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철학의 개념
철학의 방법
한국 철학의 의미
한국에서 철학 개념의 형성
외래 사상과 한국의 철학
서양철학·동양철학·한국철학
한국 철학의 의의
참고문헌
철학(哲學. philosophia)
철학의 개념
철학은 무엇을 하는 학문인가? '철학함'이란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 철학의 정체는 무엇이며, 철학한다는 게 도대체 무엇엔가에라도 쓸모가 있는가? 철학에 접하는 많은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그리고 보통 사람이나 철학자라고 일컬어지는 사람이나, 자주 이런 질문을 던지곤 한다. 이는 철학에 '학'(學)자가 붙은 것을 보면 무슨 학문인 모양인데, 그 말이 지시해 주는 바가 쉽게 파악되지 않음이 그 첫째 이유일 것이다.
'학', 다시 말해 '학문'이란 무엇엔가에 관한 '체계적 이론' 내지는 어떤 '이론적 체계'라고 치고, 대체 '철학'이란 어떤, 무엇에 관한 이론 체계인가?
물리학은 사물의 물질적 원리에 관한 이론 체계요, 심리학은 사람의 마음의 원리에 관한 체계적 이론이요, 법학은 법에 관한, 생물학은 생물에 관한 학이며, 정치학이라는 것도 정치에 관한 어떤 종류의 이론 체계거니 하는 짐작이라도 간다. 그런데, '철'(哲)에 관한 학이라는 것도 있는가, 아니면 '철'하는 활동도 학문 활동이란 말인가? 많은 사람들은 이런 의아심을 가지면서도 명칭만 가지고 철학에 대한 어떤 감(感)을 잡을 수가 없어, 철학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벌어진 일들의 현장, 즉 '철학사'(哲學史)를 들춰보며 철학의 정체를 파악해 보려 한다. 그러나 철학사를 넘겨 가면서 이른바 철학자들 스스로 자기 업무, 즉 철학을 규정한 것을 살펴보면, 그 다양함이 자못 철학자 수만큼이나 됨을 발견하게 된다. 대체 이런 사정은 무엇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철학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만 말하고 싶다. 즉, 오랜 세월에 걸쳐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에 의해 철학이 연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철학에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것이 하나도 없음을 보고서,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철학을 더 잘 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것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참된 의견만 있을 터인데, 실제로는 많은 갖가지 의견들이 있으며, 게다가 그것들이 학식 있는 사람들에 의해 주장되고 있음을 보고서, 나는 단지 그럴듯하게 보이는 것을 모두 거짓에 가까운 것으로 간주했다."(Descartes, Discours de la Méthode, I, 12)
이런 문제를 염두에 두고서 철학에 대한 규정부터 어느 정도 확실히 해두는 것은 철학적 문제를 이해 탐구하고, 철학적 논의에 으레 끼어 드는 불필요한, 그뿐만 아니라 철학의 본 뜻과 정반대 되는, 개념(?)적 혼란을 방지하는 제일의 작업이 될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철학'이라는 말은 서양 문화사의 초기 고대 그리스에서 처음 등장한 '필로소피아(philosophia)'의 번역어이다. 그렇다면, 이 '필로소피아'의 본디 뜻은 무엇이던가?
'필로소피아'는 낱말의 형성 순서에서 볼 때나 사태의 전개 순서에서 볼 때나 '필로소포스'[philosophos: 지혜를 사랑하는 자, 철학자, 哲人]가 있은 후에 그의 활동[곧, 필로소페인: philosophein, 철학함]의 결실로서 나타났다. 그런데 대체 '필로소포스'란 어떤 사람을 일컫는가? 이 명칭이 뜻하는 바는, 피타고라스(Pythagoras, BC 580-500) 또는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BC c. 544-483)에 이어 이 말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사용했던 소크라테스(Sokrates, BC 469-399)의 다음 말에서 그 대략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다.
"파이드로스여, 누군가를 지혜 있다라고 일컫는 것은, 내가 보기엔 너무 높이 올라간 것 같고 그런 말은 신에게나 적용하면 적절한 것 같네. 그러나 지혜를 사랑하는 자[philosophos] 혹은 그 비슷한 말로 일컫는다면, 그 자신도 차라리 동의할 것이고, 보다 더 합당할 것 같네."(Platon, Phaidros, 278d)
그러니까 플라톤(Platon, BC 427-347)이 전해 주는 소크라테스의 말에 따르면, '필로소포스'란 완벽한 지식이라는 의미에서의 지혜를 가진 자라기보다는 그 같은 지혜를 사랑하고 추구하며, 그에 이르려고 애써 노력하는 자, 가령 구도자(求道者) 쯤을 지칭하겠다.
"철학, 즉 지혜에 대한 사랑은 그 순수함과 견실함에 있어서 놀라운 즐거움을 가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앎을 실제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찾는 사람들보다 더 즐겁게 삶을 영위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럴 법하다."(Aristoteles, Ethica Nicomachea, 1177a 20-1177b 25)
그러니까 지혜 그 자체를 가짐이 최상의 상태이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완전한 자에게서나 기대할 수 있는 일로, 사람은 기껏해야 '지혜를 찾는' 도정에 있다고 보겠다. 그리고 이런 뜻에서 '지혜를 사랑하는 자'를 우리가 철인(哲人)으로 이해하는 것은 유가(儒家)의 전통에서 볼 때도 그럴 듯하다 할 것이다. 우주 삼라만상의 원리(arche)를 통찰하고 있는 자, 그래서 "마음 내키는 대로 행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從心所欲不踰矩1)) 자, 그는 분명히 신인(神人)이며 성인(聖人)이다. 이런 성인 공자(孔子, BC 552-479)의 으뜸 제자 10명을 십철(十哲)이라 칭했고, 그 다음 수준의 사람들을 골라 칠십이현(七十二賢)이라 일컬었으니, '철인' 내지 '철학자'는 현인'(賢人)보다는 좀더 도(道)에 가까이 다가간, 그러나 완전히 도에 이른 성인은 아직 아닌 자를 이름하는 것이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철인의 진리 추구 활동과 그 결실, 곧 철인의 학문[哲人之學]을 이제 우리가 '철학(哲學)'이라고 일컫는다면, 그것은 '필로소피아(philosophia)'의 원래 뜻과 크게 어긋남이 없다 하겠다.
그러나 유가적인 파악에 따르든, 그리스 철학의 이해에 따르든, 이 철인 내지 철학자라는 고래의 명칭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철학자와 똑같은 함축을 가질까? 오늘날 의미에서의 물리학자는 지혜 즉 참된 지식을 사랑하는 자가 아니며, 수학자와 역사학자는 그러한 지식을 추구하는 자가 아닌가? 이 반문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초기 의미에서의 철학자는 오늘날 우리의 개념으로는 학자에 해당하며, 이에 상응해서 당시의 철학은 학문 일반을 지칭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가 말하는 철학은 오늘날의 개념으로는 학문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개념 사용은 서양의 근대 초까지도 계속되었다. 데카르트(R. Descartes, 1596-1650)에게 있어서도 그러하고 라이프니츠(G. W. Leibniz, 1646-1716)에서도 그러하며, 뉴턴(I. Newton, 1642-1727)에게서도 그러하다. 데카르트는 그의 라틴어 저술 『철학의 원리』(1644)의 프랑스어 번역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전 철학을 하나의 나무에 비유한다면, 그것의 뿌리는 형이상학이요, 줄기는 물리학[자연학]이며, 가지들은 […] 의학, 역학, 윤리학과 같은 여타 학들이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철학의 원리』는 '인간 인식의 원리들에 관하여', '물질적인 것들의 원리들에 관하여', '가시(可視) 세계에 관하여', '지구에 관하여' 등의 네 부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다 '동물과 식물의 본성에 관하여', '인간의 본성에 관하여' 등을 덧붙이려는 것이 원래 계획이었다. 뉴턴도 근대 물리학의 체계를 담고 있는 그의 저술에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1687)라는 제목을 부여하였으니, 분명히 이때까지만 해도 철학은 학문 일반을 지칭하고 있었다.
그러던 '철학' 개념이 언제, 무엇이 계기가 되어 의미 변화를 겪게 되었는가? 그것은 근대적 의미에서의 과학들의 성립과 함께 라고 생각되어야 한다. 서양 학문사에서 그 성립의 과정을 고려할 때나, 그냥 '학'(scientia, science)이라 일러도 무방할 터인데 굳이 '분과학'(分科學)이라 말하는 우리의 이해로 볼 때나, 과학(科學)은 총체학(總體學) 내지는 근본학(根本學), 즉 철학을 전제하고, 또 그로부터 파생되었다. 그렇다면 철학이라는 말이 생긴 이래 1,500년 이상 일괄 통칭되던 학적 작업들, 혹은 학적 문제들 가운데, 왜 어떤 것들은 '과학적'이라는 명칭을 새로이 얻게 되고, 어떤 것들은 오늘날도 여전히 '철학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가? 그것은 문제의 성격과 그 문제의 해결을 시도하는 방법의 차이에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학적 관심이 싹튼 초기에는 일체의 문제들이 '철학적'이었다. 그것은, 자연에 관해서든 인간에 관해서든 문제와 사태의 근본원리를 찾으려는 문제 의식은 있었으되, 문제 해결을 위한 변변한 수단과 방법을 개발하지 못한 채 암중모색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그러다가 어떤 문제와 사태 영역들은 그것들에 접근해 갈 수 있는 비교적 신뢰할 만한 방법들이 개발되었고, 따라서 어느 정도 객관적인 논의 영역이 확보되었다. 그래서 이른바 '학의 부분 영역', 즉 '과학'들이 생겨났다. 그러니까 과학들이 분과되어 간 이래로도 여전히 철학에 머물러 있는 문제 영역들은 그 성격상 과학의 것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오늘날의 철학은 연구 대상에 있어서나 연구 방법에 있어서 수학과도, 과학들과도 다르다. 모든 과학들이 그리고 수학조차도 본래는 철학과 한통속이었고 이로부터 분화되었다고 해서, 오늘날의 수학과 과학이 오늘날의 철학과 동종의 학문이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물론 그 뿌리의 같음과 인간의 지혜의 한계로 인해 그런 제 과학에도 여전히 철학적 문제가 남아 있어, 과학철학, 법철학, 심리철학 등의 영역이 있기는 하지만 18세기 중엽의 철학자들은 이러한 철학의 변화에 대한 뚜렷한 상황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양 문화사에서 이 시기는 인간의 일반 이성이 계몽을 폭넓게 체험하고 있던 때이다.
많은 과학들은 이제 특정한 사람들만이 아는 언어(즉 수학)와 방법(즉 실험 관찰), 그리고 그들만이 다룰 수 있는 도구(과학기구)를 통해 큰 발전을 하기 시작했다. 그 연구 성과는 놀라웠고, 그리고 그것은 전문가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를 보고서, 여전히 철학적 문제에 관심이 더 큰 학자들은, 이제 철학도 전문적으로 연구되어야 함을 새삼스럽게 깨우쳤다. 이로부터 철학의 전문화가 시작되었고, 이것은 철학의 직업화를 낳았다. 그리고 이젠 어느 학문의 영역에서나 학문의 수준 자체가 전문적으로, 그리고 직업적으로 몰두하지 않으면 유지될 수 없을 정도에 이르러 있었기도 했다.
사실 탈레스(Thales, BC 640-550) 이래 18세기 초엽까지 오늘날 우리가 철학자라 부르는 사람들에게 철학은 직업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부분 생업이 따로 있었거나 필요 없었으니, 말하자면 철학함은 그들에게는 한가(閑暇, schole)한 생활이었다. 철학사에 남긴 그들의 혁혁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그들은 오늘날의 개념으로 말하면, 철학의 아마추어들이었고, 아마추어 신분을 또한 유지하려 했다. 고중세의 철학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데카르트, 스피노자(B. Spinoza, 1632-1677), 라이프니츠, 로크(J. Locke, 1632-1704), 버클리(G. Berkeley, 1685-1753), 흄(D. Hume, 1711-1776) 등 근대 철학의 초기 대표자들이 모두 그랬다.
이런 철학사적 전통에다가 아직까지도 객관성이 없어 보이는 철학적 논의의 형편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여전히, 철학은 어느 정도의 지성과 일반적인 일상 체험만 가지면 누구나 할 수 있고, 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철학은 당연히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그에 대한 전문가로서의 철학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여타의 모든 학문에서는 (전문가가 있겠거니 하고) 조심성 있게 침묵으로 관망하는 사람들도 형이상학[철학]적 문제에 관해서는, 다른 학문에 비해 그들의 무식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음을 기화로, 대가인양 지껄이고 대담하게 단정한다."(Kant, Prolegomena: 『전집』 Ⅳ, 264)고 칸트(I. Kant, 1724-1804)는 세상 사람들을 비판했고, 더 나아가 그의 후배 헤겔(G. W. F. Hegel, 1770-1831)은 "사람들은 하다 못해 구두 한 켤레를 만들기 위해서도, 비록 모든 사람이 자기 발에 맞는 구두 본(本)을 가지고 있고 구두를 만들 수 있는 소질이 있다고 하더라도, 구두 만드는 법을 배우고 훈련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유독 철학함에 대해서만은 그러한 연구나, 배움 내지는 노고가 필요치 않다고들 말한다."(Hegel, Enzyklopädie, §5)고 철학에 대한 일반인들의 오해를 지적했다. 이런 생각에서 칸트는, 그 역시 당시 지성인의 사회적 책무인 계몽주의 운동에 앞장섰으면서도, 엄밀한 학적 토대를 닦음이 없이 그런 운동에 나서는 수필가 내지는 '이데올로그'들을 "통속철학자"라고 비판, 자신을 그들과 구별하였다. 요컨대, 이제 철학도 수학이나 과학들과 마찬가지로, 아니 그 문제의 근원성과 보편성, 그리고 난해함과 절실함으로 인해, 더욱 더 엄밀히 학적으로 그리고 전문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상황에 놓였다고 칸트는 파악한다. 그리고 이 상황에 창조적 자세로 대응한 최초의 철학자로 칸트를 꼽을 수 있다.
칸트는 철학사에서 만나는 대가들 가운데 최초의 직업 철학자, 즉 대학의 교수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그는 종래의 여느 철학자들처럼 직업적으로는 다른 일에 종사하면서도 철학적 문제에 관심이 많고 재능이 뛰어난 그래서 후세에 큰 연구 성과를 남긴 아마추어 철학자가 아니라, 철학함이 그의 생업이었고, 엄밀히 말해, 후반생(後半生)은 오로지 철학에 전념한 최초의 프로 철학자이다. 비록 당시의 대학에서 철학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철학부가, 국가 경영에 직접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는 상부 학부인 신학부·법학부·의학부의 하부 학부로서 기초 교양 교육을 염두에 두고 설치되었다 하더라도, 이제 철학은 대학에서 전문적으로 연구되고 교육되기 시작했으며, 칸트는 대학 강단에서 정규적으로 철학을 논하는 교수였다. 이때쯤 해서 사람들은 학교에서 연구되고 강론되는 철학의 개념[철학의 학술 개념]을 만나게 되었다.
물론 일반 시민적 견지에서 볼 때, 철학은 여전히 "인간 이성에게 법칙을 수립해 주는 자"(Kant, Kritik der reinen Vernunft, A839=B869)이다. 그러니까 철학의 일반 개념에서의 철학함의 궁극 목표는 "우리 이성 사용의 최고 원칙"을 찾아내는 일이다. 그러나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철학이 단계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18세기 중엽 철학의 전문인들은 철학이란 '개념들에 의한 이성 인식의 체계'라고 규정했다(Kant, K.d.r.V., A713=B741 참조). 개념들로 이루어진 이성 인식의 체계로서의 철학은 첫째로 '개념들의 구성[作圖]에 의한 이성 인식의 체계'인 수학과 구별되고, 둘째로 '경험적 자료에 의한 인식'(cognitio ex datis)들의 체계인 여타의 모든 과학들과도 구별된다.
이성 인식이란 원리적 인식(cognitio ex principiis), 즉 순수한 선험적 인식을 말하며, 그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그 첫 번째가 이성의 이성 자신에 대한 인식이요, 그 두 번째가 이성에 의해 순수하게 원리적으로 생각되는 대상들에 대한 인식이다. 그래서 철학은 두 부문을 갖는다. 그 첫 번째 부문이 이성 자신의 형식에 관한 인식들로 이루어진 논리학(論理學, logica)이고, 그 두 번째 부문은 순수하고 원리적이되 대상의 실질[실재] 내용에 관한 인식들로 이루어진 형이상학(形而上學, metaphysica)이다.
이와 같은 철학의 본래 문제들의 영역 외에 19세기 이후에는 인간의 대상에 대한 인식 원리를 반성적으로 다루는 인식론이 생겼고, 또한 이미 철학에서 분가해 나간 제 과학들이 여전히 원리로서 필요로 하는 근본에 대한 반성 작업인 사회철학·법철학·정치철학·과학철학·언어철학 등이 생겨났다. 이것은, 인간의 지혜 영역이 확장되어 가는 만큼 무지의 영역도 확장되어 과학의 발달로 철학적 문제가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더 넓고 깊어져 가고 있음을 뜻한다.
철학의 방법
그러면 여전히 과학들의 문제 영역 밖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이는 철학적인 문제들을 탐구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을까?
일찍이 칸트는 자주 사람들에게 '철학을 배우지 말고, 철학함을 배우라'(Kant, K.d.r.V., A837=B865 참조)고 강조했고, 이른바 철학하는 사람들이 '내용 없는 개념'을 놀리고 '흉내내 얘기'하는 것을 경계했으며, '스스로 생각'하고 '제 발로 설 것'을 요구하였다(Kant, 『전집』 XXIX,1.1, S. 6f. 참조). 이것은 철학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최소한의 철학하는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철학함을 배운다 함은 자기 이성을 스스로 사용함을 배운다는 뜻이다."(Kant, 『전집』 XXIV, S. 698) 철학의 의의가 '지혜의 추구'에 있다면, 우리는 오로지 자기 이성 사용의 자기 훈련을 통해서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칸트는 "사람들은 단지 문헌에 의한 작업만으로는, 한 저자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 강의할 정도로 이해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어쩌면 저자 자신도 […] 이해하지 못했던' 사태 자체는 투시하지 못한다"(Kant, 『전집』 XXIX, S. 6f.)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철학한다'는 것은 단지 역사적으로 남겨진 문헌을 문자에 따라 연구함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가 되는 사태를 관조하고 사색함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철학적 문제의 연구에서는 역사적인 문헌들을 결코 소홀히 해서도 안 되고, 소홀히 할 수도 없다. 철학적 문제라는 것은 아직 미해결의 문제, 다시 말해 이미 문제로 부각이 되었건만, 해답은커녕 해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나 단서조차도 아직 찾은 것이 없어 여전히 설왕설래 중인 문제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앞서간 사상가들이 남긴 논설들 가운데에서, 설령 그 안에 착오가 포함되어 있다손 치더라도, 인간의 보편적 이성의 모습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드러나 있음을 포착해야 한다. 칸트의 말처럼, "우리가 위대한 발견들 곁에서 분명한 착오들과 마주치게 된다 해도, 이는 한 인간의 실수에서라기보다 오히려 인간 일반의 인간성에서 비롯하는 것이다."(Kant, 『전집』 Ⅰ, S. 151) 그러나 인간성이라는 것이 고착되어 있고 폐쇄적인 것은 아니다. 착오는, 그것이 나타나면, 이성에 의해 교정되고는 한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태 자체에 대한 실험 관찰 외에도, 기존하는 개개 인간의 주관성에 입각한 이론들 중에서도 보편적 이성이라는 표준 척도에 따라 사태 자체로 전진해 가는 하나의 길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그를 통해 제기된 물음에 대한 답을 얻거나 아니면 물음 자체의 함축이나마 밝혀 낼 수도 있는데, 이것 역시 진지한 철학함의 한 자세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를 앞서간 탁월한, 그러나 서로 상충되는 이론을 주창한 사상가들을 대화시키고, 그 충돌점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우리 자신의 생각을 전개시켜 나갈 수도 있다. 이러한 철학 방법을 우리는 '변증법적'[대화법적]이라고 일컬을 수 있으며, 그것은 철학사 연구를 통해 철학 연구를 할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다. 우리가 변증법을 '사태의 자기 전개 논리'라고 이해할 때, '이성'도 하나의 사태인 만큼 그 역시 자기 부정을 통하여 전진해 나갈 터이고, '철학함'도 하나의 사태인 만큼 이 역시 철학하는 개인과 개인,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며 단계적으로 발전해 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철학을 자연과 인간 만상의 궁극적 원리를 찾는 학적 작업이라 규정하고, 그러면서도 그것이 수학적인 방법으로도 과학적인 방법으로도 이를 수 없는 것이라 한다면, 철학적인 문제들은 그 성격상, 자명한 진리를 전제하고 거기에서부터 연역하는 방법으로나 개별적인 사태들에 대한 관찰을 토대로 보편성을 추리해 가는 귀납의 방법으로는 해결을 할 수 없다는 것이고,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현상을 진상(眞相)으로 간주하고, 이 진상을 가능하게 하는 필요충분 조건들을 사변적으로, 환원적으로 추궁해 들어가는 일이다. 그래서 철학의 본래적 방법은 예나 지금이나 사변뿐이다.
한국 철학의 의미
한국에서 철학 개념의 형성
한국에서 철학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또는 20세기 초쯤으로 추정된다. 17세기에 천주교 교리와 함께 서양 철학이 유입된 자취가 있으나, 처음에는 '哲學'이라는 번역어가 아니라 '費祿蘇非亞', '斐錄所費亞' 또는 '飛龍小飛阿'라는 중국어 표기가 채용되었다. 믿을 만한 보고에 따르면, 그러다가 20세기 초에 이정직(李定稷, 1841-1910)이 쓴 『康氏[칸트]哲學說大略』(1903-1910년경)2)이나 『倍根[베이컨]學說』, 내지는 이인재(李寅梓, 1870-1929)가 펴낸 『希臘古代哲學攷辨』(1912∼1915년경)3)을 계기로 '哲學'이라는 말이 정착되었다고 한다.
이인재는 고대 그리스 철학을 소개 해설한 그의 책에서, 철학은 논리학·형이상학·윤리학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萬象 가운데서 一理만을 연구하여 實用을 찾는 과학과는 달리 百科의 學으로서 삼라만상의 원리를 탐구하는 학"이라 설명했다 하니, 이미 철학의 전모를 이해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조사 보고에 따르면 보성전문학교 1907년도 교과과정에 논리학 과목이 등장하고4), 연희전문학교 1921년도 교과과정에는 논리학, 윤리학을 비롯해 철학개론(哲學槪論)이라는 교과목이 들어 있었다 한다.5) 이것은 이미 서양 학문의 유입과 더불어 철학(哲學)이라는 낱말과 그 낱말이 지시하는 내용이 함께 한국 사회에 상당히 유포돼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한국 사회 문화가 20세기에 접어들어 철학(哲學)이라는 새로운 어휘를 갖게 되었고, 그에 상응하는 새로운 체험을 했음을 말해 준다. 이른바 서양 철학의 유입에서 비롯한 이 새로운 체험은 그런데 한국인들에게 단지 새로운 어휘를 갖도록 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낱말들로 표출된 사태를 대면케 하고, 그 사태에 대한 사색을 이끌었다. 다시 말하면 새로운 사상을 배태 내지 형성케 한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유래한 새로운 사상 즉 서양적 사상은, 사상이라는 것이 인간의 행위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 그 만큼 한국인들의 제반 일상 생활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현대 한국인들은 적어도 백년 전의 한국 사람들과는 상당한 정도로 다르게 살며, 먹고 입고 꿈을 꾼다. 그런 차이가 나게 하는 데는 새로운 철학 사상도 한 몫을 했음이 분명하다.
이제 우리가 서양 철학이 유입된 이후에 형성된 한국의 사상을 '새롭다'고 하는 것은, 그 사상이 주제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제기되는 문제를 다루는 방법에서 재래의 것과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것에 비해 그 주제에 있어서 다르고 문제를 탐구하는 방법이 다르고 그 탐구 결과가 새로운 언어로 쓰였는데도 그것이 여전히 '한국인들의' 사상, '한국의' 철학이라면,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런가? 여기서 우리는 철학의 의미를 유지하는 한국의 철학이란 무엇일까를 새겨 보아야 할 필요를 발견한다.
외래 사상과 한국의 철학
한국이 적어도 2,000년 이상의 문화사를 가지고 있고, 삶의 양식 형성에는 불가불 철학 사상이 관여되기 마련이라면, 한국에는 이미 전통 철학 사상이 있었을 터이고 실제로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도, 무슨 연유로 한국 사회에 낯선 사상이 유입되고 그것이 단지 호기심을 따라 소개되는 정도가 아니라 한국 사람들의 사고 방식, 더 나아가 생활 방식 자체에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되었는가? 한국인들은 왜 20세기 초 이래로 서양 철학을 배우며, 그것도 열심히 익히고 있는가?
철학이라는 것도 하나의 학문이고, 학문이란 어떤 의미에서든 보편적인 지식의 체계를 일컫는 것이라 했는데, 도대체 서양의 철학, 동양의 철학, 한국의 철학, 또는 조선시대의 철학, 이율곡의 철학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남의 철학을 배워 내 철학을 삼는다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이며, 그것은 대체 무슨 의미를 갖는 일이고, 그것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자연과학이니 사회과학이니 하는 제 과학의 종가이자 근본학으로서 오늘날의 철학을 규정해보자면, 자연과 인간 사회문화, 모든 영역의 최고 원리, 통일 원리를 반성적으로 탐구하는 지적 활동 또는 그 결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선 문자적으로, 한국의 철학이란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자연과 한국 사회 문화 제 영역의 최고 원리와 제 영역의 통합 원리를 반성적으로 탐구하는 지적 활동 또는 그 결실'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규정이 무난하다면, '한국'이 들어갈 자리에, '서양'이나 '동양', '독일'이나 '중국'을 넣거나, 더 나아가서 '기호 지방', '영남 지방' 또는 '이율곡', '이퇴계'를 넣어 '∼의 철학'이라고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규정도, 예컨대 '한국 사람', '한국에서 통용되는 언어', '자연과 한국 사회 문화 제 영역의 최고 원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또 이 세 조건 중 일부만 충족시키는 경우 어느 쪽에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서, 때로는 좁게 때로는 넓게 적용될 수가 있을 것이며, 심한 경우 그 기준을 아주 느슨하게 사용하면 '서양 철학', '한국 철학' 따위의 구별이 무의미 할 수도 있다. 또 남의 철학 문헌에 대하여 연구하는 것까지를 '철학하다'의 범위에 집어넣는다면, 철학의 규정에서 누가 어떤 언어로 작업을 하는가는 부수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철학의 국적을 말해 주는 본질적인 징표는 무엇인가? 우리가 한국 철학을 말할 때,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한국의' 철학인가?
"어떤 철학의 국적을 결정짓는 것은 그 철학을 낳은 철학자의 탄생지도 아니고, 그 철학자가 주로 활동한 지적 단위체나 그가 사용한 언어도 아니다. 만일 첫째의 기준이 적용된다면 스피노자 철학은 네덜란드 철학이 될 것이고, 둘째 기준이 적용된다면 김재권의 철학은 미국 철학,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영국 철학이 될 것이고, 셋째 기준이 적용되면 퇴·율[退溪·栗谷] 철학은 중국 철학,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독일 철학이 될 것이다. 이후 영향력의 기준에서 판별이 된다면 프레게의 철학이나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영국 또는 미국 철학이 될 것"이라고 어떤 이는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생각은 "철학은 국가적 성격을 갖기보다는 개인적 성격을 갖는 것"이라는 결론으로 나아간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은 논변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리스 사상과 중국 사상, 독일 철학과 영미 철학을 구분해서 말하는 것은 지각없는 짓인가?
문화권의 경계라는 것이 먼 빛으로 보기와는 달리 가까이 다가갈 수록 희미한 탓에 지도에 국경을 표시하듯이 그렇게 분명하게 선을 긋는다는 게 어렵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기성의 문화를 충분히 의미 있게 공간적으로·시간적으로 구분하여 얘기할 수도 있고, 구별되는 대개의 특징을 열거할 수도 있다. 이런 일은 또한 문화의 한 양상인 철학에 대해서도 물론 할 수 있다. 인간들이 언제 어디서 살았고 살든 인간인 한에서 상호간에 보편성을 나눠 갖게 마련이지만, 또한 개인간에 집단 간에, 뿐만 아니라 일정 개인이나 집단이라 하더라도 연대별로 여러 면에서 차이가 난다. 어떤 철학도 그것이 철학인 한 '원리적 지식 체계'라는 보편성이야 가지고 있겠지만, 누가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 했고 그렇게 하는가에 따라 구별될 수도 있다. 우리는 플라톤의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구별하고 청년 칸트의 철학과 장년 칸트의 철학을 구분하며, 휴암(休庵) 백인걸(白仁傑, 1497-1579)의 사상과 율곡 이이(李珥, 1536-1584)의 철학을 구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적어도 똑 같은 정도로 의미 있게 한국 철학과 독일 철학을, 그리고 조선 중기의 한국 철학과 현대의 한국 철학을 구별하여 말할 수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고대 그리스 철학의 축이며, 칸트와 헤겔의 철학은 근대 독일 철학의 핵이고, 퇴계 이황(李滉, 1501-1570)과 이이의 성리학은 근세 조선의 철학을 대표하며, 열암 박종홍(朴鍾鴻, 1903-1976)의 철학은 1950-60년대 한국 철학의 일면을 분명하게 대변한다. 김재권(Jaegwon Kim)이 한국인의 한 혈족이라 하더라도 그가 미국 사회 문화 속에서 생긴 철학적인 문제를 미국에서 통용되는 말로 쓰고 생각하고, 그 결과가 미국에서 논쟁거리가 된다면, 그의 철학적 작업은 '미국적'이라고 평가함이 합당할 것이다. 독일 철학계를 들판으로 비유할 때, 한국인 백 아무개가 독일에서 독일말로 칸트 철학에서 제기된 문제를 철학적으로 논했다면, 그의 작업은 독일 철학계라는 들판에 돋아난 들풀 가운데 하나이고, 그런 뜻에서 '독일의' 것이다. 그러나 그가 거기에서 한국적인 '임-있음'의 문제 시각에서 '존재자의 본질-존재' 해명을 시도했다면, 그의 작업은 '한국적'이다. 더구나 그가 한국에서도 이 작업을 한국의 문화 의식 속에서 한국어로 계속하여 결실을 본다면, 그것은 한국 철학의 일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정도로 '한국 철학'의 개념을 우선 정리하고, 원래의 물음으로 돌아가자. 한국인들에게 철학이란 무엇이고, 왜 한국인들은 20세기 초 이래 서양 철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그 사상 흐름에 편승하고 있는가? 그러면서도 대체 이런 판국에 사람들은 무엇을 염두에 두고서 '한국 철학'을 말할 수 있는가?
이른바 철학자들은 철학이 제반 문화를 선도해야 한다고, 그리고 선도할 수 있다고 자부하나, 사실은 여타 문화 영역을 뒤따라가는 경우가 더 많다. 20세기 초에 서양 철학이 한국 사회에 유입된 것도, 당대 한국인들의 철학적 자각과 모색으로부터 그 길에 이르게 되었다기보다는 서양의 제반 문물이 세계 정세의 흐름에 따라 한국 사회에 밀어닥침으로 인해 서양 문화의 한 가닥으로 함께 들어온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거기다가 철학의 학문적 성격과 역할이 제 과학의 맨 뒤에 오면서도 제 과학의 단초와 원리를 추궁하는 것인 만큼, 한국의 제반 학문 세계가, 다시 말하면 표층 문화를 주도하는 물리학, 천문학, 지리학, 생물학, 법학, 정치학의 세계가 이미 서양적 흐름에 합류했는[휩쓸려 들어 갔는]데, 철학이 여전히 성리학적인·실학적인 전통만을 이어간다면, 그렇지 않아도 현대에 와서 신통치 않아진 이른바 분과학(分科學)의 근본학으로서의 철학의 역할은 허공에 뜬다. 현대 한국 사회의 질서와 정의의 골간을 이루는 헌법 체계가 어느덧 유교 원리나 『경국대전(經國大典)』의 정신을 떠나 미국 헌법, 프랑스 인권선언, 독일 헌법 정신과 그 맥을 같이 하는데, 재래의 법철학, 정치철학으로 현대 한국 사회의 어떤 법 원리, 정치 원리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한국에서 당초 서양 철학의 접수가 자발적이 아니었음은 거의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철학이라는 것이 인간의 현실 생활과는 전혀 무관하고 철학자가 사회 생활에서 완전히 떠나 있다면 몰라도, 이미 사회 근간이 서양식으로 재편되어 가는 마당에 철학한다는 사람이, 그가 순전히 과거 한국 철학의 역사 연구가이길 지향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 재편되어 가는 문화 양상의 근거를 탐구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한국인들이 현대 한국 사회 운영의 토대인 자유와 평등의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한국의 철학자들인 퇴계나 율곡 혹은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사상보다는 로크나 루소(J. J. Rousseau, 1712-1778) 또는 칸트의 사상에 대한 이해를 더 필요로 한다. 물론 문화 양상은 중층적인 만큼 표피층에는 새로운 물결이 일어도 심층에는 여전히 옛 물이 두텁게 남아 있을 수 있다. 바로 그 만큼은 한국 사람들이 한국에서 서양적 철학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한국식 서양 철학, 바꿔 말해 화제는 서양에서 발원했으나 그러나 이미 한국인들 자신의 문제를 다루는 한국의 철학, 곧 한국(적) 철학의 일환이라 할 것이다. 그러니까 한국인들이 서양 철학을 수용했고 그리고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바로 그로 인해서 한국인들의 철학적 문제가 순전히 '서양적'이 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런 얘기는 예컨대 한국인들이 중국으로부터 삼국시대에 불교 사상을 수용한 것에 대해서도, 여말선초(麗末鮮初)에 성리학을 수용한 것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어떤 이는, 한국 역사에서 주류(主流) 사상은 언제나 외래적인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상사는 외래 사상 수용사인데, '한국 사상', '한국 철학'이란 무엇이냐고 묻는다. 과연 외래 사상을 접수했다고 해서 일체의 고유성을 얘기할 수 없는 것일까? 독일 이상주의 철학이 연원을 따지면 그리스 사상이고 기독교 사상이라 해서 우리는 독일 철학을 얘기할 수 없는가? 문제의 발원이 남에게 있다 하더라도, 문제 의식이 수반되어 그 문제가 이미 자기 문제가 된다면, 그 문제 해결 방식과 결과도 상당 부분 자기 것이 된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
오늘날 한국인들에게 서양 철학은 무엇인가? 기자의 관심에서 단지 소개되어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실 한국에서 '서양철학하는 사람' 가운데 서양 철학의 역사나 현황을 보고하는 기자같은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일정 부분 한국적 문제 의식과 문제 해결의 관심에서 수용되고 변용된다면, '서양' 철학은 그만큼 '한국의' 철학이기도 하다. 한국인들이 오랜 동안 중국 철학사상을 수용하다가 난데없이 서양 철학을 떠들게 된 것은 한국의 제 문화 양상이 어느 사이 서양화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고 보아야 한다. 20세기 초 이래 당초에 한국인들이 그것을 평가하고 선택할 겨를도 없이 서양 철학이 유입되고, 그것이 어느 사이엔가 현대의 한국 철학 형성에 중심 역할을 하게 된 것도 단지 한국에서 철학하는 사람들의 주체성 결여에서라기보다는 한국의 문화, 적어도 표층 문화 전반이 서양화하는 탓이라 해야 할 것이다. 철학하는 사람들이 주체성도 없이 어제는 중국철학에 오늘은 서양철학에, 그것도 독일철학, 프랑스철학, 영미철학 등 이른바 강대국 문화권의 철학을 번갈아 가며 쓸려 간다고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현대 한국에서 주체적으로 철학하는 사람은 서양철학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합당하다. 한국인들이 아프리카(탄자니아나 니제르)의 철학 혹은 아라비아의 철학은 거의 수용하지 않고, 중국 철학이나 서양 철학을 수용한 것은, 그것이 수동적으로 세계 정세에 휩쓸려 들어간 일이든, 능동적인 문화 향상 전략의 일환이든, 한국 사회의 제반 문화·학문 영역에 피할 수 없는 영향을 미쳤고, 그 가운데서 한국인들의 삶을 꾸려 갈 수 있는 원리를 어느 면 발견했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인들이 수용한 중국철학이 한국의 철학이 되었듯이, 그와 같은 정도와 의미에서 현대의 한국인들이 수용하는 서양철학은 현대 한국 철학의 일부인 것이다.
이런 사실을 한국인들이 유쾌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유감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서양 철학 사상의 유입이라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새로이 탐구 대상으로 부각된 철학적 문제들이 다분히, 종래 탐구의 연장선에서 나왔다기보다는 갑작스레 정치적 외세에 실려 한국인들의 관심을 끌고 한국인들에게 부과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세계 철학사 주류의 관점에서는 19세기 말부터 한반도의 사람들에게도 서구 철학 사상이 유입됨으로써 한국 사람들도 세계사의 대류에 합류했다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철학 사상을 통사적으로 볼 때, 한국 철학 사상사는 19~20세기 간에 단절과 전환이 있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 단절은 한국 철학 사상의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였다고 언젠가 평가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으나, 그러나 일단은 한국에서 '철학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유의 힘과 자생력을 잃고 세계 주류라는 이름 아래 밀려들어오는 서양 강대국에서 힘을 얻은 사상을 수입하여 주석·해설하는 따위의, 사상의 주변을 맴도는 일에 한 세기 내내 종사토록 하였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비록 외형적으로 정치적 식민 상태는 벗어났음에도 철학 사상적으로는, 포괄적으로 말해 정신 문화적으로는, 더 오랜 동안 식민 상태를 겪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들이 언제 어디에 살든 인류로 묶일 수 있는 만큼은 보편성을 가질 터이므로, 철학적 문제와 해결 방안도 그 범위만큼은 보편적일 것이니, 바로 그 영역 내에서는 굳이 외래 사상이니 자생적 사상이니를 구별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화의 제 양상과 그에 수반하는 철학적인 문제들 가운데는 국가 단위의, 또한 시대적인, 특수성이 있기 마련이므로, 한국인들의 사상이 그런 특성을 갖지 못한다면 기본적으로는 한국의 사상이랄 것도 없는 것이며 그럴 경우 그것이 한국의 문화나 세계의 문화 향상에 어떤 기여를 할 것이라 기대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어떤 지역의 사상이 다른 지역의 사상과 단지 다르다는 그 이유만으로 그것이 특별히 좋다고 내세워져야 할 것은 없으나, 그렇다고 "요즈음 세계 일류 국가에서는 이런 철학 사상이 풍미하며, 이런 철학적인 문제가 각광을 받는다. 그러므로 한국 사람들도 그런 것을 탐구할 필요가 있고, 해야만 한다"는 문맥에서 외래 사상을 추종하고 수용함으로써 보편성을 유지하는 그런 사고 활동을 한국의 사상이라고 내세우기는 더욱 어렵다.
우리가 진정으로 한국의 철학을 얘기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철학하는 사람들의 노고의 결실이 세계 문화 수준을 이끌만한 보편성을 가지면서도 한국적인 문제, 예컨대, 서양 존재론의 번역·해설이 아니라, '이다'-'있다'의 구조 분석이라든지, 한국에서 계사(copula) 구조의 탈락 현상 해명이라든지, 동서 문화의 접점에서 생긴 '이성' 내지 '합리성' 개념의 새로운 정립이라든지, 좌우 이데올로기의 충돌 지점에서 사회 운영 원리나 세계 평화의 원리 모색이라든지, 유교 윤리와 기독교 윤리의 혼융의 어려움 극복과 같은 상황의 특수성을 반영한 것이어야 한다.
철학적 문제들 가운데는 보편적인 인간의 문제와 아울러 민족 역사적·문화 전통적 특성을 갖기도 하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 철학은 중국적일 수도 있고 독일적일 수도 있으며, 미국적일 수도 있고 한국적일 수도 있다. 이때 '∼적' 철학은 물론 특정 시대, 특정 지역,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유효할 수도 있지만, 이 점에 있어서는 이른바 과학도 마찬가지이다. 철학에 '∼적'이라는 이름을 붙여 다른 철학과 구별하는 것은 그 유효성의 제한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문제 의식과 그 주제 전개 양태의 특별성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예컨대, 실용주의 철학을 미국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이론이 미국 사람에게만 타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상이 특히 미국에서 전개되었고, 미국의 생활 양상을 잘 반영한다고 보기 때문이며, 또 정언적 명령에 의한 의무에 따르는 행위만을 도덕적 행위라고 평가하는 철학 체계를 칸트적, 또는 프러시아적, 또는 독일적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도덕 철학이 칸트 자신에게만, 또는 18세기 후반 독일 사람에게만 유효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비교적 독일 사람들의 의무 관념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한국 철학을 얘기하고자 할 때 염두에 두고 있는 것도 이런 의미에서의 한국적 철학이다. 독일적인 문제나 미국적인 문제 가운데 단지 특정 지역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 것이 많은 것처럼, 한국적인 문제들 가운데는 그것이 타지역 사람들에게 현안 문제로 의식되지 않았을 뿐 근본적으로는 인류 공동의 문제인 것이 많이 있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철학적 통찰은 한국의 철학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세계 문화에 다양성을 주어 인류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철학의 성립은 그 주석의 소재가 800년 전의 고려 불교 사상이냐, 400년 전의 조선 유교 사상이냐, 200년 전의 독일 철학이냐, 현대의 미국 철학이냐에 따라서 좌우된다기보다는 그 문제 의식과 탐구 자세 그리고 연구 방법과 연구 결실이 인류 문화의 보편성을 유지하면서도 얼마나 한국적 특수성을 담지하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율곡·다산의 전적을 주해 요약 해설하는 일은 한국철학을 하는 것이고, 로크·칸트에 대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서양철학을 하는 일이라는 식의 이해는 올바른 것이라 보기 어렵다. 아마도 기껏 전자는 한국철학사 고전 연구의 일환이고, 후자는 서양철학사 문헌 연구의 한 가지라고 말하는 정도가 제격일 것이다.
서양철학·동양철학·한국철학
그렇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철학이란 무엇인가? 적지 않은 사람들이 100년 전, 아니 2,500년 전의 이른바 동양 철학을 한국 철학과 동일시하거나, 아니면 그런 동양 철학은 '동양의' 철학이니까 '우리의' 철학이라고 여기거나 또는 오늘 우리의 한국 철학은 200년 전 서양 철학보다는 200년 전 동양 철학에 자연히 더 근접해 있다고 보는 경향이다. 이런 심리적 친근성의 정체는 무엇인가?
대체 동양철학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의 철학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또는, 세계를 크게 동·서양으로 나눌 때, 한국은 동양에 속하니까, 동양철학에는 한국 철학도 일부 들어 있는 것인가?
서양 문물의 위력이 충분히 입증된 19세기 후반 동아시아 3국의 경세가들은 동도서기(東道西器)론을 주창했다. 서양의 그릇은 수용하되 그것에 동양의 (정신적) 원리를 담아 쓰자는 주장이었다. 이런 주장 속에는 서양의 '도'는 취할 것이 못되며, 또한 동양의 전통적인 그릇은 효용성에서 서양 것만 못하니 버리자는 논지가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주체성을 유지하자는 자기 문화 정체성에 대한 신념과 자기 보존 기제에서 비롯한 것일 수도 있고, 가시적인 그릇의 위력은 도저히 부인할 수 없으니 그것은 수용하기로 하되, 우열의 분별이 명료하지 않은 '도'는 계속해서 내세워보자는 전략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동도서기론에서 서양이 유럽과 미국을 지칭하고, 그릇은 근대 이후의 수학적 자연과학 내지 과학기술을 지시함은 거의 분명하다. 그렇다면, '동'(東)과 '도'(道)는 무엇을 지칭한 것이었을까?
중국에서는 동시에 중국적인 것을 중심에 놓고 서양의 문물을 활용하자는 중체서용(中體西用)론이 나왔고, 일본 사람들은 서양의 기술과 일본의 혼을 접합시키자는 서기화혼(西技和魂)을 슬로건으로 내걸었으니, 그들에게서 '동'은 어디까지나 자기들 자신이었고, '도'는 자기들의 철학 내지 역사 문화적 자산을 뜻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동'은 한국을 지시하는가?
지금도 대부분의 한국 사람의 관념에는 동양과 동북아 3국(곧, 한국·중국·일본)은 거의 동일한 것일 뿐만 아니라, 1세기 전에는 더욱 더 그랬고, 아마도 1세기 반전에는 동양은 중국이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이 동양의 도를 말했을 때 그것은 거의 유교적 원리를 염두에 둔 것이다.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유교의 도덕 및 정치 원리가 국가적 제도로까지 발전한 경우는 중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니요, 오로지 조선시대의 한국 뿐이라 할 수 있으니, 그 점에서 유교적 원리는 중국적인 것이라기보다는 한국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보아 저 '동도'가 꼭 중국적인 것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적인 것도 포함한 것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것이라면 기독교 윤리도 한국화하면 한국적인 것이라 해야 할 것이고, 민주주의도 한국에서 현실화되면 한국적인 것이라 한다해서 이치에 벗어난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무엇이든 수용해서 발전적으로 사용하면 한국의 것이 될 것인데 굳이 동도서기를 분별해서 말할 것이 있을까?
한국 사람들이 예나 지금이나 '동양은 곧 한국'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는데도, '동도'를 말했으니, 그것은 어떤 한국 고유의 정신을 지칭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 그런 것을 지칭했다면, 한국 고유의 정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런 무엇을 염두에 둔 것이라면, 중국 사람들이 중체서용을, 일본 사람들이 서기화혼을 얘기했을 때, 조선 사람들이 중국인과 더불어 마치 자신들이 중국 사람인 양 동도서기를 말하는 대신에 선도서기(鮮道西器)나 한도서기(韓道西器)를 덧붙여 얘기했음직하다. 그러나 이런 얘기를 한 이가 없었다는 것은 '동도'가 동학이나 한국의 토속 신앙 내지는 민간 습속을 지칭했다기보다는 넓게 보아 유·불·도 등 중국적인 고급 사상 체계를 지칭한 것이었기 때문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화의 이름 아래 서양적인 것이 물품뿐만 아니라 이른바 정신조차도 한국 사회 곳곳에 파고들자 최근 들어 다시금 한편으로는 '우리 것을 찾자'는 의식이 확산되어 가고 있다. 이런 마당에 한국에서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듣고 '아, 우리 동양에도 이런 근사한 것이 있구나!' 하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의 중심에는 노자(老子)와 논어(論語)가 있으니, 우리에게 '우리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어떤 관점에서 보면 아주 분명하고, 어떤 관점에서 보면 매우 모호하다. 분명한 것은 보통 한국 사람의 관념에 노자와 공자의 사상은 '동도'를 대변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 것'에 포함된다는 사실이고, 모호한 것은 이것이 과연 '우리 것'인지, 어떤 의미에서 '우리 것'인지, 또 그것은 '우리 것'이니까 좋다는 것인지 어떤지 이다.
이렇듯 한국인에게 동양철학이란 연원적으로는 대개가 중국의 철학이다. 그런데도 동양철학이니까 우리 철학이라 한다면, 그것은 서양철학과는 달리, 거리 상으로 조금 더 가까운 데서 더욱이 훨씬 오래 전에 한국 사회 문화에 유입되어 이미 한국 것처럼 쓴 지가 한 참 되었으니 우리 철학이나 다름없다는 말인가? 아니면, 피부 색깔도 비슷하고 풍토도 비슷한 같은 동양 지역 사람들의 사상이기 때문에, 그것은 한국의 풍토에도 한국 사람들의 감정에도 맞고 한국 사회 문화의 문제 해결에도 적절한 사상이라는 말인가? 누가 동양 철학이란 비록 그 원류의 대부분을 중국이나 인도의 사상에서 찾을 수 있다 하더라도, 이미 오랜 동안 한국식으로 변양되어 이미 토착화된 한국 사상이라고 말한다 해서 잘못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 서양 사상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은 기독교적인데, 기독교가 동방의 유태 지방에서 유래했다 해서, 그것이 서양 사상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이치와 같으니 말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로마 세계에 이식된 것하고, 유교와 불교가 그리고 심지어 도교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확산된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기독교는 속방에서 나와 본토로 확산된 것이고, 유교나 불교는 상국으로부터 주변으로 전래된 것이니 말이다. 여기에 이런 분석을 굳이 붙이는 것은, 20세기 초 이래 서양 사상의 한국에서의 확산에도 '상국 문화의 유입과 수용'이라는 그 성격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상국이 중국에서 미국·영국·독일·프랑스 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동양 철학은 비록 그것이 본디 한국 문화에서 발생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 사회 문화에 수용된 지 이미 수천 년, 수백 년이 지났으니 한국 사상이라고 말한다면, 20세기에 비로소 수용된 서양 철학도 현재의 추세대로 한 두 세기 더 흘러가면 같은 의미에서 한국 철학이 될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철학이라는 것을 '한국에서 활발하게 논의되는 철학'으로 이해하는 한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사정이 진정 이러하다면, 한국 사상계는 예나 지금이나 사대주의적이라는 평은 감수하지 않을 수 없을 터다.
한국 철학의 의의
오늘날 우리가 한국 철학을 모색한다, '한국철학을 한다'고 말할 때, '한국 철학'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문으로 서술되어 있는 퇴계나 율곡의 이론을 요즈음의 한국말로 바꿔 해설하면, 한국철학을 하는 것일까? 조선 실학자 정약용과 최한기를 비교 연구하면 한국철학을 하는 것인가? 그 반면에 홉스(Th. Hobbes)와 로크(J. Locke)의 사회계약설의 시비를 따지면, 영국철학을 하는 것이고, 칸트와 헤겔에서 신의 존재 의미를 새기면, 독일철학을 하는 것인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퇴계나 율곡이 주로 주자학을 논했지만, 그 천착한 바가 중국의 그것과 차이가 나고, 문제 접근의 주안점에 당대의 한국적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들의 철학을 오늘날 '한국 성리학'이라고 부르고 또는 '과거의 한국 철학'이라고 부르듯이, 오늘날의 우리가 로크를 논하든 칸트를 논하든 그 논점이 한국 사회 현안 문제에 비추어 절실하면, 그것을 논함을 한국철학을 함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제 학문의 총칭으로서의 옛 철학 개념 대신에, 뭇 학문이 분화된 오늘의 관점에서 철학이라는 것을, 이미 말한 바 있듯이, 자연과 인간 사회 문화 제 영역의 최고 원리들과 제 영역의 통일 원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이해한다면, 그래서 우리는, 한국 철학이란 한국 사람이 한국에서 통용되는 언어로 자연 및 한국 사회 문화 제 영역의 최고 원리와 제 영역의 통일 원리를 반성적으로 탐구하는 지적 활동 또는 그 결실이라고 포괄적으로 규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한국 사람이 미국에서 영어로 인류 사회 문화의 원리적 문제를 추궁하여 큰 성과를 거둔다 해도, 분명 그것은 한국 철학계가 거둔 큰 성과라 할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런 철학에 굳이 당장 국적을 부여할 것까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컨대 폴란드 사람 타르스키(A. Tarski)의 의미론적 진리론은 인식 논리학 상의 큰 업적에 속하지만, 굳이 그의 의미론적 진리론을 폴란드 철학이라고 해야 할까 싶다. 다른 문화 영역의 예이기는 하지만, 가령 조수미가 밀라노에서 푸치니를 노래하여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고, 장영주가 뉴욕에서 베토벤을 연주하여 한국 음악인의 자질을 세계 음악계에 떨쳤다 해서, 그들이 한국음악을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한국 사람이 철학함'을 '한국철학을 함'으로 이해한다면 또 다른 풀이도 가능하겠으나, 한국 철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한국적인 요소, 그것이 문제 상황에 따른 것이든, 주제에서 비롯한 것이든, 아니면 문제 접근 방식에 수반하는 것이든, 한국 사회 문화의 특성을 떠나서 한국 철학을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한국 철학도 철학인 이상 학문적 보편성을 갖는 것임에 틀림이 없고, 만약 그런 보편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철학 축에 끼지도 못할 터이다. 그러나 문화 일반이 보편성을 가지면서도 특수성을 갖듯이, 철학도 보편성을 가지면서도 특수성을 가지기에 우리는 중국철학과 미국철학, 독일철학과 인도철학을 구분하는 것이고, 같은 수준에서 한국철학을 논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문제 상황에서 어떤 주제를 어떤 방식으로 다루든 한국 사람이 세계 철학계에서 큰 업적을 내고, 또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런 학문적 전통이 한국에서 생기면, 분명 그것 역시 한국 철학의 범위에 포함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가정해서 한국 철학을 규정한다면, 철학 분야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든 잘만 하면 (그리하여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지면) 한국철학을 한다고 말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니, 결국 하나마나 한 얘기가 되고 말 터이다. 그러므로, 한국철학을 논하는 마당에서는 우리는 마땅히 그 의미를 좀더 좁혀서 얘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요즈음 한국 사람들이 자주 문제삼고 있는 '서양 철학의 유입과 수용을 통해 한국 철학이 어떻게 변화했는가?'라는 물음 또한 단지 그로 인해 '한국 철학계가 어떻게 변화했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한국 사람들이 한국 사회 문화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사고하고 해결하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묻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우리는 한국 사회 안에서 세계와 교류하며 살면서 인간다운 삶을 꾸려 가는 데 수많은 문제에 부딪치며, 필요한 경우 이에 철학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문제들이 한국 철학의 소재를 이루는 것이고, 그 문제 해결의 노고와 결실이 한국 철학의 내용을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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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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