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컨은 대법관인 아버지와 라틴어와 그리스에 능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UK 궁정 안에서 성장하며 12살 때 케임브리지에 입학했고 16세에 프랑스에서 대사의 수행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1584년 하원에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첫 연설이 엘리자베스 여왕의 심기를 건드려 오랫동안 중요 임원으로 발탁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훌륭한 정부 관리가 되려는 열망을 숨기지 않았고 다방면으로 공부하고 노력하며 신망을 얻어갔다. 어린시절부터 지식을 총제적으로 재구성하고 발전시키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방법론으로 고민했을 뿐 아니라 그로 인해 얻은 지식이 인간의 존엄성과 탁월성을 증진시킬 수 있을 지에 대한 문제를 화두로 갖고 있었다. 마침내 제임스 1세가 즉위한 후 기사작위를 받았고 1618년 아버지와 같은 대법관의 지위에 올랐다. 또한 베를람시의 시장이 되었으며 1621년에는 자작이 되었다. 하지만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뇌물혐의로 구속되었고 모든 자격박탈을 당한 후 모든 공직 경력이 끝났다. 이후 그의 삶은 연구와 저술로 생활 했으며 살이 냉기에 얼마나 견딜 수 있는 지에 대한 연구를 위해 닭의 몸통을 눈으로 채우는 실험을 하던 도중 걸린 기관지염으로 인해 사망했다.
17세기의 성직자들은 자연을 탐구하는 행위를 죄악시 하는 것에 반대해 베이컨은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으면서 고도의 체계를 갖춘 지식을 획득하고 그걸로 자연에 대한 지배권을 갖고자 했다. 자연을 연구하는 것을 신성시하고 그대로 자연의 모습을 통해 신을 인식하려 했던 당시 기독교 철학과는 달리 순수한 그대로의 자연에 관한 지식과 선악은 다른 것이며 자연을 연구한다고 신의 모습에 다가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며 당시의 기성세대 철학자들과 논쟁을 벌였다.
베이컨은 올바른 지식의 훼방꾼으로 4가지 우상을 지적한다. 먼저 종족의 우상은 인간의 본성자체, 인간종이 인식할 때 실재를 왜곡하는 데서 발생한다. 그 다음 동굴의 우상은 개인의 개별적인 성향, 특이성, 편견 등에서 발생한다. 시장의 우상은 사람들의 만남과 회합에서 잘못 혹은 부적합하게 사용해서 생긴 말로 인해 생긴 것이며 극장의 우상이란 교리, 체계, 이론 등 과거의 전통적인 권위에 기대어 생각하고 말하는 경향을 말한다. 베이컨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연역법과 삼단논법으로 이룬 세계들을 거부하고 이런 우상들을 극복하기 위해 베이컨은 귀납법을 제창한다. 그로 인해 아리스토텔레스의 결점을 수정하고 우상들의 모든 왜곡들을 파괴할 것이라 단언했다. 성급한 일반화를 피하기 위해 사례와 목록을 꼼꼼하게 작성해야 하며 반대의 사례를 찾아 완벽한 자료를 얻기 위해 실험과 비교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귀납법은 여러 개별사례들로부터 일반법칙 또는 원리를 도출하는 방법이다. 베이컨은 이전의 귀납법은 긍정 사례들만 취하고 부정 사례들을 배제하는 미숙한 방법론이라 엄밀하지 못하기 때문에 형식을 엄격화하고 체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의 구조는 아주 단수하고 기본적인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은 그 형식들을 발견하기만 하면 감각을 통해 감지된 그 다양한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형식에 도달하기 위해선 복잡하게 얽혀있는 나선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자연을 특성짓는 근본요소엔 단순본성들이 있고 열, 습기, 냉기, 무게 등이 이에 속한다.
베이컨은 스콜라철학과 이리스토텔레스 철학을 모두 불신하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실험을 통해 증명된 경험들을 축적해나가야 한다는 주장과 삼단논법 같은 연역법이 아닌 귀납적 방법을 학문에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있는 그대로'는 자연도 인간처럼 목적을 추구한다고 믿거나 제1질료같이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용어를 함부로 적용시키는 기존의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접근을 거부하고 될 수 있는 한 아무 것도 전제하지 않고 사물과 자연을 보려는 시도를 말한다.
귀납법은 모든 사실을 빠짐없이 수집하여 목록을 만들고 비교 정리하는 것이며, 지속적인 관찰뿐 아니라 검증을 위한 실험을 계획하고 진행하는 철저한 방법이다. 베이컨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빨아들여 귀납법을 완성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선 가능한한 많이 "아는 것이 힘"이었다. 그의 이런 사상은 철저한 논변, 사변 위주의 철학자들에게는 외면을 받았지만 후에 계몽주의, 과학적 사고, 청교도 혁명, 철학이 경험주의로 가는 방향 등에 강한 영향을 끼쳤다.
눈에비친햇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