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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J. Derrida, 1930-2004)

데리다의 대리 보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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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는 서구 사상이 그토록 중요시하는 현전, 기원 같은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현전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 재현이나 흔적에 불과한 문자 같은 것이 우리에게 더욱 살아 숨쉬는 어떤 것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런 개념을 '대리 보충'과 '대리 보충에 의한 대리 보충'으로 설명한다. 

 

가령 소크라테스는 문자를 경계했다. 소크라테스는 한순간 발생하고 사라지는 말을 글이 보존하고 시간의 한계성을 뛰어넘을 수 있지만 이 문자가 왕의 명령을 대신할 경우 쉽게 위조되고 신하들이 남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왕의 권력은 약화되고 왕권도 찬탈될 수 있다. 문자는 원래 말의 부재 시 말을 보존하고 대신하기 위한 '대리 보충'에 불과하지만 역으로 말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왕의 권력 자체가 문자라는 대리 보충물 없이 성립할 수 없다. 왕은 문자가 없으면 왕이 오랫동안 전쟁터에 나갈 경우 왕권이 유지될 수 없으며 광범위한 국가를 다스리기 위해 왕이 직접 모든 곳을 돌아다녀야 한다. 결국 왕의 말을 대신할 문자가 왕의 권력을 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한 왕과 신하의 관계를 정립하는 데 필요하다. 왕은 어느 곳이나 현존할 수 없기에 지방 관리는 왕의 권력을 대신한다. 왕이 너무 멀리 있기에 지방에서는 지방 관리가 최고 권력자다. 지방 관리의 힘은 왕권이 뒤에서 힘을 대리 보충해 주기에 가능하다. 원래 지방 관리가 왕의 대리 보충물이었으나 이제는 왕이 대리 보충물이 된 것이다. 이런 왕의 권력을 '대리 보충에 의한 대리 보충'이라 한다. 이것은 말과 문자의 관계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말이 부재할 경우 문자가 말을 대신함으로 문자는 말의 대리 보충이 된다. 오늘날 고대의 위대한 철학자들의 말을 글로 접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이미 죽었고, 문자만이 시간을 초월해 우리 앞에 있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그들이 아무리 위대한 사상을 말했다 하더라도. 글만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들의 말이 아니라 글인 것이다. 우리는 그것이 그들의 말이라고 믿고 읽는다. 기원이었던 그들의 말은 이제 대리 보충인 글의 대리 보충을 하고 있다. 

 

이는 저자보다 텍스와 독자를 중요시하는 롤랑과도 맞닿아 있다. 이로써 기원에 대한 믿음은 거부되고 말과 문자의 위계는 무너졌다. 말의 절대적 권위는 죽었다. 데리다는 이런 위계질서의 전복을 해체라 부른다. 글과 문자의 위계처럼 단어 또는 언어에도 위계가 무의식적으로 존재한다. 그것은 남녀, 위아래, 앞뒤, 서양동양 등과 같은 이항대립 쌍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위계를 동등하게 만들자는 것이 해체주의다 

 

 데리다는 말의 권위가 죽음을 맞이하는 곳에서 다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무덤을 뜻하는 A를 이용해 차이를 차연으로 만들었다. 차이라는 단어 difference의 세 번째 음절을 a로 바꾼 것이다. 차이가 고정된 의미라면, 차연은 현재진행형을 의미하고 끝없이 연기됨을 의미한다. 번역어 차연은 차이와 연기를 합친 말이다. 이 말은 소쉬르가 언어를 차이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 것에서 기인한다. 차이를 통해 언어가 의미를 만들지만, 그것의 의미가 라캉의 말처럼 고정되지 못하고 계속 그 뜻이 연기되는 것을 의미한다. 단지 차연에는 시간의 변화 속에서 계속 의미가 바뀌는 것에 더 많은 초점이 있다. 

 

 

눈에비친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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