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그물망 안에 갇혀 길들여지는 인간들의 삶
대학 새내기들을 상대로 따끈따끈 인기 있는 사상가를 조사하면 과연 누가 손꼽힐까?
어느 영역이나 그러하듯 사상계에도 유행은 있는 법이라서 철학의 별들 역시 사조에 따라 명멸과 부침을 거듭한다. 하지만 계절불문 유행을 타지 않는 스테디셀러 사상가도 분명 존재하게 마련이다. 눈이 핑핑 돌 만큼 한시가 바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꾸준한 지지를 받는 항온성(恒溫性) 사상가는 과연 누군지 궁금하지 않은가? 그는 도대체 무슨 화두를 던졌기에 변덕 심한 대학 새내기들이 해를 거듭하면서도 변치 않는 성원을 보내고 있을까?
몇 사람의 이름이 머릿속을 스쳤겠지만 거두절미하고 정답을 말하자면 미셸 푸코(Foucault)가 그 주인공이다. 푸코의 사상적 특징을 아는 이들은 어떠한 연유로 대학 새내기들에게 푸코의 인기가 높은지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미셸 푸코(Michel Paul Foucault:1926~84)는 '광기의 역사(1961)','언어와 사물(1966)','지식의 고고학(1969)','감시와 처벌(1975)' 등을 집필하여 1960~70년대 급진적 젊은이들을 매료시킨 프랑스 사상가이자 동시에 알제리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고 인종차별주의 철폐에 앞장섰던 활달한 정치 행동가였다.
언급된 대표 저서의 제목만 훑어보더라도 푸코가 심리학 · 정신병리학 · 정치철학 · 사상사 등 다방면에 걸친 활발한 탐구욕을 가졌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광범위한 주제에 대한 푸코의 모색은 그가 연구의 결론을 정리할 때마다 세간의 이목을 끄는 저술로 탄생했고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푸코는 세상의 지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고 변화하는지 탐구했고 각 개인들의 생각은 사회의 체제와 언어구조가 지배한다고 주장하였다.
지식은 권력과 은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모든 지식은 정치적이라고 주장하였던 푸코는 특히 1975년에 발간한 '감시와 처벌'에서 근대세계와 인간 지배의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해 권력의 정체와 구조를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감옥의 탄생'이라는 부제(副題)가 붙은 '감시와 처벌' 안에서 푸코는 지배계급이 권력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활용하는 통치구조와 억압적 방식을 예리하게 파헤쳤다. 이 책에서 푸코가 활용한 '미시권력'과 '판옵티콘(중앙의 감시자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모든 죄수를 감시하는 구조로 만들어진 원형감옥)'이라는 표현은 일약 유행어가 될 만큼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었다.
'감시와 처벌'은 책 제목 그대로 형벌의 이론 및 제도에 대한 역사적 성찰을 통해 근대적 감옥의 출현을 소개한다. 그리고 근대적 감옥질서와 함께 도입된 규율 · 훈련 · 교정 · 관찰 등의 방법이 일반사회에서 어떻게 권력기술로 작용해 왔는지를 치밀하게 규명한다.
푸코는 권력의 진정한 실체를 거시권력이 아닌 미시권력으로 파악하였다. 즉 권력을 사회 안에서 복잡하고 정교하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지배기술과 전략으로 인식했으며 그러한 권력의 전략적 목표는 인간 신체라는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권력층이 피치자의 신체에 대한 잔인한 폭력이나 고문 등의 공포행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였던 반면 근대권력은 감옥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일반사회로부터 감추면서 인간 신체를 부드럽게 통제하고 지배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푸코는 이러한 처벌방식 개선이 죄수에 대한 인도주의적 인식변화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권력기술이 세련되게 근대화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근대의 부드러운 지배방법은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산출하는 경제적 통제방식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옥 안에서 작동하는 감시자와 죄수의 관계는 감옥 밖 사회에서의 권력층과 인간 사이의 관계로 연장된다.
예를 들자면,학교에서 학생들은 죄수처럼 온갖 감시와 시험 속에서 규율에 길들여지고 순응하게 된다. 군대나 공장 같은 일터도 마찬가지다. 엄격한 통제 속에서 군인과 노동자들은 자신의 행동을 권력의 의도대로 훈련시키는 예속화 과정을 거쳐 종래에는 자신 스스로를 감시할 만큼 규율을 내면화한다. '감시와 처벌'은 우리가 표면적으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온갖 통제와 규율에 조련된 순한 죄수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권력이 인간 신체를 비롯해 행동과 관념까지 각종 훈육으로 길들인 이 사회에서 우리는 촘촘하고 미세하게 뻗어 있는 권력의 그물망 안에 갇혀 모든 것이 낱낱이 노출되는 삶을 이어간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대학 새내기들에게 '감시와 처벌'이 변함없는 인기를 자랑하는 이유이다.
'감시와 처벌'은 누구나 씁쓸하게 음미할 내용을 담고 있지만 갑갑한 수험생활을 막 끝내고 숨통을 틔우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대학 새내기들에게는 더욱 날카롭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 기출제시문 1 (연세대학교 1999학년도 논술)
<논제>
다음 글(데카르트,'방법서설': 미셸 푸코,'감시와 처벌': 다니엘 디포,'로빈슨 크루소')에 공통적으로 들어있는 사고방식의 특성을 설명하고 그것이 20세기 한국사회와 한국인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쳐 왔으며 그 한계가 무엇인지 1800자 안팎으로 논술하시오.
<제시문>
1830년대에 레옹 포쉐가 작성한 「파리 소년감화원을 위한 규칙」은 다음과 같다.
제17조: 재소자의 일과. 재소자의 일과는 겨울에는 오전 6시,여름에는 오전 5시에 시작한다. 노동시간은 계절에 관계없이 하루 9시간으로 한다. 하루 중 2시간은 교육에 충당한다. 노동과 일과는 겨울에는 오후 9시 여름에는 오후 8시에 끝낸다.
제18조: 기상. 첫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재소자는 조용히 기상하여 옷을 입고 간수는 독방의 문을 연다. 두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재소자는 침상에서 내려와 침구를 정돈한다. 세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아침기도를 하는 성당에 가도록 정렬한다. 각 신호는 5분 간격으로 한다.
제19조: 기도. 아침기도는 감화원 소속 신부가 주재하고 기도 후에 도덕이나 종교에 관한 독송을 행한다. 이 일은 30분 이내에 마치도록 한다.
제20조: 노동. 여름에는 5시45분 겨울에는 6시45분에 재소자는 마당으로 나와 손과 얼굴을 씻고 빵 배급을 받는다. 뒤이어 즉시 작업장별로 정렬하여 일을 하러 나가야 하는데 여름에는 6시 겨울에는 7시에 시작해야 한다.
제21조: 식사. 10시에 재소자는 노동을 중단하고 마당에서 손을 씻고 반별로 정렬하여 식당으로 간다. 점심식사 후 10시40분까지를 휴식시간으로 한다.
제22조: 학습. 10시40분에 북소리가 울리면 정렬하여 반별로 교실에 들어간다. 읽기 쓰기 그림 그리기 계산하기의 순서대로 한다.
제23조: 12시40분에 재소자는 반별로 교실을 나와 마당에서 휴식을 취한다. 12시55분에 북소리가 울리면 작업장 별로 다시 정렬한다.
제24조: 1시에 재소자는 작업장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노동은 4시까지 계속한다.
제25조: 4시에 작업장을 나와 안마당으로 가서 손을 씻고 식당에 가기 위해 반별로 정렬한다.
제26조: 저녁식사 및 휴식은 5시까지로 하고 재소자는 다시 작업장에 들어가야 한다.
제27조: 여름에는 7시 겨울에는 8시에 작업을 종료하고 작업장에서 하루의 마지막 빵 배급을 받는다. 교훈적인 뜻이나 감화적인 내용을 담은 15분간의 독송을 재소자 1인 혹은 감시인 1인이 하고, 이어서 저녁기도에 들어간다.
제28조: 여름에는 7시 반 겨울에는 8시 반에 재소자는 마당에서 손을 씻고 복장 검사를 받은 뒤 독방 안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첫 번째 북소리가 울리면 옷을 벗고 두 번째 북소리가 울릴 때 침상에 들어가야 한다. 각 방의 문을 잠근 후 간수들은 질서와 침묵을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복도를 순회한다.
⊙ 기출제시문 2 (서강대학교 2007학년도 수시2-1 논술: 문학/사회과학/커뮤니케이션학부)
<논제>
다음 네 개의 제시문(청산별곡: 베르톨트 브레히트,'연기': 자크 라캉,'선과 빛': 미셀 푸코,'감시와 처벌')에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각각 다르게 나타나 있다. 이 네 가지 관계를 서술하고 그 중 하나의 입장을 선택하여 나머지 셋을 비판하시오. (1200~1400자)
<제시문>
벤덤이 생각한 '원형감시시설'의 원리는 잘 알려져 있는 대로 주변에는 원형의 건물 중앙에는 탑을 배치하고 탑의 원기둥 둘레에 건물 내부를 향한 커다란 창을 몇 개 내는 것이다.
탑 주변의 원형건물은 독방들로 연결되어 있다.
독방에는 두 개의 창이 있다.
하나는 탑의 창에 대응하는 위치에 내부를 향하여 있고 다른 하나는 외부를 향하고 있어 빛이 독방을 통하도록 하는 것이다.
중앙의 탑 속에 감시인을 한 명 배치하고 각 독방에는 광인 병자 수형자 노동자 생도 등을 한 사람씩 유폐한다.
역광의 효과로 독방에 있는 인간의 그림자들의 자세를 미세한 변화까지 중앙 탑으로부터 파악할 수 있다. (…중략…)
이제 각자는 자신의 장소에 놓여지고 독방에 유폐되어 감시자에게 완전히 보여지고 있으며 독방의 측면 벽 때문에 같은 무리들과 접촉할 수는 없다. (…중략…)
원형감시장치는 '보는 것'/'보이는 것'이라는 대립된 사태를 분리하는 기계장치이다.
그 원형건물의 내부에서 독방에 유폐된 자들은 완전히 보이지만 결코 볼 수 없고 중앙 탑 속의 사람은 일체를 보지만 결코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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