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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學/大學章句

격물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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格物致知

 

 

1. 격물치지의 개념과 의미

 

격물格物과 치지致知는 유학에서 인식론과 수양론, 나아가 실천론을 관통하는 철학적 개념으로서 『예기』의 『대학』편에 처음 보인다. 이 책에서 격물과 치지는 도덕적 수양(성의・정심・수신)과 이에 근거한 사회적 실천(제가・치국・평천하)을 위한 선행 조건으로 제시되었다. 집안, 나라, 천하를 제대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먼저 몸과 마음을 갈고 닦는 인격 수양을 해야 하고, 인격 수양을 위해서는 먼저 ‘치지’를 해야만 하는데, 치지는 ‘격물’에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처럼 격물과 치지는 본래부터 수양과 실천을 뜻하는 개념들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는 개념이었다. 그 결과 격물과 치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은 『대학』이라는 텍스트의 문맥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를테면 『대학』의 삼강령이나 팔조목과의 논리적, 실천적 연관성을 해명한다든가, 아니면 전후 문맥에 등장하는 ‘물’物, ‘지’知 등과의 의미론적 관련성을 밝히는 것 등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글자의 본래 의미를 천착하는 훈고학적 방법과 텍스트를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텍스트분석 방법이 결합된 것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대학』의 편제를 개정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주희朱熹는 『대학』을 학문 방법론의 차원에서 이해하였고, 이에 따라 『대학』의 편제를 격물치지를 중심으로 재구성하고 더 나아가 「격물치지전」을 보충하였다. 『대학』에 대한 이러한 이해 방식은 격물과 치지에 대한 새로운 의미 부여를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 주희에 의해서 격물과 치지는 인간의 도덕적 수양 및 실천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라 인식론적 의미까지 포괄하는 개념으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그 이후 『대학』을 둘러싼 논의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격물과 치지의 문제가 자리하게 되었고, 그만큼 격물과 치지는 중요한 철학적 함의를 담고 있는 개념이 되었다.

 

이 글에서 주로 다룰 내용은 『대학』의 텍스트 분석보다는 그러한 분석을 이끌어갔던 철학적 관심사, 즉 격물치지의 철학적 함의이다. 조선 유학사에서 보자면 격물치지에 대한 철학적 견해는 대략 세 가지 방향으로 정리가 된다. 첫째는 주자학적 격물치지설로서 마음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物)과 그 사물을 처리하는 방식(事)에 대한 공부, 그리고 그 수단으로서 독서와 토론(講學)을 통한 지식의 습득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객관주의적이고 주지주의적인 격물치지설이다. 둘째는 양명학적 격물치지설로서 바깥 사물에 대한 탐구를 비판하고 오직 마음의 공부와 실천을 역설한다는 점에서 주관주의적이고 실천적인 격물치지설이다. 이 두 격물치지설은 다같이 도덕적 실천을 위한 이론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도덕주의이다. 셋째는 실학적 격물치지설로서 자연을 도덕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자연 그 자체로 파악할 것을 주장하는 자연학적 격물치지설이다.1)

 

 

2. 중국유학의 격물치지설

 

『대학』의 격물과 치지에 대해 주목할 만한 해석은 일찍이 정현鄭玄(127~200)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는 ‘격’을 ‘오다’(來)로 ‘물’을 ‘일’(事)로 보았는데, 여기서 ‘물’이란 주희의 경우처럼 구체적인 사물(事事物物)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추상적인 의미의 일, 즉 ‘선한 일 또는 악한 일’ 정도의 뜻이다. 그 결과 ‘치지가 격물에 있다’(致知在格物)는 구절은 선을 좋아하면 선한 일이 오고 악을 좋아하면 악한 일이 온다는 의미가 된다.2) 공영달 孔穎達(574~648)도 따르고 있는 이러한 해석에서는 선한 일을 해야 한다는 식의 도덕론적이고 실천론적인 함의가 크게 부각되고 있는 반면에 인식론적이고 방법론적인 성격은 명료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격물과 치지가 인식론적 의미를 지닌 철학적 개념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송대에 와서이다. 이 시기에 이르러 도道의 실천을 적극 지향했던 도학자들에 의해 그 실천의 토대가 되는 형이상학적 체계가 모색되면서 『대학』은 학문 방법론을 다룬 책으로 주목을 받았고, 그 결과 격물과 치지는 수양론과 실천론의 영역에 머물지 않고 인식론적 의미를 아울러 갖는 개념으로 이해되었다.

 

張載(橫渠, 1020~1077)는 지식을 감각적 지식(見聞之知)과 도덕적 지식(德性所知)으로 나누고, 감각 경험의 한계와 속박을 벗어나기 위해 마음을 다하거나(盡心) 마음을 크게 할 것(大心)을 역설하였다.3) 이러한 의식이 격물치지에 적용되면 외물에 대한 경계로 나타나는데, 그는 격물의 격을 ‘제거하다’(去) 또는 ‘밖에 두다’(外)로 보아 격물을 마음에 있는 물을 제거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4) 감각적 지식의 습득보다 마음의 공부를 우위에 두는 사고는 정호程顥(明道, 1032~1082)에게서도 확인되는데, 그는 외부 사물로 인하여 사람들이 미혹에 빠지게 되므로 외부 사물과 그에 대한 관념을 버려야만 참다운 인식이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5) 결국 ‘치지가 격물에 있다’는 것은 참다운 인식이 외부 사물의 관념을 버리는 데 있다는 뜻이 된다. 격물치지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사마광司馬光(1019-1086)에게서 분명하게 보인다. 그는 격물의 격을 ‘막다’(扞, 禦)는 뜻으로 해석하여 외부 사물을 막아야 지극한 도를 알 수 있다고 하였다. 인간의 비도덕적인 행위는 물욕 때문에 생기므로 물욕을 배제해야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6)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은 程頤(伊川, 1033~1109)와 朱熹(晦庵, 1130~1200)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정이는 격을 ‘이르다’(至) 또는 ‘궁구하다’(窮)로 보아 격물을 ‘사물을 탐구하여 그 리에 이르다(窮至物理)’는 뜻으로 해석하였다.7) 주희 역시 정이의 해석을 따라 격물을 사물에 나아가 사물의 리를 탐구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8) 여기에는 인식 대상인 리가 사물 속에 내재해 있다는 원리가 전제되어 있는데, 이렇게 되면 외부 사물은 버리거나 막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참된 인식을 위해 반드시 공부해야 할 대상이 된다. 외부 사물의 리에 대한 탐구, 그리고 그 결과로서 지식의 습득을 필수적이라고 본다는 측면에서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은 제한적이긴 하지만 객관주의적이며 주지주의적인 성격을 갖는다.

 

물론 정이와 주희가 말하는 사물은 객관 존재 그 자체라기보다는 인간의 실천과 결부된 대상, 즉 일(事)이며,9) 그렇기 때문에 사물의 리는 존재 그 자체의 법칙이라기보다는 실천과의 관련 속에서 파악된 존재의 원리이며 실천의 원리(事理, 道理)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은 다분히 도덕주의적이다. 더욱이 주자학에서 말하는 사물의 리는 하나의 근원(一理)에서 나왔고, 하나의 본질을 갖는다. 그리고 그 리는 단순히 바깥 사물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도 존재한다. 정이와 주희의 격물치지설에서 외물의 탐구는 궁극적으로 관통貫通이라고 하는 일종의 인식론적 비약을 통해 우주적 본질(天理)을 인식하고 마음의 리를 인식하는 것이 목적인 것이다.10) 이렇게 되면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은 객관주의적인 성격이 현저하게 약화되고, 그 대신 마음의 공부를 강조하는 심학주의 내지 주관주의적인 경향을 강하게 띠게 된다.

 

양명학의 격물치지설은 陸九淵(象山, 1139~1192)과 王守仁(陽明, 1472~1528)에 의해서 정립되었다. 육구연은 참된 인식의 대상, 즉 리가 마음 안에 있다고 하여 마음의 공부를 강조하였다.11) “진실로 근본을 알면 육경이 모두 나의 주석에 불과하다”12)고 했을 만큼 그에게 마음이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이었다. 그래서 독서와 같이 사물의 리를 탐구하는 공부는 지리하고 번잡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참된 공부는 오로지 ‘마음을 다하는 것’(盡心)과 같은 마음의 공부이다.

 

왕수인은 “마음 밖에 물이 없고 마음 밖에 리가 없다”13)고 하여 모든 존재와 리를 마음 안으로 끌어들였다. 참다운 인식이라는 것은 외부 대상으로부터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리를 인식할 수 있는 인식 능력을 왕수인은 良知라고 하였다. 양지는 곧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선험적인 도덕적 판단 능력이다. 그에게 치지란 곧 致良知인데, 이는 양지를 지극히 하여 실현한다는 의미이다.14) 그는 격물의 격을 ‘바르게 하다’(正)로 물을 ‘일’(事)로 보아 격물을 ‘일을 바로잡는 것’으로 해석하였다.15) 여기서 일이란 의식(意)이 작용하는 곳을 말하므로 의식이 부모를 모시는 것에 작용하면 곧 부모를 모시는 것이 하나의 일이 되고 부모를 올바르게 모시는 것이 하나의 격물이 된다. 이렇게 되면 왕수인의 격물치지설은 경전 연구와 외부 사물에 대한 탐구를 통한 리의 인식이라는 객관주의적 성격은 완전히 사라지고 마음의 리를 자각하고 실천하는 주관주의적이고 실천적인 의미만을 갖게 된다.

 

한편 사물에 대한 직접적인 탐구를 강조하는 격물치지설이 있는데, 이는 주자학이나 양명학에서 보이는 도덕적 실천을 위한 격물치지설과 성격을 달리한다. 특히 명말 청초에 이르러 서양의 과학적 지식이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자연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단편적이나마 자연학적 관심을 포괄하는 격물치지설이 등장하게 되었다. 方以智(1611~1671)는 마음을 비롯한 천지간의 모든 존재는 과학적 탐구(質測)의 대상이고, 과학적 탐구를 바탕으로 한 철학적 탐구(通幾)의 대상이라고 역설하였는데, 이는 자연학이 필수적인 학문 분과의 하나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16)

 

王夫之(船山, 1619~1692)는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을 명확하게 구분할 것을 강조하였고, 나아가 인식 대상인 객관 사물을 마음 안으로 귀속시키는 주관주의적 인식론을 비판하였다. 그의 격물은 객관 사물과 역사 사실을 광범위하게 파악하고 자연 현상과 역사 과정의 법칙을 탐구하는 것이며, 치지는 마음의 비움을 통하여 인식 능력을 고양시키고 사유를 통하여 인식의 깊이를 더하는 것을 뜻한다.17)

 

顔元(習齊, 1635~1704)은 격물에 투쟁・변혁과 실행의 함의를 부여하였다. 그는 격물의 격을 ‘손으로 맹수를 때려잡다’의 격, ‘손으로 때려죽이다’의 격으로 보아, ‘손으로 때리고 치고 마음대로 다룬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이렇게 되면 격물의 격은 ‘손수 일을 실천한다’는 뜻이 된다. 안원은 단순히 독서나 사변과 같은 이론적인 공부보다 사물에 나아가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는 공부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18)

 

3. 조선유학의 격물치지설

 

(1) 주자학적 격물치지설

 

조선 주자학자들의 격물치지설은 대개 정이와 주희의 격물치지설에서 출발한다.19)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에서 가장 기초적인 조건이 되는 것은 인식 대상을 마음 바깥에 존재하는 사물의 리로 설정한다는 점이다. 李滉(退溪, 1501~1570)과 李珥(栗谷, 1536~1584)도 역시 격물을 ‘사물의 리를 궁구하여 그 사물의 리에 이르는 것'으로 해석하는 정이와 주희의 견해를 받아들였다.20) 이렇게 되면 인식의 대상은 마음 밖에 있는 사물의 리가 되며 인식의 주체는 나의 마음이 된다.

 

이에 대해 이황은 “리는 사물에 있으므로 나의 마음이 사물에 나아가 그 리를 궁구하여 그 극처에까지 이르는 것이다”21)라고 하였고. 이이는 “대개 온갖 일과 온갖 물에는 리가 있지 않음이 없고 사람의 마음은 온갖 리를 관리하므로 궁구할 수 없는 리는 없다”고 하였다.22) 이처럼 마음 바깥에 있는 사물의 리를 인식 대상으로 설정했다는 것은 그 리를 인식하는 공부, 즉 독서나 강학과 같은 궁리의 공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리를 마음 안에 끌어들여 궁리의 공부를 배격하고 마음의 공부만을 강조하는 양명학과 대조를 이룬다. 양명학에 대한 이황의 다음과 같은 비판은 주자학적 격물치지설의 특징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양명이 한갓 외물이 마음의 누가 되는 것을 근심하여, 사람의 도리(民彝)와 만물의 법칙(物則)이라고 하는 참으로 지극한 리가 곧 내 마음에 본래 갖추어 있는 리이며 강학하고 궁리하는 것이 바로 본심의 본체를 밝히고 본심의 작용을 통달하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도리어 모든 사물(事事物物)을 일제히 쓸어다가 모두 본심에 집어넣어 혼동하여 말하려 하니, 이것이 석가의 견해와 무엇이 다른가?23)

 

이와 같이 주자학에서는 사물의 리를 탐구하는 공부가 꼭 필요하다고 보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사물의 리는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리라는 특징이 있다. “사물의 리는 그 근본을 좇아 논하면 진실로 지극히 선하지 않음이 없다. …… 격물 궁리하는 까닭은 시비와 선악을 밝혀서 버리고 취하려 하는 것일 뿐이다”24)라고 한 이황의 언급에서도 확인되듯이 주자학의 리는 다분히 도덕적인 것이었다. 이이의 다음 언급은 주자학의 리가 갖는 성격을 잘 드러내준다.

 

 

궁리 또한 한 가지 실마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안으로는 자신에게 있는 리를 궁구하는 것이니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데 각각 그 법칙이 있다. 밖으로는 만물에 있는 리를 궁구하는 것이니 풀과 나무와 새와 짐승들은 각각 마땅한 바가 있다. 집에 있을 때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아내에게 모범이 되어 은혜를 두텁게 하고 인륜을 바르게 하는 리를 마땅히 살펴야 하며, 사람들을 접할 때에는 현명함과 어리석음, 사악함과 올바름, 순수함과 더러움, 교묘함과 졸렬함의 차이를 마땅히 구별해야 하며, 일을 처리함에는 옳음과 그름, 얻음과 잃음, 편안함과 위태로움, 다스려짐과 어지러움의 기미를 마땅히 살펴야 한다.25)

 

이 글에서 보듯이 궁리의 영역은 보고 듣고 말하고 행동하는 개인적인 영역에서부터 다른 사람과 관계하거나 일을 처리하는 데 이르기까지 폭넓게 망라되어 있다. 그럼에도 그 리는 개인적인 것이든 사람들 사이의 것이든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뿐만 아니라 초목금수와 같은 자연 존재의 리도 역시 ‘마땅한 바’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예외가 아니다.

 

주자학에서 말하는 리가 도덕적이고 실천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그 리가 자연의 객관적인 리가 아니라는 것을 뜻하며, 나아가 그 리에 대한 탐구가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러한 사실은 이이도 인용하고 있는 정이의 언급에서도 확인되는데, 그가 리를 인식하기 위해 공부해야 할 대상으로 거론한 것은 책, 인물, 그리고 실천 속에서 만나는 대상이었지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객관 사물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러한 공부를 통해 인식해야 하는 리 역시 몰가치적인 자연 법칙이 아니라 의리, 시비, 마땅함과 같은 유가적 가치였다.26) 주자학의 리는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 파악되는 자연의 리가 아니라 인간의 바람직한 삶의 방식에 대한 리였던 것이다.

 

이이가 “리를 궁구하는 데는 책을 읽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다”고 한 것 역시 자연학적 관심사와는 거리가 멀다. 그가 책을 먼저 읽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성현이 마음을 쓴 자취와 본받을 만하고 경계할 만한 선악이 모두 책에 있기 때문이다”27)라고 밝히고 있듯이 독서의 목적은 몰가치적인 지식의 습득이 아니었다. 실제로 이이는 읽어야 할 책으로 『소학』, 사서오경, 『근사록』, 『가례』, 『심경』, 『이정전서』, 『주자대전』, 『주자어류』 등과 역사서 등을 꼽았는데, 이 책들은 자연의 원리를 담고 있는 자연학의 책이 아니라 삶의 원리를 담고 있는 인간학의 책이고 도덕학의 책이다.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에 보이는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궁극적으로 모든 사물의 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본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천하의 사물에 나아가 그 리를 탐구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환하게 관통하여 모든 사물의 리를 알지 못함이 없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인식론적 비약인데, 그러한 비약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부가적인 이론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에서는 “마음 안에 모든 리가 갖추어져 있다”(心具衆理)는 인식론적 원리와 “리는 하나이나 나뉘어져 달라졌다”(理一分殊)는 존재론적 원리가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한다.

 

주자학에서는 리가 외부 사물 속에도 있지만 사람의 마음 안에도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해 이황은 “다만 모든 사물의 리는 곧 내 마음에 갖추어져 있는 리이니 물이 밖에 있다고 해서 이 리도 밖이라 할 수 없으며”라고 하였으며,28) 이이는 “사람의 마음에는 온갖 리가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요순의 인仁과 탕왕과 무왕의 義, 공자와 맹자의 도가 모두 性 안에 본래 있는 것이다”29)라고 하였다. 이렇게 만물의 리가 마음 안에 있게 되면 외부 사물에 대한 탐구라는 객관적인 공부가 마음 안에 있는 리에 대한 자각이라는 주관적인 공부로 그 성격이 바뀌는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모든 사물에 대한 탐구 없이도 모든 사물의 리를 인식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가 마련된다.

 

한편 모든 사물의 리를 알게 된다는 것이 실제로 모든 리를 일일이 다 안다는 것이 아니라 만물의 본질을 직관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면, 문제가 쉽게 해결된다. 이이는 정이의 말을 빌어 “모름지기 오늘 하나의 물을 탐구하고 내일 하나의 물을 탐구하여 축적이 이미 많아진 후에 시원하게 관통하는 것이 있게 된다”30)고 하였는데, 이 말은 만물의 본질, 즉 우주적 본질에 대해 관통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황은 『혹문』의 말을 빌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敬을 위주로 하여 모든 사물에서 그 소당연과 소이연의 까닭을 궁구하고, 그것을 沈潛 反覆 玩索 體認하기를 지극히 하여 세월이 오래되고 힘씀이 깊어져, 하루아침에 자기도 모르게 시원스레 풀려 활연히 관통하는 것이 있게 되면, 體와 用이 하나의 근원이고, 드러남(顯)과 은미함(微)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고 한 것이 참으로 그러함을 비로소 알게 되며, 위태로움(危)과 은미함(微)에 미혹되지 않고 진실됨(精)과 한결같음(一)에 현혹되지 않아 중中을 잡을 수 있게 되니, 이것을 참된 인식(眞知)이라고 한다.31)

 

이렇듯 관통을 통해 도달하게 되는 참된 인식은 만물에 대한 분석적 인식이 아니라 통일적 인식이며 이론적 인식이 아니라 실천적 인식이다. 그러한 인식은 만물이 하나의 본질을 가지고 있다는 존재론적 기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데, 리일분수설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이이는 정이의 말을 인용하여 “대개 만물은 각각 한 가지 리를 갖추었으나, 온갖 리는 모두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기 때문에 미루어 통하지 못할 것이 없다”32)라고 하였다. 현실의 사물은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모두 하나의 근원에서 나왔다는 것인데, 이는 만물이 본질적으로 단일한 리를 구현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사물마다 고유하게 드러나는 분수의 리를 탐구하고, 나아가 우주의 보편적인 원리, 즉 천리를 인식하는 것이 곧 주자학에서 말하는 격물치지인 것이다.

 

(2) 양명학적 격물치지설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은 사물에 대한 탐구의 과정을 거쳐 참된 인식에 도달하고, 그 이후에 실천할 것을 요구한다. 사물을 탐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마음에 내재한 우주적 원리를 깨닫고, 그리고 나서 실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은 지식의 추구를 강조한다는 특징이 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실천을 약화시킬 여지가 있다. 조선 주자학의 이론 중심주의적인 편향은 이러한 공부론과 일정한 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 유학사에서 정제두 鄭齊斗(霞谷, 1649~1736)의 양명학적 격물치지설은 주자학적 격물치지설이 지닌 주지주의적인 특성, 그리고 이로 인한 실천성의 약화에 대한 이론적인 비판이라는 의미를 지닌다.33)

 

정제두는 주자학이 의리와 심성을 둘로 나누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34) 이러한 지적은 마음 안에서가 아니라 마음 바깥에 있는 사물에서 리를 탐구할 것을 주장하는 주희의 격물치지설에 대한 비판이다. 주자학에서는 한낱 일개 사물에 있는 리, 즉 물리를 천지의 지극한 도리로 여기고 성학의 종주로 여기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35) 정제두에 의하면 주희가 말하는 사물의 리(物理)는 ‘기가 움직이는 조리’로서 죽은 리일 뿐이며, 따라서 진정한 리가 될 수 없다.36) 참된 리는 마음 안에 있는 생명의 리(生理), 그 가운데서도 유학적 가치 기준에 들어맞는 도덕의 리(眞理)이다.37) 그러므로 사물에 나아가 리를 궁구하는 것으로서는 마음 안에 있는 리의 본체를 인식하지 못한다.

 

 

 

 

나의 성이 다 발휘되면 다른 사람의 성과 사물의 성이 다 발휘되지 않음이 없으며, 천지가 자리를 잡고 만물이 길러진다. 이것이 학문을 하는 것인데 무엇이 부족하여 도리어 물리物理에서 구하는가? … 어찌 일찍이 物에 나아가 그 리를 궁구하여 나의 지知를 밝힌다는 말을 한 마디라도 본 적이 있는가?”38)

 

정제두에게 있어 물리는 사물이 인간과 무관하게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성질을 뜻한다. 예를 들어 밭을 가는 소의 성질, 사람을 태우고 달리는 말의 성질, 새벽에 우는 닭의 성질, 밤에 짖는 개의 성질과 같은 것이다. 이처럼 물리는 사물들이 가지고 있는 객관적인 성질이긴 하지만, 정제두는 그 객관적인 성질 자체보다는 그러한 성질과 인간의 관계를 더 중요한 것으로 간주한다. 예를 들어 밭을 갈 수 있는 능력은 소가 가진 이치, 즉 물리이지만, 그 물리가 물리를 넘어서 인간에게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 소가 아무 땅이나 갈아서는 곤란하고 마땅히 갈아야 할 땅을 갈아야 한다.

 

‘마땅히 갈아야’라는 판단은 이미 외물의 영역이 아니라 인간의 영역이며, 존재의 영역이 아니라 당위의 영역이다. 인간의 영역을 지배하는 리는 곧 인간 마음의 산물일 뿐 대상 사물에 들어 있지 않다. 다시 말해 밭을 갈도록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소에 있는 리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다.39) 따라서 소가 밭을 가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물리)은 갈도록 판단하는 인간의 마음과 분리되어서는 의미가 없다. 이에 대해 정제두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경우에 따라 하나하나 결정하고 시간에 따라 사물을 처리하는 것은 실로 오직 나의 한 마음에 있다. 어찌 마음 밖에서 달리 구할 만한 리가 있겠는가? 한갓 땅을 갈 수 있고 달릴 수 있는 것이 소와 말에 있다는 것만을 보고 그것에 나아가 리를 구한다면, 실로 허황된 것이니 바로 외물을 쫓는 병에 걸리는 것이다. 아마도 성현들이 행한 성리의 학문이 이것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40)

 

사물이 우리 인간에게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인간과 관계를 맺어야 하며, 따라서 우리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객관 사물의 리가 아니라 그 관계맺음의 리가 된다. 그리고 그 리는 객관 사물 속에 내재해 있지 않으므로 객관 사물의 리를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학문 방법일 수가 없다. 오히려 그 관계맺음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에 그 리는 인간의 마음 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정제두가 말하는 참된 리, 즉 진리라는 것은 인간 실천의 리이고, 그 실천의 리는 마음의 산물인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공부는 마음의 공부가 되는 것이다.

 

정제두는 양지의 실현이라는 맥락에서 격물치지를 새롭게 해석하였다. 그에게 있어 양지는 일종의 도덕적 감성이다. 그는 어떤 사물을 대할 때 측은 수오 사양 시비의 마음과 같은 도덕적 감성의 눈으로 볼 것을 주장하였다. 결국 인간의 바람직한 실천이란 인의예지를 대상 세계에 실현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과연 인의예지 상에서 부족한 것이 있어 이것에서 밝히지 않고 물에서 밝힐 수 있는지 모르겠다”41)고 하였다. 인의예지의 마음으로 대상 사물을 대하면 그것이 곧 그 대상 사물과 인간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참된 리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의예지의 마음으로 소를 대한다면 소를 부리는 리가 인간의 마음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파악되고 실천된다는 것이다.

 

치지와 격물에 대한 양명학적 해석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내려진 것이다. 그에게 있어 치지의 치致는 지극히 하는 것(至)이고 지知는 곧 마음의 본체, 즉 ‘지선至善의 발發’이다. 격格은 바르게 하는 것(正)이고 물은 일(事), 즉 ‘뜻이 머물러 있는 일’이다. 결국 ‘치지가 격물에 있다’는 것은 ‘그 본체의 지를 이루는 것(致)이 그 일하는 바의 바름에 있다’는 뜻이 된다.42)

 

정제두의 주된 관심은 얼마만큼 도덕적으로 그 사물을 대하고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외물이 가지고 있는 리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 본체, 즉 (양)지가 된다. 이런 의미에서 도덕적 본체인 지를 지극히 하는 것(치지)이 그의 철학의 핵심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 치지는 내면적인 공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지는 단순히 인식론적 차원의 능력이 아니라 실천적 능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의 양지는 도덕적 자각 능력을 넘어 도덕적 실천 능력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양지와 양능을 분별하지 않는데,43) 양지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도덕적 자각과 실천이 본래 하나라는 지행합일설과 맞물려 있다.

 

그에게 진정한 자각은 실천과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실천이 결여된 자각은 진정한 자각이 아니게 된다.44) 그러므로 도덕적 본체의 실현(치지)은 그것의 실천(격물) 여부에 달려있는 셈이며, 실천이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도덕적 본체의 실현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격물은 ‘나의 마음이 하고자 하는 일을 올바르게 한다(正事)’는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다.45)

 

(3) 실학적 격물치지설

 

주자학과 양명학의 격물치지설은 객관주의와 주관주의라는 차이에도 불구하고 도덕주의라는 공통의 지반 위에 있다. 주자학에서 자연이라는 것은 도덕적 성격을 지닌 우주적 원리를 구현하고 있는 존재이며, 자연에 대한 탐구 역시 그 우주적 원리를 인식하는 과정이다. 양명학에서도 인간의 마음 밖에 있는 자연, 다시 말해 인간의 도덕적 본체와 무관한 대상은 의미가 없는 존재가 된다. 이러한 이론 체계에서는 자연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 불가능하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자연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자연학의 토대가 되는 새로운 인식론 내지 학문 방법론이 모색되었던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조선 후기의 자연학에 대한 관심은 결과적으로 서양의 근대 과학적 성과를 수용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서양의 근대 과학은 자연이 수학적이고 필연적인 인과 법칙에 따라 움직일 뿐 도덕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 보는 기계론적 자연관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러므로 서양 근대 자연 과학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유교의 도덕주의적 자연관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자연에 대한 비도덕적 이해는 흔히 도리와 물리의 분해라고 규정되는데, 주자학과 관련지어 말하자면 리일분수설의 부정과 맞물린다. 리일분수설을 부정한다는 것은 보편적인 도덕 원리의 관철이라는 차원에서 자연을 보지 않는다는 의미이며 동시에 만물을 종에 따라 서로 다른 본성을 지닌 존재로 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자연학을 위한 격물치지설에서 설정한 인식 대상은 보편적인 도덕 원리로서의 리가 아니라 자연의 구체적인 성질로서의 리이다. 그러한 리는 마음 안에 있지 않고 사물에 있기 때문에 참된 인식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탐구가 필요하다. 인식론적으로 말하자면 참된 인식은 인식 주체와 인식 대상의 만남, 즉 경험에서 시작된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주자학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격물치지설, 그리고 그 바탕이 되는 새로운 인식론 체계를 구성한 학자가 최한기崔漢綺(惠崗, 1803~1877)이다. 그러나 도덕주의적 격물치지설, 즉 주자학과 양명학의 격물치지설은 최한기 이전에도 조금씩 균열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박세당朴世堂(西溪, 1629~1703), 이익李瀷(星湖, 1681~1763), 홍대용洪大容(湛軒, 1731~1783), 정약용丁若鏞(茶山, 1762~1836) 등에게서 그러한 균열을 발견하게 된다.46)

 

박세당은 격물의 물을 일(事)로 보는 것에 반대하여 물과 일을 별개로 보았다. 예를 들어 천하天下・국國・가家는 물이고 평平・치治・제齊는 일이라는 것인데, 이는 물이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객관 존재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격을 ‘법칙’(則), ‘바르다’(正)로 보아, 격물을 객관 존재의 법칙을 탐색하여 그 올바름을 얻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나의 인식 능력(知)이 어떤 사물에 올바로 대처하느냐 하는 것(치지)은 그 사물의 법칙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격물)에 달려 있다는 것이 그의 격물치지설의 기본적인 뜻이다.47)

 

자연학과 관련하여 박세당의 격물치지설에서 특히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은 격물치지가 결코 모든 사물의 리에 대한 인식, 정확하게 말해서 모든 사물의 근원적 본질, 즉 리일 理一에 대한 깨달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에서 주장하는 ‘활연관통하여 모든 사물의 표리정조가 이르지 않음이 없고 내 마음의 전체 대용이 밝아지지 않음이 없는’ 경지는 성인의 경지에나 가능하지 초학자에게 요구할 사항이 아니라고 비판하였다.48) 그의 격물치지설은 보편적 원리에 대한 인식 대신 하나의 물, 하나의 일를 살피는 것에 무게 중심이 있다. 다시 말하자면 가깝고 쉬운 것(父子 君臣 語黙 動靜)에서부터 점차 심원한 문제(天地 鬼神 草木 鳥獸)에로 인식의 지평을 넓혀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박세당의 이러한 격물치지설에는 만물의 리는 서로 다르다는 전제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그는 사물의 성을 궁극적 근원, 즉 태극의 분화로 보지 않는다. 그에 의하면 만물은 종種마다 서로 다른 형체(形色)를 가지고 있고, 하늘은 그 형체에 따라 그 사물의 성을 부여하였다.49) 사물의 성은 형체와 결부되어 있는 형체의 성이므로 종에 따라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하나의 리로 소급되지도 않는다. 이처럼 만물을 단일한 도덕적 원리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주자학의 리일분수설을 부정하는 것이고 자연을 도덕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아가 인간과 자연을 분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50)

 

이익의 격물치지설은 전체적으로 주자학에서 벗어나고 있지 않지만, 서로 다른 만물의 성을 변별할 것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자연학과 친화적이다. 그는 격格 자가 변별의 뜻을 지닌 각各 자를 따른 것이라고 하여, 격물에서 변별의 의미를 강조하였다.51) 이는 그가 모든 사물은 종에 따라 그 리가 다르다고 보는 존재론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에 의하면 나무의 리는 쇠의 리와 다르고, 물의 리는 불의 리와 다르다. 또 소나무의 리는 버드나무의 리와 다르고, 부자 관계의 리는 군신 관계의 리와 다르다.52) 따라서 그의 격물은 서로 다른 물의 리를 인식하는 것이며, 치지는 격물의 결과를 바탕으로 그 물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아는 것이다.53) 소의 성을 궁구한 후에 무거운 짐을 끌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말의 성을 궁구한 후에 먼 곳까지 달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54) 이처럼 적절한 실천을 위해서는 서로 다른 만물의 성을 변별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이익의 격물치지설이 지닌 주된 특징인데, 이런 점에서 그의 격물치지설은 자연학에 대한 그의 높은 관심과 부합한다.

 

홍대용은 주자학적 인간중심주의를 배격함으로써 자연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길을 열었다.55) 사람과 사물이 균등하다는 인물균등론과 인간의 관점에서 벗어나 이 세계를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이천시물론(以天視物論)이 그것이다. 그는 만물이 현실적으로 종에 따라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 차이를 차이로 인식할 뿐 차별로 인식하지 않았다. 온갖 만물이 균등하다는 만물균등론은 사물의 다양성 내지는 차이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평등성을 강조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이 있었다.56)

 

홍대용의 인물균등론은 모든 존재를 단일한 본체(태극)의 분화로 이해하는, 궁극적으로는 인간중심주의적인 주자학적 유기체론, 즉 리일분수설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인물균등론은 주자학적 인간중심주의를 타파함으로써 인간의 원리(도리)에 종속되어 있던 자연의 원리(물리)를 독자적으로 보고자 했던 의식의 소산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물균등론은 인간과 사물을 가치적으로 대등하게 놓음으로써 사물을 인간의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규정하기보다는 객관적인 관점, 즉 하늘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데 궁극적인 목적이 있었다. 진리를 제대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사람의 관점도 아니고 사물의 관점도 아닌 하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이천시물론은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을 추구하는 그의 자연학적 관심을 반영한다.57)

 

정약용은 리의 보편성과 기의 제한성으로 만물의 존재를 연속적으로 설명하는 리일분수설을 전면적으로 부정했다58)는 점에서 자연학적 격물치지설의 맥락에서 검토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만물은 결코 하나의 원리를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종에 따라 서로 다른 성을 부여받았다. 소를 예로 들자면 멍에를 차고 무거운 짐을 나르며 풀을 먹고 새김질하며 뿔로 들이받는 것이 본연의 성이다. 그에게서 본연의 성이란 종(種)마다 타고난 본성을 지칭할 뿐 기에 의해 왜곡되기 이전의 추상적인 성이 아니다.59) 따라서 이 본연의 성은 만물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하나의 원리가 아니라 종에 따라 서로 다른 성질이다.

 

아울러 그는 도덕적 실천이라는 기준으로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였다. 인간은 도덕적 자각 능력을 부여받아서 인의예지를 실천할 수 있으나 인간 이외의 존재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60) 더욱이 사물들의 모든 작용은 필연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자연의 세계는 일정한 법칙에 의해서 전개되기 때문에 인간의 실천 영역과는 달리 자유 의지에 의한 선택의 여지가 없다.61) 이는 자연에 대한 비도덕적 이해, 즉 도리와 물리의 분리가 명확하게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아울러 정약용은 만물이 인간의 마음 안에 갖추어져 있다는 것도 부정하였다. 개의 리는 개에게 있고 소의 리는 소에게 있듯이 천지 만물의 리는 각각 만물 자체에 있지 나에게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62) 이렇듯 정약용의 철학은 리일분수설, 구중리설, 인간과 자연의 통일적 이해를 부정했다는 점에서 자연학적 함의를 풍부하게 담고 있다.

 

도덕학에 종속되지 않은 순수 자연학을 위한 철학 이론을 체계화한 이론가는 최한기이다. 사상사적 맥락에서 최한기가 갖는 중요한 의미는 새롭게 유입되던 서양 과학적 지식과 이에 따라 높아지던 자연학적 관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철학 체계를 제시했다는 데 있다. 최한기는 궁리설과 양지설과 같은 전통적인 유학자들의 격물치지설을 다같이 비판하였는데, 이들 격물치지설은 리가 마음 안에 있다고 여겨 마음의 공부만을 참된 공부라고 주장한다는 것이 그 비판의 핵심이다.

 

만약에 인욕에 가리웠기 때문에 내 마음에 본래 갖추어져 있는 리를 드러내지 못한다고 생각하여 평생 동안 인욕을 없애려고 애쓰고 하루아침에 환하게 관통하기를 바란다면 선가의 돈오설에 가까울 것이다.63)

 

최한기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아무런 색이 없는 우물물과 같아서 본래 그 어떤 관념이나 선험적인 리가 내재해 있지 않다.64) 그에게 양지와 양능은 선험적인 능력이 아니라 경험을 통해 배워서 얻은 것일 뿐이다.65) 온갖 이치가 마음속에 갖추어져 있다는 맹자와 주희의 언급 역시 마음이 지닌 사유 작용을 찬미한 것이지, 리가 마음에 본래부터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66) 결국 인간의 지식은 감각 기관과 외부 대상과의 만남, 즉 감각 경험을 통해서 얻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67) 이러한 인식론적 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사물에 대한 객관적인 탐구 없이 마음속의 리를 드러내기 위해 마음의 공부에만 매달리는 전통 성리학자들의 학문에 대해 불교의 頓悟說에 가깝다고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한기는 주자학의 경전중심주의에 대해서도 비판하였다. 그 역시 성인이나 성인이 쓴 경전의 권위를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성인의 한계와 경전의 오류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는 전통적인 주자학자들과 구별된다. 경전이란 객관 세계의 원리를 파악하여 기술한 것이기 때문에 빠진 것이나 잘못된 것이 있을 수 있고, 따라서 진리의 기준은 경전이 아니라 객관 세계 그 자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성인이 만든 경전(聖經)보다는 객관 세계, 즉 자연의 경전(天經)을 읽어야 한다68)고 그가 역설한 것은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을 중요하게 여기는 자연학적 관심사에서 나온 것이다.

 

최한기의 철학체계 속에서 리는 기의 조리로 새롭게 규정되었다.69) 더욱이 그 리는 도덕적 원리를 뜻하는 주자학의 리와는 달리 도덕성이 탈각된 사물 자체의 리(物理)라는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최한기는 하늘과 땅이 만물을 낳는 데 뜻을 두지 않는다고 하여 천지에 대한 도덕적 인식을 포기하고 있는데, 이는 만물이 스스로의 원리에 따라 운동 변화해 간다는 것도 아울러 함축한다.70) 한편 그는 자연의 리가 필연적이라는 걸 들어 도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보기도 한다.71) 이렇게 리를 도덕적 원리로서가 아니라 자연의 법칙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은 『추측록』의 「기를 근거로 해서 리를 인식한다(推氣測理)」라는 항목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리의 내용이 지구 구형설, 지전설, 해와 별의 타원 궤도, 별의 운행 속도, 밀물과 썰물의 원인, 낮과 밤 또는 겨울과 여름이 생기는 원인, 바람이 생기는 원인과 같은 것이라는 데서도 확인된다.

 

최한기에게 격물치지는 기질의 가리움을 제거하는 공부가 아니라 밖에 있는 인간 사회의 모습(人情)과 사물의 성질(物理)을 거두어 모으는 것으로 이해되었다.72) 최한기 철학에서 근본적인 문제는 마음속에 있는 도덕적 본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객관 세계의 이치를 정확하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데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속에는 도덕적 본체는 물론 그 어떤 선험적인 리가 없다는 것, 그리고 참다운 리는 도덕성이 탈각된 객관 세계의 리라는 것, 따라서 감각 기관을 매개로 객관 세계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하는 것이 참된 인식이라는 것 등을 기본 골격으로 한, 이른바 자연학을 위한 철학 체계를 제시했던 것이다.

 

4. 격물치지설의 현재적 의미

 

순수 인식론은 유가 철학에서 핵심적인 주제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지식에 관한 논의들이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의 실천, 특히 도덕적 실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유학의 영역에서 참된 지식으로 인정받아 왔던 것은 순수 지식이 아니라 실천적인 지식이고 도덕적인 지식이었다. 그 결과 도덕적인 실천과 무관한 지식 그 자체의 문제를 다루는 인식론은 독자적인 학문 영역으로 정착되지 못했다. 유가적 인식론이라고 할 수 있는 격물치지설이 서양 철학의 인식론과 그 함의가 다른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주자학과 양명학의 격물치지설은 객관주의와 주관주의라는 중요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 도덕주의라는 공통점이 있다. 양명학의 일차적인 관심사는 인간의 도덕적 삶이었고,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도덕적인 마음을 기르고 실천하는 것이었다. 주자학 역시 궁극적인 관심은 도덕적 삶에 있었으나, 여기에는 도덕적인 마음뿐만 아니라 도덕적 삶의 구체적인 실천 방식(道理)에 대한 지식도 꼭 필요하고, 따라서 사물에 대한 탐구도 빼놓을 수 없는 공부로 여긴다는 점에서 양명학과 차이를 보인다. 주자학에서는 독서나 토론과 같은 외적인 공부를 통해 사물의 리(物理)를 인식할 것을 역설하였지만, 그들이 추구한 리는 실천의 리(事理)이자 도덕의 리(道理)였다. 더욱이 그 리는 마음 안에도 갖추어져 있는 리였다. 주자학의 격물치지는 개별 사물의 리에 대한 탐구로부터 시작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것의 총체인 우주적 본질(天理)에 대한 직관과 마음 안에 있는 도덕적 본체에 대한 자각으로 귀결된다. 주자학의 공부론에서 마음의 집중(居敬)이나 본성의 함양(養性)과 같은 마음의 공부를 끝임 없이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양명학은 물론이고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에서 자연에 대한 관심은 이차적일 뿐이다. 주자학의 이론 체계에서 자연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 존재가 아니라 인의예지라고 하는 인간적인 가치를 구현하고 있는 존재이다. 자연에 대한 탐구 역시 그 우주적 원리를 인식하고, 나아가 도덕적 본체를 확충해 가는 과정일 뿐 자연 그 자체의 성질에 대한 연구가 아니다. 이는 자연학이 도덕학과 분리되지 않고 그에 종속되어 있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러한 이론 체계에서는 자연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이 불가능하며 근대 과학이 탄생하기 어렵다.

 

실학적 격물치지설은 자연과 인간을 분리하고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탐구에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서 자연은 더 이상 도덕적 본질을 구현하고 있는 존재가 아니며, 따라서 자연에 대한 탐구 역시 자연에서 인간의 원리를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의 원리를 찾아내는 과정이다. 그 동안 자연을 바라볼 때 쓰고 있던, 그러나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던 도덕의 안경을 벗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비로소 자연학은 도덕학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고, 이런 측면에서 실학적 격물치지설은 자연학의 토대를 위한 격물치지설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자연학적 격물치지설이 등장했다는 것은 도덕학 내지 종교학에서 자연학으로의 전환이라는 근대의 세계사적 흐름에 편승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서양의 근대가 신과 종교로터 자연을 독립시켰다면, 조선의 후기는 리와 도덕에 질식되어 있던 자연을 해방시키는 길로 들어섰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약용과 최한기가 그러하듯이 조선의 실학자들은 자연학과 도덕학을 이어주는 끈을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가적 전통 안에 있고, 그만큼 근대 과학적 방법론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계가 있다.

 

근대 과학에서처럼 자연을 수학화하고 인과론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자연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여주고, 결과적으로 자연에 대한 통제력을 극대화한다는 강점이 있다. 그러나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안다는 것은 또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 자연에 대한 투명한 인식이라는 것은 실제로 자연을 통제하고 정복하고자 하는 의지의 또 다른 얼굴이기 때문이다. 근대는 투명한 안경을 통해 이 세계를 본 것이 아니라 정복이라는 안경을 쓰고 본 것이다. 과학은 자연에 대한, 나아가 인간에 대한, 민족에 대한 정복 의지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그 정복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객관이라는 이름과 과학이라는 이름만 보일 뿐.

 

새로운 격물치지설이 필요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 새로운 격물치지설은 정복의 의지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가치로 이 세계를 바라보는 것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가치는 곧 인간의 삶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고, 그것은 끝임 없는 자기 반성과 현재로부터의 탈출을 요구한다. 그래서 전통은 의미가 있다.

 

 

김용헌

 

 

1) 이 이외에도, 주희가 개정하고 보완한 『대학장구』의 편제를 부정한다는 점에서 두 번째와 같지만, 그렇다고 왕양명의 설을 따르지 않는 학자들이 많이 있었다. 철학사에서 주로 거론되고 있는 인물을 꼽자면 윤휴, 박세당, 정약용 이외에 신후담, 이병휴, 권철신 등 성호학파의 학자들을 들 수 있다.

 

2) 鄭玄, 『大學』 주.

3) 張載, 『正蒙』, 「大心」. ; 張載, 「張子語錄」 하.

4) 蔡茂松, 『퇴계・율곡 철학의 비교연구』(성균관대학교출판부, 1985), 50쪽.

5) 夏乃儒 主編, 『中國哲學三百題』(上海古籍出版社, 1988), 498쪽.

6) 姜國柱, 『中國認識論史』(河南人民出版社, 1989), 337쪽.

7) 程顥・程頤, 『二程全書』, 권22 상, 「伊川雜錄」 ; 같은 책, 권25, 「暢潛道本」.

8) 朱熹, 『大學章句』, 「經 1章」 주.

9) 程頤는 만나는 일(事)이 모두 물物이라고 했으며,(程顥・程頤, 『二程全書』, 권29, 「程氏學拾遺」)

     잘 알려진 대로 朱熹는 물이 일과 같다고 하였다.(朱熹, 『大學章句』. 「經 1章」 주)

10) 程顥・程頤, 『二程全書』, 권18, 「伊川先生語錄」 ; 朱熹, 『大學章句』, 「格物致知補亡章」.

11) 陸九淵, 『陸九淵集』, 권11, 「與李宰」.

12) 같은 책, 권34, 「語錄」 상.

13) 王守仁, 『陽明全書』, 권4, 「與王純甫 癸酉」.

14) 같은 책, 권2, 『傳習錄』 中, 「答顧東橋書」.

15) 같은 책, 권26, 「大學問」.

16) 方以智, 『物理小識』, 「序」.

17) 方立天 지음, 『중국철학과 지행의 문제』, 김학재 옮김(예문서원, 1998), 173-187쪽.

18) 같은 책, 191쪽.

19) 예를 들어 이이는 『聖學輯要』의 「窮理」장에서 “격물치지의 설은 程頤, 李延平, 朱熹의 설이 가장 명백하고 적절하다”고 소개하고 있다.

20) 李滉, 『退溪集』, 권26, 「格物物格俗說辯疑答鄭子中」 ; 李珥, 『栗谷全書』, 권32, 「語錄」 下.

21) 李滉 『退溪集』, 권26, 「格物物格俗說辯疑答鄭子中」.

22) 李珥, 『聖學輯要』 2, 제4장, 「窮理」.

23) 李滉, 『退溪集』, 권41, 「傳習錄論辯」.

24) 李滉, 『退溪集』, 권14, 「答李叔獻 別紙(戊午)」.

25) 李珥, 『栗谷全書』, 권5, 「萬言封事」.

26) 李珥, 『聖學輯要』 2, 제4장, 「窮理」.

27) 李珥, 『擊蒙要訣』, 제4장, 「讀書」.

28) 李滉, 『退溪集』, 권26, 「格物物格俗說辯疑答鄭子中」.

29) 李珥, 『聖學輯要』 2, 제4장, 「窮理」.

30) 같은 책, 같은 곳.

31) 李滉, 『退溪集』, 권6, 「戊辰六條疏」.

32) 李珥, 『聖學輯要』 2, 제4장, 「窮理」.

 

33) 육왕심학의 격물치지설은 외물을 인간의 마음 안으로 해소시킴으로써 마음과 사물의 분리, 인식과 실천의 분리를 극복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실천성의 약화를 우려하는 공통의 관심사에도 불구하고 육왕심학과는 다른 방법으로 주자학의 격물치지설을 비판했던 학자들이 있다. 윤휴, 박세당, 정약용 등이 그들이다. 이들의 격물치지설을 하나의 규합 개념으로 묶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주희의 지식 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심성의 수양이나 일상적 윤리의 실천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실천지향적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34) 鄭齊斗, 『霞谷集』, 권1, 「擬上朴南溪書」.

35) 같은 책, 권8, 「學辯」.

36) 같은 책, 권8, 「存言」상, ‘睿照明睿說’.

37) 같은 책, 권8, 「存言」상, ‘生理虛勢說’.

38) 같은 책, 권8, 「存言」상, ‘聖學說’.

39) 같은 책, 권1, 「與閔彦暉論辯言正術書」.

40) 같은 책, 같은 곳.

41) 같은 책, 권1, 「答閔彦暉書」.

42) 같은 책, 권13, 「大學」.

43) 같은 책, 권1, 「答閔誠齋書」.

44) 같은 책, 권1, 「答閔彦暉書」.

45) 같은 책, 권13, 「大學說」.

 

46) 이들의 격물치지설을 자연학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큰 무리가 있다. 『대학』의 해석과 관련된 정약용의 격물치지설만 하더라도 자연학과는 관련이 없으며, 오히려 일상적인 도덕 실천을 강조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다만 이들에게서 주자학적 격물치지설과 상충되는 동시에 자연학의 토대가 될 수 있는 요소들이 단편적이나마 발견되는데, 이를 조선 후기의 사상사에서 주자학적 격물치지설의 균열 또는 실학적 격물치지설의 모색이라는 맥락에서 하나의 계열화가 가능할 것이다.

 

47) 朴世堂, 『思辨錄』, 「大學」, 1장 주.

48) 같은 책, 「大學」, 1장 주 ; 같은 책, 「論語」, 公冶長 주.

49) 같은 책, 「孟子」, 진심상 주.

50) 같은 책, 「中庸」, 13장 주.

51) 李瀷, 『星湖僿說』, 권22, 「格致誠正」.

52) 같은 책, 같은 곳.

53) 같은 책, 같은 곳.

54) 李瀷, 『大學疾書』.

 

55) 주자학은 인간과 자연을 단일한 원리에 의해 통일적으로 설명한다는 특징이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태극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주희가 시도한 인간과 자연에 대한 통일적인 이해는 진정한 통일이 아니다. 인간의 도덕적 원리를 통해 자연을 이해했고, 그 결과 자연이 인간적 가치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지 못하다고 보는 인간중심주의가 그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56) 洪大容, 『湛軒書』, 內集 권4, 「醫山問答」.

57) 같은 책, 같은 곳.

58) 丁若鏞, 『孟子要義』, 권2, 「盡心」.

59) 같은 책, 권2, 「告子」.

60) 丁若鏞, 『中庸講義補』, 권1, 「天命之謂性」.

61) 같은 책, 같은 곳.

62) 丁若鏞, 『孟子要義』, 권2, 「盡心」.

63) 崔漢綺, 『推測錄』, 권1, 「開發蔽塞」.

64) 같은 책, 권1, 「本體純澹」.

65) 같은 책, 권1, 「愛敬出於推測」.

66) 같은 책, 권1, 「萬理推測」.

67) 같은 책, 권1, 「推物理明己德」.

68) 같은 책, 권6, 「聖經本於天經」.

69) 崔漢綺, 『人政』, 권8, 「理卽氣」.

70) 崔漢綺, 『推測錄』, 권2, 「人物賴氣而生」.

71) 같은 책, 권6, 「物理有定事理無情」.

72) 崔漢綺, 『神氣通』, 권1, 「收入於外發用於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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