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철학자 알튀세(Louis Althusser, 1918 ~ 1990)는 소련 공산당 스탈린주의의 문제점을 스탈린 개인이나 개인 숭배에서 찾기보다는 마르크스를 비과학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처럼 문화나 과학도 그 계급에 맞게 존재한다는 스탈린주의의 경제결정론, 루카치의 헤겔적, 인간주의적 마르크스주의 등을 비판했다.
즉 모든 관계의 본질에는 모순이 있어, 그 전개 양상이 아무리 복잡해도 본질적인 기본 모순으로 다시 환원될 수 있다는 헤겔식의 사유를 거부하고 다양한 수준의 외부적 조건들이 기본 모순 자체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자본주의사회의 기본 모순은 자본가와 노동자의 모순이지만, 어떤 때는 농민들과 지주의 모순이, 또 어떤 때에는 제국주의와 식민지의 모순이 사회 전체의 중심으로 부상한다고 말했다. 특히 경제적 토대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종래의 경제결정론적 해석을 거부하고 경제적인 것, 정치적인 것, 이데올로기, 과학 등과 같은 사회적 심급들을 내세우는 중층결정이라는 복합구조를 도입했다. 각 심급은 다른 심급에 환원되지 않고 각자가 자율성을 지니며 상호작용한다. 이 심급들은 경제라는 최종 심급에 연결되어 있지만, 각 심급이 상대적 자율성을 갖게 될 뿐만 아니라 각 국면 국면을 산출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로써 이들 심급들은 헤겔처럼 인간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구조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움직인다. 그 움직임은 헤겔의 절대정신이나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처럼 인간성의 실현이라는 목적을 향해갈 수 없는, 기원도, 목적도 없는 과정에 불과하다. 우리는 출발지도, 목적지도 모른 채 역사의 기차에 올라타 가고 있는 것뿐이다.
마르크스는 한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이고 피지배계급의 입장에선 거짓된 의식, 허위의식이다. 아마 지배, 피지배가 사라지면 그 허위들도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알튀세는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해도 이데올로기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 주장한다. 이데올로기란 사회가 주입하는 상식과 같은 것으로,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자신의 행위 등을 결정하게 해주는 체계이기 때문이다. 어떤 주체도 이데올로기 없이는 존립이 불가능하고 어떤 사회도 그렇다.
알튀세는 이런 이데올로기 개념을 프로이트, 라캉의 이론과 결합해 호명이라 불렀다. 가령 '모세야'하고 부르는 유대교 신의 부름에 "예"라고 답함으로써 모세는 히브리족을 이끄는 주체가 된다. 신의 부름이 개인의 자리를 알려주고 해야 할 일을 정해준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신, 부모, 혹은 사회라는 구조가 지정한 자리를 나의 자리로 세뇌 되는 것이고 그것을 통해 큰 구조의 노예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눈에비친햇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