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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 Bergson(1859-1941)/베르그송

균일하고 규칙적인 시간과 역동적이고 변화하는 시간이 있다 - 베르그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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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그송은 파리에서 태어났다. 에콜 노르말을 졸업하고  콜레드 드 프랑스의 철학교수가 되었다. <웃음>, <창조적 진화>, <정신적 에너지>, <정신과 지속성>, <시간과 자유의지>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 등의 저서를 발표했고 1927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유대인인 그는 말년에 신비주의 성격을 띠었고 가톨릭의 세례도 받고 싶어했다. 로마 교황청은 한 때 그의 모든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 

 

베르그송의 철학에서 시간의 개념은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는 분이나 시와 같은 균일한 매개체로 이해하는 규칙적인 과학의 시간개념과 인간이 경험하는 역동적이고 변화하는 생명 자체로서의 흐름으로 사건을 이루는 시간을 구분한다.  전자의 시간개념과 작용하는 것은 지성이다. 지성은 모든 것을 분리된 개별적 대상 또는 사건들로 조직화하고 개념화해 사실상 실재 그 자체는 지니지 않은 정리되고 질서있는 특성을 실재에 부여한다. 지성주의는 편리하게 생존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실용적인 유용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실재가 어떻게 일어나는 지에 대한 잘못된 그림을 갖게 한다. 실재 세상에서 언어나 도식화로 그릴 수 있는 동일한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존재하는 것은 항상 상이하게 변하는 경혐의 유동일 뿐이다. 이것은 움직임 없는 공들이 줄줄이 연속해 펼쳐져 있듯 공간 안에 연장되어 있거나 어떤 정밀한 시간 측정기로 측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관찰하기에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존재는 다만 살아갈 뿐인 심오한 자기자신이다. 자유는 실재에 대한 우리의 직접적이고 비공간적인 경험과 관계된다. 이것은 느낄 수 있을 뿐 설명할 수 없고 인간 행동이 스스로 자기 존재의 총체성으로부터 이끌어져 나올 때만 발휘된다. 그런 행위는 때때로 예술가와 그의 작품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과 같은 막연한 유사성을 갖는다. 이런 종류의 자유는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각자의 자유는 자기 자신에게만 유일한 것이어서 타인이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은 실재의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경험을 생의 비약(elan vital)이라 말하며 이 보다 지성, 이성, 과학을 우위 두려는 모든 견해에 반대한다. 학자들은 이를 반지성주의라 부른다. 그는 어떤 목표나 목적을 향한 운동으로 실재를 묘사하려는 이론, 역사적 유물론, 기계론 등을 거부하고 어떤 종류의 개인적 목적이 각 유기체의 기능을 통제한다는 견해도 거부한다. 오직 생명력인 생의 비약이 모든 사물의 창조적 진화를 초래한다. 이 에너지는 규정할 수 있는 어떤 목표가 없다. 형태들의 끊임없는 변화를 발생시키는 원천적이고 창조적인 힘으로 물질의 분열과 관성적 성격을 극복함으로 자유를 증대시킨다. 이것은 신과 같고 그 신은 이미 다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생명활동을 하는 자유와 같다. 우리가 자유롭게 활동할 때 우리 안에서 그것을 경험한다. 하지만 베르그송은 자신은 범신론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의 삶은 거대하고 조각없는 전체다. 하지만 직접적이고 직관적인 파악으로 끊임없이 흐르는 실재시간에 참여할 때 분열되지 않는 전체로 인식할 수 있다. 직관이란 비개념적이다. 그것은 우리를 대상의 안으로 들어가게 해준다. 본능으로부터 도출된 직관은 사물의 살아있는 본성 안으로 참여케 해준다. 반대로 지성은 대상을 지칭하기 위한 기호를 사용하여 대상을 바깥에서만 관찰할 수 있게 해준다. 그에 따라 역설과 거짓이 발생할 수 있다. 지성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직관은 지성이 결합되면 더욱 더 발전한다. 그러면 심오하고 지속적인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 

 

눈에비친햇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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