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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孟子, 기372-기289)

맹자의 삶과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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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 공자가 죽고 백여년 후에 태어났다. 현재 산동성의 추현 지방인 주나라 사람이며 노나라의 귀족인 맹손 집안이다. 맹손은 가세가 기울자 노나라를 떠나 주나라로 갔다. 4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 혼자 맹자를 키우셨다. 맹자의 어머니는 맹모삼천지교와 같은, 헌신적인 교육으로 유명하다. 공동묘지 근처에 살자, 아들이 장례식 놀이를 하고, 시장 근처에서 살자 장사놀이를 하고, 학교 근처로 이사가자 선생님과 학생들 흉내를 내었다는 이야기다. 맹자공자의 교의를 깨우친 뒤에 여러나라를 돌며 공자의 뜻을 펼치려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등나라에서는 높은 벼슬을 제안받기도 했으나 거절했다. 이후 노나라로 돌아와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맹자>를 저술했다.  

 

두 개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맹자가 양나라에서 뜻을 펼치려 할 때 혜왕은 "어떻게 하면 나라에 이익이 있을 수 있을까"를 물었다. 맹자는 "왜 이득만을 논하십니까. 보다 더 인의를 높이셔야 합니다. 왕이 오직 그 나라의 이익만, 신하들이 가족의 이익에, 벼슬아치들과 백성들이 개인의 이익에만 급급하면 위아래가 서로 이익을 위해 싸울 것이며 나라는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정의보다 이익을 더 중히 여기면 다른 사람의 소유물을 뺏지 않고는 못 배길 것입니다"라고 말했고 혜왕이 영토를 잃고 그 전쟁에서 아들이 죽어 복수를 위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묻자 "난폭한 힘에 의지하지 말고 형벌을 줄이고 과도한 징세를 폐지하고 자신의 덕을 닦음으로 선정을 베푸십시요. 그런 환경에서만 백성들은 적군의 강력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에 대항하기 위해 몽둥이라도 들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제나라에 머물 때는 주색잡기에만 관심있던 왕에게 "임금님의 신하 중에 한 사람이 자기 처자를 벗에게 부탁하고 초나라로 여행을 떠났는데 돌아와 보니 처자가 떨며 굶주리고 있다면 그런 벗을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런 벗과는 절교를 해야지요"라고 왕은 대답했다. 또 "재판장으로서 부하들을 잘 다스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묻자 "그런 자는 파면을 시켜버려야지요"라고 답했다. "만약에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왕은 대답대신 좌우를 둘러보며 들리지 않게 뭐라고 중얼거렸다. 

 

당시는 정치적인 불안이 계속되는 무정부 상태로 사회가 크게 동요하던 전국시대였다. 전국시대는 정쟁이 일상이던 시대였고 병역의 의무와 징세로 백성들은 풍년이 들어도 비참한 삶을 살아야 했다. 나라에서는 훌륭한 인재를 모으는 것이 중요했던 터라 여기저기 방랑하는 외교가와 정치가들이 많았다. 이들에게는 그것이 영달의 기회이기도 했다. 맹자는 이런 상황 속에서 유교의 뜻을 펼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고 한 제자가 "왜 싸우는 것을 좋아하십니까"라고 묻자 맹자는 "내가 왜 싸움을 좋아하냐고? 그럼 어떻게 한단 말인가? 옛날 우왕은 넘치는 물을 잘 다루어 세상의 질서를 잡았고 주공은 야만족을 정벌하였고 공자는 <춘추>로 역적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나는 세명의 성현을 다라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잡고 이단적인 사상을 깨끗이 없애고 온당치 못한 것을 금하며 방탕한 언행을 삼가겠다. 내가 싸움을 좋아한다고? 별수 없지"라고 말했다. 

 

당대의 이단적인 사상에 대해서는 "양자묵자의 주장이 천하에 퍼지고 있다. 양자의 주장을 취하지 않는 사람이면 묵자를 취한다. 그러나 양자의 자애설은 임금의 권리를 권리를 배제한 것이고 묵자의 포괄적인 사랑은 부모의 입장을 개의치 않는 것이다. 어버이와 군주됨을 없앤다는 것은 인간을 짐승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만일 양자묵자의 교의를 막지 못하고 공자의 가르침을 장려하지 않는다면 사악한 학문이 백성을 어지럽게 하고 인도적인 마음씨와 의의 길을 막을 것이다. 그리고 짐승들이 사람을 잡아먹고 사람이 사람을 서로 잡아먹어 멸망할 것이다"라고 말했고 왕도 스스로 먹을 것을 위해 들에서 일하는 단순한 삶을 즐기는 것을 주장한 신농에 대해서는 정치와 농사는 함께 할 수 없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어떤 종류의 일은 훌륭한 사람에게 적합하고 어떤 일은 소인에게 적합하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만든 산물을 공급받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군주가 스스로 일용품을 만들어야 한다면 세상은 혼란에 빠지고 질서를 잃을 것이다. 다스림을 받는 사람이 식량을 생산해 다스리는 사람을 먹여 살리는 것은 보편적으로 인정받은 원리다"라고 말했다. 

 

눈에비친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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