 의해서 마치 하나의 지성이 그 경험적 법칙들의 다양성을 통일하는 근거를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표상된다"고 주장한다. "자연의 합목적성이라는 이러한 초월적 개념은 우리가 자연 대상들을 반성할 경우, 철저하게 연결된 하나의 경험을 목적으로 할 때 취해야 할 독특한 방법을 표시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이는 자연에 대한 객관적 원리가 아니라 주관적 원리일 뿐이다. 그것은 우리의 모든 인식이 갖는 주관적 원리이다.
제3절 판단의 능력
1. 판단력과 인식 과정
{순수이성 비판}에서 칸트는 판단력을 지성(Verstand)과 동일시한다. 지성은 적극적으로는 개념에 의한 지식 또는 인식이고, 소극적으로는 "비감성적인 인식 능력"으로서 기술되는 정신 능력이다. 판단은 지성의 작용으로서, 개별적인 표상을 보편 즉 개념에 포함된 것으로 생각하는 작용이다. 표상은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판단력은 감각 인식 자체를 통해서든 인식 능력들을 통해서든 경험 내에서 모종의 방식으로 주어진 것을 개념들 아래 포섭하는 힘을 말한다. 칸트는 판단력은 '어떤 사물이 주어진 규칙 아래 들어오는 것인가 아니가를 구별하는 능력'이라 말한다. 또한 규칙은 우리의 경험의 다양성들을 통일 또는 질서지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에 우리가 인식하는 개별적인 대상들은 매우 다양하다. 여기에는 "직관들의 다양"이 존재한다. 개별적인 인식을 개념 아래로 가져가는 것은 어떤 종합 작용, 보편자 또는 개념을 요구한다. 개념들이란 지성이 인식을 획득하는 수단으로서, 지성이 제공하는 개념들에 의해 판단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즉 지성은 직관들의 다양을 통일(종합)하기 위해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규칙들을 소유함으로써 개념들을 제공한다. 물론 지성은 그 자체만으로는 판단할 수가 없다. 개념화의 규칙들을 제시하는 지성이 개념을 적용하는 규칙들이 충족되었음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전에 포착된 대상의 다양한 부분들의 표상들을 연속적으로 재생하고, 그러한 표상들을 정신 앞에 내세우고, 또 그것들을 한데 엮어 놓는 또 하나의 심성 능력인 상상력이 요구된다. 이때만이 인식을 가지며 판단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한다.
2. 규정적 판단력과 반성적 판단력
<판단력 비판>의 서론에서 칸트는 규정적 판단력과 반성적 판단력을 구별한다.
규정적 형식에서의 판단력의 활동은 보편 또는 개념(예컨대 '내 집')이 주어질 때 이루어지며, 이때 그 아래 포섭될 어떤 대상―개별적인 표상들의 통일, 즉 내가 인식한 대상들의 종합―을 찾는다. 이것이 성공적일 경우 판단이 이루어지고 인식이 성취된다.
반성적 형식에서의 판단력의 활동은 다양한 개별적 표상들만이 주어질 때 이루어지고, 인식된 대상을 포섭할 어떤 개념 또는 보편을 찾는다. 파악한 대상을 반성함에 있어서 나는 하나의 규정적인 개념이 그 대상들에 적용될 수 있도록 그것들이 연결되는 방식을 발견하기 위해 내가 보는 사물들의 다양성을 여러 모로 통일해 보려고 할 것이다. 표상들의 다양에서 적절하게 예시된 개념을 발견해 내고자 그 다양을 반성함으로써 판단력을 구사한 결과로 판단을 내릴 수 있으며, 인식을 주장하게 된다.
<판단력 비판>에서 칸트는 한 대상을 그 美에 관련하여 판단할 때 판단력은 반성적 능력에서 구사된다고 주장한다. 개별적인 표상들은 그 요소들과 상호 관계들이 합목적적인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는가를 식별하고자 하는 정신 능력들에 의해서 지각되고 반성된다.
제4절 취미 판단
1. 판단력을 비판해야 하는 필요성
취미 판단은 단순히 어떤 개별적인 사물을 아름답다고 보는 판단이다. 칸트는 취미 판단의 범주에 단칭 판단들만 포함시키고자 한다. 칸트는 취미 판단을 반성적 판단의 분명한 예로 본다. 취미 판단에서 대상은 어떤 규정적 개념과 연관하여 판정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형식에 대한 관조가 우리들 안에서 쾌 또는 불쾌의 감정을 산출해 내는가와 연관해서 판정될 뿐이다. 쾌 또는 불쾌의 감정에 근거함에도 불구하고, 취미 판단은 보편 타당성을 주장한다. 따라서 취미 판단은 경험 속에서 경험적으로 주어진 것을 초월한다. 취미 판단의 기저에는 어떤 일반적인 선험적인 원리가 존재하고, 취미 판단의 분석은 판단력 비판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그 비판의 열쇠를 마련해 준다.
"미의 분석론"에서 칸트는 취미를 "미를 판정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취미 판단은 미감적 판단이다. 어떤 사물을 아름답다고 판정함에 있어서, 우리는 대상의 표상을 우리 내부의 쾌의 감정 즉 판단하는 주체에 은연중 연결시킨다.(미감적 판단은 논리적<개념적·인식적> 판단과 대조)
어떤 것을 쾌적하다고 하는 판단은 인식 또는 반성의 대상이 하나의 개별적 대상이라는 점에서 단칭 판단이다. 어떤 사물이 쾌적하다고 주장하는 판단을 칸트는 '감각 판단' 또는 '질료적인 미감적 판단' 또는 '미감적 감각 판단'이라 부른다. 칸트의 취미 판단들의 분석은 미의 개념과 그것을 판정하는 능력(취미)에 대한 윤곽적 서술 또는 체감적 정의로 구성된다.
취미 판단이 무관심적(?)이라는 것과 미감적이라는 것은 우리의 미의 경험 분석과 미에 대한 판단들의 분석에서 두 개의 주춧돌 구실을 한다. 취미 판단들의 경우,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부르는 의미나 힘에 대한 일상적인 개념이 감상자에게 적극적으로 느껴진 쾌 또는 만족을 수반한다는 점과, 그것이 우리의 판단에서 어떤 보편성을 암묵적으로 주장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2. 순수한 취미 판단과 불순한 취미 판단
어떤 취미 판단들은 순수(형식적)하지만, 또 어떤 것들은 불순(질료적)하다. 이로써 칸트는 취미 판단이 판정 또는 주장하는 활동 혹은 특정 사물을 아름답다고 보는 명제임을 의미하고자 한다.
순수한 취미 판단, 표상, 인식 양태는 완전히 선험적인 것으로 특징짓는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화는 애매 모호하다. ①필연적이고 가장 엄격한 의미에서 보편적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②거기에는 어떤 경험적인 것도 섞여 있지 않다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③감각에 속하는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이런 특징화들의 타당성은 결코 명료하지 않다. 칸트는 각각의 특징을 자신의 목적에 맞도록 수정하고, 그가 탐구하는 새로운 각 영역에 적용될 수 있도록 새롭게 해석하며, 그의 철학 체계를 견지하고 있다.
취미 판단은 ①, ②, ③ 각각의 특징화에서 볼 때 순수하지 않다. 칸트는 취미 판단들이 증명 가능한 것이 아니라고 정언적으로 부정하며, 그 필연성과 보편성은 "범례적"이며 한갓 "전가된" 것일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칸트의 진정한 의미는 취미 판단들이 오직 선험적 원리에 의해 내려질 경우에만 소유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며, 또한 그럴 때 취미 판단은 순수하다는 것이다.
취미 판단이 순수한, 따라서 선험적인 것일 수 있다고 말하는 칸트가 의미하는 것은
①' 취미 판단은 감각에서 취해진 쾌만을 바탕으로 해서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 대상의 형식에 대한 판정(반성, 관조)을 바탕으로 해서 내려지는 경우에 한해서 순수하다.
②' 순수한 취미 판단은 필연적이다. 이 필연성은 어디까지나 '범례적'이고, '조건적'이며, '주관적'이라는 의미에서만 그러하다.
③' 순수한 취미 판단은 우리가 만인에게서 상정할 수 있는 어떤 것을 바탕으로 하는 한 보편적이다. 그러나 이 보편성은 주관적이요, 여타의 모든 판단자들에 대해 오로지 전가되는 것일 뿐이다.
제5절 "미감적 판단력 비판"의 논증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보는 판단과 단순히 쾌적하다고 보는 판단은 모두 세계 안의 사물들에 관한 개념적인 판단들이 아니라, 경험 속에서 마주치는 대상과 판단하는 주체 안에서 일어나는 쾌의 감정 사이에 놓여 있는 관계에 대한 보고라는 점에서 '미감적' 이다. 칸트는 어떤 대상을 아름답다고 판단함으로써, 나의 쾌 또는 만족이 마땅히(필연성의 요소)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보편성의 요소) 타당할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내가 본 대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칸트가 말하듯이 '하나의 결과로서 쾌 또는 불쾌의 감정과 그 원인으로서의 어떤 표상의 결합을 선험적으로 설정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어떤 특정한 사물을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취미 판단'이 요구된다. 칸트적인 술어로 본다면 '취미 판단'은 "연역" 되어야 한다. 왜냐면 그것들은 경험에서는 충족되지 않는 어떤 필연성과 보편성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그것은 '초월적'이다.
취미 판단에서의 보편 타당성 주장은 모든 사람들은 판단에 필요한 비슷한 주관적 조건들을 갖는다는 가정 아래서만 정당하다.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보는 판단이 객관성(상호 주관성)과 보편 타당성을 정당하게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판단이 은연중에 연관되어 있는 쾌의 감정은 대상의 형식에 대한 관조, 고려, 판정의 한 귀결임에 틀림없다. 만일 취미 판단이 단순히 그리고 직접적으로 특정한 감각으로 인해 주어지는 쾌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보편 타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
칸트는 미에서의 쾌를 판단력과 연관시킴으로써 취미 판단들이 보편 타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었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물의 미에 대한 우리의 인지 상태를 표시하는 만족감은 형식의 합목적성이 인지될 때 구상력과 지성이 서로 조화되어 자유롭게 유희하고 있는 인식 능력들의 작용 결과이다.
취미 판단들의 완전한 연역은 우리가 미와 미의 판단에 관심을 가질 때 의존하는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미가 진정 도덕성의 토대를 상징한다면, 취미 판단들에 대한 찬동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D.W. 크로포드(김문환 역)
'I. Kant(1724-1804) > Kritik der Urteilskraft'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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