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을 보라』는 니체 자신의 삶의 여정과 사유역사를 표출해 낼 철학적 자서전으로 기획되었다. 이 책이 “내가 누구인지를 밝혀두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로 시작해서 “나를 이해했는가? 디오니소스 대 십자가에 못 박힌 자.”로 끝맺는 것만으로도 그 의도는 충분히 확인 가능하다.
그런데 니체의 집필 의도는 과연 성공적이었을까?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나는 곧 인쇄될 『이 사람을 보라』에서 완전히 정리했다.”는 편지를 보면(1888년 12월 27일) 니체 자신은 만족한 듯이 보인다. 철학자 니체와 니체의 철학에 어느 정도 지식이 있다면, 니체의 이 고백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는 철학자 개인의 삶과 철학 내용을 분리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그 생각을 직접 실천하고자 했다. “나는 내 작품을 내 온 몸과 삶으로 쓰며, 순수하게 정신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니체의 단언은 그에게서 실행에 옮겨졌다.
이 책은 그 실행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는지를 직접 보여준다. 여기서 그의 철학은 그의 개인적 특성과 삶의 특징을 통해 설명된다. 따라서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지> <나는 왜 하나의 운명인지> 등의 소제목은 결코 이상한 제목일 수 없다. 여기서의 ‘나’는 ‘내 철학’으로 대체되어도 무방하다. 철학적 자서전으로 기획된 책이 ‘실제로’ 철학적 자서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이 점을 전제해야 『이 사람을 보라』에 대한 정당한 이해가 -정당한 학적 평가 역시- 가능해진다.
『이 사람을 보라』는 니체의 철학적 실존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책은 니체가 자신의 삶과 정신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던 마지막 시기에 집필되었다. 1888년 가을 토리노에서 집필되고, 12월 말에는 모든 교정작업이 완료되었다. 그로부터 단 며칠 후인 1889년 1월 3일(혹은 7일)에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의 졸도 사건이 발생하고, 그 후 니체는 어두운 터널로 10년의 시간동안 점점 더 깊이 들어가니, 이 책은 그의 철학적 유언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도 “나는 다이너마이트고 [...] 최초로 진리를 발견했고 [...] 전대미문의 복음의 전달자이며 [...] 전대미문의 전쟁이 나와 더불어 벌어질 사람이니 [...] 나는 이런 사람이니, 나를 혼동하지 마시오!”라는 격한 어조를 통해 자기 자신과 자신의 철학을 다시 한 번 해명하는 형태로 말이다.
그런데 니체는 어째서 이런 격한 어조로 철학적 자서전을 쓸 생각을, 그것도 굳이 이 시기에 한 것일까? 자기 자신에게 닥칠 불행을 예감했기 때문이라고 답변할 수도 있겠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좀 더 설득력 있는 대답은 오히려 그에 대한 시대적 평가와 그의 저술경향에서 찾을 수 있다. 1888년이라는 해는 니체의 저술역사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이 사람을 보라』 외에도 무려 다섯 권의 저술이 쏟아진다. 그런데 이 저술들은 새로운 사상을 전개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미 제시되었던 사유들을 방법을 달리하여 전개한다. 모순의 지적이나 차별화 등을 통한 설득적 노력은 포기되고, 기존 사유들을 극도로 첨예화시키고 극단화시켜 무기처럼 휘둘러댄다. 그러면서 ‘데카당스!’ ‘데카당스!’라는 고함을 마구 질러댄다. 『바그너의 경우』에서는 바그너의 얼굴을 향해, 『안티크리스트』에서는 그리스도교 교회를 바라보며, 『우상의 황혼』에서는 유럽의 철학과 문화 전체를 대상으로. 『이 사람을 보라』 역시 이런 정신적 기조를 공유한다. 그래서 새로운 사상의 전개도 보이지 않고, 설득을 위한 노력도 없다. 여기서 그는 그의 기존 사유들 ‘전체’를 무기삼아, ‘나는 데카당스를 극복한 사람이니, 나를 혼동하지 마시오!’라는 고함을 내지르는 것이다. 이런 고함을 유언처럼 내지르는 것은 니체에 대한 시대적 평가와 관련이 있다.
니체는 아주 오랫동안 세간의 외면과 오해를 받아왔던 철학자며, 그로 인해 많은 상처를 받았다. 그는 자신이 시대를 너무 앞서 있으며, 백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자신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자신을 위로하곤 했다. 그런 상황에서 변화의 작은 징후가 바로 이 시기에 그에게 감지된다. 그 단초는 코펜하겐 대학에서 니체 철학에 대한 강의가 열린다는 소식이었다. 여기에 독일 내에서도 니체 철학에 대한 진지한 주목이 미약하게나마 생기고 있었으며, 특히 1888년 초에 출간한 『바그너의 경우』는 긍정적 반향과 부정적 반향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니체는 이것을 ‘외면의 대상을 주목의 대상으로 전환’ 하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이에 고무된 니체는 이제 자기 자신의 삶과 철학에 대해 해명하는 기회를 얻고 싶어한 것이다. 미래를 위해서. ‘단순한 주목의 대상으로부터 긍정적 평가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미래를 위해서.‘다이너마이트이고 진리의 첫 발견자이며 전대미문의 전쟁을 촉발시키지만, 데카당일 수는 없다’라는 니체의 자화상은 구체적으로는 어떤 모습일까? 『이 사람을 보라』를 진지하게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백승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