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 크립키(Saul Kripke)의 <이름과 필연(Naming and Necessity)>(직역하면 <명명(命名)과 필연>이다)은, 1980년에 처음 단행본 형태로 출간되었지만, 이미 현대 철학에서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크립키가 원래 1970년에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행했었던 사흘에 걸친 철학 강연에 기초해 있다. 처음 이 강연이 행해졌을 때부터, 많은 철학자들은 그가 내놓은 생각들이 곧 현대 철학의 역사를 뒤바꾸어 놓으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이루는 세 강연에서 크립키는 언어철학, 논리철학, 형이상학, 심리철학 등 다양한 철학 분야에서의 여러 문제들을 서로 연관시켜 논의하면서 각 문제들에 대해 매우 참신하고 독창적인 대답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여기서 논의하는 중요한 철학적 문제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고유명사의 의미가 ‘고대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와 같은 한정 기술구(definite des- cription)의 의미와 동일시될 수 있는가? 모든 선험적 지식(경험에 그 정당성을 의존하지 않는 지식)이 필연적(진리에 대한) 지식이고, 모든 필연적 지식이 선험적 지식인가?
통세계적 동일성의 문제(예를 들어, 현실세계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가능세계에서의 누구와 동일시되어야 하는가)는 해소될 수 있는가? 어떤 대상이 본질적 속성을 지니는 것이 가능한가? 심리적 상태(예를 들어, 아픔)는 어떤 특정한 물리적 상태(예를 들어, C-신경 섬유 활성화)와 동일한 상태로 간주될 수 있는가?
크립키는 이미 18세의 나이에 양상 논리학(가능성과 필연성 등의 이른바 양상 개념을 포함하는 논리학)에 대해 체계적 의미론을 제시하고 중요한 논리학적 증명(‘완전성 증명’)을 이루어낸 천재적인 철학자이다.
그는, 그가 원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양상 논리학에 대한 고려로부터, 상당히 흥미로운 철학적 함축들을 이끌어내었다고 할 수 있고, 위의 문제들에 대한 그의 대답들은 바로 이러한 고려에 기초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위의 문제들에 대한 크립키의 대답들은 순서대로, ‘아니오’, ‘아니오’, ‘예’, ‘예’, ‘아니오’이다.
보다 흥미로운 부분들은 그가 이런 대답들을 어떤 사유 과정을 통해 대답하는가, 그리고 이 대답들이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가 드러나는 곳들이다.)
최근의 영미 철학에서 활발한 여러 철학적 논의들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크립키의 이 책을 숙독하는 것은 거의 필수불가결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만큼 이 책은 오늘날의 영어권 철학에 대해 가장 심대한 영향력을 미친 책 중의 하나이다. 그 뿐만 아니라, 이 책의 명쾌하고 기발하면서 정곡을 찌르는 논의 방식은 이 책을 읽는 경험을 지적인 즐거움으로 만들어 준다.
더욱이 다행스럽게도, 정대현 교수와 김영주 선생의 믿을 만한 한국어 번역 (서광사) 역시 나와 있다.
선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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