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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Hegel(1770-1831)/Phannomenologie des Geistes

진리를 향한 의식의 모험 : 헤겔의 정신현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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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향한 의식의 모험 : 헤겔의 『정신현상학』

 

헤겔(Georg Wihelm Friedrich Hegel)은 독일 슈튜트가르트에서 태어나 튀빙겐신학교에서 공부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관료나 법률가로 출세하기 위해 고시에 합격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당시 독일 정부의 핵심적인 정책은 기독교를 통해 국민들의 정신을 교화하고 배양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목사가 되는 것이 그 당시 사회적 출세의 등용문이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신의 자식들이 신학교에 입학해서 목사가 되기를 바랐다. 이러한 풍토에서 독일의 우수한 젊은이들은 오늘날의 우리처럼 부모의 바람에 의해 자신의 적성과는 상관없이 신학교에 진학했다.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대표적인 신학교의 튀빙겐신학교에도 유명한 시인 휠덜린과 물리학자 케플러를 비롯하여 철학자 셸링과 헤겔 등 나중에 신학과는 상관없는 분양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당대의 인물들이 수학했다.

 

헤겔은 신학교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가정교사로 생활하면서 철학을 연구한다. 이 시기에 헤겔이 저술한 책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출판되지 않았지만 매우 방대하고 깊이 있게 철학을 연구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첫 출판물은 당대의 대표적 철학자 피히테와 자신의 천재 친구 셸링의 철학 체계의 차이를 밝힌 작은 책자이며, 친구 셸링과 함께 철학 잡지에 다수수의 논문들을 발표한다. 하지만 당시에 그가 구상하고 있었던 철학 체계는 발표된 것보다 훨씬 방대한 내용의 것이었다. 당시의 미(未)출간된 저작들은 논리학과 형이상학, 자연철학과 정신철학에 걸친 전 분야에서 풍부한 논의를 망라하고 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은 그 전까지 헤겔이 연구했던 이러한 철학적 성과물을 집대성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그 어느 책보다도 풍부한 내용을 포함한다. 하지만 그만큼 난해하다. 헤겔의 주저(主著)하면 사람들은 『정신현상학』을 떠올리지만, 끝까지 정독한 사람이 드물 정도로 이 책은 매우 어려운 책이다.

 

헤겔의 철학은 철학사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으로 손꼽히는데, 그의 저서 중에서도 『정신현상학』은 가장 어려운 책 중의 하나이다. 이 책은 그 철학적 내용과 깊이 면에서 탁월한 고전으로 꼽힌다. 하지만 『정신현상학』은 그것이 갖는 무게만큼 우리의 접근을 어렵게 한다. 이 책을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기란 그 어떤 고전의 경우보다 어렵다. 특히 한정된 지면에서 『정신현상학』과 같이 복잡하고 많은 내용의 난해한 저서를 제대로 소개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과제이다.

 

나는 한정된 지면 속에서 이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정신현상학』이라는 저작의 제목이 갖는 의미와 그것이 쓰인 맥락을 설명하고 이 저작의 가장 흥미롭고도 중요한 부분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정신현상학』이라는 책의 윤곽을 그리게 하고 헤겔 사상의 고유한 특성을 맛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이 진리를 탐구해가는 의식의 경험의 학이자 진리로서의 정신이 자신을 드러내는 정신의 현상학

 

한 저작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그 제목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과 같다. 『정신현상학』이라는 책 제목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전하려는 이 책 전체의 이념을 이해하는 것이다. 제목은 그 책의 내용을 한 마디로 압축해서 표현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현상학』이라는 제목은 전문적인 의미를 갖는 다소 낮선 제목이다. 이것은 이 책의 내용이 헤겔의 철학적 체계 내에서 갖는 고유한 방법론적 특성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내용을 남김없이 소개하는 것보다는 이 책이 쓰인 배경과 상황, 그에 따른 이 책의 서술 방식과 저자의 의도 등을 밝힘으로써 이 책의 전반적인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 이 책의 소개에서 요긴한 측면일 것이다.

 

헤겔의 3대 주저(主著)는 『정신현상학』과 『논리의 학』 그리고 『법철학 강요』이다. 앞의 두 저작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의 관계처럼 서로 연관 지어 이해해야 한다. 칸트는 도덕에 관한 형이상학으로서의 『실천이성비판』을 다루기 위해 우리의 인식 능력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에 따라 『실천이성비판』의 입문서 역할을 하는 『순수이성비판』을 저술했다. 마찬가지로 의식의 경험으로서의 인식을 다루는 『정신현상학』은 헤겔의 형이상학에 해당하는 『논리의 학』으로서의 입문서이다.

 

칸트와 헤겔이 이렇게 자신의 이론 철학의 분야들을 분류한 것은 당시의 강단 철학의 대표자였던 볼프(Christian Wolff)의 구분에 따른 것이다. 볼프는 우리가 진리의 세계인 형이상학에 들어가기 전에 형이상학적 탐구의 도구인 우리의 사고를 명석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사고에 관한 훈련인 논리학을 형이상학의 예비학으로 설정했다. 그래서 볼프 철학의 제1부는 논리학과 형이상학에 할애된다. 헤겔은 처음에는 볼프에 의한 전통적 학문 명칭에 따라 자신의 철학의 제1부를 논리학과 형이상학이라고 칭했다. 나중에 논리학은 『정신현상학』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고, 형이상학은 『논리의 학』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된다.

 

볼프의 논리학을 헤겔이 정신현상학이라는 이름으로 바꾼 것은 당시에 또 하나의 중요한 학문 연구의 경향으로서 대두되었던 람베르트(Johann Heinrich Lambert)의 현상학의 영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현상’이라는 개념은 플라톤부터 라이프니츠까지 철학의 주요한 탐구의 대상이었지만, 특히 18세기의 강단 철학은 이 개념에 대한 광범위한 해명을 시도하려고 노력한다. 헤겔 시대에 ‘현상학’이라는 용어는 유명한 철학 용어였다.

 

람베르트는 진리론과 구분되는 가상론으로서 ‘현상학’이라는 이름의 학문을 구상한다. 그는 가상과 진리를 구별하는 것이 필수적인데도 이성론에서 현상학이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실제의 사태와 지각된 것 사이의 관계를 다루는 현상학 이론을 전개한다. 람베르트의 현상학은 현상으로부터 사태로, 사태로부터 현상으로 추론해 가는 경험과 연습이며, 지각의 감각적 가상 속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해명함으로써 물질세계의 참된 관계를 인식하려는 시도이다.

 

헤겔은 람베르트의 철학적 이념에 따를 뿐만 아니라 현상학이라는 이름까지도 람베르트로부터 따와 논리학을 『정신현상학』이라는 이름으로 대체한다. 헤겔이 예비학의 이름을 더 이상 볼프를 따라 논리학이라고 하지 않고, 현상학으로 바꾸었다는 사실이 말해 주는 것은, 그가 이제 진리에 도달하는 것이 단순히 사고의 훈련을 통해서 성취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신현상학은 정신이 현상하는 것을 다루는 학문이다. 정신은 진리의 형이상학인 『논리학의 학』의 내용이다. 따라서 정신현상학은 완성된 형태의 진리를 그 자체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진리가 현상하는 것을 다루는 것이다. 그런데 진리가 현상하는 영역은 의식이다. 그래서 정신현상학은 진리가 의식에 현상하는 것을 다룬다. 그런데 진리의 측면에서 보면 진리가 현상하는 것이지만, 의식의 측면에서 보면 의식이 진리를 찾아 탐험을 하는 것이다.

 

의식이 가만히 있어도 진리가 의식에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의식은 진리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 노력의 과정은 바로 의식이 진리를 경험하는 과정이다. 의식에서 진리는 아직 주어지지 않았고, 의식은 진리를 찾기 위해 경험을 수행해야 한다. 그래서 정신현상학은 의식이 진리를 찾아 헤매는 과정으로서 의식의 경험의 학이다. 실제로 1807년에 『정신현상학』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된 헤겔의 주저는 “학의 체계 제1부 정신현상학”이라는 제목의 표지를 갖고 있지만, 서문과 서론 사이에 ‘I, 의식의 경험의 학’이라는 또 하나의 중간 제목을 갖고 있다. 이 중간 제목은 이 책의 끝에까지 적용되기 때문에, 결국 1807년의 저작은 두 개의 제목을 갖고 있는 셈이다.

 

푀겔러(O. Poggeler)는 이러한 문헌학적 사실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헤겔은 본래 논리학을 본론으로 하는 한 권의 책을 도입부로서 ‘의식의 경험의 학’을 계획했다. 그런데 집필해 나가는 과정에서 계획된 도입부의 후반부가 점점 불어나 결국 계획된 도입부 자체가 한 권의 책을 출판되면서 ‘정신현상학’이라는 이름은 진리인 원리로서의 정신이 자신의 내용을 드러내는 연역적 서술의 성격을 띤다. 정신현상학은 이 두 방향에서 해석될 수 있다.

 

진리가 현상하는 장소로서의 의식을 헤겔은 자연적 의식이라고 한다. 자연적 의식은 통상적으로 우리의 인식이 그렇듯이 객관을 마주하고 있는 주관을 말한다. 그런데 진리란 주관과 객관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일치된, 통일됨을 의미한다. 진리를 탐색하는 의식의 경험은 대상을 자신과 일치시키고 대상에 자신의 지식을 적중시킨다. 하지만 이 지식이 참인지를 검사해 보면 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절망에 빠진다. 다시 대상에 대해 지식을 비교하고 또 좌절하는 과정을 되풀이 하면서 자연적 의식이 갖는 지(知)는 점점 진리에 가까워진다. 이런 식으로 결국 진리에 도달하게 되는데, 진리란 대상과 의식이 일치하는 것이므로 의식의 경험의 종점에서 자연적 의식은 더 이상 의식이 아니라 정신이다. 왜냐하면 의식이란 대상과 분리된 주관이기 때문이다. 대상과 통일된 정신의 내용은 그 자체 진리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연적 의식이 자신의 진리를 찾아 온 과정은 이제 그 종점인 정신에서 볼 때는 정신의 진리가 자연적 의식의 경험의 과정 속에서 서서히 드러난다. 현상했던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의식의 경험의 학은 곧 정신의 현상학이다.

 

<정신현상학>의 백미,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정신현상학』의 「자기의식」 장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포함하는데,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은 『정신현상학』뿐만 아니라 헤겔 철학 전체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동물적 삶에 머물지 않고 자존감을 지닌 자기의식으로서 인정받기 원하는 인간들의 처절한 투쟁을 통해 주인과 노예의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박진감 넘치는 한 편의 철학적 드라마를 상상하게 된다. 더욱이 숨 가쁜 결전이 끝난 후에 이 처절한 투쟁의 저변에서 전개된 변증법적 반전을 끌어내는 헤겔의 정치한 논리를 감상하자면, 우리는 『정신현상학』이 실로 대단한 고전임을 실감하게 된다.

 

인정투쟁과 주인과 노예 관계의 성립

 

헤겔은 개인 간의 인정투쟁이라는 모델로부터 사회의 형성을 설명한다. 개인은 각각 한편으로 자기의식을 가지면서 다른 한편 생명을 갖는다. 말하자면 인간은 누구나 동물과 마찬가지로 생명을 가지면서 동물과 달리 ‘자기의식’을 갖는다. 그런데 사회의 출발점은 인간들이 서로 상대방을 인격으로서가 아니라 욕망의 대상으로서만 보면서 전개되는 생사(生死)를 건 인정 투쟁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을 인정하기보다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원한다. 남을 자기의식으로서 섬기기보다 남의 자기의식을 부정하고 남이 자신의 자기의식을 존중하며 섬겨 주기를 바란다. 서로의 욕망이 충돌하여 인정을 받기 위해 싸움이 일어나는데, 이 싸움은 자기의식을 갖는 인간으로서 대우받느냐, 아니면 자신의 자기의식을 인정받지 못하고 인간으로서 대우받기를 포기하느냐를 결정하는 중대한 투쟁이기 때문에 각각은 자신의 생명을 걸고 투쟁을 한다.

 

이때 한 쪽의 자기의식은 동물적 생명을 초월하여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생명에 대한 예속에서 벗어나 타인의 인정을 획득하고, 주인의식이 된다. 한편, 다른 쪽의 자기의식은 자기의식으로서 자신을 주장하기보다 죽음을 두려워하여 생명에 집착한 결과, 주인의 허락을 받아 사물로 안주하고 노예 의식이 된다. 이렇게 하여 주인-노예의 관계가 성립된다.

 

주인-노예 관계의 변증법적 반전

 

그런데 이렇게 형성된 주인-노예 관계를 논리적으로 고찰해 보면 외관상의 관계와는 반대의 내용으로 관계가 뒤집힌다. 주인의 자기의식은 “자기=자기”라는 동어 반복의 성격을 지난 추상적인 자기의식이다. 주인은 자연에 직접 관계하지 않고 노예의 노동의 결과를 향유한다. 그런데 주인은 노예를 통해서만 대상에 관계하고 노예를 통해서만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때문에 주인의 욕구 충족은 노예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주인이 주인일 수 있는 것은 노예를 통해서이기 때문에, 주인 개념은 노예에 예속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주인의 외관상 자립적인 의식은 비자립적인 의식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한편 노예는 주인과 사물을 매개하면서 두 자립성을 부정하지 못한다. 노예는 이처럼 노동과 예속이라는 이중의 고통 속에 있다. 노예는 사물세계와 사회세계로부터 밀려나서 자신 안으로 떠밀려듦으로써 현실을 등지고 내면세계로 도피한다.

  헤겔은 이러한 노예의 의식을 떠밀려든 의식이라고 한다. 떠밀려든 의식 속에서 노예는 주인과 사물이 갖지 못하는 철학적 사색에 의해 사변적 사유세계를 구축한다. 노예의 철학적 사색의 내용은 이렇다. 주인은 주인인 자기만이 자유로워야 하고 노예는 당연히 예속되어야 한다는 편협한 사유를 하지만, 노예는 주인도 인간이기 때문에 자유로워야 하지만 노예인 자신도 인간이기 때문에 자유로워야 한다는 보편적 자유의 이념을 깨닫게 된다. 노예는 한편으로 주인을 통해 독자성에 대한 경험을 획득한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의 고유한 독자성이 아니므로 현실적이 아닌 독자성, 즉 가능적 독자성이다. 노예는 주인이 자유롭고 대담하며 용맹하고 과감하다는 사실, 즉 주인의 독자성을 주인으로부터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다른 한편 노예는 사물을 가공하는 노동 속에서 자신의 본질을 발휘하고 자기와 사물과 통일을 실현한다. 노예는 노동을 통해 자연에 대한 의존성을 지양하면서 자신이 독자적인 존재라는 것을 인지한다. 그래서 주인을 통해 깨달은 독자성은 노동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고유한 것으로 인식되면서 현실화된다. 이것은 이제 현실적인 독자성이다. 이리하여 주인이 노예이고, 노예가 주인이라는 변증법적 반전이 일어난다.

 

주인-노예 변증법은 시민 사회 창출의 논리

 

헤겔의 주인-노예 변증법은 생명사상을 확대하여 자기의식의 상호 인정에 의한 욕구 체계로서의 사회이론을 구축했다. 주인-노예의 논리는 동시에 주인-노예 관계의 해체의 논리이기도 하다. 그것은 전근대적인 인간관계를 해체하고 오직 법만이 인간관계를 매개하는 근대적 인간관계로 전환되는 사회의 이행을 논리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그것은 노예제의 해체 지배의 원리에서 자유의 원리가 작동하는 사화로의 이행의 논리적 필연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행된 사회가 시민 사회이므로, 헤겔의 주인-노예 변증법은 시민 사회 창출의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일반적 분업 관계가 지배하는 시민 사회로의 이행을 그리고 있다.

 

근대 시민 사회에서는 사회 형성의 원리로서 노동이 중요시된다. 헤겔에 따르면 노동은 자연의 가공을 통해 자기의식을 자연에 부과하며, 이러한 자기의식의 본질을 실현함으로써 의식이 발전해 가는 원동력이 된다. 헤겔은 노동이 사회 형성의 원리일 뿐 아니라 인간의 본질이라고 본다. 헤겔은 노동을 통해 사회를 형성하는 노예의 노동만이 보편적 자유의 이념을 실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노예가 주인이 되는 사회를 시민 사회로 그리고 있다. 시민 사회에서는 각 구성원이, 남이 소비할 상품을 공급해 주는 한에서 남을 섬기는 노예이며, 남이 생산한 상품을 향유하는 한에서 남의 주인이 된다. 시민 사회는 사람들이 누구나 노예이면서 동시에 주인인 사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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