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이후 P)과 아리스토텔레스(이후 A)의 철학은 변증법적으로 정과 반의 관계에 있다. 영속적이고 불변하는 실재라는 의미에서의 존재라는 개념으로 P의 특징을 드러낼 수 있고 전화(轉化)의 개념을 A의 특징으로 말할 수 있다. 불변하는 존재도 실재적이고 변화와 생성 역시 실재적이다.
P는 소크라테스와 마찬가지로 윤리적 판단의 타당성을 상정했다. 또 윤리적 가치들에 대한 명확한 이해에 변증법적으로 도달하고, 그것들의 본성을 정의(定義) 안에 보존하며 윤리적 개념을 결정화하려고 했다. P는 만약 윤리적 개념들과 윤리적 판단들이 객관적이고 보편적으로 타당하려면 어떤 객관적 근거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을 알았다. 도덕적 가치들은 양이나 개와 같은 구체적 사물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개념임이 분명하다. 그것들은 인간의 행위를 통해 구체적 세계 안에 실현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거나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므로 가치들에 귀속하는 객관성은 양이나 개에게 귀속하는 개관성과 같은 종류의 것은 아니나 개념적 객관성 또는 개념적 질서 안에서의 객관성이어야 한다. 또한 이 세계 내의 물질적 사물들은 변화하고 소멸하는 반면 도덕적 가치들은 불변이라고 P는 확신했다. 그러므로 도덕적 가치들은 변증적 과정 끝에 이르러 직관적으로 파악되는 개념적이면서도 객관적인 본질이라고 결론지었다. 이런 도덕적 가치들은 선 또는 완전성을 공동으로 공유하기 때문에 이것들이 최상의 개념적 본질이자 절대 선 또는 완전성이며 이데아 세계의 태양인 선의 이데아에 참여하거나 그로부터 자신들의, 선이나 완전성을 이끌어 낸다.
P는 이런 방식으로 소크라테스의 윤리에 기초한 하나의 형이상학을 일구어 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P는 선한 것들이 선 자체에 참여하는 것과 똑같이 개별적 실체들은 종적 본질에 참여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자신의 변증법을 도덕적이고 미적인 가치들뿐 아니라 보통의 개념 일반까지 적용하게 되었다. 가치론 자체가 어느정도 보통명사는 객관적인 지시체를 지녀야만 한다는 논리적 토대에 의거하기 때문에 이런 새로운 관점은 P사상의 균열을 이룬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이론의 확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같은 관점으로 인해 P는 이데아들 사이의 관계들뿐만 아니라 감각적 대상들과 이데아 또는 범형적 본질들 사이의 관계를 보다 정밀하게 고찰 해야했다. 그는 위계적인 지적 구조와 이데아들 사이의 교섭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개발했으며 참여를 모방으로 설명했다. 그 결과 순수한 가치들과 가치들의 담지자들이 있던 곳에 진정한 본질적 실재 또는 객관적인 지적 구조와 감각적 개별자들 사이의 이분법, 원본과 투영된 것 또는 복사물 사이의 이분법이 들어섰다. 또 이런 구분은 존재와 전화를 구분하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P는 인간의 종적 본질을 개념적인 것으로 간주했으며 전화의 진정한 의미는 그 개념적인 것을 향한 점진적 접근과 그 개념적인 것의 물질 세계, 즉 인간 개개인과 사회 내에서의 실현에서 찾아져야 한다고 볼 수 있다. P는 자신의 목적론을 통해 가변적인 세계와 참 존재의 불변적 세계 사이의 어떤 관계를 인정했다. 전화 그 자체와 특수성 그 자체는 비합리적인 것으로, 정의되지 않는 영역으로 사라져야 할 요소였다. 논리학과 존재론이 같은 것으로, 적어도 양자를 평행한 것으로 간주하는 철학자에게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사유는 보편자에 관한 것이고 존재를 이해하는 것이다. 보편자는 존재이고 불변이며 참된 존재도 불변한다. 특수자는 변화하고 생성 소멸하며 그것이 변화하고 생성소멸하는 한 참된 존재가 아니다. 사유는 1차적으로 존재에 관계하며 생성소멸하는 특수자가 참된 존재를 모방하는 한 오직 2차적으로만 관계한다. P가 존재의 범형에 따라 세상을 주조하는 것에도 관심을 가졌던 건 사실이지만 강조점은 틀림없이 전화가 아니라 참된 존재였다.
A도 형이상학자는 존재에 관계하고 변화와 생성을 부동의 제1원동자의 목적 인과성에 기인한다고 생각하며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상의 행위는 존재에 대한 이론적 관조라고 한 걸로 봐서 어느정도 P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A는 P를 벗어난다. 그리고 P의 이데아론에 대해 A는 반론을 제기한다.
P의 이데아론이 감각적 대상들과 이데아들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남겨 논다는 사실이다. P는 순수 보편자와 순수 특수자의 이원론, 즉 감각적 세계로부터 그 실재성과 의미를 빼앗아버리는 이원론을 남겼다. 그러나 A는 보편적 요소 또는 본질적 형상이 학문 및 이성적 지식의 대상이라는 P의 일반적 입장을 인정하는 가운데 보편적 요소를 감각적 대상의 내내적인 본질적 형상과 동일시했다. 그 형상은 질료와 더불어 대상을 구성하며 대상 안에 있는 지성적 원리다. 이 형상적 원리는 유기체 내에 있는 형상적 원리처럼 대상의 활동 안에서 자신을 실현한다. 그것의 현실태는 유기체의 기능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며 질료 안에서 자신을 펼치며 질료를 조직, 주조, 형성하고 어떤 목표를 지향한다. 그 목표는 현상 안에 있는 본질로 이데아의 충분한 현현이다. 모든 자연은 종들의 위계로 간주되고 그 각각의 종 안에 있는 본질은 일련의 현상 안에서 스스로를 완전하게 실현한다. 또 모든 자연은 최상의 부동자가 지닌 궁극적인 목적 인과성에 의해 다소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이끌어진다. 원동자는 그 자체로 완전한 현실태이자 순수한 비물질적 존재 또는 사유로 자존적이고 자족적이다. 그러므로 자연은 자기 완성 또는 자기 전개의 역동적 과정이므로 의미와 가치는 일련의 현상들 속에서 이루어진다.
존재는 어떤 것이 현실적인 한 그것의 속성으로 단정될 수 있으며 가장 탁월한 존재는 가능태와 혼합되지 않은 가장 탁월한 현실태이다. 실현되는 세계요 가능태에서 현실태로 환원되는 세계인 전화의 세계는 현실태 또는 존재가 질료 안에서 그리고 현상 안에서 궁극적 현실태 또는 궁극적 존재의 목적적 유인을 반으면서 끊임없이 실현되는 세계다. 그러므로 전화는 존재 안에서 설명되어야 한다. A는 자신의 현실태론, 즉 자연의 과정 속에서 자신을 실현하려는 경향이 있는 내재적인 실체적 형상의 이론을 통하여 P의 철학에서 소실되었던 감각적 세계에 의미와 실재성을 부여했다. A는 인간의 목표는 성질이 아닌 행위라고 주장하고 P는 성질이 행위에 우선한다는 인상을 준다. P의 절대자는 A가 말하는 '자신을 사유하는 사고'의 내재적인 활동이 아니라 최상의 범형이다.
그러므로 A는 자연철학이 매우 중요했다. 그는 자신의 내재적 본질설을 P의 초월적 본질설에 대한 수정으로 간주했다. 따라서 P의 섭리 개념, 즉 이 세계에 내재하면서 이 세계 안에서 작용하는 신의 지성이라던가, 범형적 인과성의 개념 등을 버려야 했다. 대신 비물질적 형상은 지적이라는 것과 최상의 현실태는 최상의 지성이라는 것, 최상의 작용인과 범형인과 목적인을 한데 묶어 동일시 했다.
우리는 철학사에서 신플라톤주의, 중세철학, 근대를 거치면서 완전히 실재적인 것은 완전히 지성적인 것이며 완전히 선한 것이라는 확신 위헤서 두 철학자들의 공헌을 이용하면서 통합하고 건설하며 종합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성공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